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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5994 vote 0 2016.04.22 (12:03:39)

     

    개미가 코끼리 앞에서 ‘이 결혼 반댈세.’ 하고 떠들어봤자, 코끼리는 신경쓰지 않는다. 인간과 신의 관계도 같다. 인간이 무슨 죄를 짓든 무슨 선을 행하든 그것이 신의 관심사는 아니다. 살인마가 백만 명을 죽인다 해도 신의 관점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타자일 때 그러하다.


    타자가 아니라면? 인간이 신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들 중의 하나라면? 발끝이 살짝 간지러워도 인간은 알아챈다. 인간의 몸에 난 털 한 개를 건드려도 그 정보를 인간의 몸 전체가 공유한다. 신이 타자가 아닐 때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된다. 인간은 둔해서 타인의 고통을 잘 공유하지 못한다.


    우주는 복제원리에 의해 조직되어 있다. 타인의 감정을 공유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중요한 의사결정에 있어서 나와 타자의 장벽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을 남으로 보는 순간 비참을 면할 수 없게 된다. 공유되지 않고 호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의 성공을 아무도 쳐다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상을 타자로 인식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성공을 남들이 부러워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우쭐해 한다. 타자이면서 타자가 아니기를 기대하는 모순이다. 바둑알 한 알을 놓아도 그 판 전체를 대표해서 놓는다. 한 알의 바둑알이 죽든 말든 승부와는 무관한 것이다.


    의사결정해야 한다. 타자성의 문제가 제기된다. 대표성의 방법으로 해결한다. 이러한 본질은 절대 벗어날 수 없다. 신을 부정할 수는 없다. 신을 부정하는 것은 내가 눈을 감으면 우주는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 당신이 눈을 감으면 우주는 없다. 돌과 나무와 벌레들이 눈을 감는다.


    그들 돌과 나무와 벌레들에게 우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의사결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이 의사결정하지 않을 때 우주는 존재하지 없다. 당신 자신도 존재가 없다. 나라는 것은 결국 의사결정의 주체로서의 나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기를 부정하는 방법으로 신을 부정할 수 있다.


    세상을 부정하고, 그 세상의 진보를 부정하고, 그 진보 안에서 당신에게 주어진 미션을 부정하고, 그렇게 신을 부정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순간 당신도 부정되었다. 나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한다. 당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당신의 주장은 옳다. 의사결정하지 않을 때 당신은 확실히 없는 것이다.


    바둑판에 놓이지 않은 바둑알은 존재가 없는 것이다. 만약 바둑판에 놓였다면 그 판의 게임 전체를 대표해서 놓이는 거지 당신만이 별도로 놓이는 것은 아니다. 세상의 존재를 긍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당신의 존재를 긍정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은 없다. 당신은 일단 없다.


    자기를 긍정하려면, 세상을 긍정하려면, 먼저 부정해야 한다. 부정하는 방법으로 대칭을 엮어야 한다. 부정하고 부정하고 부정하면 신을 부정하게 된다. 신과의 일대일이다. 신을 부정하지 않으면 신을 긍정할 수 없다. 흑돌을 부정하는 백돌을 인정하지 않으면 흑돌의 존재 역시 없는 것이다.


    신을 부정할 때 신과 신의 대결이다. 그것은 바둑판에 이미 놓여있는 돌과 지금 놓을 돌의 대결이다. 흑돌은 백돌과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놓인 돌과 지금 놓을 돌이 대결하는 것이다. 백돌은 없는 셈으로 쳐도 된다. 백 없이 흑으로만 바둑을 둘 수도 있다. 신은 신과 대결하여 신을 낳는다.


    이미 놓인 돌과 지금 놓는 돌이 대결하여 다음에 놓을 돌을 생성한다. 인간은 과거와 현재가 대결하여 미래를 낳는다. 그것이 의사결정이다. 대칭을 만들지 않고 의사결정할 수 없다. 당신이 신을 부정하든 긍정하든 상관없이 당신이 과연 의사결정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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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이 일기장에 한 줄을 쓰려고 해도 무언가와 대칭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의식적으로 '나는 오늘' 하며 선생님께 알리는 보고서를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누가 선생님께 오늘 한 일 보고하라고 했나요? 일기 쓰라니까. 왜 못 쓰죠? 대칭을 못만들어서 못 쓰는 겁니다. 대칭을 못 만들면 그 어떤 창의적인 의사결정도 불가능하게 됩니다. 창의력 교육은 그냥 한다고 되는게 아니고 대칭만들기 훈련을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신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은 의사결정에 있어서 대칭만들기를 부정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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