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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3350 vote 0 2005.11.19 (17:15:42)

제목 없음

겉으로 반대하면서도 상대방의 전술을 열심히 베끼는 경우는 흔히 있다. 히틀러의 전술은 상당부분 레닌과 스탈린의 것을 베낀 것이다. 박정희의 새마을 운동이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김일성의 천리마운동과 사회주의권의 경제개발계획을 충실히 모방한 것이다.

그들은 노무현을 연구하고 노사모의 성공사례를 베끼려 한다. 딴나라 알바들은 오늘도 열심히 노사모와 서프의 성공사례를 분석하고 있다. 뉴라이트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반면 추종자들이다.

그렇다. 이 모든 것이 노무현 한 사람 때문이다. 뉴라이트? 그들은 반면 광노빠들이다.  

순수가 아니라 순진한 거다
과거 민주화 투쟁을 했던 선배 세대들은 순수한 편이었다. 그들 중에서 훗날 어떤 형태로든 보상받을 것을 기대한 사람은 없다시피 했다. 기어이 민주화가 이루어졌다. 그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서 생업에 종사하게 되었다.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아뿔사! 오류였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세상이 그리 간단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순수가 아니라 순진한 거다. 한 번 민주화가 되었다고 다 되는 일이 아니다.

기득권 세력의 반동을 막으려면, 민주화 이후의 앙시앙 레짐에 대비해서 한 번 모인 군대를 해산하지 말아야 했다. 악착같이 달려들어 정권을 잡아야 했다. 그런데! 노무현이다. 무엇인가?

진실로 말하면.. 동탁을 토벌한 16로 제후는 다들 딴 마음을 먹고 있었던 것이다. 노무현이 그들의 딴마음을 드러내었다. 삼국지연의에 비유하는 것이 적절하지는 않다. 삼국지의 철학이 유교주의에 기초한 수구적인 발상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패러다임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어리석게도 쇠퇴한 한실의 부흥을 주장했던 것이다.

무엇인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했다. 유비 등은 한실을 부흥할 것이 아니라 한실을 타도하고 새 왕조 건설의 기치를 들었어야 했다. 그러나 16로 제후는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속으로 딴마음을 가졌으면서도, 겉으로 한실의 부흥이라는 거짓 명분을 내세웠기 때문에, 결국은 동탁을 치지도 못하고 흐지부지 되고 말았던 것이다.

또 비유하자면.. 동학운동이 실패한 이유 중의 하나는 처음부터 정권을 담당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조정의 간신배들을 혼내주고 토왜들을 척결한 다음, 다시 시골로 돌아가서 생업에 종사하겠다는 소박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틀렸다.

무엇이 문제인가? 500년 간 길들여진 왕조시대의 권위주의 발상을 떨쳐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정치란 것은 저 높은 곳의 위대한 분들이 하는 거고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이 손을 대서는 안 된다는 순진한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그 생각이 틀렸다. 간신배를 혼내주고 임금님께 충성하겠다는 생각이 틀렸다. 그대로 밀어붙여서 조정을 타도하고 왕조를 끝장내고, 개벽의 새 세상을 열어야 했다. 유감스럽게도 동학운동의 지도부에는 그런 영웅이 없었다.

“간신배를 제거하고 임금님께 충성한 다음 다시 시골로 돌아가자.”

여기서 동학의 한계가 드러나 버린 것이다. 삼국지연의의 16로 제후군처럼 패퇴하고 말았다. 위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사악한 박정희의 세뇌공작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는 순치된 것이 아닌가?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고 있는 것이 실은 길들여진 결과가 아닌가? 여전히 노예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가?  

누가 그 그릇된 생각을 깨버렸는가? 노무현이다.

김영삼 때만 해도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 때만 해도 그랬다. 한때는 상도동이 먹었고 또 한 때는 동교동이 먹었다. 그들 역시 민주화를 위해 일정부분 헌신했지만 ‘우리’와는 다른 세상의 특별한 사람들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누구나 해당될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해당이 된다. 주사파도, 뉴라이트도, 심지어는 조중동도(그들은 자기네가 민주화에 기여했다고 믿고 있다.) 마찬가지.

무엇인가? 독재가 우리를 순치시켜 놓은 것이다. 독재에 길들여진 결과 우리는 정치는 특별한 그들이 하는 것이며, 우리는 다만 그들의 불의에 대항하여 싸우는 것이 고작이라는 것이다. 스스로 자기네의 한계를 설정해 버린 것이다.

틀렸다. 그들은 진정한 변혁을 위해 싸운 것이 아니라, 역사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 싸운 것이 아니라, 단지 불의에 항거하기 위해 싸운 것이다. 그들은 애초부터 세상을 바꿔놓을 비전이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겸손한 사람들이다. 정치는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며 민주화가 이루어졌으니 이제 우리는 그만 해산해서 각자 생업에 종사해야 한다는 소박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이런 바보같으니라구.

민주화 과정에 기여한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보상이 주어진 때는 노무현 정권 들어서이다. 그러나 아직은 모두가 보상받은 것은 아니다. 즉 더 많은 ‘우리’들의 입장에서는 단지 극소수의 ‘그들’이 보상받았을 뿐인 것이다.

지금 정권은 민청학련세대가 거의 쥐고 있다. 이런 때 더 원로라 할 김동길들이 배가 아픈 것은 당연지사다. 심지어는 김수환 추기경 조차도 아랫배가 편하지는 않은 것이다. 강준만들 역시 같은 심리에 빠져버렸다.

YS나 DJ 때만 해도 상도동이나 동교동이 정권을 잡은 거지, 민주화 세력이 정권을 잡은 것은 아니었다. 모두들 그렇게 생각했다. YS정권과, DJ정권은 제왕적 보스와 그 가신들 그리고 사회의 주류 기득권세력과 관료와 군부세력의 연합정권 성격을 띠었던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들어서 민주화 세력에 돌아가는 몫이 점차 커지다 보니 자기네도 지분을 가졌다고 믿는 그들도 할말이 생긴 것이다.

“뭬야!? 그렇다면 내 몫은?”

모두들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이제는 상도동도 없고 동교동도 없다. 그렇다면 이제는 누구지? 우리당의 면면들을 봐도 그렇다. 우리당의 다수는 민주화 세력이 아니다. 주류에 공백이 생기니까 엉뚱한 자들이 밥숟가락 들고 달려든 것이다.

이런 혼돈의 와중에 그들이 깨달은 것이 있다. 그들은 너무 일찍 포기해 버린 것이다. 그들은 ‘당연히’ 자기네들에게는 기회가 오지 않을 것으로 여기고 한나라당을 기웃거리거나 정치에 관심을 끊거나 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는 ‘노무현이 한 것을 난들 못하리’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결론인즉 뉴라이트는 노무현의 성공사례를 벤치마킹 하려는 자들이며 정권을 이삭줍기 하려는 자들인 것이다.

그들은 노무현의 성공이 ‘역사의 필연’이 아니라 우연한 궤도이탈이라고 믿는다. 모사를 잘 하면 우연히 노무현이 지갑(?)을 줏었듯이 우연히 권력이 자기네 수중에 들어올 수도 있다고 믿는다. 천만에!

이 모든 것의 주인은 역사다. 그러므로 스스로 역사의 주인이 되지 않고는 결코 승리할 수 없다. 노무현의 등장은 우연이 아니라 역사의 패러다임이 변화한 결과다. 패러다임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노무현을 베낀다는건 팥쥐가 콩쥐를 벤치마킹 하겠다는 것이며, 놀부가 흥부를 흉내내어 멀쩡한 제비의 다리를 부러뜨리는 일이다. 고약하다.   

인간이 될 것인가 개가 될 것인가?
두 가지 인간형이 있다. 스스로를 주인이라고 믿는 자유인들이 있는가 하면 스스로는 노예라고 믿는 속박된 자들이 있다.

자유인들은 다르다. 그들은 정부를 비판하고 민주화를 요구하는 소극적 저항에 그치지 않는다. 직접 뛰어들어 정권을 담당한다. 위대한 역사의 진일보를 완성시킨다. 진정한 역사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노예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다만 주인의 불의에 항의할 뿐이며, 자기네의 항의가 받아들여지면 다시 노예로 돌아가 버린다. 그들은 먹이를 적게 주면 화를 내고 먹이를 넉넉히 주면 말을 잘 듣는 개와 같다.

그들은 전두환, 노태우가 먹이를 주지 않자 주인의 종아리를 물었다. 이회창, 박근혜가 풍성한 뼈다귀의 궁물을 약속하자 다시 그 옛날의 충실한 멍멍이로 돌아가 버렸다. 그들은 독재의 잔존세력인 딴나라에 붙은 것이다.

길들여진 노예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기어이 세상을 바꿔놓고 진정한 역사의 주인이 될 것인가? 인간과 비인간이 가려지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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