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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2607 vote 0 2017.02.03 (13:17:42)

    

    덧씌우면 답이 있다.


    우리는 ‘입자’로부터 사유를 시작한다. 초딩이 일기를 써도 ‘나는 오늘’이라고 써놓고 무얼 쓸지를 생각한다. 정치인들은 ‘나는 누구보다 낫다.’며 출사표를 던진다. 어색하지 않은가? 친한 사람끼리는 그래도 되지만, 상대방이 정색하고 ‘너 뭐야?’ 그러면 뻘쭘한 거다.


    처음 말을 꺼낼 때 신중해야 한다. 구조론은 ‘질’에서 시작한다. 사자를 언급하기 전에 초원이 나와줘야 한다. ‘초원의 사자’다. 정글에는 사자가 없다. 물고기를 언급하기 전에 바다가 자리를 깔아줘야 한다. 바다의 물고기다. 나를 말하기 전에 우리를 먼저 세워야 한다.


    반기문은 자신의 에비앙을 논하기 전에, 우리의 한국을 먼저 언급했어야 했다. 한국을 언급하기 전에 인류를 먼저 언급했어야 했다. ‘내’가 주제가 되면 안 된다. 주제파악을 못한 것이다. 사자 앞에 초원을 감투 씌우고, 물고기 앞에 바다를 감투 씌워야 다가갈 수 있다.


    길이 있어야 집으로 갈 수 있다. 길을 깔아준 다음에 집을 짓는다. 입자 앞에 질을 세워야 한다. 그런데 잘 안 된다. 입자는 눈에 보이지만 질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눈이 움직이는 표적을 쫓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훈련하여 말하기에 앞서 한번 꼬아줘야 한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말하지 말고 조금 뜸을 들여야 한다. 필자의 글도 뒷문장을 앞으로 끌어오는 경우가 많다. 순서를 바꾸는 것이다. 생각나는 순서를 그대로 따라가면 안 된다. 생각은 인식론을 따르므로 존재론으로 바꾸어야 한다. 에너지의 결을 따라야 한다.


    간단하다. 어떤 것이든 모자를 덧씌우면 된다. 연인에게 편지를 써도 그냥 ‘아무개씨’라고 하지 않고 ‘사랑하는 아무개씨’ 하며 모자를 씌우는 것이다. 입자는 질에 의해 보호되어야 한다. 맨살을 그냥 노출하면 안 된다. 옷과 모자로 가려야만 타인에게 다가갈 수 있다.


    본능적으로 안다. 발가벗고 있으면 창피하잖아. 맨얼굴로 밖에 나가면 창피해서 화장하고 그러는거 아녀? 그런데 왜 생각은 옷을 입히지 않고 맨살을 드러내는 거지? 쪽팔리지 않느냐고? 부끄러움을 알거든 ‘나는’ 하는 박그네 초딩어를 버려야 한다. 앞에 뭐라도 가리자.


   20170108_234810.jpg


    구조론은 옷을 입고 외출함으로 해서 우리가 타인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듯이 생각에도 모자를 씌우고 언어에도 옷을 입히는 것입니다. 타인에게 다가갈 때는 반드시 의관을 갖추어야 합니다. 생각에도 옷을 입혀야 합니다. 생각이 발가벗고 알몸으로 있으면 남보기에 창피하잖아요. 수준을 들키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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