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982 vote 0 2021.12.27 (20:42:05)

    미국에서 무종교를 표방하는 사람이 29퍼센트라고. 종교의 위세가 예전 같지 않은가 보다. 좋은 소식인가? 반드시 그러한 것은 아니다. 인간은 원래 종교적 동물이다. 종교적 본능이 인간다움의 상당 부분을 책임진다. 종교를 버리려다가 인간다움까지 버린다면 실패다.


    허무주의나 실용주의도 종교만큼 위험하다. 라즈니쉬나 히피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존 레논의 노래 이매진은 종교가 없는 삶은 상상하고 있다. 좋지 않다. 존 레논이 말하는 ‘함께 하는 삶’은 좋은 것인가? 어렸을 때 제일 싫었던 것이 부역하러 나오라는 방송이었다. 


    함께 마을청소를 하자는 거다. 아침마다 동네사람들이 모여서 마을청소를 하는게 과연 좋은 삶인가? 좋지 않다. 세계는 하나가 된다는건 좋은 것인가? 그게 전체주의다. 북한은 완벽하게 하나가 되어 있다. 오늘을 위해 산다는건 좋은 것인가? 그것은 노숙자의 삶이다. 


    국가와 종교가 악을 저지르지만 더 큰 악을 막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제도다. 나는 존 레논의 히피사상에 동의할 수 없다. 사람들은 대인관계가 안 되는 나를 귀찮게 했다. 제발 함께하지 말고 각자 알아서 하자고. 안면인식장애라서 누군지 얼굴도 못 알아보는데 말이다.


    인간이 종교의 그늘을 완전히 벗어나기는 불가능이다. 다른 종교로 갈아탈 뿐이다. 어수룩하게 십일조를 갖다 바치는 것은 멍청이 짓이다. 21세기에 말이다. 종교가 왜 존재하는가 그 본질을 탐구하면 종교적인 길들여지기를 극복하고 원초적인 야생성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종교의 본질은 연결되어 있음이다. 라디오는 방송국과 연결되어 있다. 인간은 언제라도 집단의 의사결정 중심과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신과 자연과 진리와 문명과 역사와 진보와 연결되어야 한다. 엄마라면 아기를 대신해서 죽을 수도 있다.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어가 그 방면으로 특히 유명하다. 수컷은 교미를 마치고 바로 죽는다. 암컷은 알을 돌보다가 알이 깨어나면 죽는다. 그때까지 식음을 전폐한다. 제 살이 썩어가는데도 알을 돌보는게 문어다. 문어에게는 적어도 임무가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삶보다 임무가 중요하다. 


    다음 세대로 삶을 연결시키고 내 세대의 미션을 완수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류 70억이 살아있는게 내가 살아있는 것과 같다는걸 알아야 한다. 종교는 거부하되 종교적 본능은 인정해야 한다. 그것이 인간다움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미션을 갖고 살아가는 존재다. 


    인간은 링크다. 연결이 존재다. 사회와 연결되고 환경과 연결되고 미래와 연결되고 집단과 연결된다. 연결이 있으면 존재가 있고, 연결이 없으면 존재가 없다. 나만 살겠다고 집단과의 연결을 끊으면 인간으로서는 죽어 있다. 인간은 이득의 존재가 아니라 의미의 존재다.


    의미는 사건의 연결이다. 연결을 이루면 삶의 성공이고 연결이 끊기면 삶의 실패다. 집단과의 연결을 유지하려고 교회에 가는 것이다. 연결이라는 존재의 본질을 알면 교회에 가지 않아도 내 안에 교회가 들어서 있다.


[레벨:11]큰바위

2021.12.27 (23:04:27)

요즘에는 온라인이 종교입니다. 
Zoom이 예배이자 소통이자 연결고리입니다. 

[레벨:6]서단아

2021.12.28 (16:58:40)

저도 글을 읽다보니 인터넷이 종교를 대체한게 아닌가 생각들어 댓글 쓰려 했는데, 그런 이유로 기존 종교의 세상 장악력이 축소된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레벨:4]JD

2021.12.28 (12:37:13)

'의미는 사건의 연결이다. 연결을 이루면 삶의 성공이고 연결이 끊기면 삶의 실패다. 집단과의 연결을 유지하려고 교회에 가는 것이다. 연결이라는 존재의 본질을 알면 교회에 가지 않아도 내 안에 교회가 들어서 있다.'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sort
6630 노무현은 무서운 사람이다 image 김동렬 2004-02-18 18164
6629 광화문 1만 인파의 외침이 조중동의 귀에도 들렸을까? 김동렬 2002-12-01 18157
6628 예술의 본질 김동렬 2008-08-14 18153
6627 노무현 학생층 공략작전 대성공조짐 김동렬 2002-09-12 18151
6626 이 사진을 보면 결과를 알 수 있음 image 김동렬 2002-12-19 18086
6625 서프라이즈 출판기념회 사진 image 김동렬 2003-01-20 18058
6624 박근혜의 마지막 댄스 image 김동렬 2004-03-31 18035
6623 구조의 만남 image 김동렬 2010-07-12 18033
6622 이회창이 TV토론에서 헤메는 이유 skynomad 2002-11-08 18027
6621 걸프전 문답 김동렬 2003-03-19 18003
6620 학문의 역사 -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김동렬 2006-02-03 17995
6619 Re..태풍이 가고 난 후 image 김동렬 2002-09-14 17983
6618 후보단일화와 지식인의 밥그릇지키기 image 김동렬 2002-11-19 17964
6617 지식인의 견제와 노무현의 도전 2005-09-06 17962
6616 구조의 포지션 찾기 image 3 김동렬 2011-06-08 17961
6615 DJ 민주당을 버리다 image 김동렬 2004-01-21 17959
6614 진선미에 대해서 2 김동렬 2010-08-05 17954
6613 Re.. 확실한 패전처리입니다. 김동렬 2002-12-09 17948
6612 후보 선택권을 유권자가 가지는 방식으로 조사해야 한다 SkyNomad 2002-11-18 17946
6611 노무현 죽어야 산다 image 김동렬 2003-08-28 179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