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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6802 vote 0 2015.02.24 (15:28:21)

     

    왜 구조론인가?


    구조론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여러분의 생각이 틀렸기 때문이다. 관점이 틀렸고 사고방식이 틀렸다. 보이는 것은 하부구조다. 상부구조를 보는 힘을 얻어야 한다. 세상은 사물의 집합이 아니라 사건의 엮임이다. 사물의 참 거짓을 판단하는 방식이 틀렸으므로 사건의 완전성을 추적하는 방식으로 갈아타야 한다. 사건은 의사결정원리에 지배되며 자연에서 그것은 에너지가 가는 루트로 나타난다. 에너지는 전체에서 부분으로 가고, 원인에서 결과로 가고, 상부구조에서 하부구조로 간다.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사건이 종결된 시점의 부분이며, 결과이며, 하부구조다. 그래서 틀렸다. 뒤집어진 상을 보게 되므로 원래로 되돌려야 한다. 보이는 대로 보면 틀리고 레이더로 쏘아야 한다. 외부의 빛을 받아들여 보면 이미 왜곡되었다. 자기 에너지로 쏘아서 응수타진하고 선제대응해야 한다. 모든 의사결정은 대칭원리를 쓴다. 먼저 대칭을 만들고 이를 비대칭으로 전환시키며 공간의 위치에너지를 시간의 운동에너지로 바꾼다. 이 의사결정모형의 시뮬레이션으로 판단하는 것이 깨달음이다.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 자기를 바꾸는 것이다.
    ◎ 죽음을 극복하는 것이다.
    ◎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아는 것이다.
    ◎ 모형의 시뮬레이션을 쓰는 것이다.
    ◎ 신과의 일대일로 보는 것이다.


    ◎ 대표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 집단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 의사결정이 가능한 구조로 세팅하는 것이다.
    ◎ 돌아가는 상황 전체를 책임지는 태도다.
    ◎ 대승의 팀플레이를 깨닫는 것이다.


    ◎ 사건의 원인측에 서는 것이다.
    ◎ 기승전결의 기 포지션에 서는 것이다.
    ◎ 계에 밀도를 걸어 에너지를 통제하는 것이다.
    ◎ 게임의 주도권를 행사하는 것이다.
    ◎ 사건의 완전성을 깨닫는 것이다.


    ◎ 소실점을 보는 것이다.
    ◎ 동적균형을 쓰는 것이다.
    ◎ 이중의 역설을 깨닫는 것이다.
    ◎ 달림으로써 균형을 잡는 것이다.
    ◎ 상대성 위의 절대성을 보는 것이다.


    ◎ 레이더로 보는 것이다.
    ◎ 동사를 명사로 바꾸는 것이다.
    ◎ 한 점을 움직여 계를 통제하는 것이다.
    ◎ 위치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바꾸는 것이다.
    ◎ 대칭을 비대칭으로 제어하는 것이다.


    인간은 언제 변하는가?


    아기는 엄마가 지켜보고 있으면 태연하다. 인간은 신이 지켜보고 있을 때 태연하다. 인간은 진리의 호흡 안에서 태연할 수 있다. 진리가 이끄는 변화를 따라잡을 때 태연하다. 에너지의 흐름에 올라타면 태연하다. 수영을 익혀 물에 뜨면 태연해진다. 자전거타기를 익혀 넘어지지 않으면 태연하다. 변화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을때 태연하다. 정상에서 전모를 보면 태연하다. 역사와, 진리와, 사회와, 자연과, 신과 하나가 되면 태연하다. 집단이 가는 방향을 알고 함께 나아갈 때 태연하다. 집단과 긴밀한 관계일 때 태연하다. 그럴 때 인간은 변한다.


    왜 인간은 변해야 하는가?


    인간은 위기를 감지하면 집단에 구조신호를 보내도록 되어 있다. 위험의 존재를 집단에 알리는 구조신호는 무의식적인 자기파괴로 나타난다. 집단으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지만 자기 자신에게 원인을 돌리고 스스로 자책하게 된다. 그러므로 괴로워진다.


    인간이 실패하는 이유는?


    인간의 첫 번째 판단은 시행착오 과정을 통해 집단에 데이터를 제공함으로써 오류시정을 끌어내는 절차다. 개인은 무의식적으로 집단의 선발대가 되어, 필요한 정보를 생산한다. 모험을 걸고 일을 벌이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집단과의 관계에서 인간은 이미 덫에 걸려 있다.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자전거를 타면 바람의 세기를 읽지 못한다. 인간은 자연의 흐름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역주행 함으로써 가치있는 데이터를 얻어 집단에 제공한다. 그 과정에서 개인은 희생된다. 집단의 역린을 건드리는 퇴행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집단의 진보는 개인을 미끼로 쓰는 시행착오와 오류시정의 역설적 구조이며, 인간은 집단에 치이는 존재다.


    개인이 역주행하는 이유는?


    사건의 원인에 대응하지 못하고 결과만 주목하기 때문이다. 상부구조를 보지 못하고 하부구조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전체가 아닌 부분에 매달리기 때문이다. 자연의 에너지가 흐르는 방향의 반대쪽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상부구조는 원래 보이지 않는다. 사건은 종결되는 시점에 변화를 일으키고 인간은 뒤늦게 변화를 포착한다. 병에 걸린 다음에 병균의 침투를 알아채는 식이다. 언제나 타이밍을 놓치고 한 발 늦게 알아챈다. 이를 극복하려면 레이더를 써야 한다. 외부로부터의 빛을 받아들여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응수타진하고 선제대응해야 한다.


    자연이 흐르는 방향은?


    자연은 에너지의 결을 따라간다. 에너지는 원인에서 결과로 가는 한 방향으로 달려간다. 원인은 에너지가 있고 결과는 에너지가 없다. 에너지 흐름에 역주행하면 사태를 장악하지 못하고 환경에 휘둘리게 된다. 환경에 지배당하므로 괴롭다. 언제나 의도가 어긋나기 때문이다.


    인간이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인간은 공동체적 존재이며, 심리적으로 집단에 의존한다. 집단은 스트레스의 형태로 개인을 조종한다. 개인은 호르몬의 분비에 의해 물리적으로 제압당한 상태로 있다. 이는 물리현상이므로 극복할 수 없다. 개인은 동료에게 자기 생각을 전달하려 하므로, 원인을 제쳐놓고 결과만 포착한다. 원인은 바깥의 상부구조에 있으므로 전달할 수 없다. 자신이 본 것을 타인에게 전하려 하면 거짓이 된다. 바르게 보고도 틀리게 말한다. 눈으로는 똑바로 보지만 그림으로 표현하면 어색해진다. 관점의 형태로 이미 타인의 시선이 개입되어 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보고 난 다음 자기 입장을 결정하려 하면 언제나 잘못되고 만다. 반면 자기 안의 넘치는 에너지를 분출시키면 바르다.


    깨달음은 무엇이 다른가?


    자연의 결과 인간의 시선을 일치시킴으로써, 공동체에 위기를 전파하고자 하는 무의식의 본능을 극복하고 태연해진다. 깨달음은 도구를 쓰므로 관점의 오류에서 벗어나 있다. 깨달음는 부하를 보내서 대신 싸우게 하고 자신은 높은 곳에서 내려보며 지휘하는 것과 같다. 먼저 전초를 보내 적의 의도를 탐지하고 다음 본대를 내려보내 적과 대치하며 다시 예비대로 뒤를 받치므로 모든 경우의 수에 대비할 수 있어서 완벽하다. 자신은 사건에서 손을 떼고 신의 눈높이에서 천하를 내려다보는 포즈다.


    깨달음은 어떻게 가능한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방향을 180도로 틀어야 한다. 인간은 벽을 등지고 설 때 편안하다. 배후를 털릴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 진리를 등지고 설 때 편안하다. 등대에 기대어 서고 불빛이 가는 방향을 보아야 한다. 신을 등지고 기대어 선 채로 신이 보는 방향을 바라볼 때 인간은 편안하다. 인간은 위기를 탐지하여 집단에 보고하려는 무의식의 명령 때문에 진리의 맞은 편에 선다. 강 건너편에서 바라보는 상대성의 포지션이 되므로 대상을 통제할 수단이 없어서 불행해진다. 자신이 직접 핸들을 잡고 에너지를 조율하는 절대성의 포지션에 설 때 편안해진다.


    진리의 시선은 무엇인가?


    사건의 완전성을 훈련해야 한다. 사건은 관계의 집합이다. 북도 불완전하고 북채도 불완전하나 그 둘의 만남은 완전하다. 연주는 불완전해도 그 만남을 기록한 악보는 완전하다. 너도 불완전하고 나도 불완전하나 너와 나의 만남은 완전하다. 둘의 사랑은 완전하다. 사물을 바라보면 불행해지고 사건을 바라보면 의연해진다. 사물은 동서남북 여러방향으로 펼쳐져 있지만, 사건은 언제나 위치에너지에서 운동에너지로 가는 한 방향으로만 달려가기 때문이다. 사물을 다룰 때는 대상보다 힘이 세야만 하지만 사건은 길목을 지키면 작은 힘으로 큰 힘을 이기므로 여유롭다. 사건이 공간에서 시간으로 트는 접점에 체크해야 할 길목이 있다.


    불완전한 것은 무엇인가?


    불완전한 것은 타인에게 전달하는 의미다. 인간은 의도를 가지고 무언가를 ‘위하여’ 행동할 때, 그 전하려는 의미에 의해 불행해진다. 행복이든, 쾌락이든, 돈이든, 성공이든, 명성이든 의미있는 것들이 인간을 불행하게 한다. 의미는 반드시 댓가를 치른다. 잘 나갈 때 모르다가 뒤늦게 청구서를 받는다. 모든 전달하는 것은 뒤로 리스크를 쌓기 때문이다. 의미의 상대성 때문이다. 결혼할 마음을 먹는 순간 이미 친구 두 명과 헤어져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다. 완전한 것은 의미를 주고받는 만남의 장 그 자체다. 만남의 완성에서 드라마는 종결되어야 한다. 춘향과 몽룡이 만나서 무언가를 궁리하면 불행해진다. 물고기를 버리고 낚시대를 취해야 한다. 어떤 것을 버리고 그 어떤 것의 자궁을 취해야 한다. 의미를 버리고 그 의미의 자궁인 맥락을 취해야 한다.


    어떻게 관계를 볼 수 있는가?


    관계는 결과가 아닌 원인에 있고, 부분이 아닌 전체에 있고, 하부구조가 아닌 상부구조에 있다. 두 사람이 서로 다투며 책임을 상대방에게 돌리고 있다면, 그 둘을 외나무다리에서 만나게 한 비좁은 공간이 원인이다. 모든 사건은 구조의 모순에 의해 촉발되며, 모순은 중첩의 형태로 나타나고, 중첩은 둘이서 한 배를 타는 형식을 가진다. 둘이 하나의 토대를 공유함으로써 모순을 일으켜 사건은 격발된다. 보이는 둘에서 시선을 떼고 보이지 않는 토대를 발견할 때 관계가 포착된다. 둘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어져 있다. 그리고 사건은 일어난다. 그 끈을 풀어주면 사건은 해결된다. 혹은 끈의 길이를 조절하여 자유자재로 제어할 수 있다.


    진정한 깨달음은 무엇인가?


    관계의 상대성을 넘어 절대성을 보는 것이다. 상대성은 역설로 나타나고, 역설은 의도와 반대로 된다. 대개 역설의 상대성을 보고 깨달았다고 착각하지만, 이는 소승적 깨달음에 불과하다. 그것으로는 자기방어가 가능할 뿐이며, 이미 일어난 문제를 풀 수 있을 뿐이다.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조직하지는 못한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내가 가만 있어도 환경이 인간을 침범하기 때문에 결국 좌절하게 된다. 거기서 멈추지 말고 이중의 역설로 나아가야 한다. 역설의 역설에서 절대성을 만난다. 그것은 자신과 세상 사이의 대칭을 넘어, 어떤 대상의 내부에서 작동하는 자체의 메커니즘을 포착하는 것이다.


    관계의 절대성은 무엇인가?


    인간은 사건 안에서 기능하는 대칭성을 포착하고 그 대칭을 중심으로 사유를 전개하고 이야기를 풀어가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모르는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자신과의 대칭을 성립시킨다. ‘나는 초콜렛이 좋더라.’고 말하면 자신에 대칭된 초콜릿을 설명할 의도지만, 반대로 ‘나는 초콜렛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하는 자기소개가 된다. 사건에서 나를 비워내고 객관화 시켜야 한다. 말하고자 하는 대상 그 자체의 내재한 메커니즘에 주목해야 한다. 나와 상관없이 초콜렛 안에서 이야기를 발굴해내야 한다.


    완전한 관계는 무엇인가?


    대개 지켜보다가 ‘네가 이렇게 나오면 나는 이렇게 하겠다.’는 응수전략을 품고 있다. 이미 주도권을 뺏긴 것이다. 그렇게 응수하다가는 상대방이 깔아놓은 밑밥에 말려든다. ‘네가 어떻게 나오든 상관없이 나는 이렇게 하련다.’는 일방통행의 전략을 품어야 한다. 상대방의 행동을 지켜보고 후수를 둘게 아니라, 레이더를 가동하여 먼저 제안하고, 먼저 응수타진하고 먼저 선수치는 선제대응을 해야 한다. 그러한 주고받음의 상호작용을 통해 둘 사이에서 힘의 밸런스를 이루는 축을 성립시켰을 때, 그 축을 움직이는 방법으로 상대방을 통제할 수 있다. 토대의 공유를 끌어내고 그 토대를 지배함으로써 완전한 관계는 가능하다.


    달은 무엇인가?


    손가락은 관계의 상대성을 보고, 달은 관계의 절대성을 본다. 사랑할수록 미워지는 것은 상대성이고, 밀당을 거치면서 상대방을 잘 알게 되어 관계가 긴밀해지는 것은 절대성이다. 시소에 올라탔다가 반전되는 것은 상대성이고, 시소의 축을 지배하므로 일관되는 것이 절대성이다.


    돈오는 무엇인가?


    돈오는 너와 나 사이에서 관계의 성립 그 자체다. 신과의 관계, 진리와의 관계, 역사와의 관계, 사회와의 관계, 자연과의 일대일 관계를 이루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180도로 바꾼다. 어릴 때는 세상의 건너 편에서 담 너머로 바라본다. 전모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게 레이더가 없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손을 거치며 가공된 정보이기 때문이다. 손에 쥔 연장이 없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연장을 쥐고, 사건의 전모를 보면 진리와 신과 역사와 자연과 진보의 편에 서게 된다. 팀플레이로 에너지를 얻는다. 에너지 흐름에 올라타고 함께 나아간다.


    점수는 무엇인가?


    점수는 자신의 깨달음을 타인에게 알리려는 노력이다. 인간은 언어로 소통하고, 언어는 의미를 태운다. 의미는 불완전한 사건의 조각들이다. 그 조각난 퍼즐을 맞춰야 완전해진다. 언어는 전하는 자와 받는 자로 포지션을 나누므로 불완전하다. 구리거울을 쪼개서 나눠가졌다가 반쪽만을 전하는 것과 같다. 전모는 사건의 맥락에 의해 파악된다. 언어를 버리고 진리의 에너지 흐름에 올라타야 한다. 진리의 레이더에 편승해야 한다.


    현대성은 무엇인가?


    진리는, 역사는, 생명은, 자연은, 문명은 머무르지 않고 기운차게 생동하는 그 동動에 의해서만 현재상태를 유지한다. 돌아가는 팽이와 같아서 그 호흡을 멈추면 죽는다. 깨달음은 에너지 흐름에 올라타고 세상과 상호작용하며 나아간다. 상호작용에는 유통기한이 있고, 마감시한이 있으므로, 언제나 시간이 촉박해져서 계에 강한 밀도가 걸린다. 그러므로 관계는 긴밀해진다. 팀이 나아가는 방향성이 정해지며 그것으로 낳음의 자궁이 세팅된다. 비로소 창의하게 된다. 부단한 새로움의 호흡 속에서만 깨달음은 기능한다.


    존엄은 무엇인가?


    존엄은 둘이 만나는 접점에서의 긴밀함이다. 사건이 방향을 틀 때 에너지가 한 점에 집중된다. 만인은 그 한 점을 주시하게 된다. 하나가 바뀌면 거기에 연동되어 모두가 바뀌기 때문이다. 존엄이 바뀌면 자유가 바뀌고, 자유가 바뀌면 사랑이 바뀌고, 사랑이 바뀌면 성취가 바뀌고, 성취가 바뀌면 행복이 바뀐다. 이후 완전히 다른 길을 가게 된다. 지극히 평화로운 가운데 보이지 않게 팽팽한 긴장상태가 연출된다. 그 긴장의 강약을 조절하여 보이지 않게 통제한다.


    거짓 깨달음은 무엇인가?


    존엄이 없는, 현대성이 없는, 결과를 추구하는, 행복을 바라는, 무언가를 ‘위하여’라고 말하는, 하부구조에서 움직이는, 홀로 고립되는, 개인의 문제에 매몰되는, 점수로 시간낭비하는, 상호작용하지 않는, 진리의 편에 서지 않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쓸데없이 히죽거리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물어보지 않았는데도 마음이 평안하다며 자기소감을 발표하는 것은 가짜다. 기운을 빼고 나이브한 태도로 있는 것은 가짜다. 무언가를 내려놓고, 버리고, 비운다고 떠드는 것은 가짜다. 평상심을 주장하는 것은 가짜다. 그것은 두려움을 없애려는 노력이다. 혼자서 평안을 주장해봤자 부단히 변화하는 환경이 인간을 괴롭힌다. 시달림은 계속된다. 이것들은 자신의 깨달음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단지 청중들이 원하는대로 말해준 것에 불과하며 청중들의 희망사항을 나열한 것에 불과하다.


    공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깨달음은 관계를 드러낸다. 관계는 둘의 사이다. 사이에는 아무 것도 없다. 텅 비어 있다. 그러므로 공하다. 그러나 이는 관계의 토대를 보지 못한 것이다. 둘 사이에는 하나의 공유되는 토대가 있다. 마주보고 있는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착각이고, 너와 나는 한 배를 타고 있으며, 둘 사이에 배가 있고, 그 배 아래에 파도가 있고, 그 파도 아래에 중력이 있다. 너와 나의 사이에 진리가 있다. 당신과 나 사이에 인터넷이 있다. 계에 에너지의 밀도가 걸려 있다. 낳음의 자궁이 세팅되어 있다. 그 사이로 에너지가 드나들며 호흡하고 있다. 굉장히 많은 일들이 거기서 일어나고 있다. 한 세계가 걸치어 있다.


111.JPG


    대칭을 이루어야 하고, 그 대칭의 축을 장악해야 하고, 다시 그 축을 움직여서 연주해야 합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는 새 다른 것의 하부구조로 종속되어 자신을 지배하는 상부구조를 위하여 기능하게 되며, 집단으로부터 스트레스를 받고, 그 스트레스에 의해 마음이 조종당하며, 뇌에서 호르몬이 분비되어 자기통제가 불가능한 상태가 됩니다. 대개 자기판단으로 믿지만 대부분 마음이 조종당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깨달아야 합니다. 


[레벨:1]이희진

2015.02.24 (19:51:46)

구조론 개념잡기에 좋은글이네요^ ^
접한지는 3년이지만 띠엄띠엄해서 왜 구조론이 5인지도 최근에야 알았어요.
그동안 마음이나 인간에 대한 이해만 곶감 빼먹듯이 관심을 가졌었는데 
어설프게나마 모형이 그려지니 좋습니다. 
오늘 마음에 담아가는 내용은 ☆위에서 내려다보고 선빵하기☆ 
감사합니다! 
[레벨:10]다원이

2015.02.24 (22:37:08)

잠수함에서 active sonar를 쏘는 것이군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5.02.25 (08:37:23)

이게 뭔말인지...
자기언어로 설명이 가능해야 할듯요...남의말 빌려온거니까...
최대한 자기감정을 표현해보고....남의 말로 대체해도..늦지 않아요.
이미, 정의된 것을 빌려 왔다면, 적어도 자신의 느낌이 있어야 하지요.
뭔가 느낌이 온 것을 먼저 할수 있는 범위 내에서 표현해보고, 그 다음 개념지어진 것을 들이밀어야지요.
아니면, 자신이 개념지었으면, 먼저 말하고 나중 설명이겠지만....

이런 형태로, 대충 자기가 알아들었다고 여겨져서 그것으로 답변을 대신하니...
시간이 지나면 또 모르는 거라고 여겨져요...
각개격파...때에 따라서는 효과적이지만.... 제 생각엔 그닥...
정확하게 질문을 던지는 편이 더 나을듯....

active sonar 이렇게 자기 답변을 대신 한 것에 대해...예를 들자면....
이거 검색해서....너가 이 뜻 알아서...내 답글에 답변해봐...이거거든요...
참...짜증나죠..물어보는 주제에 일 시키니까....

좀..그런 생각...안 드나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5.02.25 (10:43:45)

묻는 말은 아니고 장단 맞추는 말이겠지요.


액티브 소나와 패시브 소나가 있는데 

액티브 소나는 이쪽의 위치를 들킬 위험을 감수하고 


능동적으로 소리를 내서 적 잠수함을 탐지하는 거.

소나가 아니라도 이쪽에서 탐지신호를 보낼 때는 강약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맥을 짚는 것도 그냥 짚는게 아니라 막았다가 터주고 감도를 보는 거지요.

자기 쪽에서 먼저 보낸 신호만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입니다.


그냥 수집한 데이터는 적의 함정일 확률이 매우 높소.

도박만화라도 자기가 돌린 패가 아니면 


좋은 패가 들어와도 베팅하면 안 되지요. 

남녀관계라도 그런데 자기 쪽에서 탐지신호를 보내지 않았는데


상대방이 자신에게 뭔가 주었다면 자신에게 호감을 느끼고 준 것이 아니라

남아돌아서 처치곤란으로 준 것일 가능성이 ㅎㅎ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5.02.25 (10:53:26)

그렇죠..서로 응수타진이 먼저니까요..
[레벨:17]눈내리는 마을

2015.02.25 (11:36:19)

제 요즘 연구도, 패시브에서 액티브로 가는건데, 패시브 숙지못한 얼빵이들 제거하는 작업중. 음...액티브도, 송출형태를 조율할 필요가 있겠네요. 수신에 대한 의도가 될테니까.

[레벨:8]상동

2015.02.25 (13:11:03)

선제(선수) 대응의 필요성에 대한 명문의 답변입니다. ^^


보통사람들의 보통판단이 오류투성이인 이유는

바로 패시브(후수) 소나를 쓰기 때문이지요.


함정에 걸리고 멘붕이 오고

결국 두려움에 움추리고 왜곡으로 치달아 간다는....


나의 필요에 따라 액티브(선수) 소나를 쏘고

능동적으로 획득해야만 왜곡을 탈출할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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