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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1580 vote 0 2006.02.26 (23:15:23)

노무현 정권의 치적이 탈권위주에 있다면 그 혜택을 가장 많이 본 사람은 전여옥이고 그 다음은 진중권일 터이다.

좋은 시절이 왔다. 국회의원이 상소리 해도 되고 교수가 막말해도 되는 태평시대가 온 거다. 노무현 대통령이 말 잘해서 정권잡았으니 이제는 국회의원도, 교수도 내놓고 말하는 시대가 왔다고 변명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착각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팥쥐가 콩쥐를 흉내낸들, 놀부가 흥부를 흉내낸들 그것은 겉보기에 불과하다. 밑바닥의 진짜는 따로 있다. 짝퉁은 진품을 이길 수 없다.

딴나라당이 10만 악플러를 양성한다고 해서 서프라이즈를 뛰어넘어 인터넷을 장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듯이 말이다.

권위를 버린다 해서 그것이 탈권위주의는 아니다. 진정으로 말하면 노무현의 개혁은 진짜 권위를 찾아가는 지난한 과정이다. 지연과 혈연과 학연으로 엮어진 기득권의 가짜 권위말고 경쟁력에서 얻어지는 진짜 권위 말이다.

폼을 잡고, 예의를 따지고, 체면을 세우고, 박수부대를 거느리고, 고함을 지르고 호통을 친다고 해서 그것이 권위는 아니다. 반대로 상소리를 하고, 막말을 하고, 패악질을 하고, 생떼를 쓰는 것이 탈권위주의는 아니다.

권위란 무엇인가? 그것은 질서를 부여하는 힘이다. 군대는 짬밥으로 질서를 잡고 봉건사회는 신분으로 질서를 삼는다. 민주주의는 선거로 질서를 세운다. 투표함에서 권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폭력으로 질서를 잡았던 건 봉건시대다. 돈으로 질서를 잡았던건 20세기다. 이제는 21세기다. 이 시대의 역사흐름에 맞는 새로운 질서가 찾아져야 한다. 21세기의 성숙한 시민 사회는 무엇으로 질서를 세우는가?

경쟁력으로 질서를 잡는다. 그들이 돈으로 질서를 세울 때 우리는 역동적이고 자발적인 시민의 참여로 질서를 세운다. 그들이 유니폼으로 질서를 세울 때 우리는 스타일로 질서를 세운다. 

역사의 조류가 변한 것이다. 변방에서 새로운 강자 집단이 출현하고 있다. 그들은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자기네의 실력을 맘껏 뽐낼 수 있는 환경을 원했다. 그들이 노무현을 이용하여 역사의 판갈이를 한 것이다.

폭력이 먹어준다는 박정희 패러다임에서 실력이 먹어준다는 노무현 패러다임으로 사회의 시스템이 바뀌고 있다. 이건 거대한 역사의 흐름이다. 설사 차기에 한나라당이 집권한다 해도 노무현 대통령이 바꿔놓은 이 기조는 계속 간다.

노무현은 왜 엘리트의 언어를 쓰지 않고 민중의 언어를 사용했을까? 변방의 새로운 강자들이 자기들이 나설 때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눈치를 보며 쭈뼛거리고 있을 때 그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이다.

“당신들의 시대가 열렸다. 역사가 당신네들을 필요로 하다. 그러므로 과감하게 당신들이 나서라.”

지금까지는 기득권이 질서를 세웠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다. 새로운 세력이 나서서 질서를 잡아줘야 하는데 그들이 나서지 않고 있으니 숨죽이고 있는 그들을 불러내기 위해 노무현은 민중의 언어를 사용한 것이다.

문제는 변방에서 온 새로운 강자집단이 과연 이 사회의 질서를 잡는데 성공하는가이다. 그 질서는 실력순, 경쟁력 순으로 줄 서는 질서다. 과연 사회가 그들의 실력을 존중하는가이다.

문제는 지금이 과도기라는 데 있다. 낡은 질서는 타격받았다. 그러나 새로운 질서는 아직 정착하지 않고 있다.

왜 낡은 시대의 그들은 과거의 권위에 집착할까? 실력이 없기 때문이다. 실력으로 질서를 잡지 못하기 때문에 권위로 질서를 잡아야 한다. 권위로 안 되면 돈으로 질서를 잡고 돈으로 안 되면 폭력으로 질서를 잡는다.

우리는 그들의 폭력을 해체했다. 그들이 쿠데타의 폭력으로 이 사회에 질서를 강요할 가능성은 이제 없어졌다. 또 우리는 지금 그들의 돈을 해체하고 있다. 그들이 다음 선거에도 차떼기를 행사할 가능성은 낮아졌다.

그 다음은 그들의 권위를 해체하기다. 그런데 기묘한 것은 한나라당이 스스로 자기네의 권위를 해체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전여옥-이계진 현상이다. 그런데 과연 한나라당이 성공할 수 있을까?

그들이 폭력을 버린 결과로 민정당은 망했다. 그들이 돈을 버린 결과로 신한국당은 망했다.(전두환, 노태우의 비자금 수천억을 고발한 것은 YS정권이다. 그들이 스스로 무장해제 한 것이다. 그 결과 망했다.)

폭력을 버려서 한 번 망하고, 돈을 버려서 두 번 망한 그들이 이제는 마지막 남은 재산인 권위주의 마저도 버려서 세 번 망할 차례이다. 군대도 없고 돈도 없는데다 권위마저도 없어진 한나라당을 누가 신뢰할까?

권위? 좋은 거다. 지금 한나라당이 살려면 전여옥을 버려서, 체면을 세우고, 위신을 세우고, 권위를 세워야 한다. 박근혜의 악다구니 노선을 버리고 이회창의 반듯한 나라 노선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 좋다는 권위를 버리려 할까? 권위를 대체할 실력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실력으로 질서를 세울 수 있다. 실력이 있기에 우리는 권위를 버려도 무너지지 않는다. 우리당은 무너지지 않는다.

혹자는 이렇게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실력이 있다는 우리당이 개판 오분전 된 건 뭐냐고? 우리당이야 말로 내부로부터 질서가 무너지지 않았느냐고. 맞다. 우리당은 질서가 무너졌다. 이는 우리당의 실력없음의 반증이다.

유시민의 존재가 그렇다. 유시민은 실력으로 경쟁하자고 한 거고 반유집단은 연공서열로 질서를 유지하자고 한 거다. 우리당이 유시민 때문에 시끄러웠다는 것은 우리당이 여전히 실력으로 경쟁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지 않다는 증거다.

그러나 우리당은 망가져도 서프라이즈는 무너지지 않는다. 서프라이즈에는 자생적인 질서가 있다. 서프라이즈는 누가 명령하지 않아도, 누가 위에서 지시하지 않아도, 이심전심에 의해 각자 자기 역할을 찾아내는데 성공한다.

무엇인가? 밑바닥에서 변화는 이미 시작된 것이다. 그것은 조직하지 않는 조직, 명령하지 않는 권력, 지시하지 않고 강제하지 않는 시스템, 이심전심의 시스템, 역할분담의 시스템이다.

밑바닥에서 질적인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는데 다만 우리당이 그 변화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하자. 이 모든 논의는 시민사회의 질서에 관한 논의다. 누가 권력을 잡느냐는 누가 21세기의 성숙한 시민사회에 걸맞는 대한민국 신질서의 성공모델을 정착시키는데 성공하는가에 달려 있다.

설사 아주 착하고 깨끗하고 모범적인 도덕선생님을 대통령으로 선출한다고 해도 아무도 그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으면 국가체계는 무너지고 만다.

첫째 깨끗할 것, 둘째 그러면서도 민중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것. 이 두가지 조건은 모순된다. 보통 깨끗하면 힘이 없고, 힘이 없으면 기득권 세력이 복종하지 않아서 권력이 죽는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실력이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 출현하고 있는 새로운 강자 집단이 자발적으로 탈권위에 기반한 신질서를 형성하는 방법으로 성공사례를 만들어야 한다. 또 이를 전파해야 한다.

● 한나라당의 경쟁력은 첫째 폭력, 둘째 돈, 셋째 권위다. 폭력, 돈, 권위의 3박자가 한나라당을 지탱하는 힘이다. 한나라당이 이 셋을 버리면 질서가 없어져서 망한다.

● 우리당의 경쟁력은 실력에 의한 신질서다. 우리당은 아직 신질서가 정착되지 않고 있으나 서프라이즈를 비롯한 우리당 외곽세력 일부는 이미 신질서가 정착되어 작동하고 있다.

저들이 가진 구질서의 상징이 전여옥이라면 우리가 가진 신질서의 상징은 강금실이다. 전여옥과 강금실을 비교해 보라. 하늘과 땅 차이다.

무엇인가? 전여옥이 박근혜의 개라면 강금실은 누구의 명령에도 따르지 않는 자유인이다. 한나라당의 경쟁력이 전여옥의 추태라면 우리당의 경쟁력은 강금실의 자유로운 스타일이다.

스타일이 세상을 바꾼다. 노무현 대통령의 자유분방함은 강금실의 자유로운 스타일을 끌어내기 위한 분위기 조성에 지나지 않는다. 한나라당의 답답한 분위기라면 강금실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본질을 바로 보아야 한다. 노무현은 강금실 같은 진짜 실력자, 재야의 은둔고수들을 무대 위로 끌어내기 위해, 자유로운 그들과 이심전심으로 통한다는 점을 보이기 위해 자유롭게 발언하는 거다. 이게 진짜다.

 

PS.. 세상이 바뀔 때는 룰이 먼저 바뀌고 문화가 다음으로 바뀝니다. 차기 대선은 스타일 전쟁으로 갈 것입니다. 딴나라 악다구니 스타일의 상징은 전여옥, 우리당 멋쟁이 스타일의 상징은 강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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