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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065 vote 0 2021.12.27 (20:42:05)

    미국에서 무종교를 표방하는 사람이 29퍼센트라고. 종교의 위세가 예전 같지 않은가 보다. 좋은 소식인가? 반드시 그러한 것은 아니다. 인간은 원래 종교적 동물이다. 종교적 본능이 인간다움의 상당 부분을 책임진다. 종교를 버리려다가 인간다움까지 버린다면 실패다.


    허무주의나 실용주의도 종교만큼 위험하다. 라즈니쉬나 히피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존 레논의 노래 이매진은 종교가 없는 삶은 상상하고 있다. 좋지 않다. 존 레논이 말하는 ‘함께 하는 삶’은 좋은 것인가? 어렸을 때 제일 싫었던 것이 부역하러 나오라는 방송이었다. 


    함께 마을청소를 하자는 거다. 아침마다 동네사람들이 모여서 마을청소를 하는게 과연 좋은 삶인가? 좋지 않다. 세계는 하나가 된다는건 좋은 것인가? 그게 전체주의다. 북한은 완벽하게 하나가 되어 있다. 오늘을 위해 산다는건 좋은 것인가? 그것은 노숙자의 삶이다. 


    국가와 종교가 악을 저지르지만 더 큰 악을 막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제도다. 나는 존 레논의 히피사상에 동의할 수 없다. 사람들은 대인관계가 안 되는 나를 귀찮게 했다. 제발 함께하지 말고 각자 알아서 하자고. 안면인식장애라서 누군지 얼굴도 못 알아보는데 말이다.


    인간이 종교의 그늘을 완전히 벗어나기는 불가능이다. 다른 종교로 갈아탈 뿐이다. 어수룩하게 십일조를 갖다 바치는 것은 멍청이 짓이다. 21세기에 말이다. 종교가 왜 존재하는가 그 본질을 탐구하면 종교적인 길들여지기를 극복하고 원초적인 야생성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종교의 본질은 연결되어 있음이다. 라디오는 방송국과 연결되어 있다. 인간은 언제라도 집단의 의사결정 중심과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신과 자연과 진리와 문명과 역사와 진보와 연결되어야 한다. 엄마라면 아기를 대신해서 죽을 수도 있다.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어가 그 방면으로 특히 유명하다. 수컷은 교미를 마치고 바로 죽는다. 암컷은 알을 돌보다가 알이 깨어나면 죽는다. 그때까지 식음을 전폐한다. 제 살이 썩어가는데도 알을 돌보는게 문어다. 문어에게는 적어도 임무가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삶보다 임무가 중요하다. 


    다음 세대로 삶을 연결시키고 내 세대의 미션을 완수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류 70억이 살아있는게 내가 살아있는 것과 같다는걸 알아야 한다. 종교는 거부하되 종교적 본능은 인정해야 한다. 그것이 인간다움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미션을 갖고 살아가는 존재다. 


    인간은 링크다. 연결이 존재다. 사회와 연결되고 환경과 연결되고 미래와 연결되고 집단과 연결된다. 연결이 있으면 존재가 있고, 연결이 없으면 존재가 없다. 나만 살겠다고 집단과의 연결을 끊으면 인간으로서는 죽어 있다. 인간은 이득의 존재가 아니라 의미의 존재다.


    의미는 사건의 연결이다. 연결을 이루면 삶의 성공이고 연결이 끊기면 삶의 실패다. 집단과의 연결을 유지하려고 교회에 가는 것이다. 연결이라는 존재의 본질을 알면 교회에 가지 않아도 내 안에 교회가 들어서 있다.


[레벨:11]큰바위

2021.12.27 (23:04:27)

요즘에는 온라인이 종교입니다. 
Zoom이 예배이자 소통이자 연결고리입니다. 

[레벨:6]서단아

2021.12.28 (16:58:40)

저도 글을 읽다보니 인터넷이 종교를 대체한게 아닌가 생각들어 댓글 쓰려 했는데, 그런 이유로 기존 종교의 세상 장악력이 축소된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레벨:4]JD

2021.12.28 (12:37:13)

'의미는 사건의 연결이다. 연결을 이루면 삶의 성공이고 연결이 끊기면 삶의 실패다. 집단과의 연결을 유지하려고 교회에 가는 것이다. 연결이라는 존재의 본질을 알면 교회에 가지 않아도 내 안에 교회가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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