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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6814 vote 0 2016.05.09 (15:45:15)

     

    성선설과 성악설


    인간은 원래 악한 존재인가 아니면 선한 존재인가? 선과 악의 담론은 서로 다른 맥락을 가진다. 선은 사회성의 문제라면 악은 타자성의 문제다. 즉 인간의 행위동기에 있어서 무의식의 지배를 받으며 그 무의식의 원천은 집단이라는 것이 인간의 사회성이다. 이에 근거하여 인간은 본래 선한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이다. 인간의 행위동기는 남에게 인정받으려는, 집단 안에서 우쭐대려는, 잘난척 하려는, 집단에 받아들여지르는, 남과 친하려는 것, 집단적 의사결정의 중심에 서려는, 마이크 잡으려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려는, TV에 나오려는, 주목받으려는 것이다. 이걸 부정할 사람은 없다.


    ◎ 성선설 – 행위동기에 있어서의 사회성 문제 –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인간의 행위동기는 사회의 의사결정 중심으로 쳐들어가는 것이며, 인간은 사회로부터 자기가치를 실현하며, 인간의 무의식은 사회의 조종을 받는다.


    ◎ 성악설 – 의사결정에 있어서의 타자성 문제 – 인간은 타자와 자아의 대칭을 통해 의사결정하며, 의사결정범위가 최소화된 어린이나 미성숙자에게 타자는 위험한 존재이며, 그들로부터 방어하려고 하여 타자를 공격한다.


    한편 인간은 의사결정에 있어서 반드시 대칭을 쓰게 되어 있다. 즉 자아와 타자를 구분함으로써 의사결정에 나설 수 있다. 그런데 아기는 자아가 작고 타자가 크다. 안전한 곳은 아기의 요람 정도고 그 바깥은 모두 모르는 세계다. 엄마의 품안은 믿을 수 있고 나머지는 무서운 바깥세계다. 성장하면서 나가 커진다.


    즉 인간은 성장하면서 자신의 의사결정영역이 커지는 것이다. 꼬마 때는 옆동네나 다른 반을 적으로 여긴다. 이성이나 사회적 소수자, 사회적 약자를 적으로 여긴다. 왜냐하면 자신은 약하고 강한 것은 모두 위험하기 때문이다. 낯선 사람이 유인하면 따라가지 말고 집으로 달려가야 한다. 유괴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정신연령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이 수준에 머무른다. 이런 사람들은 사회를 해친다. 즉 악행을 저지르는 것이다. 그들은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누군가 나를 해치려고 음모를 꾸민다고 여긴다. 수구꼴통들이 그렇다.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것이다. 변방에 격리되거나 지리적으로 고립되어도 그러하다.


    인간은 원래 고립된 개인으로 태어난다. 자기편은 동물의 본능으로 각인된 엄마 뿐이다. 조금 교양되면 자아가 확대되어 가족과 아빠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부족민은 많은 경우 그 가족과 아빠가 없다. 사회화 과정을 통해 가족과 부족에 편입되어 자기 정체성이 확대된다. 즉 교육이 타자를 자아에 편입시키는 것이다.


    이 점은 동물도 마찬가지다. 고양이는 한 두 명의 동료를 받아들일 뿐이며 개와 늑대는 10여마리가 무리를 이룬다. 수컷 사자나 코끼리 혹은 물소는 무리를 떠나 단독생활을 하다가 발정기 때만 무리를 찾는다. 혹은 암수가 부부를 이루어 평생을 함께하는 경우도 있다. 그 경우에도 수시로 파트너를 바꾸곤 한다.


    인간은 교육에 의해서 큰 무리를 이룰 수 있게 된다. 교육되지 않은 자연상태에서는 20명 정도가 동굴 하나를 같이 쓸 수 있는 큰 무리가 된다. 원숭이라면 500마리의 큰 무리도 있지만 대개 20여마리 정도가 무리를 이룬다. 무리가 커지면 대장 수컷을 중심으로 싸움이 일어난다. 암컷이 대장인 모계사회도 많다.


    인간은 본래 선하다고 할 수도 있고 본래 악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다른 맥락이다. 서로 다른 지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맹자는 인간의 행위동기 측면을 관찰했고, 순자는 인간의 의사결정 측면에 주목했다. 맹자는 개인의 동기에 관심을 가졌고 순자는 집단의 의사결정에 관심을 가졌다. 공자는 더 순자에 가깝다.


    공자는 현실문제의 해결에 관심을 가졌다. 예를 강조했고 참여를 강조했다. 맹자가 소승이라면 공자는 대승이다. 공자사상의 정통은 순자다. 다만 순자의 예를 계승한 법가를 채택한 진시황이 분서갱유를 저질러 유가를 말살했기 때문에 진시황의 스승격인 순자가 이단으로 몰린 것이다. 이는 진시황 개인의 잘못이다.


    공자의 사상은 천과 민이 있다. 맹자가 천을 대표한다면 순자는 민을 대표한다. 현대의 민주주의는 민이다. 국가경영은 천명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민의를 따르는 것이다. 천명을 따르는 사람들은 박근혜를 찍었고 민의를 따르는 사람은 문재인을 찍었다. 천은 개인의 동기부여 측면이고 민은 집단적 의사결정 측면이다.


    천을 긍정하고 민을 부정한다면 공자의 한 팔을 잘라내는 것이다. 그들은 공자의 배신자라 하겠다. 물론 민을 앞세워 천을 부정하는 것도 이상하다. 구조론의 가르침은 개인이 천하를 대표하는 것이다. 민이 중요하지만 다수라는 숫자 속에 숨는다면 비겁하다. 숫자의 힘에 숨어 개인을 파괴한다면 역시 공자의 배신자다.


    무엇인가? 인≫지≫의≫신≫예다. 인은 종교나 철학의 지도자가 타자를 포용하는 것이다. 역시 타자성의 문제다. 그런데 타자가 공격한다면 어쩔 수 없다. 지를 가진 지도자를 중심으로 팀을 짜야 한다. 지다. 그 경우 차별이 일어난다. 이를 해결하는 것이 의다. 의는 약자나 소수자를 차별하지 않고 가담시키는 것이다.


    인을 하면 지智 문제가 생기고, 지를 하면 의義 문제가 생기고, 의를 하면 신信 문제가 생긴다. 약자를 돕는다며 형평성을 추구하면 서로 등을 돌리게 된다. 남녀평등을 추구하면 여혐과 남혐이 생기는게 그 예다. 신을 해결하는 것이 예다. 즉 타자성을 극복하는 인이 중요하지만 무작정 인자하다고 해결되는게 아니다.


    공자말씀을 시행한다고 적군이 쳐들어오지 않을가? 조선이 아무리 인仁을 표방해도 토요토미는 침략한다. 그럴 때 지智가 소용된다. 지를 쓰면 사회에 차별이 일어난다. 지를 따지니까 서울대 합격자와 불합격자가 나눠진다. 사회의 약자를 돕는 의義를 베풀어 봉합한다. 의로 평등을 추구해도 역시 불만이 팽배해진다.


    약자를 돕는 복지정책을 한다니까 수구꼴통이 일제히 화를 내는 것이다. 이는 불신 때문이다. 신信으로 해결해야 한다. 인이 정답이나 불인이 있으니 지로 막고, 무지가 있으니 의로 막고, 불의가 있으니 신으로 막고, 불신이 있으니 예로 틀어막는다. 하층민이 오히려 복지정책을 반대하는 이유는 무례하기 때문이다.


    복지를 반대하는 정도와 무례한 정도는 정확히 비례한다. 예란 무엇인가? 의사결정에 최대다수가 참여하는 것이다. 인은 예수님 혼자서도 가능하다. 지는 나라마다 한 명씩 있는 대통령이라야 가능하다. 의는 중간간부의 미덕이며 신은 조금이라도 윗사람의 미덕이고 예는 모두의 미덕이다. 뒤로 갈수록 참여자가 많다.


    더 많은 사람이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이 더 진보한 사회다. 처음 종교나 철학을 만들 때는 혼자 만들어야지 두 명이 만들면 안 된다. 예수가 둘이면 피곤하다. 마호멧은 좀 빠져줘. 예수 니가 빠져. 이러고 종교갈등 일어난다. 그러나 예는 모두가 지켜야 예다. 누구는 교통신호를 안지켜도 된다는 특권 이런거 없다.


    정리하자. 성선설은 인간의 의사결정이 일원적이며 모든 인간은 하나의 의사결정 중심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전체가 개인에 앞선다는 거다. 성악설은 의사결정 참여자의 숫자는 최대화 되어야 한다는 거다. 개인이 의사결정 주체가 되어야 한다. 결국 둘은 같은 이야기다. 동기는 전체에서 나오고 결정은 개인이 한다.


    무인도에 혼자 산다면 돈은 필요없다. 부자가 되겠다는 동기가 없다. 전체가 없으면 동기가 없다. 성선설이다. 그래서 부자가 되려고 하는데 ‘넌 가만있어. 내가 대신 부자되어줄께.’ 이러면 곤란하다. 성악설이다. 그런데 실제로 이런 소리 하는 넘들 있다. 임금을 섬기는 일본넘들이다. 왕이 궁궐에 살아서 좋다고 여긴다.


    ‘나는 거지로 살지만 임금님이 궁궐에서 잘 살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 이런 미친 넘 북한에 깔렸다. 이건 제대로 미친 거다. 남이 내 대신 화장실 가줄 수 없고 남이 내 대신 출세해줄 수 없다. 개인이 주체여야 한다. 성악설이다. 성선설은 인간은 최고를 지향한다는 거고 성악설은 인간은 바닥에서 시작한다는 거다.


    공자의 한 면만 보려고 한다면 곤란하다. 공자는 인에서 지와 의와 신과 예까지 전체를 추구한 것이지 인만 혹은 지만 추구한 것이 아니다. 인은 리더의 덕목이요 지는 고위급 간부의 덕묵이며 의는 중간 간부의 덕목이고 신은 하급관리의 덕목이고 예는 모두의 덕목이다. 인만 찾고 있다면 그 사회는 낙후한 사회다.


   aDSC01523.JPG


    동기부여와 의사결정의 두 측면이 헷갈리게 하지만,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사실은 하나의 두 모습입니다. 혼자 시합에 참여해서 1등해봤자 재미없습니다. 만인이 참여해야 합니다. 만인이 모두 1등해도 재미없습니다. 반드시 차별해야 합니다. 차별하여 탈락하면 역시 재미없습니다. 그러므로 단계적으로 풀어야 합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하여 가장 높은 곳을 바라봐야 합니다. 모두가 참여하고 모두 승자가 되는 게임은 가능합니다. 순자가 제대로 계승되었다면 민주주의는 동양에서 일어났을 것입니다. 맹자는 높은 곳을 바라보게 했고 순자는 모두가 참여하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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