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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5276 vote 0 2016.02.16 (10:52:04)

     

    조정에서 하대부들과 대화할 때는 깐깐侃侃했고 상대부들과 대화할 때는 은은誾誾했으며 임금 앞에서는 조심스러우면서도 당당했다與與.


    하대부는 공무원이므로 깐깐해야 하고, 상대부는 정치가들이므로 은은해야 하고, 임금은 당당해야 하므로 공자 역시 당당하게 행동한 것이다. 공무원들 앞에서는 공무원처럼 행동하고, 정치가들 앞에서는 정치가처럼 행동하고, 임금 앞에서는 임금처럼 행동해야 군자다. 정치가는 내치를 하므로 아기를 돌보는 어머니처럼 인자해야 하고, 임금은 외교를 하므로 당당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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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1편 선진先進


    “선진先進의 예악은 야인과 같고 후진後進의 예악은 군자와 같다. 내가 쓸 것은 선진의 것이다.”


    선진先進은 제자 중에서 선배그룹인 자로, 자공, 유약이다. 후진後進은 후배그룹인 안회, 증자, 자하, 자유, 자장이다. 후배들의 예악이 더 군자답게 세련되었지만 깨달음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일은 복제, 조합, 연출된다. 복제는 일의 첫 시작단계다. 시작단계는 여러 사람 사이에 합의되어야 한다. 단순해야 합의가 가능하다. 조합하고 연출할수록 세련되고 화려하다. 미술이라도 현대의 건축과 회화는 단순하게 간다. 베르사이유 궁전처럼 화려한 것은 예술의 관점에서 보면 촌스러운 것이다. 현대의 디자인은 무조건 심플해야 한다. 예술이 현란해진 것은 장인이 재주를 인정받아 가격을 올리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미 예술의 참뜻에서 멀어졌다. 공자의 제자 중에서 후배그룹이 스승 앞에서 재주를 과시하려고 세련된 연주를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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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회는 나를 돕지 않는다. 내 말에 기뻐하지 않는 바가 없구나.“


    안회는 공자와 포지션이 겹친다. 공자와 자공과 자로가 셋이서 팀을 이루니 완벽하다. 일은 복제, 조합, 연출한다. 공자가 덕을 복제하여 사람을 모으고, 자공이 임무를 조직하여 계책을 내고, 자로가 그 행동력으로 연출하면 완벽하다. 일의 시작과 의사결정과 마감으로 맞아떨어진다. 안회의 낄 자리는 없다. 안회는 자공과 자로를 꾸짖는데만 쓰임새가 있다. 제자들을 공자 자신과 비교할 수는 없으므로 대신 안회와 비교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자가 죽고 나면 그 자리는 안회의 차지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안회는 공자보다 먼저 떠나버렸다. 이후 공자의 참뜻을 전달할 사람은 없었다. 증자는 종교적인 퇴행을 저질렀고 자공은 재주가 출중한 만큼 사려깊은 철학자의 면모가 부족했다. 현실참여적인 유가는 법가적 실용주의로 빠질 위험이 있다. 그것을 견제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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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회가 죽자 공자 탄식하되
    "아! 하늘이 나를 버렸다! 하늘이 나를 버렸다!"


    공자는 제자들에게 지식을 전수하려 한 것이 아니다. 지식은 도서관에 쌓여 있다. 지식은 결코 개인의 소유가 될 수 없으니 누구든 도서관에서 필요한 지식을 챙겨가면 그만이다. 군자가 되는데 스승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공자의 스승은 없다. 석가의 스승은 없다. 예수의 스승은 없다. 소크라테스의 스승은 없다. 공자는 지식이 아니라 깨달음을 전수하려 한 것이다. 깨달음은 일이다. 일은 서로간에 손발이 맞아야 한다. 유가라는 이름의 거함이 항해하여 대양을 건너가는데 선장노릇을 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 공자 이후 유가는 종교화 되었고 법가, 묵가 등으로 퇴행했다. 도교 또한 유교에 부족한 형이상학을 채우려 한 점에서 유가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공자의 깨달음은 완전히 맥이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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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회가 죽자 후히 장사지냈다. 공자 가로되
    "안회는 나를 아비로 보았으나 나는 안회를 친자식처럼 보내지 못했다. 그것은 내가 아니라 제자들 때문이다. "


    자식이 죽었는데 아버지가 화려한 장례를 치른다면 이상하다. 친자식의 죽음처럼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했는데 요란한 장례를 치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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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도 제대로 섬기지 못하면서 어찌 귀신을 제대로 섬기겠느냐. 삶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


    인생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일이다. 개인이라는 일의 상부구조는 귀신이 아니라 집단이다. 우리는 보이지 않게 귀신의 지배를 받아 살아가는게 아니라, 보이지 않게 집단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삶의 상부구조는 죽음이 아니라 실존이다. 삶은 죽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실존에서 나왔다. 실존은 환경과의 상호작용이다. 죽음을 보고 삶을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니라 실존을 보고 삶을 깨닫게 된다. 집단은 개인에 앞서고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귀신을 찾는 행위는 부족민의 종교행동이다. 인간의 종교적 본성은 집단에 고도의 긴장을 불어넣어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긴밀하게 하려고 한다. 그 상태에서 의사결정은 합리적인 결정이 될 수 있다. 집단에 긴장을 불어넣기 위해 축제, 살인, 기행을 저지른다. 마녀사냥을 벌이고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치며 종북이를 찾아내고 빨갱이를 사냥한다. 서울시내에서 땅굴을 찾아내기도 한다. 그 결과로 집단은 분열한다. 집단을 분열시켜 규묘가 작아지면 상대적으로 집단 안에서 자신의 비중이 커지기 때문이다. 안철수가 탈당하자 당대표로 지위가 올라간 것과 같다. 소인배의 부족민 행동이다. 공자는 부족의 규모를 인류로 확대했다. 그러자 부족민의 종교행동이 불필요해졌다. 인仁에 의해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긴밀해졌으므로 구태여 매카시즘을 발동할 이유가 사라졌다. 인仁으로 복제하고, 의義로 조합하고, 예禮로 연출하면 일은 완결된다. 이것으로 인간을 통제할 수 있다. 현대의 예는 문화, 교양, 예술, 패션이다. 빛이 나서면 어둠은 구태여 내쫓지 않아도 저절로 사라진다. 예를 따르면 귀신은 저절로 사라진다. 문화와 예술과 교양을 따르면 죽음은 스스로 물러간다. 인仁으로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긴밀하게 하면 종교는 필요없다. 철학은 철학자에게 맡기고 대중은 미학적 스타일로 각자의 삶을 가꾸어야 한다. 그것이 개인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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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장은 지나치고 자하는 미치지 못한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니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뜻이다. ‘둘이 같다.’는 설도 있고, ‘그 중간값을 취하여 중용으로 삼으라.’는 말도 있다. 일은 약간 모자라는 것이 알맞은 것이다. 음식은 한 숟갈 남기는 것이 매너다. 신발은 약간 큰 것이 꼭 맞다. 핸들은 약간 무거운 것이 안정된다. 일은 반드시 여유가 있어야 한다. 전쟁은 예비병력이 있어야 하고, 사회는 5퍼센트의 실업자가 있어야 한다. 돌발변수에 대비하여 예비자원을 두어야 한다. 꼭 맞게 하면 꼭 탈이 난다. 돌발상황은 일어난다. 인간은 효율을 추구하지만 이는 매우 위험한 태도이다. 자하가 자장보다 낫다. 왜냐하면 자하는 잘할 수 있으면서 일부러 못하는 척 겸양을 행했기 때문이다. 혹은 공자가 아끼는 제자를 분발하게 할 의도로 낮추어 말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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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구는 이제 내 제자가 아니다. 제자들아 북을 울리며 그를 비판해라.“


    염구는 노나라에서 벼슬하며 제나라와 싸워 이기고 승승장구하며 잘 나갔지만 가혹한 세금으로 공자의 미움을 받았다. 임금들은 공자를 등용하지 않고 공자에게서 염구와 자공을 비롯하여 유능한 제자들만 빼갔다. 공자는 명성을 얻었지만 이상을 실현할 기회는 얻지 못했다. 공자의 제자들은 현실과 타협하여 그들의 임금을 기쁘게 했다. 공자는 배신감을 느꼈지만 자기 입으로 현실정치 참여를 주장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안회가 죽고 공자의 사상은 옳게 전수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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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고는 어리석고, 증자는 노둔하고, 자장은 편벽되고, 자로는 속되다.”


    공자는 왜 제자를 비판했을까? 제자들이 지식을 배우려들 뿐 깨달음을 배우려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자가 유명해지고 나서 많은 제자가 모여들었으나 그들이 원하는 것은 스펙이었지 깨달음이 아니었다. 공자의 깨달음은 대가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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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회는 학문이 깊었으나 가난했다. 자공은 명을 받지 않고도不受命 재물을 불렸으니 예측이 맞았기 때문이다.


    불수명不受命이라는 표현에 주의하자. 자공이 명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깨닫지 못했다는 의미다. 이는 공문의 배움이 학자적 지식이 아니라 깨달음이라는 뜻이다. 안회는 나이도 어리고, 그다지 공부한 흔적도 없는데도 배움이 깊었다고 한다. 안회가 공자와 문답한 내용도 전하는 것이 별로 없다. 그렇다. 깨달음은 그냥 아는 것이다. 별도로 공부할 필요가 없다. 안회가 열심히 공부한 이유는 깨달음의 즐거움 속에 머무르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 또한 깨달음의 특징이다.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빠져들게 된다. 즐거움의 경지 속에서 구태여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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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리가 두텁다면 군자겠느냐 아니면 겉모습만 꾸미는 사람이겠느냐?”


    논리라는 것도 하나의 꾸며진 겉모습이다. 깨달음은 일이 연결되는 패턴을 직관하므로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전혀 설명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만 말 잘 하는 사람은 상대방의 수준에 맞추어서 말하는 법이다. 상대방이 듣기 원하는 말을 골라서 해주는 법이다. 대중이 잘 알아들었다면 보나마나 가짜다. 그것은 논리를 빙자하여 대중들에게 아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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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로가 묻기를
    “옳은 말을 들으면 곧 실천할까? ”
    공자 가로되
    “부형이 계신데 어찌 듣고 곧바로 행동하겠느냐?”
    염구가 묻기를
    “말을 들으면 곧 실행할까?”
    공자 가로되
    “듣는 대로 행할 일이다.”
    공서화가 묻자 공자 가로되
    “염구는 신중하므로 적극 나서게 하고, 자로는 적극적이므로 신중하게 행동하도록 한 것이다.”


    공자가 중용을 적용하여 각자의 수준과 성격에 맞게 가르쳤다고 설명하는 사람이 많다. 잘못된 접근이다. 일에는 반드시 감추어진 상부구조가 있다. 드러난 사실은 언제나 일부분이다. 성급하게 개입하면 잘못되고 만다. 몸통은 놔두고 깃털만 응징하는 실패를 저지르게 된다. 성급한 자로에게는 먼저 상부구조에 조치를 하는 신중한 대응을 요구하고, 신중한 염유는 상부구조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을 것이므로 단호한 실천을 요구한 것이다. 사람에 따라 다른 것이 아니라 일에 따라 다르다. 사람에 따라 다르면 빠져나가는 변명거리를 만들어주게 된다. 자로와 염구의 질문은 같은 질문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른 질문이다. 질문이 다르므로 답이 다른 것이다. 공자의 지나치게 발달한 직관력이 불필요한 오해를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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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로가 꾸지람을 듣고 변명하기를
    “백성이 있고 사직이 있는데 어찌 책 읽는 것만 학문이겠는가?”
    공자 가로되
    "이래서 내가 말 꾸미는 자를 미워하는 것이다.“


    자로가 공부가 덜 된 자고에게 벼슬자리를 알아봐주었다가 공자에게 꾸지람을 듣자 벼슬살이도 일종의 공부라고 변명하고 있다. 공자의 제자가 3천명이라고 하나 공자의 명성이 높아진 뒤에 따라붙은 자들은 대부분 스펙 쌓으러 온 자들이다. 공자는 3년을 공부하고도 벼슬하지 않고 더 배우려는 자를 보지 못했다고 한탄하고 있다. 공자의 가르침은 시詩로 뜻을 일으키며, 예禮로 뜻을 확립하고, 악樂으로 완성시키는 수준의 높은 직관력을 요구한다. 시詩 한 수를 읽고 곧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깨달음의 소스로 삼을 사람이 과연 있겠는가? 예禮를 한 번 배우면 곧 일의 우선순위를 파악하고, 연주를 한 번 들으면 곧 자연의 완전성을 포착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지식으로는 도달할 수 없지만 깨달음으로는 가능하다.



   aDSC01523.JPG


    일본은 비록 작은 소국일지언정 임금이 300명이라서 흥했고, 조선은 임금이 한 명 뿐이라서 망했습니다. 임금이 따로있는게 아니고 의사결정하는 자가 임금입니다. 모두가 임금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임금과 맞장 뜨는 자가 임금입니다. 곧 공자가 주문한 군자입니다. 


[레벨:5]vandil

2016.02.16 (16:34:36)

조선이나 고려시대 과거시험에서 시나 논술로 시험문제를 냈는데


그런 문제를 내어서 깨달은자를 선발할려고 한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6.02.16 (16:51:20)

초반에 좀 그랬는데 명나라 영향으로 형식화 되었습니다. 

창의적인 답안을 금지시켰는데, 왕을 비판하지 못하게 할 의도지요. 


명나라는 형식적으로만 유교를 취하고 실제로는 선비를 탄압했습니다.

조선 초에도 사화가 거듭되는 등 선비를 죽이자 하는 민중의 여론이 있었습니다.


백성들이 선비를 지지한다는건 조광조 혼자 착각이고 실제로는 그 반대입니다.

유교가 득세하니 이를 견제하려는 여론이 크게 일어났습니다. 

[레벨:5]vandil

2016.02.16 (17:24:53)

역시 제대로 공자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군요. 

공자 사후 부터 지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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