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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304 vote 0 2023.01.08 (18:14:34)

    뉴턴이 미적분을 하지 않았다면 인문계니 이공계니 하는 다툼도 없다. 형님이 경솔한 짓을 해서 인간들 사이에 불화를 일으킨 것이다. 양자역학도 비슷하다. 무지의 지.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절감하고 겸허해져야 했다. 판도라의 상자는 함부로 여는게 아닌데 말이다. 물질 위에 성질 있다. 양자역학은 겁도 없이 그것을 건드려버린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고뇌를 이해할 수 있다.


    먼바다를 지나가는 커다란 범선을 뻔히 보고도 알아보지 못하는 폴리네시아 부족민과 같다. 부족민의 뛰어난 시력으로 작은 카누가 지나가는 것은 귀신같이 알아보면서 말이다. 폴리네시아 섬에 처음으로 상륙한 백인이 그동안 뻔질나게 앞바다를 지나간 범선을 보지 못 했느냐고 물으면 부족민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대답한다. 진짜 못 봤을까? 관심이 없으면 그럴 수 있다.


    인간은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만나면 뻔히 보고도 모르쇠 기술을 쓴다. 자신이 색맹이라는 사실을 모르면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지만 그 이상 어떻게 대처할 수 없다. 그 시대에 색각교정 안경이 있는 것도 아니라면 말이다. 전부 설명할 수 없으면 차라리 전무가 낫다는 식이다. 부족민의 카누로 범선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으므로 어차피 못 먹는 감은 찔러보지도 않고 포기한다.


    백인 탐험대가 돌도끼를 쓰는 부족민 마을을 지나면서 쇠도끼를 선물했다. 도끼로 나무를 자르는 방법까지 실습을 시켰다. 부족민이 감탄했음은 물론이다. 마을을 떠나면서 백인은 부족민 마을에 작은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하고 상상했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들렀더니 쇠도끼를 버리고 사용하지 않았다. 부족민의 쇠도끼는 불화를 낳는 요물이다. 주술사가 가만있지 않는다.


    과학은 스승의 어깨를 밟고 넘어가는 것이다. 인문학은 절대 스승의 어깨를 밟지 않는다. 부족민은 무려 인문학자 행세를 한다. 부족민 사이에 불화를 낳는 쇠도끼 요물부터 처단한다. 아인슈타인 같은 대학자도 마찬가지다. 그의 정적우주론이 그러하다. 내가 초등학생 때 고민했던 문제를 아인슈타인은 전혀 생각해보지도 않았다는 말인가?


    삼인시호와 같다. 세 사람이 바람잡이 짓을 하면 잘도 속아 넘어가는게 인간이다. 노숙자가 노숙을 하는 이유는 주변에 세 사람이 노숙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주변 세 사람이 설득하면 집으로 돌아간다. 의지할만한 가족들과 협력해줄 동료와 따르는 자식이 필요한 것이다. 인간은 주변 세 사람에게 설명하여 납득시킬 자신이 없으면 눈으로 본 것도 보지 않은 것으로 친다.


    벌거숭이 임금님이다. 보고도 말하지 않는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은 그냥 보면 보인다. 그런데 말하지 않는다. 지구와 우주의 문제는 감당하기 어렵다. 지구인 전부를 납득시켜야 하는 문제다. 피곤하다. 필자처럼 눈치 없는 사람이 넘어가지 말아야 할 금을 넘어가는 것이다. 실수로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리고 말이다. 상자는 열렸다. 사물의 세계에서 사건의 세계로 넘어와 버렸다.


    망원경이나 특별한 과학적 지식 없이 맨눈으로 볼 수 있는 지구가 둥글다는 증거는 많다. 며칠만 생각하면 30개 정도는 찾아낼 수 있다. 내 눈에 뻔히 보이는데 그게 안 보인다는 사람과 대화를 해야겠는가? 답답한 일이다. 저 범선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인가? 바다를 가로지르는 범선이 인공물이 아니라 구름으로 보인다고? 그럴 수 있다. 인간이 저런 것을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하면.


    사람의 눈은 높이에 민감하다. 수직으로 선 50미터와 수평으로 가로누운 50미터를 비교하면 어느 쪽이 길어보이는가? 수직은 우뚝하고, 가로누운 수평은 심심하고, 세로방향 정면은 더 짧게 느껴진다. 수직의 변화는 약간의 차이도 민감하게 느껴진다.


    내가 느낀 것은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갈라지는 경계가 되는 지점을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서울이 멀어서 보이지 않는 것은 얼마든지 납득하는데 보이지 않고 가려지는 지점이 왜 보이지 않느냐다. 가물가물한게 보여야 한다.


    어린이가 보는 바닷가 수면 1미터 높이에서는 3.6킬로까지 보이고 성인의 눈높이 1.6미터에서는 4.5킬로가 보인다. 높이 10미터인 3층 건물 옥상에 올라가면 11킬로가 보인다. 고작 10미터를 이동했을 뿐인데 시야거리가 무려 세 배나 길어진다. 어찌 전율하지 않겠는가? 몽골인의 7.0 시력으로 보면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은 그냥 보인다.


    인간은 눈에 뻔히 보여도 그게 뭔지 설명하기 어려운 것은 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구조론이 그렇다. 한 분야의 고수들은 나름대로 터득한 구조론의 기술을 쓰고 있다. 그것을 직관적으로는 아는데 설명을 못한다. 더 나아가지 않는다. 한 걸음 더 나아가려면 근본을 건드려야 한다. 거기가 판도라의 상자다. 뉴턴은 그 상자를 기어코 열어서 많은 수포자를 절망에 빠뜨렸다.


    진리는 가까운 곳에 있다. 평범한 사람도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 반대로 대단한 과학자도 뻔한 거짓말에 속는다. 진리는 개별적으로 판단되지 않는다. 전부 연결되어 있다. 지구는 돈다는 갈릴레이 말 한마디로 끝나는 게임이 아니다. 다른 별도 조사해봐야 한다. 반대로 사람들은 다른 많은 사실과 연결시키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진리를 포기한다. 판도라의 상자를 닫는다.


    부족민은 모든 것을 쓸모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으로 나눈다. 인류학자가 질문하면 '그건 못 먹는 거야.'하고 핀잔을 준다. 먹을 수 있는 것은 일일이 이름을 부여하지만 못 먹는 것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 현대인은 다를까? 천만에. 인간들은 여전히 개념이 없다. 지적 용기가 필요하다. 벌거숭이 임금님을 보고 벌거숭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벽을 넘어 다른 세계로 가야 한다.


    사흘 정도 투자하면 지구가 둥근 증거 30가지를 찾을 수 있다. 겹치는 것이 있겠지만 대부분 내가 생각해낸 것이다. 중요한 것은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애초에 생각할 마음이 없으니까. 그런 거창한 문제를 건드리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나는 우연히 구조론을 발견한 것이 아니다. 위화감을 느끼고 이를 해소할 요량으로 내가 맞고 인류가 틀렸다는 증거를 찾겠다고 찾은 것이다. 

   

    1. 우리가 보는 바다는 볼록거울이다. 볼록거울이 빛을 사방으로 분산시키므로 눈이 부시지 않는다. 지구가 평평하면 태양이 낮은 고도에 머무를 때 많은 빛이 수면에 반사되어 눈을 뜰 수 없게 된다. 거울은 각도에 따라 눈부신 정도의 차이가 매우 크다.


    2. 지구가 납작하면 수평선에서 일출과 일몰 때 햇볕이 대기를 통과하는 두께가 2천 배 두꺼워진다.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하늘이 까맣게 보이는 이유는 대기가 희박해서 미세입자가 자외선에 가까운 푸른 빛을 산란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대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류권은 지상 10킬로 이하다. 지구 둘레 4만킬로의 절반을 반영하면 2천 배 이상 더 많은 대기를 통과하므로 수평선에서는 햇볕이 2천 배 흐려진다. 대류권 아래쪽에 대기가 몰려 있음을 감안하고 바다의 수증기와 대기오염을 고려하면 2만 배다. 성인 눈높이 4.5킬로 거리에 수평선이 있으므로 일몰 때 우리는 10킬로 이하의 대기를 통과하여 오는 햇볕을 보는 것이다.


    3. 수평선을 넘어가는 일출과 일몰의 태양은 수증기에 의한 돋보기 효과로 실제보다 커 보인다. 정오의 태양과 일몰의 태양은 지름이 4배 이상 차이가 난다. 월출과 월몰도 마찬가지다. 136킬로 떨어진 울릉도 성인봉은 4킬로 높이로 보인다. 이는 140미터 앞의 4미터 크기 건물과 같다. 지금도 성인봉 주변에서는 일출 때 돋보기 효과로 독도가 뚜렷하게 보인다. 우리가 보는 수평선의 일출과 일몰은 햇볕이 대기를 10킬로 이하로 통과한 것이고 지구 둘레 절반을 반영하면 2천 배다. 대륙이 방해하지만 지구가 납작할 때 태평양을 건너온 햇볕이라면 최대 8천 배의 돋보기 효과가 나타난다.


    4. 수평선 끝단으로 갈수록 오히려 바다 색이 선명하다. 파장이 짧은 푸른 빛이 물속을 통과하면서 더 많이 산란하기 때문이다. 수평선 끝단의 물빛이 선명한 파란색인 것은 심해를 거치지 않고 수면을 스치듯이 투과한 빛을 우리가 보는 것이다. 지구가 평평하면 물속으로 들어갔다가 반사되어 나온 수평선 끝단의 푸른 빛을 볼 확률은 매우 낮다.


    5. 그냥 맨눈으로 바다를 봐도 시야의 3/4 지점에서 볼록하게 배가 나온게 보인다. 평면과 구면은 수면에 반사되는 빛의 칼라가 다르다. 태양의 고도에 따라 물빛이 시시각각 변하는 것이 식별된다. 지구가 납작하면 거울의 방향을 돌리듯이 갑자기 확 변한다. 이때 갑자기 눈이 부셔서 큰 충격을 받는다. 개기일식 때 갑자기 캄캄해지고 갑자기 환해져서 큰 충격을 받는 것과 같다.


    6. 바다에 나가보면 거리에 따라 파도의 크기가 불균일하게 작아지는 것이 식별된다. 지구가 납작하면 균일하게 작아져야 한다. 시야의 3/4 지점에서 파도의 크기가 부자연스럽다. 고르지 않은게 위화감이 느껴진다.


    7. 옛날 사람들은 지구가 작다고 생각했다. 지구가 납작하면 맑은 날은 육안으로 300킬로까지 식별하고 불빛은 밤에 800킬로까지 보이므로 지구가 크게 여겨진다. 지구가 평평하면 원시인들도 지구가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중국이나 몽골처럼 땅이 넓은 나라는 직접 걸어가서 확인해보고 지구의 크기를 대략적으로 알 수 있다. 지구의 곡률 때문에 지구가 작아 보이는 것이다.


    8. 지구가 평평하면 개기일식처럼 일몰과 동시에 사방이 깜깜해진다. 일몰의 박명과 일출의 여명이 전혀 없이 갑자기 밝아지고 갑자기 어두워진다. 개기일식 때는 갑자기 어두워지고 밝아지는 차이가 커서 원숭이는 해를 쳐다보다가 실명하는 일이 있다. 개기일식과 일몰의 속도는 같다.


    9. 지구가 납작한데 단지 거리가 멀어서 보이지 않는다면 그 보이지 않는 지점이 보여야 한다. 소실점과 같은 소실선이 울퉁불퉁하게 보여야 하는데 수평선과 지평선은 칼로 자른 듯 매끈하다.


    10. 지구 어디든지 반드시 구름이 있으므로 수평선과 지평선은 있을 수 없다. 특히 바다는 수증기로 인해 구름이 많다. 위성사진으로 보면 지구의 반이 구름에 덮여 있다. 지구가 납작하면 지구둘레 절반인 2만킬로 안쪽 어딘가에는 반드시 있는 구름 때문에 수평선과 지평선을 볼 수 없다. 그사이에 틈이 있어도 틈의 크기는 1/2만이다.


    11. 구름 높이 2키로 이상이고 안데스산맥, 로키산맥, 히말라야산맥의 높이가 5킬로 이상인 점을 고려하면 구름과 수평선 사이에 미세한 틈이 있어도 대륙과 산맥에 막혀서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수평선과 지평선이 절대 보이지 않는다.


    12. 사방 어디에나 있는 구름과 산맥과 대륙에 막혀서 수평선과 지평선을 볼 수 없으므로 수평선과 지평선의 일출과 일몰도 볼 수 없다. 월출과 월몰도 볼 수 없다. 수평선과 지평선을 넘어가는 별자리도 볼 수 없다.


    13. 지구가 납작하면 납작함이 보여야 한다. 납작한 평면과 볼록한 구면은 보이는 형태의 차이가 크다. 특히 햇볕이 수면에 비치는 각도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수평선을 처음 볼 때 이토록 납작한 것은 처음 봐서 큰 충격을 받아야 한다. 납작한 것은 거울로 실험해보면 알 수 있다. 둥근 것은 미술 시간에 공 그리기를 해보면 알 수 있다.


    14. 지구가 납작하면 하늘도 납작하게 보인다. 우리가 보는 푸른 하늘은 해발고도 10킬로 이하 대류권의 대기다. 에베레스트 정상에서는 하늘이 검게 보인다. 땅은 평평하고 하늘은 둥글다는 말은 이상하다. 땅이 평평하면 하늘도 대기 때문에 평평하게 보여야 한다. 하늘의 둥근 형태는 지구가 둥글어서 대류권이 둥글기 때문이다.


    15. 지구가 납작하면 구름도 납작하다. 구름 높이는 2킬로~7킬로다. 저 멀리 어딘가는 맑을 텐데 비가 오더라도 지평선 끝단은 환하게 밝은 것이 보여야 한다. 구름 사이로 서광이 비치듯이 멀리 수평선 근처 어딘가는 반드시 밝게 빛나고 있어야 한다. 인간은 밤에 불빛을 최대 800킬로까지 식별할 수 있으므로 서울은 흐려도 일본과 중국은 맑은 것이 보인다.


    16. 지구가 납작하면 일출과 일몰은 전국 어디든지 같은 시각에 일어난다. 위도에 따른 차이는 없는데 경도에 따른 차이가 있다는게 이상하다.


    17. 해안에서 본 수평선은 거리가 가깝게 느껴진다. 바닷가 수면 1미터 높이에서는 3.6킬로까지 보인다. 이는 너무 짧은 거리라서 처음 본 사람은 깜짝 놀라게 된다. 놀라지 않았다고? 수평선까지 거리가 너무 짧아서 허망한 느낌이 없었다고?


    18. 고도 차이에 따른 수평선까지 거리의 차이가 크다. 성인의 눈높이 1.6미터에서는 4.5킬로가 보인다. 높이 10미터인 3층 건물 옥상에 올라가면 11킬로까지 보인다. 고작 10미터를 이동했을 뿐인데 시야의 거리가 무려 세 배나 길어진다. 깜짝 놀란다.


    19. 바람이 부는 날은 수평선 끝단에서 울퉁불퉁한 파도를 볼 수 있다. 매끈한 선이 아니다. 지구가 평평하면 그게 보일 리가 없다.


    20. 정면보다 가로누운 평면이 더 길게 보이므로 정면의 파도와 비스듬히 사선으로 보는 파도의 크기가 작아지는 정도가 다르게 보여야 한다. 시야 양 측면이 더 멀리까지 보이는게 식별되어야 한다.


    21. 수평선보다 멀리 있는 섬의 하단은 모두 직선이다. 수평선이 아랫도리를 잘라먹은 것이 확연히 느껴진다.


    22. 수평선 앞의 섬과 수평선 뒤의 섬을 비교하면 이격된 거리가 확연히 느껴진다.


    23. 수평선 너머 멀리 있는 섬의 하단에 뿌옇게 흰 선이 그어져 섬이 공중에 살짝 뜬 것처럼 보인다. 거리가 이격된 것을 느낄 수 있다. 강하게 위화감이 느껴진다. 바다가 볼록한 부분의 물속을 통과하여 오는 빛 때문에 만들어지는 흰 선일 수 있다.


    24. 다도해의 고만고만한 섬 중에 수평선 뒤의 섬은 높이가 낮은게 느껴진다. 섬 모양은 카오스이론대로 위상동형이고 암석의 성질에 따라 형태가 비슷한데 거리에 따라 다르므로 위화감이 느껴진다.


    25. 오션뷰가 되는 산을 오르고 내리면서 고도차에 따라 수평선이 다르게 보이는 정도가 매우 심하다. 고도 차이로 지구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는데 지구가 너무 작다는 느낌이 들어서 깜짝 놀란다.


    26. 수평선은 시야 정면보다 1도 아래에 있다. 이 정도는 충분히 식별된다.


    27. 땅거미가 서서히 올라가는 것을 보면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수학자라면 곡률을 계산할 수 있다. 일몰 후에도 한동안 하늘이 낮처럼 파랗게 보일 때가 있다.


    28. 적도는 일몰 후 금방 캄캄해진다. 고위도로 갈수록 박명이 오래 가고 북극지방은 박명에 의해 백야가 된다. 계절에 따라 박명이 지속되는 시간이 차이가 난다. 동지와 하지는 박명이 길고 춘분과 추분은 박명이 짧다.


    29. 지구가 납작하면 달도 납작하다고 생각하는게 상식과 부합한다. 낮달을 관찰하면 통통한게 보인다. 달이 납작하면 빛의 각도에 따른 밝기 변화가 심하다. 보름달 이외의 달은 희미해서 안 보인다. 거울은 한 방향으로만 빛을 반사하기 때문이다. 사실 지구도 납작하고 달도 납작하면 일 년 내내 보름달만 뜨거나 일 년 내내 그믐달이 된다. 태양이 달보다 안쪽에 있으면 일 년 내내 보름달이고 태양이 달보다 멀리 있으면 달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달이 태양처럼 스스로 빛을 내면 일 년 내내 보름달이 된다.


    30. 비행기에서 보면 지구가 둥근 것이 보인다. 에베레스트에서도 마찬가지다. 북한산에 올라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이 외에도 많은 위화감이 있다. 지구가 둥근 것은 나중 문제고 위화감을 해결하는게 중요하다. 그게 신경 쓰이지 않느냐는 말이다. 지구가 납작하면 가장자리에 사는 사람은 여러 가지로 곤란해지는데 그걸 확인하러 가봐야 하지 않겠는가?


    지구가 둥글면 지구 반대편에 사는 사람이 신경 쓰이겠지만 별과 달이 천구에 붙어서 추락하지 않는다면 지구 반대편 사람도 어떤 힘에 붙어서 추락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동양의 선비들도 어렴풋이 중력과 같은 기운의 존재를 알았다.


    인간의 눈은 1킬로미터 거리에서 50센티 크기를 식별한다. 울릉도의 높이가 70미터 이상이면 동해안에서 보여야 한다. 맑은 날에는 300킬로 바깥의 물체를 볼 수 있고 야간에는 800킬로 거리의 도시 불빛을 볼 수 있다. 몽골 아저씨의 엄청난 시력을 논외로 해도 그렇다. 밤에 높은 곳에 오르면 북경과 후쿠오카의 불빛이 보여야 한다.


    지구가 둥글다는 증거를 대라고 하기 전에 납작하다는 증거를 먼저 대야 한다. 납작하면 일어나는 많은 현상이 있다. 그런데 단 하나의 증거도 없다. 지구가 납작하므로 동쪽 끝에 사는 사람과 서쪽 끝에 사람이 특히 타격을 받는데 동쪽 끝에 사는 사람은 일출 때 타서 까맣게 되고 서쪽 끝에 사는 사람은 일몰 때 타서 까맣게 된다든가 하는게 있어야 한다.


    위화감이 가장 크게 느껴지는 부분은 높은 산에서 볼 때 지구가 생각보다 너무 작게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몽골 아저씨가 말 타고 직접 가본 것만 논하더라도 지구가 꽤 크다. 뭔가 계산이 안 맞잖아.


    인간이 그렇다. 감당 못하는 판도라의 상자는 닫아놓고, 스승의 어깨는 밟지 않고, 먼바다의 범선은 특이한 구름이겠거니 하고 무시하고, 마을에 불화를 가져오는 쇠도끼는 숲에 던져버리고, 벌거숭이 임금님은 못 본 것으로 한다. 용감하게 진실을 말하는 사람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용감하게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강을 건너야 한다. 이미 건너간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바이러스가 뚫리듯 뚫려버렸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1]chow

2023.01.08 (18:44:31)

내년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가 나온다는데, 

과학자 오펜하이머에 대한 일화도 재밌는 게 있네요.

대학원 시절에 지도교수를 독살하려고 했었다고 ㅎㅎ

왜 그런지 이해는 갑니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15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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