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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086 vote 0 2023.02.06 (17:42:24)

    옛날에는 학폭이 없었다. 있었는데 나만 피해 간 건지는 모르겠다. 상고 권투부 애들이 거칠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노는 애들이 치고받고 하는 일은 있었겠지만 구석에 조용히 앉아 있는 내가 목격할 만한 일은 없었다. 집집마다 형제가 많던 시절이라 건드릴 수도 없었다.


    나같이 변변치 못한 학생도 맞고 다니지는 않았다. 대신 선생님한테 맞았는데 불쾌하지는 않았다. 교사의 자질이 의심되는 미친 교사가 있기는 했지만 예외적인 경우다. 일단 교실에 학생이 너무 많았다. 내가 교사라고 해도 패버리고 싶을 정도로 인간들이 떠들어댔다. 


    1만 마리 개구리가 일제히 울부짖는 소리. 내게는 교실 소음이 제일 끔찍했다. 신기하게도 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없다. 생각하면 운동장 조회가 더 한심했다. 폭력교사는 한두 명의 일탈인데 이건 집단으로 바보짓이다. 어색하잖아. 쪽팔리게 왜 그러고 서 있어? 


    그걸 하란다고 하냐? 저항을 못 해본 게 괴로운 기억이다. 졸업식날 우는 애들은 솔직히.. 왜 울지? 지긋지긋한 교실에서 해방되면 좋잖아. 겨울이면 얼어붙는 딱딱한 나무의자. 치질 걸려버려. 그런 공간을 떠나면 통쾌하지 않나? 하긴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으니까. 


    까짓거 이해하려면 이해할 수도 있다. 학생 시절이 너무 행복해서 이별의 눈물이 날 수도 있겠지. 교사폭력이 사라지면서 학폭이 점화된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있다. 솔직히 이해가 안 된다. 빵셔틀? 그걸 하란다고 하냐? 누가 내게 돈을 주고 빵을 사오라면 낼름 챙기지.


    책가방에 망치나 칼을 넣고 다니는 학생이 있기는 했다. 누가 나를 괴롭힌다면 어떻게 하지? 의자와 교탁을 창밖으로 던져버려. 유리창 열 장 정도 깨놓고 시작하자. 간 큰 일을 벌여버려. 그런 식의 마음속 시뮬레이션을 해보기는 했다. 다행히 실제로 그럴 일은 없었다. 


    교사폭력도 학생폭력도 집단의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교사가 때리지 않으므로 학생이 서로 때리는 것이다. 가해자만 탓하는건 소아병적이다. 형제가 없고 사촌이 없고 다들 고립된게 원인이다. 교사가 폭력을 쓰지 않고 교실에 학생 숫자가 적어진게 원인이다.

 

    인간은 서열동물이다. 서열 1위 교사가 침묵하므로 같은 학생들끼리 서열을 정하려는 것이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교실이 정글이 되어버렸다. 이해가 안 된다. 끔찍한 이야기들이 많다. 나 같으면 교실에 X을 질러버렸을 텐데. 왜 당하고 살지? 빵셔틀을 시킨다고 하냐?


    늑대는 협력동물이고 개는 서열동물이다. 오늘 뉴스에 나온 이야기다. 우리 때는 애들이 늑대였는데 요즘 애들은 개가 되어버린 거다. 온순해졌다. 늑대는 왜 협력할까? 미국은 식당에서 행패부리는 조폭이 없다고 한다. 왜? 바로 총을 맞으니까. 총은 누구나 쏠 수가 있다.


    늑대의 이빨이 자기한테만 있겠는가? 힘깨나 쓰는 애들은 서로 존중한다. 개는 주인에게 충성한다. 서열이 낮은 개는 자신에게 충성해야 한다고 여긴다. 학폭도 원리는 같다. 학생들이 온순해질수록 성질은 더러워졌다. 참을성이 많아진 학생들이 다른 곳에 분풀이한다. 


    원시인은 강박증 대신 터부가 있었다. 강박증은 문명병이다. 부족민은 우울증이 없다. 환경이 괴롭히기 때문이다. 인간은 희망을 강박증과 바꿔먹었다. 개인에게 희망이 생기면서 강박증이 생겼다. 원시인은 희망이 없다. 개인의 삶이 없기 때문이다. 부족원의 삶뿐이다.


    의사결정의 단위가 개인이 아니다. 다 같이 사냥하고, 다 같이 나눠먹고, 다 같이 섹스한다. 사유재산도 없고, 사유 파트너도 없고, 사유 희망도 없다. 희망의 반대는 허무다. 부족민의 삶은 허무하다. 그들은 쉽게 죽었다. 생에 애착이 전혀 없다. 도처에 죽음이 널려 있었다. 


    크레이지 호스라 불리는 타슝카 위트코의 ‘죽기에 딱 좋은 날이네.’ 하는 말은 인디언이 상투적으로 쓰는 말이다. 삶에 애착이 없고 희망이 없으므로 강박증도 없고 우울증도 없다. 희망은 사유재산이 발생하면서 개인이 의사결정 단위가 된 것이다. 희망이 큰 스트레스다.


    부족민은 사람을 죽여도 망설임이 없고 자신이 죽어도 두려움이 없다. 부자들이 결벽증에 걸리는 이유와 같다. 인간은 희망의 크기만큼 자기 자신을 괴롭힌다. 원시인은 터부를 섬겼는데 문명인은 비건이니, 할랄식품이니, 정치적 올바름이니 하면서 신종 터부를 만든다. 


    본질은 같다. 서로 괴롭혀주기 운동본부 조직을 가동시켜 서로를 괴롭히는 것이다. 괴롭힘 품앗이다. 괴롭힘의 상부상조. 강박증과 우울증은 자기를 괴롭히는 행동이다. 왜 그럴까? 남이 괴롭혀주지 않으므로 내가 나를 괴롭힌다. 먹고 살기가 힘들 때는 자연이 괴롭혔다. 


    모기가 물어뜯고, 질병이 물어뜯고, 가난이 물어뜯고, 폭력이 물어뜯고, 도처에서 물어뜯었다. 사람을 자극한다. 그러므로 반응 역시 활발하다. 문명시대에 물어뜯는 외부의 적이 없다. 환상통은 팔다리가 없는 사람이 외부에서 통증이 오지 않으니 내부에서 만든 것이다.


    교사폭력이 사라지며 학생폭력으로 전이되듯이 폭력총량 보존의 법칙이 있는 모양이다. 원시인의 터부 괴롭힘에서 문명인의 정치적 올바름 괴롭힘으로 양식이 바뀌었지만, 괴롭힘의 총량은 보존된다. 환경의 괴롭힘에서 자발적인 괴롭힘의 품앗이로 바뀌었을 뿐이다. 


    우울증을 해결하는 방법은 괴롭히는 것이다. 귀찮아도 계속 주변에서 말을 걸고 재촉하고 채근해야 한다. 인간은 원래 그렇게 만들어진 동물이다. 남이 나를 괴롭히지 않으면 스스로 자신을 물어듣는다. 저장강박증이든 애니멀호더든 캣맘이든 본질은 자발적 괴롭힘이다.


    불쌍하다는 핑계로 동물을 괴롭히고 이웃을 괴롭힌다. 왜? 괴롭힘 받고 싶으니까. 그 사실을 정확히 아는게 중요하다. 강박증이든 우울증이든 그게 다 호르몬 때문이다. 인간이 타고난 것은 어쩔 수 없다. 에너지가 남아돌면 남을 괴롭히고 부족하면 자기를 괴롭힌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4]곱슬이

2023.02.07 (23:53:30)

국민학교 때 강원도 오지 6촌네 집에 놀러 가서 몇 일을 보낸 적이 있었는데,(그 시절은 6촌 집도 중요한 여행코스였던 듯)  6촌 형제가 국민학교 졸업을 해서 졸업식에 같이 갔다가 충격을 받았었어요.   졸업생이 모두 우는 것.

아마도 누군가가 시작하며 전염된 듯. 이것도 호르몬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하여간 졸업식 때 우는 아이를 내가 졸업 할 때는 본 적이 없음. 강원도 오지의 고립된 공간이 가져다 준 특이한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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