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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057 vote 0 2022.01.11 (12:42:44)

    세상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권력이다. 권력은 미실현 이익에 대한 통제권이다. 권력을 실현하면 이익이 된다. 미래의 잠재적인 이익을 당겨서 사용하는 것이 권력이다. 들판에서 자라는 벼를 미리 판매하는 입도선매와 같다. 각종 이권, 입주권, 계약권, 특허권과 같이 권權 짜가 붙는 말은 대개 권력을 나타내는 말이다. 증권, 예매권, 상품권은 권券을 쓰므로 한자가 다르지만 증권이 권리權利를 기재한 증서라는 점에서 의미는 같다.


    권리權利라는 말이 곱씹어볼 만한다. 권력과 이득을 연결한 말이다. 권력을 실현하면 이득이고 이득을 보장하면 권력이다. 소인배는 이득을 추구하고 군자는 권력을 추구한다. 권력이 이익에 앞선다는 점이 중요하다.


    권력은 자연에 있다. 권력은 지렛대다. 지렛대는 에너지의 형태를 바꾼다. 입자가 힘으로 바뀌고, 힘이 운동으로 바뀌고, 운동이 량으로 형태를 바꾸는게 지렛대의 원리다. 엔트로피의 법칙에 따라 그 순서는 바꿀 수 없다. 언제나 힘이 운동에 앞선다. 외력이 개입하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데 사건이 진행되는 닫힌계 안에서 저절로 그 순서가 바뀌는 일은 없다는게 엔트로피다.


    권력은 언젠가 이득으로 바뀐다. 아직 바뀌지 않았지만 조만간 바뀌는 것을 보장한다. 들판에 뿌려둔 씨앗이 아직 여물지 않았지만 조만간 수확하게 될 것을 보장한다. 권權이 리利에 앞선다는 점이 각별하다. 권權과 리利를 교환하는데 만약 리가 반대급부를 내놓지 않으면 권은 그 밭에 불을 질러버리겠다는 위협이 가능하다. 이득을 보장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통제권이 있다.


    권은 리를 통제할 수 있지만 리는 권을 통제할 수 없다. 권은 지렛대를 움직여서 리를 억누를 수 있지만 리가 권에게 할 수 있는 일은 믿고 기다리는 것 뿐이다. 리가 권에 종속되는 것이다. 권權이 리利를 확실히 보장하면 반대급부로 리는 권에게 신信을 맡겨야 한다. 교사는 학생에게 미래의 이득을 보장하고 학생은 교사에게 현재의 신뢰를 위임하는 방식으로 사회의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권력 혹은 권리를 물리학과 수학에 근거하는 자연법칙으로 이해하지 않고 정치적인 구호나 추상개념으로 받아들이므로 혼선이 빚어진다. 천부인권 개념이 그러하다. 애매한 말이다. 권력은 하늘이 내리는 것이 아니고 계측되는 수학이다. 현재의 권權과 미래의 이利가 둘로 나뉘어져 별도로 작동하는 것 보다 하나로 합쳐서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게 보다 효율적이다. 권과 리의 톱니가 맞물려 돌아야 한다. 겉돌면 시스템이 붕괴한다. 화폐의 역할이 그런 것이다. 아직 벼가 여물지 않았지만 여물 것을 예상하고 거래하는 것이 화폐다. 그러다가 흉년이 되면 꽝이 되므로 보험에 가입하여 리스크를 분산해야 한다. 권과 리가 분리된다면 벼가 여물고 난 다음에 움직이는 것이다. 미리 대비하지 못하므로 손해가 막심하다.


    나라가 흥하고 망하는 것이 모두 권력 때문이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가난한 이유는 사람이 게을러서가 아니라 그곳에 제대로 된 권력이 없기 때문이다. 권력이 없으면 미래의 잠정적인 이득에 대비하지 않는다. 항상 현물을 확보하고 난 다음에 움직이려고 한다. 그런데 현물은 썩는다.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손해가 크다. 유통의 실패에 따른 손해가 누적되어 가난해진다.


    권은 보장하지 않고 리는 신뢰하지 않으므로 사회가 망한다. 권과 리의 톱니가 맞물려서 돌아가게 하는게 메커니즘이다. 사회의 제도와 시스템이 그러하다. 권과 리가 둘이 따로놀지 말고 하나가 되어야 한다. 권이 리를 억압해도 안 되고 리가 권을 불신해도 안 된다.


    세상을 이해하는 본질은 미래를 예상하고 대비하는 것이다. 선등자의 보장과 후등자의 신뢰다. 암벽등반이라면 두 번째 가는 확보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확보자는 자일을 잡아서 선등자의 안전을 확보해줘야 하고 선등자는 확보자의 도움을 믿어야 한다. 둘의 호흡이 맞아야 한다. 인간사의 일은 대개 그러한 역할분담이 꼬인 것이다. 선등자의 실력이 중요하지만 선등자가 뒤에 오는 확보자에게 생명을 맡겨야 한다. 지도자가 민중에게 목숨을 저당잡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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