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프로필 이미지
[레벨:3]김동렬*
read 8802 vote 0 2012.10.21 (18:40:54)

 

    깨달음은 영성계발이다. 영성은 관계를 포착하고 반응하는 능력이다. 그것은 직관력이며 모든 영감과 아이디어의 원천이다. 그것은 천하의 슬픔을 함께 슬퍼하고 천하의 기쁨을 함께 기뻐하게 하는 예민한 반응성을 계발하는 것이다.

 

    그 방법은 서술을 묘사로, 장편극화를 한컷만화로, 시간 상에 늘어져 있는 인과관계를 공간의 상부구조-하부구조 관계로 집약하는 것이다. 그것은 일을 해서 조금씩 소득을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물꼬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돌려놓는 것이다. 그것은 친구관계에서 연인관계로 단번에 올라서는 것이다.

 

    그것은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에서 작은 행복의 파편들을 모아는 것이 아니라 신과의 첫 대면처럼 빛나는 존엄을 추구하는 것이다.

 

    Spirit은 더 큰 실재와 합일되는 경험 혹은 공동체나 자연, 우주, 신과 합일되는 경험에 기초한다. 그것은 자신이 어떤 관계 속의 존재임을 느끼는 것이다. 세상이라는 거대한 그물 안에서 자신이 하나의 그물코임을 아는 것이다.

 

    파르르 떠는 거미줄처럼 전체에 영향이 파급됨을 알아채는 것이다. 그것은 느낌이지만 감정이 아니다. 감정은 기쁨과 슬픔처럼 신체에 직접 반응한다. 영성은 뇌에 반응한다. 다만 그것이 언어로 표현되지 않기에 느낌이라고 할 뿐이다.

 

    이성은 주어진 둘 사이에서 분별하여 판단한다. 이때 하나를 얻으면 하나는 버려진다. 영성은 둘을 통섭한다. 하나를 버리면 나머지 하나도 함께 버려진다. 내가 친구를 잃으면 친구도 나를 잃는다.

 

    내가 전화를 끊으면 동시에 상대방의 전화도 끊긴다. 둘은 동시에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관계를 느끼는 것이 영성이다. 인간은 관계 속의 존재이다. 그 관계는 명명되어 있지 않으므로 이름이 없다.

 

    그러므로 이성 혹은 지성의 방법으로는 전달되지 않는다. 이에 언어적인 설명보다 직접적인 경험이 중요하다. 선사의 선문답은 그것을 경험하게 하는 방편이다. spirt이나 soul은 그러한 경험에 의해 추측된 불완전한 이름들이다. 실존이니 실재니 하는 철학용어들도 그것이 어설프게 명명된 것이다.

 

    지성은 분석이다. 해체하여 아는 것이다. 이성은 종합이다. 통합하여 안다. 영성은 통하여 아는 것이다. 그것은 총을 낱낱이 뜯어보는 것도 아니요, 총을 조립하여 보는 것도 아니요 총을 쏘아보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총을 구성하는 모든 부품들을 통합한다. 방아쇠부터 총구까지 정보가 관통하여 가는 것이다.

 

    그것은 관계다. 그것은 이면에서 작동하는 상부구조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손을 보는 것이다. 지성이 발달한 사람은 사과를 쪼개볼 것이요 이성이 발달한 사람은 사과를 먹어볼 것이다.

 

    영성이 발달한 사람은 누가 내게 사과를 건네주었는지를 볼 것이다. 보이는대로 보면 지성이다. 한 번 뒤집어 생각하면 이성이다. 두 번 뒤집어 생각하면 영성이다. 거미줄에 잡힌 나방을 보지 말고, 그 나방을 잡은 거미를 보지 말며, 둘을 연결시킨 거미줄을 보라는 것이다.

 

    가리키는 손가락이 아니라 가리켜지는 달을 바라보면 한 번 뒤집어 생각하는 것이다. 가리키는 손가락과 가리켜지는 달과의 관계를 바라보면 두 번 뒤집어 생각하는 것이다. 그럴 때 가리키는 사람과 가리켜지는 대상과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으로 이루어진 전체가 한 줄에 꿰어진다.

 

    그 꿰어진 줄의 끝에 소실점이 있다. 소실점에 의해 ‘이게 이렇게 되면 저게 저렇게 된다’는 상호작용의 관계가 포착된다. 가리켜지는 달도 가리키는 손가락도 이름이 있다. 그 소실점은 이름이 없다. 그러므로 학습될 수 없다. 다만 깨달아야 한다.

 

    깨달음은 관계를 포착하는 것이다. 그 관계를 바꿈으로써 존엄을 얻고 삶을 바꿀 수 있다. 삶 전체를 관통하는 소실점을 포착함으로써 삶을 바꿀 수 있다. 그것이 스타일이다.

 

    스타일을 바꾸면 관계가 바뀌고 관계가 바뀌면 삶이 바뀐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소실점이 있다. 하나가 바뀌면 모두가 바뀌는 급소가 있다. 타이밍이 있다. 포지션이 있다.

 

   

 

   

 0.JPG

 

http://gujoron.com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sort
3608 구조론을 만만히 보지 말라 image 김동렬 2015-05-23 6661
3607 구조주의 우주론 image 김동렬 2016-09-17 6663
3606 사건의 결을 따라가기 김동렬 2014-07-30 6667
3605 열린 사회는 힘이 있다 2 김동렬 2018-07-28 6668
3604 해파리의 실패 image 1 김동렬 2015-06-19 6672
3603 용기있는 자가 진리를 본다 image 4 김동렬 2015-05-04 6673
3602 물리법칙 image 1 김동렬 2015-03-21 6675
3601 손가락을 가리키면 달을 본다 image 2 김동렬 2015-02-04 6678
3600 미련한 곰도 깨달을 수 있다. image 3 김동렬 2015-01-20 6681
3599 에너지의 카오스와 코스모스 image 1 김동렬 2015-06-28 6682
3598 구조론 백이십문백이십답 image 김동렬 2016-09-11 6682
3597 인생의 비애가 그곳에 있다 image 1 김동렬 2016-07-29 6720
3596 자기 둥지로 시작하라 2 김동렬 2014-07-05 6723
3595 세상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image 17 김동렬 2015-04-24 6729
3594 대칭이란 무엇인가? image 2 김동렬 2015-03-31 6735
3593 무에서 유로 도약하라 1 김동렬 2014-07-03 6740
3592 구조로 보아야 역사가 보인다 image 2 김동렬 2014-12-04 6741
3591 공자의 죽음과 부활 image 김동렬 2016-04-29 6747
3590 동적균형의 모형 image 2 김동렬 2014-05-28 6759
3589 도덕경이란 무엇인가? image 2 김동렬 2015-07-03 67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