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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2408 vote 0 2004.09.09 (22:27:07)

공화정의 아버지 키케로와 정복자 카이사르를 비교한다면 어떨까? 보는 관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겠지만 역사에서의 승자는 카이사르이지 싶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키케로는 그리이스어가 지배하던 시대에 최초로 라틴문학을 창시한 사람이다. 정치가로서도 집정관에 오르는 등 카이사르의 라이벌로 손색이 없는 활약을 펼쳤다.
 
불행은 카이사르와 동시대에 태어났다는 점이다. 그가 처음부터 카이사르에 적대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의 의지와 무관하게 시대가 그를 카이사르의 반대편으로 이끈 것이다.  
 
왜? 평형의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 카이사르라는 출중한 영웅의 지나친 무게감이 로마 공화정의 기틀을 뿌리째 흔들어놓을 정도가 된 것이다.  
 
역사의 내재적인 자기연속성에 따른 평형의 원리가 작동하여 키케로의 의지와 무관하게 역사가 또 다른 영웅 키케로를 카이사르의 반대편으로 밀고간 것이다.
 
키케로와 카이사르 두 사람의 힘이 평형을 이룬 때 로마는 번영했다. 브루투스들의 배신에 의해 카이사르가 죽자 키케로 역시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카이사르의 부재에 따른 공허감이 평형이탈의 원리로 작용하여 키케로를 해친 것이다. 한 영웅의 죽음이 다른 영웅까지 죽게 만들었다.
 
카이사르는 전쟁을 잘한다는 점을 빼고는 사실이지 별로 내놓을 것이 없다.(의도적인 겸손) 귀족들과 지식인들은 키케로를 좋아했고 민중은 카이사르를 추종했다.
 
무엇인가? 카이사르라는 한 인물이 위대했던 것이 아니라.. 역사가 일방적으로 카이사르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왜? 도무지 역사가 무엇이길래?
 
원칙과 상식 그리고 개혁
개혁이란 무엇인가? 노무현의 원칙과 상식은 또한 무엇인가? ‘술빛잔향’님의 대문글도 경청할만 하지만 나는 아니라고 본다. 그것은 보수정치인 키케로의 개혁에 불과하다.
 
필자는 일전에 ‘노무현주의’를 언급한 바 있다. 들어볼만한 반론이 있었다. 노무현은 어떤 ‘주의’를 밀고가는 사람이 아니라, 단지 원칙과 상식에 입각하여 공정한 룰을 만드는 사람일 뿐이라는 생각.
 
노무현이 선수가 아닌 심판? 천만에!
 
나는 아니라고 본다. 노무현의 얼굴을 보지 말고 노무현의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는 지점을 보라. 노무현의 인격, 스타일, 노무현의 말.. 모두 잊으시라. 그래야만 진짜가 보인다.
 
키케로는 안으로 공화정의 내실을 다졌고 카이사르는 밖으로 세계를 경영했다. 카이사르의 경영이 있었기에 키케로의 내실이 가능했고, 키케로의 단속이 있었기에 로마가 카이사르의 원정을 뒷받침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때 둘은 궁합이 잘맞는 콤비였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이끌어가는 개혁의 방향은 키케로의 내실이 아니라 카이사르의 원정이다. 왜? 시대가 우리에게 그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역사가 우리의 지친 등을 떠밀고 있다는 말이다.
 
운명적으로 키케로는 보수정치인이다. 마찬가지로 ‘원칙과 상식’의 지나친 강조 역시 나는 노무현진영 일각의 보수적인 태도로 본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대선직전 노무현 캠프에서 ‘원칙과 상식’을 강조한 것은 우파를 안심시키고 중도파를 끌어들이기 위한 목적에서였다고 본다.
 
노무현의 마음 속 깊은 곳의 진심은 아직 말해지지 않았다고 본다. 노무현은 결코 고아가 아니다. 노무현의 자궁은 있다. 지켜가야 할 뿌리가 있다. 역사가 노무현을 만들었다.
 
노무현 이전에도 노무현들이 있었고 노무현 이후에도 노무현들이 온다. 그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알아채야 한다. 고작 이 정도를 이루기 위하여 우리가 이 거친 행군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더 나아가야 한다.
 
소극적으로 적들의 반칙을 막고 시장을 지배하는 공정한 룰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세상의 변화를 반영하기 위해서이다. 세상이 먼저 변하여 있고 우리는 그 변화를 정치에 반영하려는 것이다.
 
진도나가야 한다.
 
당시 로마는 하나의 작은 도시국가였다. 공화정의 안정된 질서가 로마시민의 안락을 보장했다. 거기서 더 바랄 것이 없었다. 그런데 문제아(?) 카이사르가 기어이 사고를 친다. 전쟁을 획책한 것이다.
 
가만 있어도 좋은데.. 지금 이대로라도 더 바랄 나위가 없는데.. 지금 이 상황이 딱 좋은데.. 카이사르는 무지한 민중을 선동하여 더 진도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위험하다.
 
외풍이 불어온다. 원로원이 어디에 붙었는지도 모르는 게르만인 부족장들이 원로원의원이 되어 로마시민들에게 원로원 가는 길을 묻는 황당한 일이 일어난다.
 
로마의 질서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이것이 카이사르의 비전 곧 ‘로마의 로마’가 아닌 ‘세계의 로마’를 위한 전진이다. 로마가 하나의 도시가 아닌 곧 세계가 된 것이다.
 
지금 우리의 개혁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바깥으로 더 뻗어나갈 생각이 없다면, 통일을 이루고 인류의 보편가치를 지향하는 세계의 리더로 부상할 생각이 없다면, 이 상태가 만족할만 하다면 굳이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는 모험을 할 이유가 없다.
 
원칙과 상식도 중요하고 공정한 룰도 중요하다. 허나 이 정도로는 겨우 지식인을 동원할 수 있을 뿐 기층민중을 동원할 수는 없다. 대중을 소외시키고 있다는 사실 알아야 한다.
 
노하우21의 탄생을 축하하면서
노하우21이 탄생한 모양이다. 축하할 일이다. 서프라이즈와는 아마 가는 길이 조금은 달라질 것이다. 나의 견해를 말하면 서프라이즈는 더 카이사르의 대중성을 획득해야 한다고 본다.
 
먹물들의 ‘본부놀이’ 사이트가 되어서 안된다. 키케로가 되어서 안된다는 말이다.
 
민노당 노는 꼴을 보라! 당원들 중에 누가 성희롱을 했니 안했느니 하면서 자기들끼리 삿대질이나 하면서 지루한 소모전을 벌이고 있다. 이런 식으로는 안된다.
 
일군을 일으켜 동쪽으로 쳐들어가지 않으면 안된다. 같은 우리편끼리 누가 더 양반이니 혹은 누가 더 먹물이 진하니 하며 소모적인 논쟁을 벌여서 안된다.
 
물론 우리에겐 키케로도 필요하다. 또 따지자면 카이사르 보다 키케로가 더 양반이다. 그러나 키케로의 역할은 보수적인(?) 진보누리에 맡기고, 더 보수적인(?) 한겨레에 맡기고, 우리는 역사의 편에서 더 젊고 더 진보적이어야 한다.
 
무엇이 진보인가? 예서 머무르지 않고 일군을 일으켜 흙먼지를 날리며 동쪽으로 쳐들어가는 것이다. 바깥에서 영토라는 자원을 획득하는 일이다. 그것이 역사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진보이다.(자칭 진보주의자들이 말하는 사이비 진보 말고)
 
한나라당을 치고, 더 나아가 통일을 이루고, 세계 무대에 주류로 데뷔하여 우리의 가치로 천하를 경영하는 것이다. 그럴 수 있다고 본다.
 
이에 박노자의 한마디를 소개한다.
 
“서구중심의 세계는 우리가 지나가게 된 하나의 단계이다. 인류역사의 종점도 아니고 목적도 아니다. ‘이상적인 서양’이라는 그림을 말끔히 지워버릴 때 비로소 진정한 세계평등의 길을 향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글은 서구숭배 사대주의자인 진중권류 신보수쟁이들이 읽어야 한다. 필자가 진중권류 자칭 진보를 보수로 보는 이유는 그들의 머리속이 온통 키케로적 발상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나쁘다는건 아니다. 키케로가 있었으니 카이사르가 있었다. 범개혁진영에 진중권도 필요하다. 그러나 역사의 입장에서 볼 때 그는 운명적으로 보수다.
 
무엇이 보수인가? 감시자다. 도덕의 감시자! 윤리의 감시자. 인권의 감시자. 현상을 유지하기 위하여 현상을 교란하는 카이사르들의 출현을 감시하는 감시자.
 
그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심판관을 자처하며 완장을 차고 생기있게 활동하는 민중들을 향해 즐겨 옐로카드와 레드카드를 내민다.
 
그들은 서프라이즈의 거칠음에 대해서도 옐로카드를 내민다. 키케로의 견제가 카이사르에게 보약이 되었다면 그들의 견제가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극소수 먹물의 역할일 뿐! 장강의 물이 흐르듯 도도한 흐름으로 가는 대중이 가는 길이 아니다. 대중은 어디까지나 키케로가 아닌 카이사르를 쫓는다.
 
모두들 '안'을 바라보고 있을 때 카이사르만이 유일하게 '바깥'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끼리 우물 안의 개구리로 아웅다웅 하지 말고 더 너른 바깥세계로 눈을 돌려야 한다!
 
이상적인 한국, 이상적인 동양, ‘동양중심의 세계’ '서구중심의 세계'와 평형을 이루는 그날을 향하여 7000만 겨레붙이를 이끌고 역사의 거보를 지금 내딛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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