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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기적 그리고 세계사적 의의

- 이 시점 우리는 세계의 선두에 서 있다.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한국사람들만큼 노벨상과 올림픽 금메달에 목을 매고 있는 나라는 없을 것입니다. 번듯한 노벨상이라도 수상해서 우리도 세계 역사에 뭔가 기여한 것이 있어야 다른 나라에 가서라도 큰 소리를 칠텐데 말입니다.

김대중대통령의 노벨평화상은 '인류사에의 기여'라는 측면에서 볼 때 과소평가되어서 안됩니다. 노벨문학상이나 노벨경제학상라면 명백한 기여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키신저와 레둑토가 공동수상한 1913년의 노벨평화상은 미심쩍은 데가 있지요.

월남전의 종전이 인류평화에의 기여라고요? 아니죠. 미국이 월남전을 도발했으니 키신저에게는 노벨전쟁상을 주어야 할 판입니다. 이렇듯 노벨평화상의 경우 영양가 없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노벨문학상의 경우도 정치적인 이유로 수상되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최근의 경향은 남미나 아프리카 대륙을 돌아가면서 골고루 한번씩 받아가는 것이지요. 그래서 톨스토이도 못 받은 상이 노벨문학상입니다.

그렇지만 만델라와 김대중의 노벨평화상수상은 명백아 인류사에의 기여입니다. 한국에서는 저평가되고 있지만 (왜? 김대중 개인의 업적이 아니라 민주화투쟁을 성공시킨 재야세력 모두의 업적이니까) 외국에서는 알아줍니다.

그렇습니다. 노벨평화상을 김대중 개인의 영광이라고 하면, 이 상의 값어치는 별 것 아니지만 한국의 민주화과정과 평화통일 노력에 대한 수상이라고 생각하면 이 상은 그 어떤 노벨상보다도 가치있는 것입니다.

이제 다른 나라의 초등학생, 중학생들이 역사수업시간에 만델라와 김대중의 이름을 외우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부심을 가져도 좋습니다. 단 노벨상수상이 김대중 개인의 것이 아니라 민주화와 평화통일을 위해 싸운 우리모두의 것이라는 점은 기억되어야 하지요.

한국이 인류사에 기여한 것으로는 금속활자와 철갑선, 한글, 고려청자, 우장춘박사의 씨없는 수박, 김승기박사의 비날론 개발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낱낱이 따지고 보면 신통치 않은 것들입니다.

우선 금속활자는 다른 나라에 전파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쿠텐베르크의 인쇄기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거북선이 철갑선이라는 말은 근거없는 이야기입니다. 송나라 때부터 왜구를 막기 위해 배에 지붕을 씌웠다는 말이 있어요. 물론 거북선이 더 개량된 형태이긴 하지만 선체 전체를 쇠로 만든 것이 아니므로 세계 최초의 철갑선은 아니지요.

한글은 확실히 자랑할만 하지만 우리만 사용하는 것이어서 아쉽지요. 한글을 세계에 수출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고려청자도 빛나는 것이긴 하지만 17세기 일본의 금테두른 꽃병이 서구로 수출되어 명성을 얻은 데 비해 해외진출이 없었다는 것이 아픕니다.

씨없는 수박을 이장춘박사가 발명했다는건 지어낸 이야기고 일본의 스승에게 배운 것으로 봐야 합니다. 이승기 박사가 1939년에 발명한 북한의 비날론도 자랑할만한 성과이긴 한데 북한에서나 생산되고 있으니 아쉽지요.

이렇게 낱낱이 따져본다면 우리 민족은 인류사에 기여한 것이 너무나 없죠. 나라가 구대륙의 동쪽 끝 귀퉁이에 붙어있어서 뭔가 신통한 것을 발명해도 다른 나라에 잘 전파되지도 않는다는 점이 억울하기도 하구요.

일본은 확실히 인류사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동안 받은 노벨상의 숫자로 입증되고 있습니다. 중국도 종이, 인쇄술, 나침반, 화약 등 세계 4대발명을 내세워 큰소리 칠 수 있습니다.

세계 최초가 아니면 안되고 세계 최고가 아니면 안됩니다. 우리도 최초와 최고를 지향해야 합니다. 현재로는 인터넷기술이 최고가 될 가능성이 유망합니다. 우리가 인터넷민주주의를 정착시킨다면 다른 나라에서도 본받겠죠.

이번 선거의 의의는, 우선 한때 아시아 각국에 유행했던 아세아적 가치 신드롬과 연결지어 볼 수 있습니다. 싱가포르의 이광요, 한국의 박정희,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 북한의 김일성,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중국의 모택동 이들의 공통점이 뭘까요?

■ 박정희 - 한국적 민주주의
■ 김일성 - 우리식 사회주의
■ 마하티르 - 아세아적 가치
■ 이광요 - 아세아적 가치
■ 수카르노 - 교도민주주의
■ 모택동 -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 장개석 - 손문의 삼민주의

이들의 공통점은 인류문명의 보편성을 부정하고 동아시아 문명의 특수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보편적 가치가 아니면 가치가 아닙니다. 한글이 아무리 훌륭해도 보편적으로 쓰이지 않으니 대접을 못받는 거지요.

동아시아 문명의 특수성? 특수한건 원래 가치없는 것입니다. 한국의 민속문화? 특수해서는 가치가 반감됩니다. 그러므로 그 특수한 것 속에서도 인류문명의 보편성을 찾으려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 안됩니다.

이정향 감독의 영화 '집으로...'가 미국에서도 호평받고 있습니다. 언뜻보면 한국문화의 특수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어린이와 노인의 관계'라는 점에서 보면 세계 공통의 보편적인 감성에 호소하고 있어요.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가문의영광, 달마야놀자, 조폭마누라 등 한국 조폭영화의 리메이크 판권을 많이 수입해 가는 이유는 코미디라는 코드가 세계적인 보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웃음은 어디가나 통하는 것이니까요.

즉 특수한 것 처럼 보이는 가치들 속에도 보편성이 숨어있다는 말이지요. 임권택감독의 영화 '씨받이'를 우리는 한국적 특수성의 강조라고 착각하지만 서구인이 보기에는 요즘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대리모사건들에서 인류문화의 보편성을 발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가 한국문화의 특수성을 강조해봐야 서구의 편견인 오리엔탈리즘에의 아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제부터는 그 특수성 속에 숨은 보편성을 발굴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합니다.

지금 한국에서 성공하고 있는 실험은 그동안 아시아 각국에서 독재정치가 유행하면서 아시아문명의 특수성을 강조하였는던 바 이것이 오류임을 입증하고 인류문명의 보편성을 추구하는 것이 옳다는 점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 데 있습니다. 곧 김대중노선입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장개석, 마하티르, 이광요들에게서 한 수 배워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우리는 수구꼴통이라 부르지요. 독재자의 술수에 놀아나고 있는 것입니다. 인류문명의 보편성을 따라가야 합니다.

이제 한국이 아세아에서는 확실한 정치적 선도국가가 되었습니다. 일본은? 탈아입구를 외친 일본은 민주주의를 말할 자격이 없는 나라입니다. 아세아 여러나라의 정치흐름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어서 일본에서 정치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아세아 여러나라에 전파되지 않고 있습니다.

세계 최초의 인터넷선거, 인터넷 직접민주주의의 실험, 돈과 조직 대신 민중의 자발적인 참여 등은 당장 대만과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에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중국에서는 조만간 인터넷 천안문사태(?)가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보편성은 진리의 기본적인 속성입니다. 보편성에 반하고는 절대로 진리일 수 없습니다. 그것이 보편성에 기초하고 있다면 어느 나라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해도 세계적인 호소력이 있습니다. 아세아의 작은 변방국가인 한국에서 세계사를 선도하는 기적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적어도 '인터넷과 정치'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이시점 우리는 세계사의 선두에 서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부심을 가져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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