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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801 vote 0 2021.09.27 (20:54:20)

    양자역학이 어려운게 아니다. 거기에 따라붙는 수학이 어렵고, 각종 기호가 어렵고, 처음 들어보는 전문용어가 어렵다. 상대성이론이 어려운게 아니다.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면 된다.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자. 내가 하느님이라 해도 그 정도 복잡함이 있어야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잖아.


    입장 바꿔 생각해 보는 거다. 관측자 입장이 아닌 창조자 입장에서 생각하면 그렇다. 레고블럭으로 만들어도 모양나게 만들라치면 이것저것 필요한게 많다. 뉴턴역학의 단순함으로 이 광대한 우주를 설계할 수 있다는 말인가? 직관적으로 봐도 그건 아니잖아. 아인슈타인 형님 나와주시고.


    그렇지. 이제야 뭔가 퍼즐이 맞아지는 느낌이네. 양자역학의 여러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 하는건 쉽다. 그림을 그리면 된다. 이거 아니면 저거 아니면 그거다. 선택지가 많지 않다. 문제는 사람들이 이게 안 된다는 거다. 이거 아니면 저거인데 계속 이것에만 붙잡혀 있는 거다.


    사람들이 기본적인 추리를 못 한다. 하수는 주구장창 여기만 쳐다보고 있다. 그냥 반대쪽을 보면 되는데 절대로 안 본다. 고수는 여기 아니면 저기를 안다. 구조론을 배우면 여기와 저기를 넘어 거기까지 본다. 그 정도만으로도 남을 앞설 수 있다. 이것과 저것의 대칭에 그것은 대칭축이다.


    소련이 미국 대사관을 7년 동안 도청한 일이 있다. 소련 소년단이 나무조각품을 선물로 주고 갔는데 벽에 걸어놓았다. 내부에는 어떤 전기장치도 없다. 배터리도 없고 회로도 없다. 그렇다면 뻔하다. 밖에서 전파를 쐈다. 이거 아니면 저거다. 내부에 배터리가 없으면 밖에서 동력을 공급했다.


    보통은 이게 안 된다. 죽어보자고 내부만 뜯어본다. 호두를 까고 밤송이를 까던 원시인 시절 버릇이 남아서 그런지 죽어보자고 내부만 들여다본다. 내부에 배터리가 없는데 어떻게 도청을 해? 전기장치가 없잖아. 구조론으로 보면 단순하다. 시계라 해도 시간을 대충 맞추는 것은 쉽다. 


    원리는 간단하고 정확도가 어렵다. 부족민이 라디오를 처음 봤다고 치자. 라디오 내부에 아무것도 없다. 틀림없이 요괴가 숨어있어야 하는데. 요정이 숨어있거나 꾀꼬리라도 한 마리 있어야 한다. 아무것도 없다. 대신 외부에 방송국이 있다. 내부에 없으면 외부에 뭔가가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런 간단한 추리를 못하더라. 구조론은 간단하다. 세 가지 선택지를 제시한다. 이거 아니면 저거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그거다. 마술사가 속임수를 쓴다고 치자. 여기에 있어야 하는데 없다면 저기에 있다. 저기에도 없으면 거기에 있다. 보통은 여기 한곳에만 집착한다. 


    각종 음모론에 홀리는 사람이 그렇다. 한강 의대생 사건만 봐도 알 수 있다. 인간들이 얼마나 추리를 못 하는지. 보통은 흑백논리에 빠져 있다. 흑 아니면 백이다. 적대적 의존도 있는데 말이다. 흑과 백이 합작한다. 독일과 소련이 합작해서 폴란드 잡아먹는다. 독일 아니면 소련이라고?


    천만에. 독일도 아니고 소련도 아니고 독소합작이라네. 이 정도를 내다보지 못한다. 구조론이 말하는 방향성과 기세는 흑과 백을 통합한 제 3의 밸런스와 그 밸런스의 이동이라는 제법 복잡한 그림이다. 별거 아니다. 흑백의 대칭에 추를 하나 매달았을 뿐. 그 추를 흔들어보는 그림이다.


    보통은 노리개를 향하여 달려드는 고양이다. 미끼를 던져주면 바로 낚인다. 붕어다. 붕어는 이것은 아는데 저것을 모른다. 이것도 알고 저것도 알면 늙은 개처럼 매사에 흥미를 잃고 시큰둥해진다. 똥개훈련도 한두 번이지 말이다. 음모론자가 붕어라면 회의주의자는 늙은 개라 하겠다. 


    이것도 저것도 아는데 그것을 모르더라. 흑도 알고 백도 아는데 밸런스를 모르네. 밸런스도 아는데 방향성을 모르네. 방향성도 아는데 기세를 모르네. 세상이 어려운게 아니다. 당신이 창조자라고 치자. 무슨 빡빡한 기계처럼 톱니바퀴에 기어 같은 것을 잔뜩 던져주고 그걸로 세상을 


    함 만들어보라고 하면 해내겠는가? 못 만든다. 드라이버가 없잖아. 유드리도 없고, 본드도 없고, 여백도 없고, 차고도 없고, 작업장도 없고 어케 만들어? 부품만 던져주고 만들어오라고 강요하는 사람은 기계론의 뉴턴이다. 창고도 제공하고, 본드도 제공하고, 유드리도 제공하고, 여백도 


    감안해주는 사람은 친절한 아인슈타인 형님이다. 그래도 부족하다. 부품을 깎는 장비도 줘야지. 부품만 던져주지 말고 부품을 생산하는 소재부터 제공해야지. 결정적으로 배터리가 필요하다. 동력원이 필요하다. 우주의 동력원은 뭐지? 수학적 모순이다. 모순이 붕괴하며 동력을 생산한다.


    양자역학이 별거랴. 우리가 작업을 하다가 보면 대칭이 일대일로 딱딱 들어맞으면 잘 안 되고 2/3나 3/4으로 약간씩 어긋나야 타원궤도가 커져서 충분한 작업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동력원이 되는 수학적 모순이 있다는 거다. 궤도가 정원이면 쪼그라들어서 붙어버린다. 


    핼리혜성처럼 크게 돌아야 공간이 넉넉하다. 핼리혜성의 타원궤도가 작아졌다면? 그만큼 잉여 에너지가 생겨서 우주를 건축할 수 있다. 뭔가 그림이 나오잖아. 충분히 머릿속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밸런스는 원래 약간씩 어긋나야 재미가 있다. 재즈를 연주하더라도 그렇다. 


    흥을 살리고 리듬을 타려면 오히려 언밸런스에서 뭔가 묘미가 있는 것이다. 이것만 보는 사람은 낚인다. 낚여서 당한다. 이것과 저것을 보는 사람은 의심한다. 의심하다가 타이밍을 놓친다. 이것과 저것 사이에서 교착된 것이다. 타개해야 한다. 이것과 저것과 그것을 보는 사람이 기회를 잡는다. 


    항상 배후에 뭔가 하나가 더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경험으로 안다.


    점 두 개를 이으면 접점이 생긴다. 점 두 개는 시작점과 끝점이다. 둘을 연결하면 접점이라는 제 3의 존재가 갑자기 나타난다. 양자도약처럼 짠 하고 나타난다. 선 둘을 연결하면 3번째 선이 나타나고 그것이 각이며 각 둘을 연결하면 세 번째 각이 나타나고 그것이 입체이며 입체의 연결도 같다.


    둘을 통일하면 3이 발생한다. 사실은 마이너스다. 생겨날 리가 없지 않은가? 무에서 유는 없기 때문이다. 깨지면서 드러난 것이다. 밀도를 깨면 입체 둘 플러스 매개변수가, 입체를 깨면 각 둘 플러스 매개변수가, 각을 깨면 선 둘 플러스 매개변수가, 선을 깨면 점 둘 플러스 매개변수가 있다. 


    매개변수는 스칼라 형태이므로 선보다 작은 점은 깰 수 없다. 만약 그것이 있다면 그것을 전달하는 무언가가 하나 더 숨어 있는 것이다. 그 전달하는 것을 매개하는 그 무엇도 있어야 한다. 양파껍질은 계속 깔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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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련의 도청장치. 이 안에 아무것도 없다. 안에 없으면 밖에 뭔가 있겠네? 그걸 생각하는 사람이 이 장치를 만들었다. 안에 없으면 밖에 있다는 절대적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천재다. 보통은 이게 안 된다. 없는데도 계속 안쪽을 수색하며 한숨을 쉰다. 음모론의 자궁이 그곳에 있다. 


    외어야 한다. 여기에 없으면 저기에 있다. 여기도 저기도 없으면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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