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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2122 vote 0 2005.10.18 (15:25:40)

정치예측은 매우 어렵다. 고수와 하수의 차이는 참으로 크다. 정치판 상황을 제대로 읽어낼 수 있는 최고수는 대한민국 안에 열명 쯤 있다. 그 열 사람 중에 한사람은 노무현이다.

이런 질문이 있었다.

“충분한 데이터가 확보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듭 오판이 일어나는 이유는?”

데이터의 분석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평면적인 분석으로 안 되고 입체적인 분석을 해야 한다. 그에 앞서 먼저 ‘입체적인 분석틀’을 개발해야 한다. 그 분석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열 명 이하다.

문제는 그 열명 중 하나가 실제로 정치판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정치예측은 빗나갈 확률이 높은 것이다.

입체적인 분석이란 ‘동그라미’를 찾아내는 일이다.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이들은 관계라는 사슬에 의해 묶여 있지만, 잘 찾아보면 머리와 꼬리가 있다. 중심이 있고 변이 있다. 뿌리가 있고 줄기가 있고 가지가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사건들 속에서 이 ‘동그라미’들을 분리해내는 데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먼저 드라마의 법칙을 알아야 한다. 어떤 사건에는 반드시 기승전결로 이루어지는 1사이클의 전개과정이 있고, 이 과정에는 반드시 하나 이상의 반전이 숨어 있다. 즉 반전되는 것이다.

그 반전의 타이밍을 정확히 짚어내지 못하면 필연 오판할 수 밖에 없다. 또 설사 반전의 타이밍을 정확히 알아낸다 해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왜냐하면 어떤 대책을 세워서 개입하는 순간, 그 개입이 빌미가 되어 도리어 반전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자신이 상황을 완벽히 장악하여야 한다. 자신이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 반전의 타이밍을 자신이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경우에도 예측은 빗나가게 되어 있다. 대책을 세울수록 더욱 빗나가게 되어 있다.

이는 개울 속의 미꾸라지와 같다. 그 미꾸라지를 잡으려 들수록 더욱 미꾸라지를 찾을 수 없다. 당신이 그 미꾸라지를 잡으려 하는 순간 미꾸라지는 흙탕물을 일으킨다. 흙탕물이 시야를 가려버리기 때문에 예측하려들수록 예측은 빗나갈 수 밖에 없다.  

이 상황에서 그 반전과 개입의 1단위가 곧 동그라미다. 정치판에는 무수한 동그라미들이 숨어 있다.

또 알아야 할 사실은 사건의 규모다. 동그라미에는 임계수치가 있다. 그 임계에 도달하였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전개의 양상은 180도로 달라진다. 임계에 도달하면 사건은 기승전결의 내부구조를 갖추어 하나의 동그라미를 이룬다. 임계에 도달하지 않으면 흐지부지 되어 동그라미는 사라져 버린다.

이 부분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의도적으로 사건에 개입하여 임계치 이하로 끌어내리거나 아니면 임계치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방법을 써야 한다.

결론적으로 충분한 데이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판이 일어나는 이유는 사건의 드라마적인 속성 때문이다. 곧 동그라미 때문이다.

드라마에는 기승전결이 있고 이 과정에는 반드시 반전이 들어있다. 기승전결의 1사이클이 하나의 동그라미를 이룬다. 사건이 드라마화 하여 동그라미를 이루는가는 임계가 결정한다. 그 임계수치에의 도달여부에 따라 사건의 전개는 완전히 달라진다.

예측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첫째 사건이 드라마화 되는 지점을 포착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의도적으로 사건에 개입하여 임계에 도달하게 유도하거나 혹은 도달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초등학교 교실에서 싸움이 일어났다고 치자. 어린이들은 누가 잘못했는지 선생님이 판정해 주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실패다. 이때 어린이들은 중대한 몇 가지 착각에 빠져 있다.

첫째 옳고 그름은 오로지 누가 먼저 원인제공을 했는지에 따라 판정되는 법이며 한쪽이 먼저 원인제공을 했을 때 그에 대한 상대편의 응징은 무조건 정당하다는 착각이다.

저쪽에서 1의 잘못을 했더라도 이쪽에서 100의 응징이 가능하다는 잘못된 판단을 어린이들은 하는 것이다. 어리기 때문이다.

둘째 선생님은 사건의 당사자가 아니며 단지 재판관에 불과하다는 순진한 생각이다. 틀렸다. 선생님은 사건의 당사자가 아니면 개입하지 않는다. 즉 판정하지 않는다. 즉 선생님은 사건의 당사자가 아니지만 판정을 요구하면 즉시 개입하여 자신을 당사자로 만들어 버리는 방법을 쓴다.

선생님은 말한다. “이 수업은 내 수업이야. 너희들은 내 반에서 문제를 일으켰어. 너희들은 나의 신성한 교권의 다스림을 받아야 해.”

즉 심판관이어야 할 선생님이 졸지에 원고로 포지셔닝을 바꿔버리는 것이다. 어린이들은 누가 먼저 싸움을 걸었는지와 상관없이 피고가 되어 버린다. 심지어는 싸움을 구경한 어린이들도 도매금으로 피고로 몰려 버린다.

어린이들이 싸움을 하는 이유는 지켜보는 시선들 때문이다. 그러므로 싸움을 말리지 않은 모두에게 잘못이 있다. 선생님은 그 사건과 무관하다고 믿고 있는 급우 모두를 피고로 묶어 버린다.

선생님은 무조건 징벌한다. “선생님 저 애가 먼저 때렸는데요?” 이런 항의는 묵살된다. 이때 어린이들이 구제받는 방법은 하나 뿐이다. 순순히 잘못을 시인하는 것이다. 잘했건 잘못했건 상관이 없다. 누가 원인제공을 했는지와도 무관하다. 사건은 어린이들이 예기치 못한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한다.

이때 어린이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순순히 시인하면 선생님은 용서라는 은혜를 베푼다. 무엇인가? 선생님의 목적은 처음부터 용서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용서하기 위해서는 먼저 징벌해야 한다. 먼저 혼을 낸 다음에 포용하는 것이다.

이는 선생님의 드라마다. 선생님은 대번에 상황을 장악하고 주도권을 행사한다. 사건과 무관한 자신을 당사자로 만들어 버리고 스스로 원고를 자처한 다음 가해자와, 피해자, 목격자 전부를 피고로 만들어 버린다.

선생님은 먼저 징벌한 후 나중 용서한다. 감동의 드라마를 만들어 낸다.

정치도 이와 유사하다. 여기서 선생님의 역할은 유권자다. 유권자는 일단 자신이 개입할 근거를 만들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잘못을 저질러야 한다. 즉 강정구가 잘했건 잘못했건 일단 잘못한 것으로 규정한다. 왜? 그래야만 자신이 개입할 근거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먼저 징벌하고 나중 용서한다. 즉 유권자들은 강교수를 징벌하기를 원하지만 동시에 용서하기를 원하며 수순으로 말하면 먼저 징벌하고 상대가 숙이면 뒤에 용서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는 유권자의 드라마다. 이 과정에는 반전이 숨어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정치예측이 빗나가는 이유는 그 반전 때문이다. 유권자는 징벌과 용서를 동시에 원하며 징벌하는 이유는 용서할 자격을 얻기 위해서다.

이 패턴은 반복된다. 이 드라마의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는 한 정치예측은 언제나 빗나갈 수 밖에 없다.

검찰과 천장관의 대결에도 드라마가 숨어 있다. 천장관이 레이스를 했으나 검찰이 눈치를 긁었는지 죽어버렸다. 쪼매 아깝다. 박근혜는 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엉뚱한 데서 레이스를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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