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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0869 vote 0 2006.02.07 (19:56:50)


스크린 쿼터 축소는 물론 안 좋은 소식이다. 그러나 더 어려운 농민들도 있는데 영화인들만 특별대우를 주장해서는 안 된다.

20프로는 심하고 적정한 선에서 타협이 되어야 할 것이며.. 타협을 해내는 것이 정치력이고.. 그 정치력은 영화인들과의 협상이 아니라.. 미국과의 협상에서 더 잘 발휘되어야 할 것이다.

영화인들의 시위가 정부의 협상력을 제고한다는 점에서 일정부분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그래도 안 되면 FTA환경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에 대한 비난은 감수해야 한다. 물론 욕은 정부가 먹어야 한다.

오늘 이건희가 8000억을 내놓겠다는 것이 무엇인가? 욕심 부리면 안 된다. 욕심은 세계와의 경쟁에서 부려야지.. 가족의 것을 독차지 하려 해서는 안 된다. 이 원칙은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최근 한국영화 붐으로 영화인들은 한결 여유가 생겼다. 농민들과는 입장이 다르다. 여유가 있는 쪽이 양보해야 한다. 그러나 그 여유는 자본의 여유이지 배우나 스탭의 여유는 아니다.

정부는 퍼붓기 지원을 할 것이 아니라 이런 내막을 살펴서 영화인들에게 권력을 주는 방안으로 절충을 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이 일로 영화계가 타격을 받고 영화인들이 내부적으로 분열하게 될 소지가 있으며.. 영화인들의 사기가 꺾일 수는 있어도 그 때문에 한국영화가 망하는건 절대로 아니라는 거다.

필자는 10년 전부터 한국영화가 헐리우드 공세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해왔다. 여기에는 필연적이고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 이는 한국의 대중가요가 팝송을 극복한 것과 같은 이치다.

문화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 본질을 아는 사람은 누구나 수긍하게 된다. 이런 특징은 특히 코미디 영화에서 잘 나타나는데.. 예컨대 헐리우드 코미디 영화는 지금까지 한국에서 거의 망했다.

여기에는 필연적이고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 왜 미국 코미디에 한국인은 웃지 않는가? 월레스와 그로밋을 이해하려면 영국 특유의 귀족문화를 알아야 한다. 장 르노의 비지터를 보고 웃으려면 프랑스 특유의 귀족문화를 알아야 한다.

한국인이 월레스와 그로밋을 이해하고 비지터를 이해하기를 바란다면 얼빠진 생각이다. 그러므로 코미디 영화 수입업자는 일단 망했다고 복창해야 한다. 반면 일본이나 홍콩의 코미디는 그래도 한국인이 제법 이해를 해준다.

이처럼 절대로 안되게 되어 있는 것은 어차피 절대로 안 된다. 모르는 사람들이 조폭영화 타령 하는데 필자가 보기에는 코미디다. 두사부일체가 조폭영화라는 말은 왕의 남자가 동성애 영화라는 말과 같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왜 헐리우드는 한국에서 안 되는가? 경쟁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경쟁력은 필자가 늘 강조하는 ‘핵심역량’을 말한다. 헐리우드의 핵심역량은 무엇인가?

50년대 서부극 - 하이눈
60년대 역사극 - 부활, 십계, 벤허, 클레오파트라 등
80년대 모험극 - 조스 이후 일련의 스필버그 영화와 007 시리즈 등

이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헐리우드의 역사는 ‘컬러TV와의 전쟁’의 역사인 것이다. 즉 헐리우드는 오직 컬러TV를 이기는데 목표를 두었으며 그 결과로 살아남은 것이다. 예술성 어쩌구 하던 유럽영화는 다 망했다.

왜 유럽영화는 망했는가? 그들의 진짜 적이 컬러TV라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헐리우드가 적이라고 착각하고 헐리우드 보다 나은 영화를 만들고자 했는데 그것이 몰락의 지름길이었다. 어리석은지고.

왜 홍콩영화는 흥했는가? 그들의 적이 TV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TV가 못하는 것을 선도하면 반드시 이긴다. 결국 TV와 싸운 자는 이겼고 헐리우드와 싸운 자는 졌다. 이 본질을 알아야 한다.

무엇인가? 옛날 한국인들이 헐리우드 영화를 보는 이유는 헐리우드 영화를 봐야지만 ‘아 인도라는 나라가 저렇게 생겼구나(007 옥토퍼시)’ 하고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거대한 학습의 장이었던 것이다.

그때 한국인들은 대한 늬우스를 보고 시사를 알았고 헐리우드 영화 보고 세계의 풍물을 학습하였던 것이다.

필자는 지난번 글에서 문화욕구에는 학습요구와 재현욕구가 있으며 문화의 발전은 점차 클래식한 학습욕구에서 팝적인 재현욕구로 옮아가게 되어 있다고 말한 바 있다.(백남준 이야기에 있다.)

이걸 이해해야 한다. 학습욕구가 한국에서 팝송의 유행을 낳았고 재현욕구가 대중가요의 부활을 낳은 것이다. 이는 필연적인 문화사의 법칙이다. 스필버그 할애비가 와도 이 법칙에 어긋나서는 살아남을 수가 없다.

8, 90년대 해외여행 자유화 이전에는 헐리우드 영화를 보고 해외여행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헐리우드 영화로 보느니 직접 미국으로 가서 자기 눈으로 보면 되는 세상이다. 세상이 바뀌었다.

필자는 10년 전부터 한국영화의 르네상스와 한류붐을 예견했고 이 예견은 보기좋게 들어맞았다. 그러므로 이건 역사적으로 맞는 이야기다.

본질을 알아야 한다. 핵심을 잡을 수 있어야 한다. 그 핵심을 잡고 흔들림 없이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무엇인가? 한국영화가 헐리우드와 싸우면 백전백패하고 TV와 싸우면 백전백승한다는 거다.

(평론가들이 문제있는 이유는 본질인 TV와 싸우라고 안하고 헐리우드와 싸우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평론가들 말 들으면 백전백패다. 그 증거는 필자가 지난번에 말한 해외로케 괴담이다.)

무엇인가? TV 채널의 다양화, 국민소득 증대, 해외여행 자유화로 학습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영화는 전부 망하게 되었다. 필자가 해외로케 괴담을 거듭 전파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해외로케는 한국인이 가보지 않은 해외의 풍물을 보여주겠다는 건데 이것이 60년대 헐리우드가 컬러TV와 싸우기 위하여 고안한 낡은 전술이기 때문이다.

그때 그시절 헐리우드.. 이집트 한번 구경시켜 주자 클레오파트라 하는 식으로 영화를 찍어댔던 것이다. 아랍 한번 보여주자 인디아나 존스, 공룡한번 보여주자 쥬라기 공원 하는 식으로 영화를 찍었다.

그것이 학습욕구를 충족시키는 영화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은 이제 더 이상 먹히지 않게 되었다.(물론 전혀 먹히지 않는건 아니다. 부자가 망해도 30년은 간다.)

그렇다면? 이제는 재현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어야 한다. 무엇인가?

학습욕구 - 왕의 남자에 대한 평론가의 헛소리. 동성애 좋아하네.
재현욕구 - 이준기 예쁘다. 쌍꺼풀 없는 눈의 중성적인 매력이 내 취향.

동성애 어쩌구 하는 평론가들의 나사빠진 소리에 현혹 되어서 안 된다. 왕의 남자의 핵심은 ‘재현할 수 있는가’이며.. 여기서 재현은 극장에서 본 것을 친구들에게 떠들 건덕지가 있는가이다.

누나부대들이 수다를 떠는 즉 “이준기 예쁘다. 내 취향이다.” 이건 자기 중심적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무엇인가? 관객들은 영화를 보고 영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구실로 해서 자기 자신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친구들에게 털어놓고 싶어 하는 것.. 이것이 재현욕구다. 이것이 팝의 정신이다. 자기 내부에 자기도 모르게 잠들어 있었던 욕망을 끌어내는 것이다. 영화 보고 영화 이야기 하면 그 영화는 잘못 만들어진 거다.

관객이 영화를 구실로 자기자랑을 하게 하고 숨은 자기 욕구를 드러내게 하는 것이 재현욕구이며.. 여기에 성공하면 영화든, 음악이든, 미술이든 대박이 나는 법이며.. 이 부분이 바로 TV가 따라올 수 없는 영화의 경쟁력이다.

이러한 재현은 남의 나라 것을 수입하는 방법으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욕망은 ‘체험의 공유’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든 자신이 경험한 것을, 추억 속에 잠들어 있는 것을 꺼집어 내기 원하는 거다.

반드시 정서적인 토착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헐리우드는 학습욕구를 충족시킬 뿐 재현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 헐리우드는 절대로 한국영화를 이길 수 없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먹힌다. 유럽은 미국과 정서가 같기 때문이다.

결국은 텔레노벨라를 중심으로 한 남미식 정서, 헐리우드를 중심으로 한 서구식 정서, 발리우드를 중심으로 한 인도식 정서, 그리고 아랍식 정서가 있는 법이며 여기에 아시아식 정서가 더해진다면 그 아시아 정서의 중심이 홍콩이냐 한국이냐를 두고 경쟁이 벌어지는 법이다.

서구문화의 정신적 원천이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이듯이.. 이러한 경쟁에는 반드시 지적 자원을 많이 보유한 쪽이 승리하게 되어 있다.

일본은 선종불교에 빠져 있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편협하다. 중국은 도교사상에 빠져 있기 때문에 역시 편협하다. 한국이 아시아에서 정서적으로 가장 풍부하기 때문에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왜 한국영화는 승리할 수 밖에 없는가? 재현욕구는 인터넷으로 해서 증폭된다. 인터넷이 없을 때는 왕의 남자를 보고 평론가들이 떠벌이는 주제의식이나 작품성을 논할 뿐 “이준기 예쁘다” 이런 진짜 이야기는 입도 뻥긋 못했다.

인터넷 덕분에 ‘이준기 예쁘다’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영화 보고 영화 이야기 안하고 자기 욕망을 말할 수 있는 좋은 세상이 된 것이다.

이제는 인터넷에서 아는 척 하려면 영화를 안볼 수가 없는 세상이 되었다. 필자 주변만 해도 인터넷 때문에 왕의 남자 보게 된 인간 많다.
 

결론하자.. 한국영화의 미래는? TV와 경쟁하면 승산이 있고 헐리우드와 경쟁하면 망한다. 학습욕구 충족하려고 해외로케 하면 망하고 재현욕구 충족시켜 주기 위해 한국인의 정서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는 욕망을 끌어내면 흥한다.

이렇게 정답이 있는데도 젖 달라고 징징대면 좋지 않다. 인터넷이 관객을 두배로 늘려주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 만큼 관객을 몰아줬으면 국민은 성의를 보인 셈이다. 이제는 영화인들이 보답해야 한다.

한국 관객들 헐리우드 영화 한 편 볼 때 한국 영화 두 편 보기로 약속하고 있다. 그 약속을 믿어라. 물론 정치는 미묘한 것이니.. 영화인들이 싸워보지도 않고 그냥 백기들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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