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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5374 vote 0 2010.09.07 (14:42:12)

 

 

  모든 진보는 망가지는 것이다.

 

  “영속적인 진화는 영속적인 불만족이다.”

  “이것이 헤겔 변증법의 유일한 장점이다.” (R. 아쿠타가와)

 

  “영속적인 불만족은 영속적인 진화이다.”

  “이것이 나의 실험 TV의 주요한 장점이다.” (백남준)

 

  백남준 평전에서 찾아낸 한 문장이 구조진화론과 일치하고 있다. 구조진화론은 모든 생장은 안에서 밖으로 진행하는데 이는 구조적 모순이어서 불가능하다는 거다. 생물체는 외부환경을 이용하는 편법을 써서 이를 우회하는 것이며, 이는 임시방편의 미봉책이어서 불완전하므로 불만족 상태에 빠지게 되고, 이 불만족을 해결하기 위하여 또다른 편법을 쓰는 식으로 구조를 추가하며, 구조의 중첩에 따라 생물체의 구조는 점점 복잡해 졌지만, 그래도 애초의 불만족은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어서 진화는 계속된다는 것이다. 구조가 진보할수록 불만은 누적될 뿐이므로 필자가 일전에 말한대로 ‘모든 진보는 망가지는 것이다’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백남준의 통찰이 절묘하다. 예술 역시 근원의 불만족에 기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백남준의 퍼포먼스를 보고 만족을 구하지만, 실로 백남준은 모순, 결함, 어떤 불만족을 끌어내어 뇌간지럼증을 유발시키는 방법으로 유쾌한 웃음을 일으키는 것이다. 결함을 드러내는 것이 진보이다.  

 

  TV 리모컨은 많은 편리를 주지만 동시에 새로운 불만족을 야기한다. 우선 잡다한 버튼이 너무 많아서 시력이 좋지 않은 노인은 사용하기 불편하다. 건전지가 닳으면 낭패다. 집에서 키우는 비글이 리모컨을 물고 자기 집으로 가져가는 수가 있다. 그 다음은 완전 분해의 현장을 목도하게 된다. 소파의 뒤쪽 틈새에 낑겨서 리모컨을 찾지 못할 때도 있다. 하나의 편리가 추가될 때 마다 굉장히 많은 불만족이 새롭게 꽃을 피운다. 이것이 진화다. 이것이 진보의 참모습이다.

 

  화두, 공안은 원래 모순과 결함, 불만족을 드러내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나리자를 보고 만족할 것이다. 그러나 진실로 말하면 그것은 실패다. 홍상수 영화에서 느껴지는 어색함과 느끼함, 불협화음을 생각할 일이다. 모너리자에도 많은 불만족이 숨어 있다. 예술작품은 빛나는 다이아몬드와 같은 것이어서 가치가 높을수록 더 큰 불만족을 야기한다. 왜냐하면 그 다이아몬드는 오직 정상급 무대에 선 프리마돈나의 열창 안에서만 진정한 가치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어두운 극장, 컴컴한 무대, 오직 주인공 한 사람에게만 강렬한 조명이 쏟아질 때, 어두운 객석에서 숨 죽이고 지켜보는 일 천명 관객의 시선을 하나의 포커스로 모아야 할 때 바로 그 한 순간이 다이아몬드가 제 값을 하는 지점이다. 화장으로 떡칠한 강남의 복부인 아줌마의 손가락에 끼어있는 다이아몬드라면 죽음 그 자체다. 그 장면이라면 구토, 환멸에 가깝다 할 것이다. 그러므로 가치있는 것일수록 더욱 불만족을 낳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간 노무현과 같은 진짜배기 앞에서는 당황해 하며 화를 내고 심지어 허공에다 주먹을 휘두르기까지 한다. 별 볼일없는 이명박 앞에서는 그냥 피식 하고 제 일을 한다.

 

  가치있는 것이야말로 사람을 당혹하게 한다. 만약 당신이 슈퍼카를 소유하게 되었다면 곤란하다. 미녀를 옆자리에 태우고 뻥 뚫린 도로에서 시속 300키로를 밟아봐야 하는데 일단 한국에서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도로가 없다. 그것은 매우 큰 불만족을 낳는다. 그냥 지켜보며 ‘우와!’ 하고 감탄사만 늘어놓는다면 그게 비참이다. 슈퍼카에 어울리는 미녀와, 그 수준에 어울리는 대저택과, 그 수준에 걸맞는 신분과, 상류층의 화려한 파티와.. 이렇게 구색을 맞추려다보면 끝이 없다. 좌절하게 된다.

 

  그러므로 좋은 것은 그다지 좋지 않다. 눈금이 똑바로 박힌 자(尺)와 같아서 옳은 것과 그른 것을 명확하게 판정하기 때문이다. 대충 눙치고 넘어갈 수가 없다. 정확하게 숫자가 표시되는 저울과 같아서 다이어트에 실패한 많은 먹보들을 화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길로 가야 한다? 왜인가? 이미 그 길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봅슬레이에 올라탄 신세라서 그대로 미끄러져 가는 수 밖에 없다. 이미 방아쇠는 당겨졌다. 일단 끝까지 가볼 밖에.

 

  당신은 만족을 추구하는가? 나는 불만족을 탐구한다. 하긴 스티브 잡스라면 당신의 모든 것이 불만일 것이다. 가마에서 도자기를 꺼내는 도공처럼 ‘이것도 아냐!’, ‘이것도 아냐!’를 연발하며 모두 깨부숴 버릴 것이다. 직원들을 사정없이 몰아치기로 전설적인 일화가 많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외부인이 보는 가운데 부하직원을 향해 'you are fired’ 하고 소리지르는 것을 봤다는 목격담도 있더라. 그의 대머리가 붉게 상기된 채 언성을 높여 소리지르는 장면 상상이 된다. 기실 예술가들은 불만을 창조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그 불만이 너무 상투적으로 가도 피곤하다. 스타 벅스에 죽치고 앉아 있는 콧대높은 미녀들처럼 ‘흥 넌 루저야!’, ‘흥 너도 루저야!’, ‘흥 어딜 감히 들이대!’ 하고 계속 퇴짜를 놓는 것을 자신의 역할로 정하여 연극하기도 한다. 스티브 잡스처럼 답을 제시할 수 있는 불만이어야 한다. 진도 척척 나가주는 창의적인 불만이어야 한다. 이명박의 공정사회 식으로 가만이 앉아 '넌 위너야, 넌 루저야' 하고 판정만 내리는 소극적 불만, 수동적 불만이 아니라 노무현이 이 메마르고 황폐하기 짝이 없는 '사람 잡는 세상'에서 '사람 사는 세상'을 추구함과 같이 포용하는 불만, 능동적 불만, 창조자의 불만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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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0.09.07 (18:30:56)





뇌는 여전히 간지럽고 온몸도 간지럼증을 느끼는데...^^
아직은 ...
더 품고 머금어야 할 때인듯...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안나오고 못배기겠지....

하나의 개념이 완전하게 내안에 정착할 때는 반드시 오는것.
그때를 기다리며 오늘도 품고 머금으려 하오.
[레벨:15]오세

2010.09.07 (22:02:55)

영속적인 창조는 영속적인 불만족의 증거
프로필 이미지 [레벨:6]블루

2010.09.09 (09:25:56)

이런글을 여기서만 보는것도 불만!!........왜 널리 퍼트릴수 없을까 하는 불만이 생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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