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read 13501 vote 0 2004.04.05 (13:38:43)

진인사대천명이라 했으니 이제는 국민의 판단력을 믿고 기다리는 수 밖에 없습니다. 누군가는 지갑 줏었다고 하는데.. 솔직히 우리의 본실력으로는 과반수만 해도 감지덕지입니다. 다만 탄핵을 응징하기 위해 이 정도에서 그칠 순 없다는 거죠.

초반 판세분석이 두가지로 나왔는데.. 하나는 기성언론사의.. 젊은 층의 투표참여 저조에 막판 지역감정 몰아치기로 결국은 50 대 50으로 간다는 설이고, 하나는 우리 예상인데 노무현의 탄핵 반사신공이 먹혀들어 2 대 1로 간다는 설입니다.

표면을 보는 것은 조중동 하수들의 몫이고, 우리는 좀 더 깊은 이면을 봐야 합니다. 한나라당의 초장 끗발이 개끗발로 입증명되는 데는 아마 며칠 더 걸릴 것입니다. 옛날과 같은 돈선거 못하게 된 효과가 이미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개혁 개혁 말로만 떠들었지 개혁된게 뭐 있냐?’ 하고 개혁을 실감하지 못하던 국민들이.. ‘선거판 돌아가는 분위기가 과거와는 뭔가 다르구나. 개혁이라는 것이 과연 하면 되는구나.’ 하고 느끼려면 며칠 더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 체험, 그 감동 다 표로 연결됩니다.

이 상황에서 저 같은 글쟁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구요. 일단은 국민을 믿어보기로 하고 차분히 과거를 돌이켜 봅시다.


통치의 시대에서 정치의 시대로
저는 원래 타고난 반골입니다. 세상 모든 것에 총체적으로 안티입니다. 소년시절 사무친 분노가 깊습니다. 산다는 것에 회의를 품은지 오래입니다. 허무였습니다. 이 세상과는 친구 안하겠다고 작심한지도 오래되었습니다.

‘신통한 일은 어디에도 없다’. 제 삶의 주제어입니다. 봄이 와도 봄이 오는지 모르고, 꽃이 피어도 꽃이 피는지 모르고 살았습니다.  

어쩌다가 팔자에 없는 여당이 되어서 죽갔구만요. 이건 내 스타일이 아닌데.. 누군가를 옹호하고 편드는 것은 내 체질이 아닌데.. 난 곧 죽어도 야당인데.. 꼬였습니다. 누구처럼 냉소주의로 포지션을 바꿔 이넘도 씹고 저넘도 씹으면 스트레스 안받고 열 살은 더 살겠는데.

정치 알고보면 쉬운 것입니다.
정치? 별로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서프만 열심히 읽어도 중간은 갈 수 있습니다. 근데 인간들이 쉬운 정치를 넘 어렵게 하고 있는 거에요. 정치를 몰라서 말입니다. 좀 알려줘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들 한테요.  

3김시대엔 사실 정치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권위주의라면 정치할 필요없어요. 정치가 아니라 ‘통치’겠지요. 그냥 통치권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국민을 설득할 필요도 없고, 농협공판장을 빌릴 필요도 없어요. 위정자가 언제 유권자 눈치보고 정치했습니까?

노무현 당선 이후 지난 1년.. 비로소 정치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제는 일일이 설득해야 하고, 일일이 허락맡고 합의보고 도장찍어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아무데나 핵발전소를 지을 수도 없고 뒷산에다 터널을 뚫을 수도 없는 세상입니다.

이제는 그야말로 진짜 ‘정치’를 해야만 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통치가 아닌 정치 말입니다.

노무현은 그 정치를 하기로 결심한 겁니다. 일일이 허락맡고, 도장찍고, 설득하고, 합의보기로 한 거에요. 그러다 보니 원초적으로 설득이 안되는 사람과는 갈라설 수 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명령이 통하던 시대라면 구태여 갈라설 필요가 없습니다. 3김시대라면 여당은 공무원 비슷합니다. 여당은 협의대상이 아닙니다. 그냥 알아서 기는 거지요. ‘정균환, 박상천이 말안들어?’ 군화발로 쪼인트를 한대씩 까주면 됩니다.  

그런데 노무현은 그 정치라는 것을 하기로 했으니. 명령하지 않고 대화하기로 했으니, 일일이 설득하고 도장찍고 합의보고 허락맡기로 했으니.. 원초적으로 대화가 안되는 사람과는 갈라설 밖에요.

아 쓰바 대통령이 먼저 통치를 버리고 정치를 하겠다고 한 계단 아래로 내려섰다면 국민도 거기에 호응하여 뭔가 반응이 있어야 될 거 아닙니까? 그 반대급부가 탄핵입니까? 군화발로 조졌으면 입도 벙긋 못할 넘들이?(쓰다가 내가 열받는 중)

정치 알고보면 어려운 것입니다
정치라는거 사실이지 쉬운게 아니에요. 이렇게 말하면 또 반문하는 독자 있겠죠. 방금 전에는 정치가 쉽다고 해놓고 이젠 정치가 어렵다니 무슨 소리냐구요? 정치 그 자체는 쉽습니다. 근데 그걸 제대로 실천하기가 어려워요.

정치를 머리로 알기는 쉽습니다. 서프만 읽어도 중간은 갑니다. 그러나 현장에서 실천하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문제는 노무현과 정동영이 정치의 난이도를 엄청나게 올려놓은데 있습니다.

옛날에는 정치라는 것이.. 요정에서 쑥덕쑥덕, 밀실에서 사바사바.. 현찰 쌓아놓고 거래하면 되는거였지요. 지금은? 진정성이 있어야 합니다. 발로 뛰어야 합니다. 이제는 정말 머리도 좋아야 하고 체력도 좋아야 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정말 정치하기 어려운 시대가 된 것입니다. 아마추어의 시대는 물러나고 프로의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하여간 노무현 이후 누가 정치를 해도 과거처럼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정치 참말로 못해먹겠수
왜 정치가 어려운가? 민노당부터 볼까요? 1표도 보태주지 않았지만 감히 50프로의 지분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여당처럼 행세해요. ‘표 찍어줬더니 대접이 시원찮네’.. 이런 식으로 나온다 말입니다. 표 언제 찍어줬다구?

참아야 합니다. 말도 안되는 지분주장 다 들어주어야 합니다. 왜? 그게 정치거든요. 그거 힘들어서 못하겠다면 정치 포기해야 합니다. 발언권이라는게 있습니다. 한 표도 안줬지만 내가 작심하고 나서면 100만표를 빼갈 수 있다는 으름장.. 그런게 있어요.

하여간 민노당이 우리당을 도와줄 순 없지만 괴롭힐 수는 있는데.. 그러한 힘들의 존재를 인정하는 데서 비로소 정치가 시작됩니다. 시민단체나 학생운동, 공무원노조도 마찬가지에요. 그 존재를 인정해야 정치가 시작됩니다.

뿐이랴! 한나라당도 볼까요. 자기들이 의회를 장악했으므로 대통령이 복종해야 한다고 우기고 있어요. 아직도 지들이 여당일줄 알고있다 말입니다. 민주당도 마찬가지죠. 정치개혁 공약해서 당선되었는데 그 공약 없던걸로 하라고 윽박질러요.

정치.. 한편으로는 투쟁이면서 동시에 포용입니다. 갈라서야 하고, 싸워야 하고 그러면서 감싸안아야 합니다. 싸우는 일만 하겠다는 민노당, 감싸안는 역할만 하겠다는 민주당. 이렇게 저 편한대로만 하려는 거에요. 인간들이.

싸울 때는 싸우고, 포용할 때는 포용하기. 참으로 쉬운 일은 아닙니다. 노무현대통령 보세요. 지금 입 꾹 닫고 있습니다. 때를 아는 거에요. 나설 때와 물러설 때를 알고 움직인다 말입니다. 다 계산하고 있는 겁니다.

민노당 노회찬 잘하죠. 틈새에서는 잘합니다.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이 이회창과 토론할 때 어땠나요? 노무현은 이회창을 이기지 않았습니다. 토론의 달인 노무현이 이회창을 못이긴 거에요. 그렇게 말 잘한다는 노무현이 왜?

민노당의 유머는 초반의 전략입니다. 막판에는 무조건 포용해야 합니다. 문제를 제기하는 단계의 방식과 사태를 마무리짓는 단계의 방식은 다릅니다. 이길 수 있으면서도 져주기. 그 효과는 엄청납니다. 막판에만 쓰는 전략입니다.

지금의 민노당은 그 존재를 알리는 것이 중요하므로 무슨 짓을 해도 됩니다. 이목을 끌기만 해도 됩니다. 유머도 좋고 풍자도 좋고 해학도 좋아요. 그러나 김근태가 노회찬처럼 할 수는 없죠. 그래서는 안되는 거죠.

노무현의 침묵. 진짜 무서운 것입니다.

정치가 그렇게 어렵다는 말입니다. 할 말이 있어도 하지 말아야 하니까요. 적들이 지역감정을 부채질 하고 있다는거 뻔히 알지만 우리는 입을 닫고 있어야 하지요. 우리가 참아야 하지요. 우리는 끝내 포용해야 하니까요.

대선 때.. 노무현이 참고 있듯이 우리도 조금만 더 참아봅시다. 소나기는 피해가는 것이 옳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승부는 본질에서 납니다. 이미지를 가공한 표면의 효과는 시차를 두고 역효과를 낳습니다. 열흘이면 두 번 출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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