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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0857 vote 1 2016.11.04 (11:21:46)

     과거글을 일부 추가하여 정리하고 있습니다. 어제 모임에서 나온 이야기를 잊어버렸는데 하여간 답은 문제제기와 문제해결의 차이입니다. 항상 헷갈리는 문제지요. 차를 타기 전에는 시동을 거는게 가장 중요하고, 이미 운전중일 때는 브레이크를 밟는게 가장 중요하지요. 


    공자의 최종결론


    문제가 있다. 우리는 그 문제를 풀어야 한다. 우리가 평화롭게 살고 있는데 문제라는 놈이 갑자기 나타나 행패를 부리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원래부터 있었다. 우리가 겁도없이 문제 속으로 들어와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던 터주대감의 존재를 받아들여야 한다.


    문제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하나의 문제를 풀면 또다른 문제가 야기되는 법이다. 문제는 아래로 떠넘겨지는 것이니, 한 곳에 뭉쳐있는 덩어리를 풀어서 여기저기 흩어놓는 방법으로 약화시킬 수 있을 뿐 문제가 완전히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


    최초의 문제는 타자성의 문제였다. 나와 생김새가 다른 넘이 내 구역에 허락도 없이 들어와 있다. 어째야 하나? 인仁을 행하여 타자와 공존해야 한다. 공존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아니다. 반드시 차별이 생겨난다. 차별할 의도가 없다해도 각자 능력이 다르므로 반드시 차별은 일어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지智를 행하여 차별을 풀어야 하고, 문제를 풀면 또 문제가 생기는 법이니 이번에는 의義로 풀어야 한다. 그 방법으로 신信을 거쳐 예禮까지 진도를 빼줘야 한다. 보수꼴통의 문제는 이렇게 계속 진도나가는 것을 힘들어 하는 것이다. 그들은 싹쓸이 한 방에 끝내기를 원하지만 세상이 그리 만만치 않다.


    최초의 문제는 종교의 문제다. 예컨대 피부색이 다르다고 치자. 누가 저지른 문제인가? 하느님이 저질렀다. 신을 매우 때려죽여야 한다. 신이 사고친 거다. 왜 흰둥이와 검둥이와 노란둥이를 섞여놨냐고? 종교로 풀 밖에.


    그런데 과연 종교가 이 문제를 잘 풀고 있는가? 천만에. 그러므로 이념이 요구되는 것이다. 어쨌든 흑인이라고 교회에 오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 종교가 이 문제를 풀려고 시도하는 것은 맞다. 그 다음은 이념의 문제다. 이념의 문제는 계급문제다. 남녀차별이 대표적인 예다. 그게 계급이다. 봉건시대의 계급은 귀족, 사제, 평민, 농노 등이 있었다.


    사농공상에 백정에 불가촉천민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인종차별, 성차별, 지역차별, 학력차별, 소수자 차별 등 모든 차별이 사실은 계급문제다. 노동자 계급 이런건 마르크스가 지어낸 말일 뿐 인간에게는 원래 계급의 문제가 존재하여 있다.


    ◎ 종교의 문제 – 피부색과 같은 선천적인 차이
    ◎ 이념의 문제 – 지역차별과 같은 인위적인 차별


    다음은 정치의 문제다. 정치문제는 주도권 문제다. 같은 피부색에 같은 계급끼리 모여도 일을 하다보면 갑을관계가 만들어진다. 이건 정치적인 조정이 들어가야 하는 문제다. 아무리 평등해도 일하다보면 반드시 차별이 있다. 축구경기를 해도 공격수와 수비수 간에 상당한 차별이 있다. 다음은 경제문제다. 돈이 있는 넘과 없는 넘의 차별이 있다.


    돈이 있다는 것은 신용이 있다는 것이다. 정치적 주도권 차별이 공간상에서 성립한다면 신용은 시간 상에서 성립한다는 점이 다르다. 20대 젊은이보다는 50대 장년이 더 신용이 있으니 은행에서 돈을 빌려줘도 50대에게 잘 빌려준다. 시간적으로 일관되게 가느냐에 따라 차별이 생긴다. 마지막은 문화문제다.


    세련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별이다. 이 다섯 차별은 원래 있으며 없앨 수 없으나 아래로 넘길 수는 있다. 역사의 진보는 종교문제를 이념문제로 넘기고, 이념문제를 정치문제로 넘기고, 정치문제를 경제문제로 넘기고 또 문화문제로 넘기는 것이다.


    이렇게 문제를 떠넘기는 것을 두고 우리는 문제를 푼다고 한다. 문제는 떠넘겨질 뿐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종교전쟁이 다하면 이념전쟁이 일어나며, 이념전쟁이 다하면 정치전쟁이 일어나고, 정치전쟁이 다하면 경제전쟁이 일어나며, 경제전쟁이 다하면 문화전쟁이 일어나는 것이다.


    완전한 평화는 없으며 단 종교전쟁이나 이념전쟁을 하면 싹 죽지만 정치전쟁은 민주적인 선거로 하고 경제전쟁은 기업간 경쟁이 되고, 문화전쟁은 개인간 경쟁이므로 사상자가 덜 나오는 것이다. 갈등은 원래 있다. 종교갈등, 이념갈등, 정치갈등, 경제갈등, 문화갈등이다.


    ◎ 인 – 종교갈등 – 1만 명 충돌
    ◎ 지 – 이념갈등 – 1천 명 충돌
    ◎ 의 – 정치갈등 – 1백 명 충돌
    ◎ 신 – 경제갈등 – 10명의 충돌
    ◎ 예 – 문화갈등 – 2 명의 충돌


    예로 풀어야 하는 문화갈등은 남녀가 영화를 보러 가서 액션영화를 볼 것이냐 멜로영화를 볼 것이냐로 다투는 거다. 예로 풀면 된다. 양보하는 사람이 이긴다. 멜로와 액션을 둘 다 즐길줄 아는 사람이 양보한다. ‘나는 이 영화가 재미없어.’ 하며 자기소개 하는 사람은 수준이 떨어지는 사람이다. 세상에 재미없는 영화는 없다. 단 정치적으로 지지하지 않는 영화가 있을 뿐이다.


    구조론은 마이너스다. 문제해결은 한 단계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다. 그것이 진보다. 종교갈등은 이념으로 풀고, 이념갈등은 정치로 풀고, 정치갈등은 경제로 풀고, 경제갈등은 문화로 푼다. 반대로 가는 것이 보수꼴통이다. 문화갈등을 경제로 푼다. 예컨대 멜로영화냐 액션영화냐로 의견충돌이 있을 때 ‘내가 돈 낼게. 됐지?’로 해결하면 보수꼴통이다.


    이건 문제를 해결한게 아니라 의사결정회피다. 돈으로 해결할 일을 정치적 억압으로 해결하고, 정치로 조정할 일을 이념적 억압으로 해결하고, 이념으로 해결할 일을 종교를 들이대는게 보수꼴통이다. 새누리당이 정치력을 발휘하지 않고 종북몰이 하는게 정치로 풀 것을 이념으로 억누르는 의사결정회피다.


    문제가 해결된게 아니다. 동성애 문제에 성경책을 들이대는 것도 보수꼴통의 의사결정회피다. 정답은 위의 문제를 아래로 푸는 것이다. 동성애문제, 낙태문제 등의 종교갈등은 이념으로 풀고, 남북간의 이념갈등은 정치력을 발휘하여 풀고, 호남과 영남의 정치갈등은 호남에 공장지어 돈으로 풀고 하는게 바른 해법이다.


    돈으로 마찰하면 예의로 풀어야 한다. 반대로 좌파들은 순서를 앞질러 가는 오류를 저지른다. 돈으로 풀어야 할 정치적 갈등을 예절로 풀려고 하는 짓 말이다. 노무현이 세종시를 건설하여 돈으로 풀려고 하자 오마이한겨레경향은 일제히 화를 냈다. 진정성으로 해결하면 된다는 식이다.


    따뜻한 손길, 인자한 마음씨, 돌봄과 배려, 교양있는 행동만 하면 문제가 풀린다고 여기는 것이 좌파꼴통의 무뇌행동이다. 그거 절대로 안 풀린다. 갈등은 원래 있는 것이며 인류는 24시간 전쟁상황이고 역사이래 평화는 없다. 단지 잠복할 뿐이다. 총칼로 하는 전쟁을 교양으로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우리가 북한에 대해 예의바르게 행동하면 북한이 남한의 진정성을 깨닫고 넘어올 것으로 여긴다면 초딩이다. 힘으로 할 일은 힘으로 해야 한다. 혁명으로 할 일은 물리력으로 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총 대신 표로 전쟁하는 것이다.


    ◎ 인식론 - 위로 올라가서 문제를 발견하라.
    ◎ 존재론 - 아래로 내려와서 문제를 해결하라.


    단 여기서 헷갈리면 안 되는 것이 위의 문제를 아래로 해결하려면 먼저 위로 올라가서 문제를 발견해야 한다는 점이다. 아래에서 문제를 발견하려고 하면 위험하다.


    예컨대 기독교인과 무슬림 사이에 마찰이 빚어졌다면 그계 문화갈등 곧 예절문제로 보이지만 사실은 종교문제다. 가난한 흑인과 부유한 백인 사이에 마찰이 빚어졌다면 그게 돈 문제로 보이지만 사실은 종교갈등에 속하는 인종문제다. 문제의 해결은 아래에서 하지만 문제의 포착은 위에서 해야 한다.


    ◎ 인仁.. 철학적 보편주의.. 타자의 수용
    ◎ 지智.. 이념적 평등주의.. 토대의 균일
    ◎ 의義.. 정치적 민주주의.. 결정의 대칭
    ◎ 신信.. 경제적 자본주의.. 유지의 효율
    ◎ 예禮.. 문화적 사회주의.. 관계의 긴밀


    종교라는 표현이 오해될 수 있으므로 보편주의로 용어를 바꿔보았다. 사실 적절한 표현은 없다. 의사소통 장애의 문제다. 근본적으로 상호작용이 안 되는 즉 의사소통이 막혀있는 것이 보편주의 문제이며 보통 종교로 뚫는다.


    구조론의 대의는 공간의 대립을 시간의 호응으로 바꾸어 사회의 모순을 해소하는데 있다. 세상이 변화하고 발전하므로 모순은 필연이다. 모든 움직이는 것은 모순이 있다. 사람이 걸음을 걸어도 왼발은 뒷땅을 밀고 오른발은 앞으로 뻗는다. 왼발은 뒤를, 오른 발은 앞을 향하니 다른 방향을 보고 있다. 몸 전체는 앞으로 간다. 몸 전체가 다같이 한 방향으로 가는 방법은 절대로 없다. 그것은 물리법칙에 위배된다. 로켓은 한 방향으로 가지만 그래도 분사되는 가스는 뒤로 간다. 화살은 앞으로 날아가도 시위는 뒤로 당겨진다. 누군가 뒤로 가줘야 앞으로 갈 수 있다. 그러므로 반드시 모순된다. 사회에 모순이 분명히 있는데 없다고 우기는 보수꼴통 곤란하다. 보수꼴통은 약육강식은 자연의 법칙이므로 차별과 불평등이 모순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런데 모순 맞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강자든 약자든 사회라는 한 덩어리의 요소다. 단순히 모순이 없어져야 한다고 믿는 진보도 유치하다. 모순이 없어도 인간은 죽는다. 북한이 모순없는 사회를 이루었다고 주장하면 죽었다는 의미가 된다. 모순은 우리에게 주어진 일거리다. 그 일을 통해 사회는 유지되고 발전한다. 모순이 없다는 말은 일이 없다는 말이다. 밥을 먹으면 똥이 나오듯이 일을 하면 모순이 생긴다. 그 똥을 치워야 한다.


    ◎ 보수꼴통 – 약육강식은 자연법칙이므로 차별은 모순이 아니다.
    ◎ 무뇌좌파 – 모두 똑같이 입고 먹고 자고 생활해야 한다.


    사회의 발전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문제의 생산에 있다. 과거에는 문제가 안 되던 것도 긁어 부스럼을 생산해야 한다. 문제를 만들고 해결하면서 삶의 호흡을 유지하여 전진하는 것이다.


    깨달아야 한다. 진보는 자본주의 경쟁을 비판하지만 경쟁에 진보의 희망이 있다. 경쟁없는 사회는 무조건 강자가 이긴다. 고립된 사회라면 강자가 수백년간 세습하며 독식한다. 차별을 반대해야 하는 이유는 차별하는 집단은 경쟁에서 패배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짜 진보라면 경쟁을 일으켜 차별하는 집단을 멸망시켜야 한다. 성차별하는 나라를 망하게 만들어야 한다.


    구조론은 보편주의, 평등주의, 민주주의, 자본주의, 사회주의를 죄다 인정하지만 순서를 매긴다. 사회주의가 끝에 온다. 사회주의가 최종적인 것이며 가장 발달한 단계이지만 사실은 이 다섯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식물의 뿌리와 줄기와 잎과 꽃은 동시에 있다. 그러나 우리는 꽃을 가장 늦게 발견한다. 그동안 꽃은 배아 속에 잠복해 있다. 없는게 아니라 있는데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무엇인가? 우리는 문제발견과 문제해결을 혼동한다. 발견은 위에서 하고 해결은 밑에서 해야하는데 존재론과 인식론을 구분하지 않으므로 혼선이 빚어진다. 사회주의가 가장 진보한 단계지만 사실은 그것이 최종적인 지엽말단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가장 높은 것이면서 동시에 가장 낮은 것이다. 우리는 최종적으로 사회주의에 도달하게 되지만 사실은 사회주의가 가장 덜 중요한 것이다. 월드컵과 같다. 결승전이 맨 나중에 온다. 결승전이 가장 중요하지만 이미 한국팀은 탈락해 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결승전은 의미없는 것이다. 왜? 한국팀은 예선탈락이니까.


    그러므로 보편주의가 가장 중요하며 평등주의, 민주주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순이다. 사회주의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이는 문제발견의 인식론적 관점이고 문제해결의 존재론적 관점으로 보면 역시 사회주의가 중요하다. 보편주의는 사건 초반에 제기되는 문제이며 진행하다가 보면 이미 문제가 사라져 있다.


    끝까지 가는 문제는 사회주의 뿐이다. 보통 이걸 헷갈리는 것이다. 바둑이라면 끝내기가 가장 중요하지만 사실은 초반 포석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왜 끝내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가? 이미 포석단계가 지나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문제를 발견했을 때는 보편주의를 적용하고 일이 진행되었을 때는 사회주의를 적용해야 한다. 수순을 제대로 밟아가자.


    구조론의 사회주의는 좀 다르다. 공동생산 공동분배 이런게 아니다. 진짜 사회주의는 예禮에 의해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긴밀해지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남자와 여자가 친구가 되지 못한다. 관계가 긴밀하지 않다. 부부사이에 대화도 없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게 진짜 사회주의다. 요즘 문단내 성범죄 문제가 부각되고 있는 것은 한국인의 문화에 예절이 적용되고 있지 않다는 의미다. 사회주의 단계로 나아가지 않는 것이며 사회화가 덜 된 것이다. 남녀가 내외하는 유교관습이 장애물이다. 극복해야 한다. 여성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불만을 말해야 하고 여성의 심리를 모르는 남성들은 공부를 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서로 긴밀해졌을 때 완성된다.


    이 문제가 정치판에만 있는게 아니다. 모든 곳에 있다. 어떤 일을 하다보면 반드시 보편주의≫평등주의≫민주주의≫자본주의≫사회주의 순으로 적용해야 한다. 회사를 운영해도 그렇고 동호회를 이끌어도 그렇다. 반드시 일의 단계가 있다. 그리고 보수는 일관되게 다음 단계로 가지 않으려고 한다. 진보는 일관되게 단계를 앞지르려는 무리수를 쓴다.


    밥을 먹어도 가족끼리 먹을 건지 아니면 놀러와 있는 아들친구까지 부를 건지를 결정해야 한다. 보편주의 문제다. 과거라면 장손은 독상을 받고 여자는 따로 먹는 차별이 있었다. 현대라도 생선의 가운데 토막을 누가 먹느냐로 다툼이 일어난다. 평등주의 문제다. 차별은 필연적으로 일어난다.


    보편은 막힌 것을 뚫어 서로 만나게 하고, 평등은 하나의 식탁에 앉히고, 민주는 순서를 정하고, 자본은 효율을 얻어 지속가능하게 하며, 사회는 최종적으로 서로 긴밀해진다. 긴밀하면 완성된 것이다. 거기서 끝난다. 데이트를 해도 그렇다. 밥을 잘 먹었는지가 중요하지 않다.


    서로 긴밀해졌느냐가 중요하다. 또 헷갈리지 말자. 서로 긴밀해졌느냐 사회주의가 가장 중요하지만 사실은 그 전에 서로 만났느냐 보편주의가 가장 중요하다. 둘 다 중요한데 문제의 발견과 해결은 다른 것이다. 아직 일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만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이미 만났다면 긴밀해졌느냐가 중요하다.


    보수꼴통은 모든 것을 방해한다. 일단 막아서 만나지 못하게 차단한다. 부자는 강남에 살고 가난뱅이는 강북에 살며 서로 마주치지 말자는 식이다. 흑인과 백인을 분리하고 남성과 여성을 분리하자는 식이다. 여고와 여대가 왜 있느냐 말이다.


    과거 남아공과 호주의 인종분리정책은 비난하면서 한국의 성별분리정책은 비난하지 않는다면 말이 돼? 깨달아야 한다.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해결하는게 아니다. 문제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긁어부스럼을 생산한다.


    문제해결은 쉽다. 보수꼴통의 방법을 쓰면 된다. 다 막아놓으면 세상이 조용해진다. 대신 진보는 없다. 갑자기 너무 풀어놓아도 혼란해진다. 적절히 막고 적절히 푸는게 정치의 기술이다. 막아야 할 때도 분명히 있지만 그 또한 언젠가 풀기 위해서 막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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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이미지 [레벨:3]형비

2016.11.05 (08:17:10)

맛있는 술과 안주를 먹는듯 즐겁게 읽었습니다. 이 글을 읽으니 왜 제가 김동렬 선생님의 생각과 글에 공감하는지 알게 됩니다. 제가 명쾌하게 표현하지 못하나 제 생각의 방향은 선생님쪽과 닮아 있기 때문인듯 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9]id: 배태현배태현

2016.11.05 (08:35:19)

읽고 또 읽어야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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