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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028 vote 0 2019.08.26 (19:30:11)

   세상을 바꾸는 자      
   
    

    세상은 사건이다. 사건은 에너지에 의해 일어나서, 구조에 의해 통제되고, 관계를 변화시키며, 존재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는 한 가지 근본이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거치며 단계적으로 노출되는 것이다. 영화가 필름과 영사기와 스크린을 거쳐 마침내 영상으로 나타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최종단계의 영상을 보고 판단하지만 감추어진 배후에서 여러 가지가 일하고 있다. 그대가 객석에 앉은 관객이라면 영상만 보면 된다. 웃긴 장면에서 웃어주고 슬픈 장면에서 손수건을 꺼내주면 된다. 태양이 지구를 돌든 지구가 태양을 돌든 시골 농부에게는 상관없는 일이다.


    문제는 영상을 바꾸려고 할 때다. 뜻밖의 완강한 저항에 직면하게 된다. 사건>에너지>구조>관계>존재의 연결이 시스템을 이룬다. 하나를 바꾸려면 다 바꿔야 하는 문제에 직면한다. 사건과 에너지와 구조와 관계를 놔두고 존재 하나만 바꿀 수 없다. 자칫 역린을 건드린 셈이 된다.


    하부구조를 바꾸자면 상부구조가 개입해서 도로 원위치시킨다. 귀족은 대접받고 천민은 푸대접받는다. 적응하면 된다. 천민은 천민의 세계에서 잘난 천민으로 뜨면 된다. 자기보다 못한 천민을 비웃으며 우쭐하면 된다. 문제는 바꾸려 할 때다. 그럴 때 시스템이 모습을 드러낸다.


    강고한 시스템의 존재가 정면으로 모습을 드러내며 그대를 다치게 한다. 불평등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지만 약하다. 정의를 외치거나 옳고 그름을 논리적으로 따져봐도 먹히지 않는다. 조목조목 설명하지만 말로는 그대의 의견이 사리에 맞다고 인정하면서도 힘으로는 찍어누른다. 


    사건을 일으켜 에너지를 격발하고 구조를 뜯어고치고 관계를 바꿔야 비로소 세상이 응답한다. 시스템은 언제라도 견고하게 우리 앞을 막아서지만 이는 역으로 우리에게 에너지를 주는 일이기도 하다. 하나를 바꾸려다가 의도하지 않게 세상을 다 바꾸는 에너지를 얻게 되는 식이다. 


    인권 후진국인 일본 하나를 이기려다가 인권강국이 되어 세계를 다 이기는 기운을 받는다. 크롬웰이 카톨릭교회 하나를 치려다가 오버가 심해지는 바람에 의도하지 않게 영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단초가 되어버리는 식이다. 거기에 밸런스가 있다. 선을 넘으면 세상을 다 바꾸게 된다.


    거기서 2퍼센트 부족하면 남 좋은 일 시키고 주저앉게 된다. 환경이 좋으면 뜻밖에 성공하기도 하고 환경이 나쁘면 의로운 씨앗이 되어 훗날을 기다리며 잠복하게도 된다. 그저 목청을 높인다고 세상이 바뀌는 게 아니다. 옳고 그름을 면밀히 따진다고 세상이 귀 기울여 주는 건 아니다.


    거꾸로 인터넷의 등장이나 인공지능의 비전처럼 환경이 바뀌면 본능적으로 전달되는 것이 있어서 그대의 작은 도전에도 크게 주목하고 발언을 경청하게 된다. 그러므로 큰 지진이 일어나듯이 밑둥부터 흔들어놔야 한다. 옳고 그름의 판단만으로 부족하고 환경과 박자를 맞춰야 한다.


    그대가 여전히 객석의 관객으로 남아있으면서 영상만 바꾸려고 하면 안 된다. 그대가 평범한 소시민으로 남아있으면서 세상이 바뀌기를 기대하면 안 된다. 바꾸려면 사건부터 존재까지 다 바꿔야 한다. 그사이의 에너지와 구조와 관계도 바꿔야 한다. 그대 자신부터 변해야 이긴다.


    그대는 감독이 되어 촬영부터 다시 해야 한다. 영화와 필름과 영사기와 스크린을 다 바꿔야 영상이 바뀐다. 사건과 에너지와 구조와 관계를 다 바꿔야 존재가 바뀐다. 단번에 시스템을 뜯어고쳐야 한다. 생산력의 변화에 따른 물적토대의 변화를 중심으로 환경변화가 뒤를 받쳐야 한다. 


    그대는 결심해야 한다. 관객으로 남지 않고 감독이 될 결심이다. 시민으로 남지 않고 지도자가 될 결심이다. 그것으로 부족하다. 인류의 지도자가 될 결심을 해야 겨우 한 나라의 대통령 정도가 될 수 있다. 한 단계 더 높은 목표를 세워야 중간까지 겨우 바뀐다. 환경의 개입 때문이다.


    사건 위에 더 큰 사건이 있고 시스템 위에 더 큰 시스템이 있어 환경을 구성한다. 그러므로 일회적 성과에 만족하지 말고 대를 이어가며 도전해야 진정으로 바뀐다. 우리는 대개 세상이라는 무대의 객석에 앉은 관객이다. 보이는 대로 보면 된다. 눈치 보고 무리의 흐름을 따라가면 된다.


    농부는 자라는 대로 수확하면 되고 시민은 투표만 잘하면 된다. 바꾸려면 결심해야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100을 얻으려면 최소 200에서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에너지는 늘 좁혀지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사건은 크고 에너지는 작고 구조와 관계와 존재는 더 작다.


    작은 것을 얻으려면 큰 것을 바꿔야 한다. 근본을 놔두고 말단을 바꿔봐야 원위치 된다. 사건이 에너지와 구조와 관계를 거쳐 존재로 나타나는 시스템이다. 사건은 외부에서 복제되고 에너지는 내부에서 움직이며 구조는 의사결정하고 관계는 변화하고 존재는 마지막에 나타난다.


    인간은 말단의 존재를 보고 대응해 왔다. 1만 년 역사 동안 그래도 큰 무리는 없었다. 인류는 객석의 관객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환경에 반응하는 수동적 존재다. 그러나 양자역학의 시대에 와서 헷갈리게 된다. 뭔가 힘들어졌다. 과학이 발달한 끝에 영상까지 바꾸는데 이르렀다.


    그러자 존재는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고 모호해졌다. 인류는 표면의 존재를 관찰해 이면의 관계를 탐색하고 더 깊은 구조를 파악하고 내밀하게 움직이는 에너지를 포착하고 마침내 사건의 복제를 깨닫는다. 사건의 전모를 본 자가 운전석에 앉는다. 세상을 바꾸는 자의 지위를 얻는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19.08.28 (03:51:18)

"작은 것을 얻으려면 큰 것을 바꿔야 한다. 근본을 놔두고 말단을 바꿔봐야 원위치 된다."

- http://gujoron.com/xe/1118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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