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read 17263 vote 0 2005.09.06 (18:14:49)

 


퇴계는 넘치나 율곡은 없다


퇴계는 풍기군수 등 말직을 전전하다가 곧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조정이 부르면 마지못해 응했다가 곧 핑계를 대고 물러났다. 그러기를 무수히 반복하였다.


말년에 있었던 퇴계의 큰 벼슬은 대개 문서상으로만 이루어진 명목상의 것이다.


퇴계는 조정에서 별로 한 일이 없지만 그의 존재 자체가 정치에 큰 영향을 미쳤다. 훗날 퇴계가 키운 유림이 조정을 장악했음은 물론이다.


반면 율곡은 중앙관서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선조를 다그쳐 무수한 개혁안을 내놓았다. 불행하게도 그의 개혁안은 대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여기서 대비되는 두 인물의 정치스타일. 퇴계는 벼슬을 마다하고 물러남으로서 할 말을 했고, 율곡은 적극적으로 개혁안을 제시하고 임금을 가르쳤다.


어느 쪽이 더 나을까? 필자의 견해로는 둘 다 좋지만 율곡이 더 옳다. 참여지성의 전범은 퇴계가 아니라 율곡에 있다.


비록 선조가 율곡의 개혁안을 다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율곡이 끊임없이 조정에 긴장을 불어넣었기에 그나마 조선이 망하지 않고 500년간 해먹은 것이다.


오늘날 지식인 중에 퇴계는 많고 율곡은 없다. 물러나서 뒷말하는 자는 많고 나서서 개혁안을 제시하는 이는 없다.


완고한 원칙가는 많고 유연한 협상가는 없다. 왜인가? 율곡의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대단한 스트레스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긴장의 연속이다.


퇴계는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을 지고 자신을 반성하며 물러났다. 율곡은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한걸음 먼저 내다보고 문제의 발생지점을 폭파하였다.


정치는 스트레스 그 자체다. 정치의 스트레스를 잘도 견뎌내는 뻔뻔스러운 인간들은 죄 악당이고, 그 스트레스를 못견뎌 하는 착한 인간들은 퇴계처럼 도망치고 만다.


퇴계는 쉽고 율곡은 어려운 것이다. 본래 그렇다. 정치 신경쓰다 위장병 걸려버린 필자 역시 퇴계처럼 도망치고만 싶으니.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sort 조회
1485 윤석열 일당의 발호에 대하여 1 김동렬 2021-06-29 4013
1484 구조론 한마디 김동렬 2021-06-29 3003
1483 악취가 진동한다. 윤석열 1 김동렬 2021-06-30 3806
1482 심리학은 사기다 김동렬 2021-07-01 3552
1481 누가 불쌍한 쥴리에게 돌을 던지나? 2 김동렬 2021-07-01 4818
1480 일원론과 다원론 김동렬 2021-07-01 3828
1479 이성은 있고 감성은 없다 김동렬 2021-07-02 3720
1478 일원론 이원론 다원론 image 김동렬 2021-07-03 2745
1477 이성은 명령이다 김동렬 2021-07-03 2845
1476 인간은 명령하는 동물이다 김동렬 2021-07-04 2817
1475 이재명 돕는 윤석열 김동렬 2021-07-05 3313
1474 이낙연 후단협의 갑질면접 완장질 4 김동렬 2021-07-05 4014
1473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가? 1 김동렬 2021-07-05 3420
1472 구조론은 무엇으로 사는가? 2 김동렬 2021-07-06 2684
1471 원인은 자연의 조절장치다. 김동렬 2021-07-06 2716
1470 민중파가 엘리트를 이긴다 김동렬 2021-07-06 3756
1469 중권이랑 쥴리랑 1 김동렬 2021-07-07 3696
1468 기세란 무엇인가? 김동렬 2021-07-07 3730
1467 자연은 전략이다 김동렬 2021-07-08 2922
1466 쥴리와 호빠 1 김동렬 2021-07-08 44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