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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없음 박근혜가 꼬리를 내렸군요. DJ 방문하고 한 소리 듣더니 정신이 들었는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본 게임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여야 간의 멱살잡이 대결이 아니라, 유신을 가운데 둔 범개혁세력과 조중동의 대결로 가겠지요. 트렌드의 싸움이죠. 우리는 정치에 무관심한 20대만 설득하면 됩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고 했습니다. 새 술에 해당하는 20대 젊은이들이, 친일과 유신의 낡은부대에 오염되고 싶지는 않을테니까요.
 
저도 오늘부터는 긴 호흡으로 연재 비슷한 것을 해보기로 합니다. 제가 지금부터 틈틈이 논하려는 것은 ‘대한민국의 비전’입니다.
 

다른 게시판에 있는 ‘낮은소리님’의 글을 인용합니다.
  

『프랑스에서 제일 큰 벼룩시장이 열리는 몽마르뜨 언덕 근처에서 만난 한 한국인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그분은 병인양요 때 조선을 침략한 어느 프랑스인 장교의 일기를 제게 소개했습니다.  
 
"식료품을 구하러 가까운 마을에 들어갔다. 전투 때문인지 마을은 매우 조용했고 나는 병사  두 사람을 이끌고 어느 집 안으로 들어섰다. 주방으로 보이는 조그마한 안쪽 구석을 뒤져보았으나 여기 저기를 살펴보아도 먹을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하나 눈에 뜨이는 것은 사람이 쓰는 방 가운데 하나에 책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이다. 다른 민가들도 차례로 들어가 보았다. 역시 먹을 것은 없었다. 허나 놀라운 것은 방 안에서 책을 보는 한 조선인이 있었다는 것이다.
  먹을 것이 없는데 어떻게 책을 볼수가 있나?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그때까지 조선을 미개한 나라로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먹을 것이 없는데도 책이 이렇게 많고, 또 책을 읽을 수 있다니! 이들은 도대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일까?"
 
외세의 침략과 기득권자들의 횡포에 유린 당하며 살아온 우리 민족입니다. 우리의 민족성이 원래는 결코 얕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민초 하나 하나조차도 자신을 닦으려 노력하였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굴복하지 않는 의지가 있었던 것입니다.  
 
중국의 옛 사서에 의하면 우리 민족은 유달리 노래와 춤을 사랑하는 민족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나라가 가무의 민족일 뿐 아니라 교양의 미덕을 갖추고자 노력하는 민족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앗! ‘민족성 이야기’ 나왔군요. 민족성타령 나오면 일단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급한 애국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있지요.
 
예컨대 역사기술에 있어서.. 한국인은 단결이 잘 안되는 민족이니, 혹은 어느 민족은 단결이 잘되는 민족이니 하며.. 혹은 유태인이 어떻고, 일본인이 어떻고, 독일인이 어떠니 하며.. 혹은 한국인은 ‘은근과 끈기의 민족’이니 하며.. 그 어떤 정신적인 측면에서 답을 찾으려 든다면 이는 잘못된 태도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편견과 고정관념의 온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타파해야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태도로 접근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비유하자면 이런 것입니다. 히딩크는 말했죠. 허구헌날 정신력 타령 일삼는 한국팀이야 말로 정신력이 약하더라고.. 왜인가?
 
일전에 제가 프로와 아마추어를 비교하는 글을 썼습니다만.. 정신력 운운은 얼치기 아마추어리즘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수년 전 태릉선수촌에서 있었던 일.. 조용히 명상으로 마음을 가다듬어야 하는 사격선수에게 담력훈련 시킨다며 오밤중에 산으로 강으로 끌고다녀서.. 참다 못한 선수가 선수촌을 뛰쳐나온 일이 있습니다. 사격선수는 손가락 끝이 떨리면 표적을 맞출 수 없거든요.
 
‘악으로 깡으로’.. 이건 정신력이 아니지요. 허상에 불과합니다. 프로는 실력으로 말합니다. 과학적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또 예를 들면..
 
고구려의 멸망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지도층이 단결되지 않았다거나 혹은 말갈족과 고구려 지배층 사이에 융화가 없었다거나, 혹은 연개소문의 쿠데타에 민심이 등을 돌렸다거나 혹은 연개소문의 아들들이 골육상쟁을 벌였다거나.. 이런 잡다한 부분에서 답을 찾는다면 비과학적인 태도입니다.
 
식민사관이거나 혹은 왕조시대의 발상입니다. 물론 그런 부분들도 하나의 역사적 배경은 됩니다. 그러나 본질은 따로 있지요. '국가' 개념에 얽매이지 말고 시야를 넓혀 '인류문명의 흐름'이라는 관점에서 보지 않으면 안됩니다.
 
수나라 문제는 대운하 사업을 일으켜 강남의 쌀을 화북으로 운송했습니다. 갑자기 식량이 증가한거죠. 이는 왕권의 강화를 의미합니다. 왕권이 강화되면 그 강화된 왕권을 노리는 정적들도 많아집니다.
 
왕권의 강화로 왕과 귀족들 사이에 힘의 평형이 무너진 거죠. 왕은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는 방법으로 새롭게 변화된 질서를 유지하려 합니다. 강력한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구실을 만들어 전쟁을 일으켜야 합니다. 고구려를 치는 거죠.
 
당나라 역시 대운하를 통해 막대한 쌀을 손에 넣고 정복사업을 펼칩니다. 이유는? 왕권과 귀족 사이의 권력 불균형으로 인한 정치적 긴장을 억누르기 위해서이죠. 그렇다면 고구려가 망한 근본적인 이유는?
 
당나라는 싸움마다 패배했지만 대운하사업으로 보급이 충분해졌기 때문에 한 두번의 원정이 실패해도 계속 공격하는 것입니다. 로마군단처럼 장기전으로 가는거죠.
 
로마가 강한 이유는? 아피아가도를 비롯한 도로 덕분에 언제든지 군대를 투입할 수 있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당나라는 대운하 덕분에 군량미가 확보되어 언제든지 군대를 투입할 수 있게 된거죠.
 
당나라는 로마군단처럼 진격해옵니다. 깨져도 계속 덤비는 거죠. 옛날 같으면 한두번 원정에 실패하면 포기하는데 말입니다. 결국 야금야금 고구려 영토를 먹어들어 오는 것이죠.
 
결론적으로 역사를 해설하되.. 민족성 운운하며 정신적 원인에서 찾으면 대부분 옳지 않은 것입니다. 지정학적 요인에서 찾으면 상당히 맞는 말입니다. 본질은 무엇인가? 인류문명의 진보입니다.  
 
역사를 움직이는 동력은 주로, 새로운 생산기술의 등장, 새로운 야금기술의 전파, 등자의 발명, 신무기의 등장, 말과 배의 이용, 도로와 운하의 개설, 인구의 증가, 새로운 농사법의 등장, 종교와 철학과 사상의 전파들입니다.
 
무엇인가? ‘악으로 깡으로’ 덤비겠다는.. 정신력으로 어찌 해보겠다는 아마추어여서 안됩니다. 실력으로 이겨보여야 합니다.
 
우리 민족의 저력은.. 은근과 끈기.. 용감무상.. 정(情)과 한(恨).. 이런 것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와 문화와, 전통이 담보하는 ‘지적 자원’, '지적 인프라'에서 에서 찾아야 합니다.
 
제가 말하려는 것은 ‘비전’입니다. ‘비전’은 정신력이나 민족성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문명에서 얻어지는 것이며 그 문명은 보편된 인류문명입니다. 인류의 문명사에서 한국이 점하고 있는 위치가 무엇인가입니다.  
 
로마는 아피아가도가 있었고 당나라는 대운하가 있었습니다. 힘은 거기에서 나왔지요. 이게 본질입니다. 로마의 정신력, 당나라의 민족성이 아니에요.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릭에게는 과연 무엇이 있는가? 제가 지금부터 논하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연암 박지원의 법고창신
“옛 것을 배우면서도 능히 변화할 수 있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면서도 충분히 법도에 맞을 수 있다.”
 
‘르네상스’는 서양에서 들어온 말이고 '법고창신(法古創新)'은 연암 박지원의 말입니다. 그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서구인들은 고대 희랍의 전성시대를 동경했고 동양인들은 요순시절을 동경했습니다.
 
서구의 르네상스는 근사한 아이디어로 알려져 있고, 동양의 요순타령은 고루하기 짝이 없는 퇴영적인 사상으로 인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문제가 있습니다.
 
요는 ‘이상주의’입니다. 서구에는 서구의 이상주의가 있고 우리에겐 우리의 이상주의가 있습니다. 그 이상주의가 과연 옳은가 혹은 이 시대에 맞는가를 논하기 이전에, 먼저 어설픈 형태이나마 이상주의가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마땅히 이상주의가 있어야 합니다. 잘못된 이상주의는 바른 이상주의로 수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원초적으로 이상주의가 없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하회에 계속)

 
덧글.. 이런 이야기가 재미없게 받아들여질 독자님도 있겠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틈나는 대로 계속하겠습니다.
 
제가 논하려는 것은 막연한 정신력이나 민족성의 강조가 아니라.. 로마의 아피아가도나, 당나라의 대운하처럼.. 구체적으로 실력을 담보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우리가 ‘창의력의 자원’, '지적인 인프라'로 가지고 있으며.. 우리의 비전을 거기서 찾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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