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read 12328 vote 0 2004.09.22 (13:19:03)

공중파 방송에서 거국적으로 미인대회를 개최했던 시절을 기억하십니까? 그것도 이제는 옛날 일이 되었습니다.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여권이 신장되었다구요?
 
우리가 규모를 줄이고 뒤로 감춘 미인대회를 중국이나 베트남 등 공산국가들에서는 뒤늦게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다고 합니다. 그 나라들은 여권이 도리어 축소되었다구요?
 
아니죠. 요는 ‘국가와 민족의 재발견’입니다. 예전에는 ‘국가’라는 개념이 사람들의 의식 속에 뿌리내리지 않았지요. 특히 유럽에서는 카톨릭의 지배로 해서 국가보다 종교가 더 큰 울타리로 생각되었습니다.
 
예컨대.. 18세기 독일이라면 신성로마제국 안에 많은 작은 도시국가들이 있었습니다. 기독교문화권이라는 결속력은 있었으나, 민족이 같은지 언어가 같은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채로 그냥 살았던 것입니다.
 
유럽에서 ‘민족국가’는 나폴레옹전쟁의 결과로 생겨난 것입니다. 무엇인가? 공중파에서 미인대회를 대대적으로 중계한 이면에는 국민들에게 국가의 존재를 상기시키고자 하는 권력측의 의도가 숨겨져 있다는 말입니다.
 
전국체전으로 각 지방의 존재를 알리고, ‘꽃피는 팔도강산’을 불러서 각 지방의 이름을 외우고, 그 지방들의 중심에 중앙정부를 놓는 방식으로.. 또 그 연장선 상에서 전국노래자랑과 전국미인대회가 열렸던 것입니다.
 
‘전국’이라는 말만 들어도 괜히 가슴 두근두근 하던 시절 ^^;;
 
옛 우리의 선조들은 향촌공동체에 소속감을 느낄 뿐 국가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 시절 우리 할아버지들은 일본과 한국을 비교하지 않았습니다. 노벨상을 꿈꾸지 않았고 월드컵도, 올림픽도 열망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집성촌인 아랫마실 강가들과 웃마실 최가들 사이의 갈등에 관심이 쏠려 있었던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미인대회는 향촌공동체를 지향하는 관심을 희석시키고 국가의 존재를 각성시키기 위한 국가주의 의식화의 목적으로 선전된 것입니다. 전국 미인대회가 그립습니까?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전근대가 있고, 근대가 있고, 탈근대가 있습니다. 전근대는 국가가 국민들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기 이전 시대입니다. 향촌공동체를 중심으로 봉건체제가 지배하고 있었지요.
 
근대는 향촌공동체가 해체되고, 국가가 국민의 중심에 자리하게 된 시대입니다.
 
전근대가 봉건적 피라미드 구조 안에서 숨도 못쉬고 살았던 억압의 시대였다면, 근대는 그러한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았지만.. 여전히 자유에 적응하지 못하고 영웅이나 지도자를 찾아 우르르 몰려다니는 시대입니다.
 
그렇게 숭배되던 영웅이 히틀러이고, 스탈린이고, 모택동이고, 김일성이고, 박정희였던 것입니다. 파시즘이죠.
 
자유를 얻기는 했으나 아직 자유를 향유할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하지는 못한 시대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군주에게 자유를 반납하고 무리지어 다니곤 했지요. 자발적인 독재..!
 
문명은 낱사람들의 자유를 향한 조용한 전진
진도나가야 합니다. 진정한 탈근대는 독립적인 개인들의 수평적인 연대가 지배하는 사회입니다. 문명의 발전은 본질에서 개인의 자유를 점차 확대해 가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주어진 자유에 충분히 적응하고 있는가입니다. 전근대에 우리는 노예였습니다. 근대는 주인님을 그리워하며 주인님의 곁을 맴도는 해방된 노예의 시대입니다.
 
좌파 일각에서 탈근대를 근대성에 대한 맹목적인 반발로 잘못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로 됩니다. 예컨대 진중권, 문부식, 임지현들의 ‘조선일보 독자들 부터 계몽한들 어떠리?’ 하는 오만한 태도 말입니다.
 
post-라는 접두어는 ‘후기’라고 번역되지만 원래는 ‘앞선다’는 뜻입니다. 내일은 뒷날이 아니라 앞날이지요. 근대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한걸음 더 앞질러가는 것입니다.
 
전근대가 신의 시대라면, 근대는 영웅의 시대이고, 탈근대는 인간의 시대입니다. 그 인간은 깨우친 독립적인 개인들입니다. 우르르 떼지어 몰려다니지 않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임지현, 문부식들을 저는 자유인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들은 서구추종 사대주의자들에 불과합니다. 그들에겐 박노자의 깨우침을 들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실로 정신이 자유롭지 못한 전근대인들입니다.
 
토착이론이 나와야 하고 토착사상이 정립되어야 합니다. 널리 인정된 인류 보편의 가치를 우리의 내부에서 다시 재발견해 낼 때 진정한 것이 얻어집니다. 아직은 수입품 양복에 짚신을 신은 꼴입니다.
 
자유라는 이름의 강을 건너라
큰 강이 하나 있습니다. 그 강의 이름은 ‘자유’입니다. 함부로 뛰어들었다가는 익사할 수 있습니다. 물을 두려워 하여 그 강을 건너지 못하는 사람이 전근대입니다.
 
강을 건너려고는 하지만, 큰 배에 승객으로 의존하는 사람, 노련하고 믿을만한 선장님을 찾아다니는 사람이 근대인입니다.
 
스스로 헤엄쳐서 그 강을 건널 수 있어야 합니다. 진인(眞人)은 무엇인가?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스스로 가야할 길을 알고 있는 ‘참사람’입니다.
 
왜 우리는 투쟁하는가? 우물 안의 개구리를 벗어나서, 저 강을 건너서, 세계라는 더 큰 공간으로 나아가기 위해서입니다. 보안법폐지는 세계라는 지구촌 공동체에 들어가는 신고식과 같은 것입니다.
 
‘참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본질에서 완전히 다른 종류의 사람입니다.
 
개혁이라고 말들은 합니다. 제도만 바뀐다고 변하지 않습니다. 룰만 바뀐다고 다되지 않습니다. 문화가 바뀌고, 사상이 바뀌고, 철학이 바뀌고, 가치관이 바뀌어야 진정한 변화가 이루어집니다.
 
당신은 자유가 두려운 전근대인입니까?
 
당신은 영웅을 숭배하고 독재자를 흠모하며 우르르 몰려다니기 좋아하는 근대인입니까?
 
당신은 새로운 인간입니까?
 
당신은 자유롭습니까?
 
당신은 노무현대통령의 탈권위주의에 두려움과 어색함, 그리고 더하여 고통을 느끼고 있지는 않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대통령을 욕합니다. 이유는? 화가 났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그들을 화나게 했을까요? ‘자유’가 그들을 화나게 한 것입니다. 그들에게 자유는 버림받음이고, 독립은 고립이고, 개인은 곧 소외됨입니다.
 
그들은 국가보안법이라는 ‘이동식 감옥’ 안에서만 마음이 편한 것입니다.
 
실제로 미국의 노예해방 직후 일부 노예들은 마음씨 좋은 백인주인을 섬기며 충성을 맹세했다고 합니다. 그때까지는 주인의 명령대로 파종했습니다. 면화를 심으라 하면 면화를 심었고 밀을 심으라면 밀을 심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주인님은 아무런 명령도 내려주지 않습니다. 무엇을 심어야 할지, 어떻게 팔아먹어야 할지 알수가 없습니다. 이 터무니 없는 자유, 그들은 자유에 치이고, 자유에 짓눌리고, 자유에 쓰러졌습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주어진 이 엄청난 자유를 감당할 자신이 있습니까?
 
신은 죽었다고 말한 사람은 니체입니다. 
초인도 죽었습니다.
사람마다 참사람으로 다시 깨어나지 않으면 안됩니다.
 
긴 칼 옆에 차고, 거문고 하나 걸머매고, 천하를 유랑하던 사나이 ‘백호 임제’가 생각납니다. 진정한 자유인의 표상입니다. 그이의 헌걸찬 기개가 그립습니다.
 
 
덧글.. 노하우 창간행사에 초청받지 못했으나 마음으로 축하를 전합니다. 아직은 뚜렷하지 않지만 노하우와 서프라이즈는 장기적으로 차별성을 드러낼 것입니다.  
 
우리는 긴 칼 옆에 차고 거문고를 뜯으며, 콧노래를 부르며 씩씩하게 저 강을 건너갈 것입니다. 우르르 몰려다니지 않을 것이지만 정상에서는 다 함께 만날 것입니다.
 
우리는 명망가 지도자가 없지만 북극성을 보고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저 강을 건너가는 무수한 사람들 틈에 익명의 군중으로 숨어 있을 것이지만 그 언젠가 다 함께 축배를 드는 날 그 무리들 틈에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 전여옥씨의 표절의혹 문제로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고소장을 전달받지 못해 대비를 않고 있던 중 변호사로 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추석연휴로 해서 변호사가 요청한 월말까지 시간이 없었습니다. 필진들과 상의하지 못하고 개미당 통장(http://cafe.daum.net/drkims)을 공개한 점에 제 불찰이 있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하나은행 529- 910005-86605 예금주 박미란 (개미당)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sort 조회
1266 이계진은 까불지 마라 김동렬 2005-01-04 13771
1265 이부영 천정배는 1회용 소모품이다 image 김동렬 2005-01-03 12929
1264 “인간쓰레기 박근혜” image 김동렬 2004-12-30 19728
1263 이해찬의 미소 image 김동렬 2004-12-28 13608
1262 위기의 우리당 image 김동렬 2004-12-27 13949
1261 보안법, 최후의 승부가 임박했다 image 김동렬 2004-12-23 13528
1260 "뭘하고 있어 싸움을 걸지 않고." image 김동렬 2004-12-22 13834
1259 누가 조선일보의 상투를 자를 것인가? 김동렬 2004-12-21 12465
1258 중앙은 변할 것인가? 김동렬 2004-12-18 12336
1257 홍석현의 출세신공 김동렬 2004-12-17 15170
1256 강의석군의 서울대 법대 진학을 축하하며 김동렬 2004-12-16 14921
1255 박근혜간첩은 안녕하신가? 김동렬 2004-12-15 13783
1254 박근혜 깡패의 화끈한 신고식 김동렬 2004-12-14 13249
1253 나가 죽어라, 열우당. 스피릿 2004-12-13 15063
1252 짐승의 이름들 김동렬 2004-12-11 13792
1251 자이툰은 씁쓸하지 않다 김동렬 2004-12-09 13411
1250 대통령의 아르빌방문 김동렬 2004-12-08 16069
1249 천정배, 살아서는 못내려온다 image 김동렬 2004-12-08 13747
1248 혼자서도 잘 노는 조선일보 김동렬 2004-12-06 12717
1247 돌아온 강금실 김동렬 2004-12-03 13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