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read 11644 vote 0 2006.01.25 (17:44:21)

제목 없음


프랑스 대혁명의 풍운아 ‘미라보’를 기억하시는지? 그는 귀족 출신이었으나 민중의 친구이기도 했다. 초기 단계에서 혁명을 주도하여 파리 시민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그는 의리도 있고 인정도 많은 사나이였다.

그 의리가 그를 망쳤다. 마리 앙투아네트를 도우려 한 혐의로 파리시민의 신임을 잃은 것이다. 미라보는 좋은 사람이지만 혁명은 어중간한 포지셔닝의 미라보들을 용서하지 않는다. 불행하게도 미라보는 혁명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했다.

알아야 한다. 혁명이 선(善)한 사람에게 기회를 주지는 않는다. 혁명은 격랑이다. 칼날 위에 서서 곡예를 부려야 한다. ‘저희 인간의 뜻대로 마옵시고 하느님 당신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는 기도문이 필요한 시점이다.
 

역사의 하느님 당신의 뜻대로 하옵소서

거센 파도 속에서 중심을 잡고 의연하게 나아가기는 어렵다. 자신의 의지대로가 아니라 역사의 의지대로 가는 걸음임을 깨우쳐야 한다. 혁명은 선악을 구분하는 눈이 없다. 거친 파도 속에서 선인도 죽고 악당도 죽는다.

많은 지식인들은 민중을 잠재적 배신자로 본다. 그들은 민중의 배신을 두려워 하여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역사의 뜻대로’가 아닌 ‘자신의 뜻대로’를 욕망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지식계급의 우위를 당연시 하는 착각.. 그 착각에서 헤어나야 한다.

지식계급의 입장에서 보면 황란은 역사에 무수히 등장하는 민중의 배신과도 같다. 미라보의 지도를 받던 착한 자코뱅들이 어느 시점부터 미라보를 무시하고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하는 것이다.

누구의 잘못인가? 역사에 이와 유사한 일은 무수히 많다.

알아야 한다. 민중은 태산과도 같다. 태산이 잘못을 저지르는가? 아니다. 언제라도 잘못은 미라보에게 있다. 어린애처럼 투정 부려서 안 된다. 그는 혁명의 전체과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에게는 역사의 의지를 읽는 눈이 없었다.

역사의 눈으로 보면 미라보 역시 한 사람의 메신저에 불과했다. 미라보는 자신이 주인공이 되려는 잘못을 저질렀다. 진정한 주인공은 민중이다. 십자가에 매달리기 싫거든 메신저의 역할을 완수한 시점에서 빠져주어야 한다.
 

착한 미라보들과 결별하는 아픔

필자에게 황우석의 비리를 알려주는 사람 많다. 그들은 내가 황우석을 두둔하는 사실을 안타까워 한다. 내가 성난 자코뱅들이라면 그들은 착한 미라보들이다. 그들 미라보들 중에는 좋은 사람도 많다.

그러나 혁명은 원래 위험한 것, 착하고 인정많은 사람들이 혁명을 주도하겠다면 몽상이다. 혁명은 거친 사람들의 냉정한 싸움터다. 굳센 사람이 승리한다. 가슴 아프지만.. 철없는 미라보들과는 단호하게 결별할 수 있어야 한다.

필자는 황까들 개인을 비판할 생각이 없다. 그 사람들이 황우석에 분노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 그들은 선한 사람들이며 그들의 눈에는 황우석이 악의 화신처럼 보인다. 필자 역시 황우석의 엉터리 행보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이 나라 지식인들 대부분이 거대한 착각과 오판에 빠져 있다는 사실이다. 문제가 있으면 당연히 클레임이 걸린다. 리스크 관리비용을 예산에 편성해놓고 있어야 한다.

무엇인가? 대한민국은 국가통합, 사회통합이 충분한 나라라는 착각이다.

황란이 이렇게 가는 이유는 국가통합, 사회통합이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식인들은 이 중대한 사실을 간과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어떤 조직이든 리스크 관리가 안 되면 결딴이 나고야 만다.

황란이 이렇게 엎치락 뒤치락 할지는 사실이지 나도 몰랐다. 그러나 이 사건이 결국 누구도 승복할 수 없는 방향으로 간다는 것. 조기에 종결되지 않는다는 것. MBC와 오마이뉴스는 반드시 다친다는 것 정도는 예견할 수 있었다.

현재 스코어로 볼 때 결과적으로 필자의 예견은 맞았고 MBC와 오마이뉴스의 예견은 틀렸다. 대한민국의 지식인들 대부분이 오판을 했다. 그렇다면 문제가 있다.

무엇인가? 이건 대한민국의 지식사회가 중병에 걸렸다는 증거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오판을 인정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대중의 무지와 황박의 언론플레이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천만에. 대중은 무지하지 않다. 대중은 언론플레이에 넘어가지 않는다.

민중은 다 알면서 의도적으로 황박을 이용하고 있다. 계급간 이해관계가 걸려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속한 계급의 이익을 위해 하는 행동이라면 막을 수 없다.
 

황박이 사고를 쳤다. 이건 작은 사건이다.
이 나라 지식인 대부분이 착각에 빠져 있다. 이건 큰 사건이다.

황우석 때문에 나라가 결딴 나는 일은 없다. 황우석 문제는 거진 정리가 되었다. 진짜 문제는 이 나라 지식사회 전반이 중병에 걸렸다는 사실이다. 황박은 그 문제를 드러내는 계기로 작용했을 뿐이다.

이 나라 지식사회는 눈이 멀었고 황란으로 그 사실이 들통난 것이다. 그들은 대중을 지도할 자격이 없다. 대중이 자체적으로 신뢰를 생산하여 대한민국호의 항로를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 대한민국은 사회통합이 충분하지 않다.
● 이 나라의 지식인들은 이 중요한 사실을 모르고 있다.

황란보다 백배 더 중요한 문제다. 처음 사건이 터졌을 때 나는 ‘잘 걸렸다’고 생각했다. 누가 걸려들었는가? 이 나라 지식사회가 통째로 걸려든 것이다. 나는 그들의 거대한 착각과 오판을 들추어낼 기회를 잡은 것이다.

무엇인가? 대한민국은 아직 덜 만들어진 국가다. 계급간 사회통합이 충분히 이루어졌다면 이렇게 지식인과 기층민중의 의견이 3 대 7로 나눠지지 않는다. 절대로 그렇게 안 간다.

황란이 부엌에 바퀴벌레 한 마리 지나간 정도의 사건이라면 필자가 지적하는 계층간의 위화감은 집안의 대들보가 썩어서 주저앉은 사건이다.
 

사회통합의 실패사례

무엇인가? 94년에 있었던 미국의 심슨사건을 보라. OJ 심슨은 분명 유죄지만 흑인이 승복을 않으면 법원은 유죄를 선고할 수 없다. 심슨에게 유죄를 선고하는 즉 폭동이 일어나고 미국은 해체될 것이기 때문이다.

백인의 입장 - 심슨은 살인자다. 진실을 규명하여 미국의 정의가 살아있음을 확인하자.
흑인의 입장 - 백인들은 200년 전부터 흑인을 노예로 끌고와서 부려먹고도 여전히 배상을 하지 않고 있다. 심슨을 이용하여 미국에 정의가 없다는 진실을 노출시키자.  

무엇이 진실이란 말인가? 심슨이 살인자라는 사실이 진실인가 아니면 미국에 정의가 없다는 사실이 진실인가?

작은 진실의 이면에 더 큰 진실이 가리워져 있는 것이다. 부스러기 팩트를 나열하는 방법으로 진짜 진실을 은폐하려는 시도는 제지되어야 한다.

흑인들은 미국 법원을 인정하지 않는다. 왜? 미국에 정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인들은 미국에 정의가 있다고 착각한다. 심슨사건은 그 백인들의 착각을 보기좋게 깨우쳐 준 것이다.

백인들은 심슨이 유죄인 증거를 들이대지만, 흑인들은 미국 법원이 지난 200년간 백인이 흑인을 납치하고 노동력을 착취한 사실에 대해서 심판하지 않았다는 본질을 들이댄다. 어느 쪽이 더 무거운가?

결론부터 말하면 미국에는 정의가 없다. 백인들이 미국에 정의가 있다고 착각함은 중대한 오판이며 이러한 착각은 미국이라는 나라의 전체적인 리스크 관리 비용을 증가시킨다.

백인들이 지난 200년간 흑인을 착취한 댓가로 9천조원 정도를 배상한다면 미국의 통합이 일정부분 진전되고 흑인들이 심슨의 유죄를 인정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백인들이 흑인의 노동력을 착취한 댓가를 배상하지 않는 한 백인은 심슨을 처벌할 수 없다.

왜? 미국에 정의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에 정의가 없는데 판결은 무슨 얼어죽을 판결이냐?
 

백인들의 생각 - 흑인은 바보다. 심슨의 교활한 언론플레이에 넘어갔다.
흑인들의 생각 - 잘 걸렸다. 이 참에 지난 200년간 착취한 댓가 받아내자.

알아야 한다. 흑인이 바보라서 심슨에게 속아넘어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흑인이 영리하게 심슨을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마찬가지다. 민중이 바보라서 황박에게 속고있는 것이 아니라 영리하게 황박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건 사법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통합의 문제인 것이다.

이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 나라의 지식계급은 이제 대한민국의 사회통합을 주도할 능력이 없으며, 그 기반이 되는 신뢰를 상실하고 있다는 점이다.

MBC PD수첩의 무수한 조작시리즈.. 그리고 서울대 조사위의 편파조사.. 최문순은 여전히 버티고 있고 정운찬은 아직도 석고대죄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 이것으로 이 나라의 지식계급이 대중으로부터 신뢰를 상실한 것이다.

미국병과 한국병

흑인은 미국이라는 국가 정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전략을 사용할 수 있다. 미국은 인종간 사회통합이 이루어지지 않은 불안정한 사회이기 때문에 심슨을 판결할 수 없다. 그것은 미국의 문제이고 미국의 질환이다.

미국병이 존재한다. 이 사실을 백인사회는 직시해야 한다. 실제로 있는 것을 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지적인 용기가 필요하다.

심슨사건은 하나의 국가가 사회통합이 충분하지 않을 때 어떤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슬프게도 우리나라 역시 사회통합이 충분하지 않다. 여전히 살인마 전두환을 처형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도 사회통합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건 전략이다. 민중은 황란을 이용하여 이 사회의 진짜 정의를 드러내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그것은 이 나라의 사회통합이 충분하지 않으며 그 때문에 지식계급의 주도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거다.

지식인들은 이 나라 민중이 황란을 지식계급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야 한다. ‘왜? 무엇 때문에? 왜 민중은 지식계급의 리더십과 주도권을 인정하지 않는가?’하는가 하는 자문을 던지고 성찰해야 한다.   

정답 - 사회통합이 충분하지 않다. 대한민국에는 진짜 정의가 없다.

잘난 지식인들은 이 나라를 잘 만들어진 시스템으로 착각하고 있지만 그건 당신네들이 지어낸 거짓이요 환상이다. 당신들은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당신들이 비겁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결론은 기층민중의 지식계급에 대한 불신과 그 지도력의 불인정이다. 그들은 스스로 자기 내부에 수평적 질서를 만들고 싶어한다. 황란이 1라운드라면 이건 2라운드다. 진짜 게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박지원의 깨달음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기억하시는지. 박지원은 연경의 저자거리에서 큰 충격을 받았던 거다. 요술사들이 요지경이나 주마등 따위를 갖고나와서 교묘한 속임수를 쓰고 있었다.

작은 상자 안에 인형으로 도원경을 꾸며 놓고 행인을 유혹하고 있었는데 청나라 관헌들이 이를 보고도 수수방관 하였던 거다. 야바위도 있었던 모양인데 특히 조선인들이 공격대상이 되곤 했다.

요술사가 권하는 떡을 조선인이 집으면 그 안에 오물이 들어있는 식이다. 이를 지켜본 청나라 사람들이 박장대소 하였음은 물론이다. 연암은 크게 분개하여 청나라 대신들에게 따졌다.

거리의 요술사들이 대중을 현혹하며 온갖 속임수를 다 쓰고 있는데도 왜 이를 단속하지 않느냐고? 청나라 관리는 반론을 펼쳤고 박지원은 자신의 생각이 짧았음을 인정하였다.

그들을 단속해서 안 된다. 그것은 민중의 삶이다. 거기에 조정이 개입하여 인위적으로 유교질서를 강요하면 민중이 스스로 자기 내부에 질서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생명력과 역동성을 잃어버린다.

두 가지 질서가 있다. 지배계급을 위주로 하는 조정의 질서는 유교질서다. 반면 민중의 바다에는 또다른 질서가 있다. 그것은 도교주의에 가깝다. 그것은 민중의 소박한 재치와 해학을 허용하는 보다 다원적인 관용의 세계다.

민중이 스스로 우두머리를 정하고 내재적인 질서를 만들어가는 그 역동적인 과정을 존중하지 않으면 안된다. 200년 전 연암 박지원의 깨달음을 오늘날 이 나라의 지식계급에도 전해주고 싶다.    

우리나라는 작은 나라다. 중국이 중앙의 유교질서와 민중의 도교질서로 보다 다원화 된데 비하여 우리나라는 유교질서 하나로 획일화 되어 있다. 그 결과로 이 나라에 민중의 축제는 사라졌다. 민중의 삶은 억압되었다.

작은 나라에서 개인과 개인의 거리가 너무 밀착되어 있다. 좁은 바닥에서 서로 어깨를 부딪히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자신과 다른 가치관을 가진 다른 세계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민중의 다양성과 발랄함과 그 생명력과 역동성을 허하지 않으면 안 된다.
 

emoticon_03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1607 게임 끝 김동렬 2006-05-24 15164
1606 언론의 자유가 없는 나라에서 김동렬 2006-05-23 16110
1605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 김동렬 2006-05-21 13375
1604 황라열에 정운찬이면 김동렬 2006-05-18 11376
1603 스승의 날을 보내고 김동렬 2006-05-16 13805
1602 왜 나는 분노하는가? 김동렬 2006-05-14 11610
1601 그래도 기죽지 말기 김동렬 2006-05-13 11508
1600 깊은 슬픔 장 탄식 김동렬 2006-05-12 10546
1599 똥개는 무죄 인간이 유죄 김동렬 2006-05-03 11618
1598 변희재가 변하자 김동렬 2006-04-27 11153
1597 진중권 현상에 대한 소고 김동렬 2006-04-25 13446
1596 노회찬 치사하다 김동렬 2006-04-25 12074
1595 파충류가 된 지식 김동렬 2006-04-22 9516
1594 독도에 장보고함을 출동시켜라 김동렬 2006-04-20 11461
1593 김한길 뻘짓 김동렬 2006-04-18 11936
1592 강금실과 케네디 김동렬 2006-04-13 13679
1591 한나라당의 붕괴 김동렬 2006-04-13 12627
1590 유다복음에 대하여 김동렬 2006-04-11 10730
1589 반미인척 하는 미국광신도들이 문제다 김동렬 2006-04-10 10584
1588 강금실의 매력 김동렬 2006-04-06 108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