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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스스로 밝힌 노무현의 리더십은 한마디로 『긴장』이다. 『유감없는 패배보다는 아슬아슬한 승리』를 택하는 것이다. 대선 때도 그랬지만 노무현과의 5년은 한마디로 『피가 마르고 살이 마르는 5년』이 될 것이다. 지지자도 그렇고 반대자도 그렇다.

판이 아슬아슬하게 가면 뒷심 좋은 사람이 이긴다. 노무현은 뒷심이 좋다. 승부사는 습관적으로 판을 아슬아슬하게 가져가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는 예선 때 이야기고, 막상 큰 승부가 눈앞에 다가오면 노무현은 대단히 보수적인 결정을 내린다.

작년 봄 경선을 앞두고 쇄신운동 때도 그랬고, 정몽준과의 단일화를 받아들인 것도 그렇고, 이라크 파병결정도 그렇다. 노무현은 평소에 모험적인 블러핑을 시도하다가도, 막상 승부가 눈앞에 다가오면 보수적 태도로 돌아선다. 노무현 뿐 아니라 승부사들은 원래 그렇다.

장기전은 모험적 결정, 단기전은 보수적 결정

특검만 해도 그렇다. 노무현이 특검을 받는다는 사실을 예견못했다면 문제있다. 선거가 낼모레거나 특검수사발표가 낼모레 앞이라면 노무현은 당연히 거부권을 행사한다. 『장기적인 승부는 모험적 결정, 눈앞의 승부는 보수적 결정』 이건 승부사의 원칙이다.

특검수사는 언제 끝날지 모른다. 수사 진행 중에 어떤 우여곡절이 있을 지 알 수 없다. 보통은 새옹지마다. 화가 굴러서 복이 되고, 복이 굴러서 화가 된다. 그 과정에 한나라당과 북한을 벗겨먹을 어떤 건수가 나올지 아직 알 수 없다. 그거 다 밝혀진 다음에 뒷감당해도 늦지 않다.

벌써부터 이석희 잡아오고, 나라종금 수사하고, 국정원 도청 수사하고 막 공세를 펴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상생의 정치』라며 만세 부르고 있는데 대단한 착각이다. 노무현정치는 살을 내주고 뼈를 베는 정치다. 같이 죽자고 싸우면 뒷심 좋은 쪽이 이긴다.

그러나 호남정치는 차원이 다르다.

이런 발언은 지역감정 조장으로 오해될 수 있겠으므로 먼저 양해를 구하는 바이다. 내키지는 않지만 남이 안하면 나라도 한마디 해야하는 거다.

문제의 단초는 이승만의 자유당정권 때부터 잉태되었다. 당시 영남에 민주당은 거의 없었다. 자유당이 몰락하면서 영남정치는 완전히 몰락했다. 박정희의 쿠데타는 간단히 말하면 『영남정치의 진공상태』를 파고든 것이다.

쿠데타가 옳고 그르고 이런 논의는 나중 문제다. 특정 지역에 정치적 진공상태가 초래되면 가공할 재앙이 덮친다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 정치가 애들 장난은 아니지 않은가? 장면정권은 특정 지역에 정치적 공백상태가 초래되지 않게 판관리를 할 필요가 있었다는 거다.

김종필이 가면 충청은 진공상태다. 물론 대안은 있다. 안희정이 논산에서 나오고 김원웅이 대전을 지키면 된다. 더군다나 행정수도라는 큰 선물이 있지 않은가? PK는 일단 노무현으로 대안을 찾았다. 한나라당이 망하면 경북은 진공이 된다. 거시적으로 보고 판관리를 해야한다. 그렇다치고 호남의 대안은?

고건? 정동영? 김원기? 적을 키우든 아군을 키우든 세력을 길러줘야 한다. 그래야 희망을 가진다. 동교동은 사실이지 미래가 없다. 호남은 각자 알아서 스스로 살길을 찾으라? 이런 식은 곤란하다. 정치생리로 볼 때, 또 역사의 경험칙으로 볼 때 이런 문제가 잘 해결된 적은 없다.

특정 지역에 정치적 공백상태가 초래되지 않게 판 관리를 하라!

필자가 항상 강조해온 바는 인사에 있어서 탕평책에 의존하지 말라는 거다. 골고루 나눠먹기는 골고루 압살하는 결과가 된다는 사실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호남도 적당히 안배해준다? 이런 식으로 하다가 5년 후에 보면 호남은 씨가 없다.

김대중 때도 그랬다. 영남도 적당히 안배한다고 했는데 5년후에 보니까 다 어디갔는지 없다. 지금 나오는 인사발표도 그렇다. 첫 조각발표는 어느 정도 안배가 되었는데 그걸 수정하고 추가하고 하다보니 어영부영 사라지고 호남은 없어졌다.

정치는 세다. 세는 흐름이다. 흐름의 법칙은 쏠림이다. 100프로 탕평하면 100프로 한쪽으로 쏠린다. 100프로 특정 정파에 의해 독점된다. 영, 정조의 탕평정치도 말이 좋아 탕평이지 실제로는 노론이 다 먹은거다. 그렇다면 방법은? 내가 가진 것을 나눠주는 식으로는 안된다. 답은 라이벌을 키우는거 하나 뿐이다.

탕평책은 100프로 독식책이다.

두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일찌감치 당을 쪼개는 거다. 당을 쪼개면 호남정치의 싹은 어떤 형태로든 보존된다. 대신 노무현이 죽는다. 하나는 정동영이든, 김원기든, 고건이든 하나를 라이벌로 키우고 권력의 지분을 내주는 거다. 근데 고건은 문제있고, 김원기는 약하고, 정동영은 미지수다.

중요한 것은 그 의도적으로 키워주는 라이벌과의 관계설정이다. 너무 가까우면 안된다. 김원기나 고건처럼 가까운 사람은 안쳐주는 거다. 예컨대 정동영을 라이벌로 키운다면 정동영이 노골적인 노무현의 반대파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 해서 박상천이나 정균환이 믿음직한 노무현의 반대파가 되고 견제세력이 되어줄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게 문제의 본질이다.

지금 관찰되고 있는 바로는 『내각은 PK가 독식할테니 호남 너희는 눈 밝은 넘 있거든 국영기업체 낙하산이나 알아서 찾아먹으라』 이런 식인가본데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정답은 없다. 중요한건 문제의 심각성을 똑똑히 인식하는 거다.

호남정치와의 긴장상태는 어떤 형태로 가는가?

탕평정치는 100프로 PK독식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한다. 지역안배니 이런 변명은 말도 꺼내지 말아야 한다. 차라리 『내사람 내가 쓰겠다』 하고 노골적으로 가는 것이 솔직한거다. 그 대신 교환조건으로 내주는 것이 있어야 한다. 골고루 안배가 아니라 줄건 주고 받을 건 받기여야 한다.

『긴장의 리더십』 좋다. 노무현과 호남정치 사이의 긴장은 어떤 형태로 판을 짤 건데? 호남정치가 스스로 답을 찾거나 안되면 노무현이 답을 내놓거나 해야한다. 호남이 스스로 답을 내는 경우는 정동영이 노무현에 반기를 들고 독립하는 거다. 내가 정동영이라면 그렇게 한다. 박상천, 정균환은 반기 들어봤자 답 안나오고.

노무현이 호남을 씨암탉 잡아 대접해주는 처갓집 정도로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필요한 것은 노무현과 일정한 거리를 벌리고 자기 색깔을 분명히 하는 호남정치의 거목이다. 적절한 타이밍에 라이벌이 떠줘야 한다. 노무현에게 반기를 들고 아슬아슬하게 긴장된 전선을 형성하는 젊은 호남 실세가 필요하다. 이 점이 인선에도 고려되어야 한다.

덧글.. 결론적으로 노무현은 인사문제와 같이 내부적으로 균열을 일으킬 수 있는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조금 더 신경을 써야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고건, 김원기 정도로 체면치레 해서 안된다는 말이죠. 원래 지역문제는 말해봤자 본전도 못건지는 이야기지만 이런 이야기 하는 사람도 있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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