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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470 vote 1 2021.10.03 (21:05:41)

    인간은 눈으로 사물을 본다. 보는 방법에 대해서는 보지 않는다. 주체의 입장에서 객체를 바라본다. 반대로 객체의 입장에서 주체를 보는 것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다. 입장 바꿔 생각하기다. 그런데 부족하다. 관측자와 관측대상 사이의 상호작용을 봐야 한다. 주체와 객체 사이에 벌어지는 게임을 봐야 한다. 그 게임의 방향성과 치고나가는 기세까지 봐야 완전하다.


    사건이냐 사물이냐다. 주체든 객체든 사물이다. 상호작용은 사건이다. 사건을 보는 눈을 얻어야 한다.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를 보는 눈을 얻어야 한다. 하수는 보이는 관측대상을 보고 고수는 보는 관측자를 본다. 이 두 가지 관점으로 인류는 1만 년 문명사의 콘텐츠를 채워왔다. 둘의 상호작용을 보는 사람은 없었다.


    인류는 한 걸음 더 전진해야 한다. 압도적인 허무를 넘어 통쾌한 의미에 이르려면 사건을 다음 단계로 연결해야 한다. 주체와 객체의 상호작용에서 사건을 보는 눈을 얻어야 한다. 사건은 게임이고, 게임은 주최측이 있고, 주최측은 흥행이라는 의도가 있다. 의도를 달성하는 것이 의미다. 주최측으로 올라서지 못하고 경마장의 말로 주저앉는다면 허무를 극복할 수 없다.


    사물은 반드시 관측자가 있다. 사건은 관측자와 관측대상을 통일하는 제 3의 관점을 요구한다. 칸트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생각했지만 부족하다. 인류는 일만 년 동안 그라운드 위의 선수만 봤다. 칸트가 경기장 밖의 관중이 미치는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게임의 주최측을 보는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


    구조론은 의사결정이론이다. 의사결정은 사건의 연결 속에서 일어난다. 구조론은 사건의 구조를 해명한다. 아무 생각이 없으면 관측대상이 보이고 입장을 바꾸면 그것을 보는 사람이 보인다. 더 나아가서 둘의 상호작용을 보고, 방향성을 보고, 기세를 봐야 한다. 앞을 가로막는 물을 보고, 그 물을 이기려고 하는 배를 보고, 배와 물의 싸움을 조율하는 선장을 보고, 그 선장이 가려고 하는 등대를 보고, 그 배가 가는 속도까지 봐야 한다. 모르는 사람은 하나를 보고, 아는 사람은 둘을 보고, 구조론은 셋을 넘어 넷, 다섯까지 본다.


    구조론은 사물의 원자가 아니라 사건의 구조로 보는 관점을 제공한다. 세상을 원자라 일컫는 기본적인 단위들의 집합이 아니라 관계들의 연결로 본다. 원자는 하드웨어다. 소프트웨어를 봐야 한다. 하드와 소프트가 별도로 존재하는게 아니라 하드웨어가 일정한 수학적 조건에서 소프트웨어로 기능한다는 것이 엔트로피다.


    세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인류의 문명은 인과율의 기반 위에 서 있다. 석가의 연기법이 힌트를 던졌고 칸트가 다른 관점을 제시했다. 인과율이 시간이라면 연기법은 공간이다. 구조론은 시간의 인과율을 공간의 인과율로 확대한다. 원인과 결과의 시간적 질서에 전체와 부분의 공간적 질서를 추가한다. 사건은 닫힌계 내부에서 시공간의 질서로 단계적인 대칭을 만들어 밸런스의 힘으로 진행한다. 사건의 진행에는 의사결정비용이 소비된다. 사건은 비용을 조달할 수 있는 하나의 방향으로 전개되므로 우주에는 분명한 질서가 있고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있다.


    사물을 보는 관점에서 사건을 보는 관점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헤아려지는 원자 알갱이가 아니라 그것을 헤아리는 구조를 봐야 한다. 하나, 둘, 셋 하고 나열되는 숫자가 아니라 그것을 더하고 빼는 계산을 봐야 한다. 21세기에 문명은 또 하나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요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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