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read 17193 vote 0 2005.09.06 (18:14:49)

 


퇴계는 넘치나 율곡은 없다


퇴계는 풍기군수 등 말직을 전전하다가 곧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조정이 부르면 마지못해 응했다가 곧 핑계를 대고 물러났다. 그러기를 무수히 반복하였다.


말년에 있었던 퇴계의 큰 벼슬은 대개 문서상으로만 이루어진 명목상의 것이다.


퇴계는 조정에서 별로 한 일이 없지만 그의 존재 자체가 정치에 큰 영향을 미쳤다. 훗날 퇴계가 키운 유림이 조정을 장악했음은 물론이다.


반면 율곡은 중앙관서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선조를 다그쳐 무수한 개혁안을 내놓았다. 불행하게도 그의 개혁안은 대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여기서 대비되는 두 인물의 정치스타일. 퇴계는 벼슬을 마다하고 물러남으로서 할 말을 했고, 율곡은 적극적으로 개혁안을 제시하고 임금을 가르쳤다.


어느 쪽이 더 나을까? 필자의 견해로는 둘 다 좋지만 율곡이 더 옳다. 참여지성의 전범은 퇴계가 아니라 율곡에 있다.


비록 선조가 율곡의 개혁안을 다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율곡이 끊임없이 조정에 긴장을 불어넣었기에 그나마 조선이 망하지 않고 500년간 해먹은 것이다.


오늘날 지식인 중에 퇴계는 많고 율곡은 없다. 물러나서 뒷말하는 자는 많고 나서서 개혁안을 제시하는 이는 없다.


완고한 원칙가는 많고 유연한 협상가는 없다. 왜인가? 율곡의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대단한 스트레스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긴장의 연속이다.


퇴계는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을 지고 자신을 반성하며 물러났다. 율곡은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한걸음 먼저 내다보고 문제의 발생지점을 폭파하였다.


정치는 스트레스 그 자체다. 정치의 스트레스를 잘도 견뎌내는 뻔뻔스러운 인간들은 죄 악당이고, 그 스트레스를 못견뎌 하는 착한 인간들은 퇴계처럼 도망치고 만다.


퇴계는 쉽고 율곡은 어려운 것이다. 본래 그렇다. 정치 신경쓰다 위장병 걸려버린 필자 역시 퇴계처럼 도망치고만 싶으니.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1451 삼성이 승리한 이유. 김동렬 2005-10-19 12625
1450 ‘박근혜 아웃 딴나라 분열’ 김동렬 2005-10-19 13782
1449 정치 어떻게 예측하는가? 김동렬 2005-10-18 12123
1448 조선, 박근혜를 치다 김동렬 2005-10-18 14984
1447 한나라당이 망하는 이유. 김동렬 2005-10-15 14722
1446 나의 슬픔 김동렬 2005-10-15 16151
1445 검사들이 반발하는 이유..! 김동렬 2005-10-15 14249
1444 유시민은 솔직한가? 김동렬 2005-10-13 10832
1443 유시민, 진중권은 대통령께 배우라. 김동렬 2005-10-12 13716
1442 노혜경 대표일꾼의 당선 소식을 반기며 김동렬 2005-10-10 13689
1441 인지혁명은 가능한가? 김동렬 2005-10-06 14865
1440 경향 여론조사의 의미 김동렬 2005-10-05 12174
1439 우리 어디로 가야하는가? 김동렬 2005-10-05 17796
1438 서프는 더 두고봐야겠습니다. 김동렬 2005-10-04 15816
1437 여담으로 쓰는 글 김동렬 2005-10-04 14953
1436 연정라운드 중간결산 김동렬 2005-10-03 15122
1435 노혜경님 미안합니다. 김동렬 2005-09-30 13958
1434 노혜경을 지지한다. 김동렬 2005-09-29 13549
1433 유시민이 졌다. 2005-09-21 14420
1432 시간이 걸리지만 결국은 이기는 노무현식 정치 2005-09-19 132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