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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4982 vote 0 2016.07.17 (21:5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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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전성을 ‘工’으로 나타낼 수 있다. 어떤 A와 그 변화가 있다. 만약 변화가 없으면 인지할 수 없으므로 그것은 없는 것으로 친다. 외부와의 일체의 상호작용이 없는 것은 없는 것이다. 어떤 것이 있는데 볼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다면 그것은 없는 것이다. 그 경우는 있다고 말하면 안 된다.


    안다는 개념은 인식된다는 사실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불가지론은 배척되는 것이다. 어떤 것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또다른 것의 변화를 촉발한다. 이는 에너지 보존의 법칙으로 입증된다. 변화하는 둘이 토대의 공유에 의해 하나로 통일될 때 법칙이 작동한다. 즉 A의 변화가 B의 변화를 촉발할 때 둘의 연결고리를 치는 것이다. 그 지점을 장악하고 계를 통제할 수 있다.


    에너지 공급량을 조절하는 방법으로 토대를 지배할 수 있다. 에너지 공급을 점차 늘려가면 계는 한 방향으로 성장한다. 조직의 발전, 집단의 팽창, 자본의 축적, 생물의 생장 등 모든 존재하는 것의 첫 시작점에서 이 현상은 일어난다. A와 B를 통일하는 C를 장악하면 계의 지배가 가능하다.


    C가 없는 경우는 없으며 자연에서 정지한 것은 C가 멈추어 있고 생장하는 것은 C가 발전하고 있다. C가 발전할 때 소실점이 있다. 한 지점을 때려서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조직이 생장점이 있다. 패션이나 디자인의 유행, 트렌드의 변화, 예술양식의 변화에 그런 것이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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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의 변화가 집단의 문제해결능력의 진보라면 B의 변화는 선善의 진보라 할 수 있다. 집단의 문제해결능력이 향상되면 선도 변한다. 예전에는 여자가 가정을 지키는 것이 문제해결능력의 향상이었고 지금은 여자가 직장에 나가는 것이 문제해결능력의 향상이다. 둘을 통일하는 것은 진보주의다.


    이 규칙을 응용하면 선의 진보 뿐 아니라 진眞의 진보, 미美의 진보 등 다양한 진보들을 찾아낼 수 있다. 충성이나 효도나 애국, 우정, 사랑 따위도 이 관점으로 해명할 수 있다. 즉 시대가 바뀌면 충성도 바뀌고 효도나 애국이나 우정도 바뀌는 것이다.


    예전에는 왕에게 복종하는게 충성이고 지금은 국민에게 복종하는 것이 충성이다. 여기서 문제해결능력의 진보가 조건문이라면 진, 선, 미, 충, 효 따위는 반복문이다.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어 반복되기 때문이다.


    “심청은 착한 일을 해서 천국에 갔다. 우리도 착한 일을 해서 천국에 가자.” <- 언어는 대개 이런 식으로 조직된다. 곧 담론이다. 물론 엉터리지만 형식이 그렇다는 말이다.


    ‘심청은 착한 일을 했다’가 전제, ‘천국에 갔다’는 진술이다. 전제와 진술이 명제를 이론다. ‘심청은 착한 일을 해서 천국에 갔다’가 조건문이면 ‘우리도 착한 일을 해서 천국에 가자’는 반복문이다. 곧 담론을 이룬다.


    - 담론의 완전성 -
    ◎ 조건문 - 심청은 착한 일을 해서 천국에 갔다.
    ◎ 반복문 - 우리도 착한 일을 해서 천국에 가자.


    - 명제의 완전성 -
    ◎ 전제 - 심청은 착한 일을 했다.
    ◎ 진술 – 심청은 천국에 갔다.


    담론은 조건문에 반복문을 더한 것이다. 즉 언어가 사실을 복제하여 전달한다면 반복문은 조건문을 복제하고 있다. ‘이순신장군은 왜적을 물리치는 훌륭한 일을 했다’는 조건문을 ‘너희들도 이순신장군을 본받아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로 복제하는 것이다.


    이렇듯 일을 복제하여 전달하는 것이 언어다. 완전하게 일을 복제하면 담론이며 완전한 언어이고 우리의 일상적인 언어생활은 엉터리지만 완전성을 일부 반영한다. 영화든 드라마든 완전성을 반영하면 의미가 복제되어 감동을 받게 된다.


    중체서용이라는 말이 있다. 중국의 몸통에다 서양의 기술을 팔다리로 더하여 완전해진다는 말이다. 체용體用의 개념이다. 조건문과 반복문이 담론을 이루고 전제와 진술이 명제를 이루는 구조를 체용體用이라 할 수 있다. 체용에 의해 완전해진다.


    이렇듯 완전한 구조에 에너지를 태우면 C가 일정한 방향성을 얻어 질주하게 된다. 먼저 C라는 핸들을 발견하고 다음 그 핸들을 움직여 진보시켜야 한다. 그럴 때 안정된다. 세상은 변화하지 않을 때 도리어 위태로우며 변화할 때 안정된다. 물론 방향을 거꾸로 잡으면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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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의 변화만 보는 것이 정설이면 A의 변화까지 보는 것은 역설이고 C의 변화까지 보는 것이 이중의 역설 곧 깨달음이다. 사회를 선과 악으로 보는 것은 B의 변화를 보는 것이며, 사회를 강자위주 권력게임으로 보는 것은 A의 변화를 보는 것이고 사회를 의사결정구조의 진보로 보는 것이 깨달음이다. 


    ◎ 에너지가 있는 선善이 진짜다.


    B의 변화만 보면 순진한 초딩처럼 곧이 곧대로 믿게 되고, A의 변화까지 보면 보수꼴통이 되어 그 어떤 것도 믿지 않게 된다. 의심을 거친 믿음으로 돌아오는 것이 진정하다.


    부정을 거친 긍정이 진짜다. C를 찾고 에너지를 투입하여 그 C를 변화시켜야 한다. 그럴 때 다시 선이 선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순진하게 당하지 않는다. 그 돌아온 선은 권위에 복종하는 바른생활 사나이의 선이 아니라 집단의 리더가 식구들을 챙기는 바 베테랑의 선이다. 


    초딩은 선을 믿지만 어른은 선을 믿지 않으며 리더는 다시 선을 믿는다. 그래야 자기 가족과 회사와 조직이 통제되기 때문이다. 에너지가 있는 리더의 선이냐 에너지가 없는 초딩의 선이냐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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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한정 통제되는 것은 아니다. 지구의 크기를 더 키울 수 없기 때문이다. 외부에서의 에너지 투입량은 한계가 있다. 태양에게 더 많은 에너지를 보내달라고 주문할 수도 없다. 그러나 신대륙의 발견처럼 에너지 총량이 증가하는 경우도 있고, IT신대륙의 개척과 같이 내부 상호작용 총량을 높이는 방법도 있다. 계를 정하고 지속적으로 에너지 투입량을 늘려가는 방향으로 기동해야 한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8]챠우

2016.07.18 (15:39:35)

언어의 이중성


주어와 목적어의 관점에서 보면 사건은 집합으로 관측되고(둘 다 명사, 주어와 목적어는 관계의 숫자에서 차이가 있음)

동사의 관점에서 보면 사건은 함수로 관측된다.

 

그래서,

영어는 주로 집합관계로 표현되어 목적어의 recurrent(언어의 회귀성 혹은 반복성, 캡슐화)가 발달하고,

한국어는 주로 함수관계로 표현되어 동사가 발달한다.


영어는 목적어보다 동사를 먼저 써놓으므로 동사가 더 중요하게 보이고,

한국어는 동사보다 목적어를 먼저 써놓으므로 목적어가 더 중요하게 보인다. 


하지만, 인간의 뇌는 메모리 용량이 크질 않아서 장문장을 읽으면 앞의 내용은 까먹으므로

가장 마지막에 언급되는 내용을 위주로 판단한다.


그래서,

영어에서는 화자가 글의 말미에 사건의 방향을 바꿀 수 있어 목적어로 말장난을 하고

한국어에서는 화자가 글의 말미에 사건의 관계를 바꿀 수 있어 동사로 말장난을 주로 할 것이다.


말장난의 예

I love...(상대방을 쳐다보고 있음)>>>>>>> him! (not you!)

나는 너를...(눈빛은 사랑사랑)>>>>>>>> 미워해!(사랑하는게 아니고!)


두 언어 모두 완전한 언어는 아니며, 사건의 주체성 관점이 빠져있다. 

두 언어 모두 주어 바꾸기는 하지 않는다. 고정되어 있다.


왜냐하면 인간이 언어를 만들 때 상대방만을 쳐다보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는 본래 언어가 무엇인가를 상대방에게 전달하고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어떤 결과를 보고 원인을 알려고 하면,

본래 사건의 발견이 필요하다.


그럴 때 완전하다. 언어만으로도 온전히 전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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