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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2628 vote 0 2005.11.21 (16:24:38)

관리직들은 파업하지 않는다. 특히 부장 이상 간부급 관리직이 파업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 왜인가? 파업을 하지 않고도 회사를 엿먹이는 수단이 있기 때문이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회사의 이익을 가로채는 것이다.

부패와 비리는 공무원들만 저지르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부패한 집단 중 하나는 민간기업이다. 그들은 회사의 기밀을 경쟁사로 빼돌리는가 하면 하청업체로부터 상납을 받아 착복하기도 한다.

심한 경우 회사의 중요한 자산인 고급인력을 경쟁사로 빼돌리기도 하는데 그 방법은 간단하다. 사표를 내고 경쟁사로 회사를 옮겨버리는 것이다. 무엇인가? 간부급 관리직은 회사의 횡포에 대항할 수단을 가지고 있다는 거다.

마찬가지로 회사 역시 관리직을 제압할 수단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승진을 시켜주지 않는 것이다. 즉 간부급 관리직의 경우 회사와 노동자가 서로 상대방의 급소를 움켜쥐고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파업할 이유가 없다.  

좋은 회사라면 관리직을 푸대접 할수록 회사의 손실이 크다. 우수한 인력을 놓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모든 회사가 그러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순조롭게 성장하고 있는 대부분의 대기업은 그러하다.   

노동자는? 회사의 횡포에 대항할 수단이 없다. 회사가 노동자를 푸대접 할수록 회사의 이익이 크다. 그러므로 노조를 결성하는 수 밖에 없다. 이는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이다.

정치의 논리와 권력의 생리

필자는 정치의 논리와 권력의 생리의 차이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한다. 정치는 의(義)를 다투지만 권력은 이(理)를 다툰다. 둘은 다르다. 권력의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한 사람은 마키아벨리다. 권력과 정치를 혼동하는 사람들이 그를 비난하고 있지만 바보다. 권력과 정치는 원래부터 분야가 다른 거다.

대부분의 오판은 권력의 생리와 정치의 논리를 혼동하는 데서 발생한다. 정치는 간부급 관리직과 사용자와 같이 서로를 견제할 수단을 가진 즉 50 대 50으로 대등한 힘의 구조에서 성립하고, 권력은 노동자와 사용자의 대립과 같이 한쪽이 일방적으로 지배하는 비대칭 구조에서 성립한다.

그러므로 사회는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먼저 비대칭구조를 대칭구조로 바꿔놓으려 한다. 즉 정치게임 이전에 권력게임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어야 정치게임으로 넘어갈 수 있다. 대부분 권력의 문제에서 발목이 잡혀 더 이상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마는 것이다.

예컨대 2003년의 부안싸움을 떠올릴 수 있다. 필자가 부안싸움을 역사적 의의를 가진 중요한 사건으로 판단하는 이유는 ‘권력의 부재’라는 우리 사회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율스님의 투쟁도 마찬가지다.

권력이 있는가? 없다. 정통성 있는 권력은 역사의 결과로 만들어지는 것이지 법률과 제도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시민사회가 부재한 상태에서 진정한 권력의 성립은 불가능하다. 2003년 대한민국 사회에 진정한 권력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부안싸움은 이 중대한 사실을 노출시켰다.

정치게임은 의(義)를 다투므로 논리와, 대화와, 설득과, 타협과 민주주의가 중요하다. 이 경우 신뢰가 문제로 된다. 신뢰만 쌓으면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없다. 좋은 정치는 신뢰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정치다.

권력게임은 비대칭구조이므로 이를 대칭구조로 전환하는 문제가 중요하다. 이 경우 논리도, 대화도, 설득도, 타협도, 민주주의도 의미없다. 애초에 해당사항이 아니다. 그렇다면? 쌍방간에 힘의 평형을 회복하는 일이 문제로 된다.

무엇인가? 부안군민은 애초에 핵폐기물의 위험성이 논의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분들을 설득한다거나, 혹은 그분들과 대화한다거나 하는 것은 무의미할 뿐이다. 다수결? 웃기고 있네. 민주주의? 얼씨구! 미쳤나!

문제는 핵이 아니라 정부와 부안군민 사이에 힘의 평형이 비대칭구조였다는 사실이다. 이 경우 시민이 할 일은 먼저 조직을 결성하는 것이다. 단체를 결성하고 내적인 역량을 키우는 일이다. 그것이 가능한가이다.

민도가 낮으면 그것이 불가능하다. 건강한 시민사회가 부재한 상태에서 시민의 권력은 성립이 불가능하다. 단체는 와해되고 조직은 붕괴한다. 힘의 평형은 원초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경우 민주주의도 불가능하다.

부안싸움의 의의는 단체가 결성되고 조직이 꾸려지며 투쟁을 통하여 마침내 힘의 평형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권력게임의 결과 이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가능한 형태로 시민사회의 성격이 전환되었음을 의미한다.

시민사회가 시민의 권력을 탄생시킨다

어떤 사태가 진행될 때 그것이 정치게임인지 아니면 권력게임인지를 진작에 판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모든 오판이 거기서 빚어지기 때문이다.

권력은 기계와도 같다. 최초에 세팅을 잘해놓아야지 중간에 수선한다든가 하는 경우란 없다. 민주주의는 점진적으로 발전하지만 권력은 처음부터 바르게 세팅해놓고 가는 것이므로 대화도 타협도 존재하지 않는다.

즉 권력은 오류가 발견되면 그 권력 자체를 완전히 폐기하고 다른 권력으로 대체할 뿐 중간에 오류시정의 피드백 장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화도 타협도 없다. 다만 초기 세팅을 잘해놓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우리당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도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실은 권력의 문제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는 사항들이 실은 2002년에 거론된 것이다. 이건 처음부터 답이 존재하지 않는다.(예컨대 우리당 열린정책연구원의 무슨 보고서 따위가 말하는 바.)

무엇인가? 지금 우리나라는 ‘시민의 권력’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에 선행하는 문제이다. 먼저 ‘시민사회’가 성립하고 그 다음 ‘시민의 권력’이 창출되는 것이며 민주주의는 그 이후의 문제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시민의 권력을 창출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권력의 부재 사실을 노출시킨다. 없는 권력을 있는 것처럼 위장해놓고 뒷거래의 정치술수로 무마하지 않는다. 정면으로 짚고 넘어가는 것이다.

그냥 정치를 잘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들이 말하는 잘한 정치란 무엇일까? 정치자금이라는 벌집을 공연히 건드리지 않을 것, 국정원의 도청이라는 긁어 부스럼을 건드려 덧나게 하지 않을것, 부패관행이라는 복마전을 열지 않을 것, 만사 조용하게 넘어갈 것, 그리하여 시민이 잠든 사이에 쥐도 새도 모르게 개혁을 이루어 놓을 것.. 이런 것이다. 불가능한 임무다.

시민이 잠들면 시민사회는 성숙하지 않는다. 시민사회가 성숙하지 않으면 시민의 권력은 창출되지 않는다. 부안싸움이 증명하듯이 시민의 권력이 부재한 상태에서 법과 제도의 의한 질서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문제는 질서이다. 그 질서가 오로지 법률과 제도에서 나온다고 믿는 자는 노예의 정신을 소유한 자다. 질서는 첫째 권력의 창출에 관한 질서, 두 번째 권력의 행사에 관한 질서이다. 제대로 된 권력의 창출을 위해서는 성숙한 시민사회를 필요로 하고 정당한 권력의 행사를 위해서는 민주주의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막연히 민주주의를 말할 뿐, 그 기본전제라 할 시민사회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또 성숙한 시민사회의 내적인 역량이라 할 시민의 권력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율스팀의 투쟁이 소중하고 부안싸움의 역사적 의의가 큰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내적인 역량을 축적하여 시민의 권력을 만들어 가는 바른 절차이기 때문이다.

권력은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것이다. 밑에서부터 차근차근 땅을 다지고 주춧돌을 놓아야 한다. 법이나 제도란 무력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허상에 불과하다. 법과 제도가 평화를 가져다 줄 리는 없다.

법률과 제도는 제국주의 시대의 외교문서와 같은 것이다. 구한말에 '만국공법 불여대포일성(萬國公法 不如大砲一聲)'이라는 말이 있었다. 수천권의 만국공법책이 한 문의 대포에도 미치지 못하더라는 말이다.

법률과 제도란 신기루에 불과하다. 허상을 버리고 진상을 깨우쳐야 한다. 시민사회가 성숙하지 않으면, 그리하여 시민의 권력이 창출되지 않으면 그 어떤 뛰어난 정치가가 온다고 해도 정치를 잘 할래야 잘 할 수가 없게 되어있다.

국민을 속이고 사술을 써서 부패와 비리 관행이라는 벌집을 건드리지 않고 잘 무마하면 뛰어난 정치가라는 평을 듣겠지만 그것은 후손들에게 우환거리를 물려주는 즉 비겁한 행위가 된다.

조중동은 권력이 존재한다고 전제한다. 대통령을 권력자로 칭한다. 권력이 있는데도 왜 정치를 못하느냐고 비아냥 댄다. 거짓말이다. 권력은 원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빈 손으로 시작했다. 속임수를 써서 권력이 있는 척 위장하지 않았다. 검찰정치를 하는 일도 없었고 국정원을 시켜 도청을 하는 일도 없었다.

성숙한 시민사회에 의하여 시민의 권력이 탄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권력은 지금부터 우리가 만들어가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개혁이다.

2년 후 언론은 어떻게 평가할까? 노무현 대통령이 실패했다고 말하는 자도 많을 것이다. 20년 후 역사는 어떻게 평가할까? 노무현 대통령이 대한민국에 존재하지 않았던 시민의 권력을 최초로 만들었다고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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