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우월감과 열등감의 나침반을 가진 자들이 있다. 상종할 가치가 없는 자들이다. 자랑스러움과 부끄러움의 나침반을 가진 자들이 있다. 역시 좋지 않다. 자연스러움과 어색함의 나침반을 가진 이들이 있다. 대화할 수 있다.

그것은 소통의 나침반이다. 자연스러움으로 통하고 어색함으로 막힌다. 이 나침반을 가진 이들과 소통할 수 있다. 대화할 수 있다. 이들은 말이 통하고 배짱이 맞는 사람들이다.

우월감과 열등감의 나침반은 나약한 양떼가 무리들 속에 섞이는 방법으로 늑대의 발톱을 피하는 기술이다. 남보다 앞서가지도 말고 남보다 뒤처지지도 말고 적당히 무리에 섞여 있음으로써 잡아먹힐 확률을 낮출 수 있다.

이는 나약한 짐승의 기술이지 위대한 인간의 지혜는 아니다. 우월감과 열등감의 나침반 버려야 한다. 남보다 앞서 있대서 뽐낼 일 아니고 남보다 뒤져 있대서 두려울 일이 아니다.

자랑스러움과 부끄러움의 나침반은 쏘가리 수컷이 산란기에 혼인색으로 무장하여 암컷을 유혹하는 기술이다. 영양 수컷은 긴 뿔을 뽐내고 원숭이 수컷은 빨간 궁둥이를 뽐내어 자신의 건강함을 자랑한다.

암컷은 부끄러움으로 무장하여 처음 만나는 건강하지 않은 수컷을 성급하게 선택하는데 따른 시행착오를 피하고자 한다. 수컷의 우쭐댐이나 암컷의 수줍어함은 수억년간 진화의 흔적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스러움과 어색함을 아는 것이 인간과 동물의 차이다. 인간이 서로를 배려하고 멋과 미와 선과 자유를 찾는 것은 그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자연스러움은 매 순간 그 상황을 완성시키고자 하는 의지다.

우월감과 열등감이 생존의 나침반이라면 자랑스러움과 부끄러움은 생식의 나침반이다. 자연스러움과 어색함은 소통의 나침반이다. 인간만이 유독 이 나침반을 발달시켜온 것은 인간만이 소통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통하기 위해서는 코드가 맞아야 한다. 언어가 같아야 한다. 나침반이 일치해야 한다. 소통의 나침반을 가져야 한다. 완성되어야 통할 수 있다. 완성과 미완성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1651 구조론이란 무엇인가? 김동렬 2006-08-15 10912
1650 주유소 습격사건과 괴물 김동렬 2006-08-13 13714
1649 깨달음의 룰 김동렬 2006-08-09 15716
1648 실존의 죽음과 그 건너편 김동렬 2006-08-08 11372
1647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환멸 김동렬 2006-08-07 15286
1646 노무현 그룹의 한계와 의사소통의 실패 김동렬 2006-08-07 14558
1645 된장녀와 한류녀 그리고 왜색녀 김동렬 2006-08-07 19555
1644 괴물에 엉기기 김동렬 2006-08-06 11436
1643 한국인에게 영어가 들리지 않는 이유 김동렬 2006-08-06 14121
1642 된장녀와 고추장남 김동렬 2006-08-04 15523
1641 황박과 괴물 김동렬 2006-07-31 14732
1640 김정일의 남은 카드는 정상회담 뿐 김동렬 2006-07-19 15933
1639 드라마 주몽의 아쉬움 김동렬 2006-07-18 15782
1638 FTA와 한국의 충격요법 김동렬 2006-07-15 13870
1637 까뮈의 이방인 김동렬 2006-07-14 19285
1636 지단의 고독 김동렬 2006-07-12 16961
1635 광해군의 경우 김동렬 2006-07-12 13595
1634 모든 독재는 나쁘다 김동렬 2006-07-10 14377
1633 존재냐 소유냐 김동렬 2006-07-06 14958
1632 김정일, 올해를 무사히 넘길 것인가? 김동렬 2006-07-05 164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