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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7140 vote 0 2016.09.05 (11:19:54)

     

    대학해설


    구조론은 구조론과 비슷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의식적으로 그것을 피하니 그쪽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오해를 부를 수도 있고 또 조금 아는게 위험하기 때문이다. 알려면 제대로 알아야 한다. 더 기분나쁜 것은 구조론의 일부를 자기식으로 빼먹고 구조론 자체에는 관심이 없는 얌체짓이다. 구조론을 배우니 기독교가 더 잘 이해되었걸랑요. 이런 식으로 나오면 곤란하다.


    구조론의 아이디어를 새누리당 논리를 강화하는데 써먹는 사람이 있다. 이런건 용납이 안 된다. 구조론에 왔다면 잡다한 것은 버리고 백지상태에서 새출발을 해야 한다. 세례를 받고 거듭나야 한다. 노자나 석가의 사상에 일부 구조론적인 요소가 있지만 노자나 석가를 광내는 데 구조론을 이용한다면 파렴치한 태도다. 중용과 대학에 대해서도 말해달라는 주문이 있었다.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유교 입장에서 대학은 학문의 구조론이다. 포지션이 겹치니 마음에 들지 않는다. 좋은 것이 나오면 나쁜 것은 버려야 한다. 좋은 것으로 나쁜 것을 재활용하는데 쓴다면 미친 짓이니 그것이 새 차의 바퀴를 빼서 헌 차를 수리하는 데 쓰는 바보짓이 아니고 무엇인가? 어쨌든 대학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는데 역시 구조론적인 요소가 있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조금 아는게 고약하니 마땅히 경계해야 한다. 대학은 소학에 대해서 대학이다. 사물에는 본말本末이 있다고 했다. 대학이 본이면 소학은 말이다. 일에는 시종始終이 있다고 했다. 대학이 시면 소학은 종이다. 만물에 근본이 있고 또 말단이 있으니 만물의 근본을 찾는 것이 구조론이다. 근본이 대학이고 말단이 소학이니 각각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이 된다.


    무엇인가? 구조론은 학문을 철학≫과학≫미학으로 구분한다. 철학에서 에너지를 얻고, 과학에서 에너지를 다루고, 미학으로 에너지를 취한다. 대학은 이를 명덕明德≫신민新民≫지선至善으로 전개시킨다. 명덕은 곧 동기부여이니 최초에 에너지를 얻음이다. 에너지는 개인이 아닌 집단에서 나오니 개인의 동기는 상부구조인 집단의 의사결정 중심으로 쳐들어가는데 있다.


    신민은 사람을 이롭게 함이니 실용주의다. 합리에서 실용으로 전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선은 미학이니 합리에서 실용으로 갔다가 미학으로 돌아서는데 이 부분의 문장이 어색하다. 知止而后有定 定而后能靜 靜而后能安 安而后能慮 慮而后能得라고 써놨는데 논리전개가 필연이 아닌 주워섬기기라 허술하다. 최후에 능득이라고 하여 개인이 얻는 것으로 종결한다.


    구조론은 양은 침투한다고 하여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걸로 종결한다. 침투하는 것이나 얻는 것이나 유사하니 구조론적 사유가 된다. 그러나 대학의 출전인 예기를 쓴 사람이나 2500년간 이 글을 읽은 사람이나 명덕≫신민≫지선을 하나의 사건 안에서 바라본 사람이 과연 있겠는가? 우연히 직관이 통해서 괜찮은 문장을 써버렸고 괜찮아 보이니 막연히 암기하는 것이다.


    맥락이 통하지 않는다. 생각없이 써버린 글이 산더미 같이 있는 중에 유독 이 글귀의 뒷맛이 괜찮아서 살아남은 것이다. 직관이 작동하는 형식이다. 하여간 구조론의 철학≫과학≫미학과 맞아떨어진다. 구조론은 하나의 사건 안에서 전체와 부분의 관계로 본다. 팔과 손과 손가락은 하나다. 그러나 대개 나열식으로 가니 막연히 주워섬길 뿐 일의 선후관계가 불분명하다. 


    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矣라 하여 본말이 있고 종시가 있고 선후가 있다고 했으나 과연 명덕≫신민≫지선을 어떤 일의 시작≫의사결정≫결말의 관계로 본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설사 처음에 그런 뜻으로 썼더라도 주자를 비롯해서 이를 깨달은 이가 없다. 미학이 최종단계인 이유는 그 지점에서 구조가 복제되기 때문이다. 복제에서 권력이 나오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 권력을 취한다. 즉 미가 아름다워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에 권력이 있기에 아름다운 것이다. 최종적으로 개인은 미를 얻는 것이 아니라 미에 따라붙는 권력을 얻는다. 명덕≫신민≫을 거쳐 지선에 이르면 각자 자신의 권력을 설계할 수 있으니 노래방에 가더라도 노래를 조금 더 지선하게 잘 부르는 사람이 마이크를 독차지하는 것이 미의 권력이다.


    미인은 남들의 눈길을 붙들어 세우니 권력이다. 권력은 새로운 사건을 복제한다. 그리고 각자는 그 사건의 주인이 된다. 그리하여 철학은 과학을 거쳐 최종적으로 미학으로 완성되며 이것이 인간이 학문을 하는 근본이다. 예컨대 이런 거다. 월드컵에 우승하면 무엇이 생기나? 떡이 생기는가? 월드컵이 밥먹여주나? 월드컵에 참가함은 명덕이요, 가서 우승함은 신민이다.


    우승해서 성공모델을 복제하여 만인이 모두 월드컵 4강의 기운으로 각자 자신의 삶에서 성공함은 미학이다. 그렇다. 월드컵에서 우리가 취하는 것은 우승상금이 아니라 미학이다. 상금은 선수의 몫이요. 관전자인 내게 돌아오는 몫은 없다. 피터지게 응원한 우리는 무엇을 챙기나? 미학을 챙긴다. 미학을 통해 각자 자기 집단의 리더가 되고 윗사람 되고 또 보스가 된다.


    월드컵 4강에 가면 모든 집안의 가장과 모든 회사의 보스와 모든 조직의 리더와 모든 동아리의 형님들이 히딩크 어록을 써먹는다. 그러면서 목에 힘을 준다. 그것이 각자가 얻는 이득이다. 일에는 선후가 있고 본말이 있고 시종이 있으니 처음 에너지를 유도하고 다음 그 에너지에 올라타고 마침내 에너지를 어떤 원하는 대상에 침투시켜 그 동기유발의 이득을 취하는 거다.


    ◎ 명덕≫신민≫지선
    ◎ 철학≫과학≫미학
    ◎ 동기≫효율≫복제
    ◎ 에너지 유도≫에너지에 올라탐≫구조의 복제로 권력획득


    영화를 봐도 먼저 본 사람이 대화거리를 얻어 발언권이라는 권력을 행사한다. 그런 거다. 그런데 조금 아는게 위험하다. 명덕≫신민≫지선은 범위가 좁혀진다. 명덕은 천하의 것이요 신민은 국가의 것이고 지선은 나의 것이다. 이는 구조론의 연역이다. 그러나 이 관점에서 대학을 읽은 사람이 과연 있겠는가? 없다. 모두들 반대로 가서 지선≫신민≫명덕이 되어버렸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가 그렇다. 수신은 미학이니 지선이다. 제가와 치국은 과학이니 신민이다. 평천하는 철학이니 명덕이다. 앞에서 자기 입으로 말한 내용을 완전히 뒤집어 엎어버린다. 깽판을 친다. 2500년간 대학을 읽은 자 중에 본뜻을 알아챈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왜 이렇게 되는가? 대중에게 아부하려는 비열함 때문이다. 대중은 언제라도 쉬운 목표에 열광한다.


    평천하는 어렵고 수신은 쉽다. 목욕탕 한 번 다녀오면 된다. 터키탕에 가서 엎어져 있으면 알아서 씻겨준다. 쉬운 목표로 대중을 낚아버리자는 태도라면 추악하다. 이는 대학이 아니고 소학의 태도이니 비루하다. 지선은 자연의 완전성이며 명덕은 그 완전성의 근거를 찾음이며 신민과 우일신은 그 완전성이 고착된 것이 아니라 부단한 에너지 흐름에 있다는 것이다.


    1) 진리를 찾다 2) 진리에 올라타다. 3) 진리를 복제하다.


    지선은 진리를 복제한다. 격물은 진리를 찾음이며 치지는 역시 진리를 복제하여 내게로 가져온다. 그러므로 수신은 나를 닦음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버림이니 버리고 또 버려서 마침내 천하에 이른다. 신과의 일대일이다. 수신을 버려서 우월하려는 마음, 잘나려는 마음, 행복하려는 마음을 지워야 한다. 수신은 타인과 비교하여 우월한 자가 되려는 것이니 비겁한 태도다.


    그러므로 수신은 이미 명덕에서 까마득히 멀어졌다. 가짜 수신이다. 먼저 나를 버리고 다음 가족을 버리고 나라를 버리고 마침내 천하를 버리고 그 지점에서 신을 대면한다. 마침내 나의 모든 의사결정이 일점에 수렴될 때 완전하다. 격물은 그 일점의 진리에 올라타는 절차이니 한 번 쓰고 버리는 것이다. 종래에는 격물할 필요도 없으니 곧 소학을 버려서 대학을 얻는다.


    결과를 버려서 원인을 얻는다. 말단을 버려서 근본을 얻는다. 종을 버려서 시를 얻는다. 이득을 버려서 진리를 얻는다. 내용을 버려서 형식을 얻는다. 깨달음은 부단히 버리는 것이니 배를 바라보면 선원이요 별을 바라보면 선장이다. 마음에 배를 버린 자가 선장이다. 나를 닦아서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버려서 완성한다. 닦으려는 마음은 남과 비교하는 마음이다.


    이미 타인에게 조종된 마음이요 나에게서 벗어난 남의 마음이니 타인의 노예가 되어 있다. 나를 놓치니 그 항해하는 배에 올라탈 자격을 얻지 못한다. 사랑도 버리고 행복도 버리고 쾌락도 버리고 명성도 버리고 수신을 버렸을 때 위대한 만남이 거기에 있다. 위대한 만남이 인간을 만든다. 만나기 전에는 아직 인간이 아니다. 만나지 못한 자는 인간에 이르지 못한다.


    만물은 서로를 붙잡고 의지하여 일어난다. 일어나려면 붙잡고 의지할 것을 만나야 한다. 풀을 붙잡으면 풀처럼 쓰러지고 나무를 붙잡으면 나무처럼 꺾이리라. 동물을 붙잡으면 동물처럼 떠돌고 작은 마음을 붙잡으면 작게 무너지니 오직 신을 붙잡고 일어남이 진실하며 이 대척점에 원자론이 있으니 원자는 붙잡지 않는다. 의지하지 않는다. 원자는 쪼개지지도 않는다.


    ◎ 대학의 원자론 관점 – 임금이 입맛에 맞는 신하를 고른다.
    ◎ 구조론의 위대한 만남 – 운명적인 만남에 의해 서로 붙잡고 일어선다.


    수신은 원자론의 개념이니 반 구조론적이다. 중용사상과도 맞지 않다. 방향이 틀렸다. 임금의 관점에서 쓸만한 신하를 찾겠다는 수신제가의 논리가 필요없고 사람 중에서 옥석을 고르면 곤란하며, 붙잡고 일어날 때 나를 비우는 것이니 운명적인 만남을 이루어 운명적인 팀에 들 때는 수신을 버리고 제가를 버려야 한다. 다만 동료가 부르면 호응하여 달려가는 것이다.


    천하의 부름에 응하는 이는 천하를 붙잡고 일어나고 똥개의 부름에 응하는 이는 똥개를 붙잡고 일어나리라. 수신제가는 임금이 신하를 고를 때 옥석을 고르는 관점이니다 잘해봤자 착한 노예가 될 뿐이다. 신하를 고르는 임금이 나라를 망치니 수신하여 임금의 비위에 맞추는 자가 나라를 망친다. 진정한 왕은 옥석을 고르지 않으니 다함께 붙잡고 일어나려는 것이다.


    진정한 왕은 불을 지른다. 천하를 불태운다. 불을 지르면 모두가 깨어나 움직인다. 만인이 일시에 움직이면 방향은 스스로 얻어지니 떳떳할 뿐이다. 정리하자. 구조론은 만물은 서로 붙잡고 의지하여 일어난다는 관계론의 관점이며 수신은 반대로 원자론의 관점이니 옥석을 구분하여 금을 취하고 납을 버리는 임금의 선택이라 이미 망해 있다. 편하려 하므로 망한 거다.


    우리가 얻는 것은 미학이니 미는 권력이다. 옥석을 고르면 옥에 의지하고 옥의 노예가 되고 옥에 조종되고 옥에 휘둘리니 이미 권력을 잃고 노예가 되어 있다. 명신을 고른 자는 명신의 명성에 눌리니 천하의 제환공도 관중의 명성에 눌려 결국 바보가 되었다. 충신을 고른 자는 충신을 질투하다 망하니 선조가 이순신을 포용하지 못함이 그러하다. 반드시 그렇게 된다.


    제갈량의 능력은 유비를 쪼다 캐릭터로 만들었고 조조의 능력은 순욱을 빈 그릇으로 죽였다. 수신하면 팀이 깨지고 자연히 불화하게 된다. 다만 장비의 개그본능이 유관장 삼형제를 단단하게 결속시켰으니 장비는 술이나 처먹고 다닐 뿐 수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비에게는 서로 붙잡고 일어나려는 마음이 있었고 제갈량에게는 없었으니 제갈량은 부하 위연을 의심했다.


    대학은 노자 도덕경의 모든 구절이 그러하듯이 초반에 직관적 깨달음을 앞세워 연역논리를 제시하고 뒤에 엉뚱한 해설을 붙여 귀납하되 그것은 임금에게 아부하고 대중에게 아부하는 관점이니 타락한 것이다. 대학은 임금의 입에 달라붙는 달콤한 소리라 임금을 기쁘게 하고 나라를 망하게 한다. 물론 2500년이라는 까마득한 옛시절을 생각하면 그 정도만 해도 양반이다.


555.jpg


   대학이라는 개념 자체는 구조론적입니다. 대학은 총론이라 큰 틀을 짓고 소학은 그 안에 내용을 채우는 것이니 구조론이 바로 대학입니다. 강령이라 하여 벼리가 되고 갈피가 되니 동서남북의 방향을 판단하고 선후관계의 순서를 파악함입니다. 그러나 수신제가치국평천하는 원자론과 같은 소인배의 비교판단에 차별주의이자 우월주의이니 제갈량의 질투에 관우가 쓸쓸하게 죽어갔고 장비의 개그본능이 유관장 삼형제를 결속시켰듯이 수신이 팀을 깨고 나라를 망칩니다. 구조론의 정답은 위대한 만남에 있으니 만나야 할 사람을 한 번 만나서 운명을 결정지음만 못합니다. 삼고초려에 빛나는 제갈량의 수신은 가짜이고 유관장의 도원결의가 진짜입니다. 


[레벨:6]Nomad

2016.09.05 (12:02:57)

수신제가치국평천하
요 구절만 보면 이상하게 짜증이 자꾸 일어났는데 그 이유를 알겠습니다 .
[레벨:4]JD

2016.09.05 (18:04:54)

감사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수원나그네

2016.09.05 (19:06:12)

"~진정한 왕은 불을 지른다. 천하를 불태운다. 불을 지르면 모두가 깨어나 움직인다.~"


이 대목을 예수도 외쳤군요..


김인국신부1.jpg 김인국신부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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