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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의 황당함에 첫 번째 충격을 받았고, 이 나라 언론의 집단자살에 두 번째 충격을 받았고, 이 나라 지식인의 무식함에 세 번째로 충격을 받았다. 이래서는 강심장이라도 버텨낼 재주가 없다.

이 나라에.. 한 사람의 꾸짖어줄 스승이 없고, 한 사람의 등불을 밝혀줄 참 지성이 없다. 인간들이여 어찌 그토록 가벼운가?


대략 세 가지 견해가 있을 수 있다.

● 초딩버전.. 고조 유방은 위대한 영웅이다. 악(惡)의 화신이라 할 초패왕 항우놈을 쳐부수고 덕(德)의 정치를 펼쳐 한(漢)의 치세 400년 새 시대를 열어젖혔다. 항우는 나쁜놈이고 유방은 우리편이다.

● 허무버전.. 역사는 승자의 기록일 뿐이다. 진시황이 천하의 질서를 잡아놓고 있었는데 야심가인 유방과 항우가 둘이 치고받고 싸우는 통에 힘 없는 백성들만 죽어났다. 단지 유방이 세니까 유방이 먹은 거다. 아무런 교훈도 없다.  

● 고딩버전.. 역사에는 필연의 법칙이 있다. 문명권의 팽창과 전쟁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주(周)의 봉건제가 천하의 질서를 바로잡지 못하자 진시황이 법가로 질서를 잡았으나 국가체제의 시스템적 결함에 의해 자체 붕괴되었고, 항우가 봉건제로 되돌렸으나 이는 시행착오였으며, 유방이 봉건제와 군현제를 절충한 그 시대의 시대정신에 맞는 체제와 시스템을 채택한 결과로 400년의 치세를 열었다.

유방의 승리는 당시 지식인들과 민중들이 유방을 지지했기 때문이며 이는 유방이 항우보다 더 ‘역사와의 대화’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역사의 편에 선 자가 승리하고 역사와의 대화를 거부하는 자가 패배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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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善)과 악(惡)의 2분법적 논리로 보면 초딩이다. 황우석의 거짓말 여부에 집착한다면 선(善)과 악(惡)의 논리에 몰입한 결과인데, 이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다. 일단 초딩 방학은 끝나가고 있다.

죽은 사람만 억울하다는 식의 냉소주의나 허무주의로 보면 중딩이다. 민초들이 역사의 수레바퀴에 희생된 것도 사실이지만, 그들의 희생을 값진 희생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리더의 임무다.

역사의 필연으로 보면 뭔가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아는 사람이다. 작은 싸움인가 큰 싸움인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작은 싸움이라면 유방은 시골 건달에 지나지 않는다. 큰 싸움이면 천하의 질서를 바로잡은 영웅이다.

황란도 작은 사건이라면 학자의 양심을 저버린 황우석의 개인비리가 되고 큰 싸움이면 네티즌이 들고 일어나서 한국적 문제해결방식을 찾아내는 즉 역사의 신기원을 연 일로 된다.

이 싸움을 큰 싸움으로 만들기만 하면 황빠가 이긴다. 네티즌들은 되도록 큰 판을 벌이려고 한다. 이때 누가 임의로 브레이크를 건다고 해서 브레이크가 걸어지는 것이 아니다. 함부로 브레이크를 걸려는 어설픈 시도가 오히려 타오르는 불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된다.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이 큰 싸움이며, 싸움의 초기단계에서 천하대란으로 발전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서프라이즈는 지적하고 있었다는 거다. 아무도 모르고 있었는데 오직 서프라이즈가 알았던 거다.

작은 싸움이면 징기스칸은 천하의 불한당이고 큰 싸움이면 동서문명 사이의 통로를 뚫은 영웅이다. 작은 싸움이면 알렉산더는 살인자이고 큰 싸움이면 알렉산더는 동방문명을 서구에 전달한 결과로 훗날 르네상스의 씨앗을 뿌린 영웅이다.

황까들의 대책없는 오판은 이 싸움을 터무니없이 작은 싸움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일주일 혹은 보름만에 끝날 사안으로 알았다. 이는 이들이 역사공부를 게을리 한 결과로 철딱서니가 없어서 생긴 현상이다.

황까들이 ‘황우석 눈 꺼졌다’고 선언한 것이 두달 전 일이다.(영화 터미네이터 1편에서 눈이 감기는 장면에 비유하는 황까식 표현) 이후로 그들은 거의 메일 ‘눈 꺼졌다’ 타령을 되풀이 했다.

한국은 한국의 인구규모와 지정학적 구도에 맞는 한국적 성공모델을 만들자는 거다. 알고 보년 핀란드나 스웨덴의 ‘강소국 전략’도 그 나라의 지정학적 구도와 인구규모에 맞는 하나의 성공모델에 지나지 않는다.

핀랜드가 하고 노르웨이가 하고 스웨덴이 하는 것을 우리도 하자는 거다. 단 우리의 방식으로.(우리는 세계 4대강국 사이에 끼어 있고 그들은 주변에 작은 나라가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시장에서의 경쟁환경이 다르다.)

미국은 선수층이 두껍기 때문에 연봉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이건 미국모델이다. 한국은 선수층이 얇기 때문에 선수들이 자율경쟁을 않는다.

선동렬하고 김시진이 둘이서 코가 비뚤어지게 술 먹고 다음날 완투대결을 벌여서 선동렬이 1점 차이로 이기고 그랬다. 한국은 실정이 이렇기 때문에 한국의 경우 코치가 따라다니며 잔소리를 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선수층이 두꺼워야 하고 경쟁이 치열해야 하고 연봉을 많이 줘야 한다.

흥행이 안 되어서 연봉을 많이 줄 수 없고, 선수층이 얇아서 경쟁자가 없는데 코치가 잔소리 안 하면 선수가 자율훈련을 하겠는가? 이렇듯 미국식으로는 한국에서 씨가 안 먹히는 것이다.

한국은 원초적으로 인재층이 얇다. 황우석을 살려야 한다. 경쟁의 논리로 안 되고 가족의 논리로 간다. 한국은 연봉을 넉넉히 줄 수 없기 때문에 고참대우를 해주고 자존심을 세워주는 것으로 연봉을 갚하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프로야구 연봉협상할 때 실력 말 안하고 전부 자존심 말한다. 연봉 올려주면.. 놀멘놀멘.. 라이벌 누구는 홈런 쳤는데 넌 뭐하냐고 쫑코주면.. 조낸 열심. 이게 한국의 프로라고라고라.

연봉 올려줘 봤자.. 선동렬과 김시진 둘이서 밤새워 소주 두 박스 까고.. 둘이서 다음날 선발 맞대결을 벌여야 하는데도 말이다. 자존심 세워주면 열심히 하고 이것이 어쩔 수 없는 한국의 현실.

핀랜드도 하고 스웨덴도 하는걸 우린들 왜 못하리. 뉘라서 역사의 창조를 두려워 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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