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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0555 vote 0 2006.05.12 (14:42:05)

시나리오 대로 가고 있다. 늘 그래왔듯이 그것은 ‘나쁜 시나리오’이다. 몇 명 죽고 더 많은 사람이 다치고 결국 국방부 장관 짤리는 각본이다. 이건 말려야 한다. 그러나 아무도 말리지 못한다. 비겁하기 때문이다.  

할 싸움은 해야 한다. 싸움을 시작할 수는 있지만 어디서 그 싸움을 그쳐야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여기서 멈춰’ 라고 말해줄 한 명의 스승이 없다. 집안에 어른이 없고 사회에 리더가 없고 나라에 지도자가 없다.

민노당이든 범대위든 한총련이든 다들 고만고만하다. 무게감 있는 사람이 없다. 자칭 원로라고 떠벌이는 자들 있지만 그들은 지금 수구퇴물이 되어 있다. 살아 숨 쉬는 역사의 현장에서 도망친지 오래다.

늘 보이는 그 얼굴이 그 얼굴이다. 문정현 오고 수경 오고 도법 왔다면 올 사람 다 온 거다. 그들은 전문 직업인이 되었다. 익숙한 장인들처럼 자신의 역할을 맡아 선동할 사람 선동하고 북칠 사람 북채잡고 장구칠 사람 장구친다.

역할은 세분화 되었는데 총체적으로 사태를 책임질 사람은 없다. ‘나는 비판한 하면 된다. 그게 내 역할이지.’, ‘나는 선동만 하면 된다. 그건 나의 역할이지.’ 다들 이런 생각만 하고 결과는 생각하지 않는다.  

시민단체든 민노당이든 범대위든 ‘여기서 멈춰’라고 말하는 순간 제거된다. 누구에게도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권한이 없다. 그러므로 숙명적으로 피가 흘러야 하고 그 피의 책임을 물어 장관을 짤라야 한다.

마침내 장관이 짤리면 ‘시민이 군인을 패면 누가 자식을 군대 보내나’하는 반대여론이 일어나 맞불을 놓는다. 민심이 돌아서면 범대위도 ‘이 정도면 분을 풀었으니’ 하고 물러날 명분을 얻는다.

민노당도 거기서 더 나가다가는 선거에 지게 되니까 멈출 수 밖에 없다. 이건 최악의 나쁜 시나리오이지만 모두들 좋은 시나리오보다는 나쁜 시나리오를 선택한다. 비겁하게 말이다.  

이것이 한국의 방식이다.
이쁘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늘 그렇게 해 왔다.
그러므로 이번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이제는 습관이 되고 타성이 되고 만성이 되어서 무감각해졌다.

답답할 뿐이다.
용기있게 악순환을 끊을 한 사람의 영웅은 없다.
이것은 한국인의 원죄다.
한국인은 앞으로도 당분간 더 고생해야 한다.
한국인들이 지불해야 할 역사의 빚은 이것 말고도 더 남아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불신이 문제다. 목적은 미군철수다. 좋은 시나리오를 선택하는 순간 훗날 투쟁의 결과로 미군이 한반도에서 물러갔을 때 그 성과와 자부심이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역사는 모호한 것을 원하지 않는다. 누가 역사의 승자이고 누가 역사의 패자인지를 분명하게 가려져야 한다. 장관을 짤라야 모든 책임이 노무현 정부에 있다는 확인도장이 받아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장관만 짜르면 이 싸움은 성공이다 하고 다들 생각한다. 장관을 짜르려면 농부 두어사람이 죽어야 하는데 그동안 죽음은 늘 있어왔기 때문에 그 부분은 비겁하게 눈을 감으면 된다.

사람이 죽기 전에는 슬쩍 눈을 돌려 먼 산 바라보며 딴전을 피우면 된다. 사람이 죽고 난 뒤에는 ‘모든게 노무현 때문이야’ 하고 세 번 외치면 된다. 그렇게 자신의 비겁을 완성하면 된다. 늘 그렇게 해왔으니.

정치는 책임지기 위해 존재한다. 책임지기 싫으면 집권여당 안하면 된다. 그러나 우리는 집권을 선택했다. 우리는 책임지기를 선택했다. 그 책임을 져야만 한다. 우리는 욕먹을 곳으로 간 것이다. 피해갈 수 없다.

이런 식의 답이 안나오는 문제는 거시적으로 보아야 한다. 역사의 큰 줄기를 살펴야 한다. 왜 우리는 항상 이모양이란 말인가? 양차 세계대전에 무임승차 했기 때문이다. 역사에 공짜는 없다. 역사는 언제라도 댓가를 요구한다.

우리는 2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독립을 얻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전쟁에서 연합국이었나 주축국이었나? 다수 조선인들은 일본군에 붙어서 연합군과 싸웠다. 그들은 그 전쟁에서 패배했다. 그런데도 독립이라는 포상을 받았다?

이건 말이 안되는 이야기다. 조선인들은 일본군에 속했고 싸워서 졌는데 무얼 잘했다고 독립이라는 보상을 얻어내지? 인도와 알제리 등은 연합국편에 붙어 싸워서 이기고도 독립을 얻기가 쉽지 않았는데 말이다.

물론 백범이 싸웠고 광복군이 싸웠고 더 많은 사람이 팔로군에 가담하여 일본군과 싸웠지만 그런 사실은 부각되지 않았다. 세계는 우리의 투쟁한 사실을 모른다. 승전한 미군이 보기에 조선인들은 적군인 일본군의 노예였다.

일본군은 미국의 적군이므로 적군 대접을 해준다. 적군의 노예는? 대접해줄 필요조차 없다. 적의 노예는 아무 것도 아니다. 물론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많은 독립투사들이 일본과 싸워 독립을 쟁취했다고 교과서에서 배운다.

그러나 세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고이즈미 일본이 보기에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었다. 일본이 조선을 독립시켜 주었다. 부시 미국이 보기에 조선은 적국 일본의 앞잡이였고 김정일 북한이 보기에 한국은 지금도 미국의 식민지다.

그들은 우리와 다른 시선으로 한국을 보고 있다. 실정이 이러하니 한국인 아이를 입양한 어떤 미국인은 한국 아이에게 고향을 잊지 않게 해주겠다며 기모노를 입히고 있는 실정이다. 그들 눈에는 한국과 일본이 구분되지 않는다.

왜 독도문제가 해결되지 않는가? 한국의 역대정부는 독도를 이용하여 일본에 뭔가 얻어낼 것이 없는가 하고 슬그머니 눈치를 보았다. 솔직히 말해서 독도를 가지고 비열하게 장사한 것이다. 차관 몇 푼 얻어왔다.

페루인들이 일본인 후지모리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것은 부자 일본이 먹다남은 뼈다귀라도 한 개 던져줄까 기대해서였다. 한국인이 일본인 박정희를 대통령으로 세운 것이 그 페루인들의 생각과 다르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일본인을 자국의 대통령으로 세우는 한심한 나라를 누가 인정하겠는가? 세계가 한국을 어떻게 보겠는가? 우리가 페루인을 보는 경멸의 시선으로 세계는 한국을 본다. 그들의 눈에 한국은 여전히 반독립 상태다.

이 답답한 악순환을 끝장내기 위해서는? 친일박멸, 미군철수, 남북통일 이 세가지를 이루어야 한다. 역사가 지워준 우리시대의 과제다. 우리가 이 과제를 회피하는 순간 누군가가 죽어야 한다.

준엄한 역사의 무게를 정면으로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인 박정희의 후손이 야당의 총수 노릇을 하는 나라에서 모욕과 수치를 피해갈 방법은 없다. 모든 것이 우리의 원죄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일본인 박정희를 해결하지 않고 일본신문 조중동을 해결하지 않고 비겁하게도 역사의 무게를 회피한 죄를 정면으로 감수해야 한다. 역사에 공짜는 없다. 2차대전에 무임승차한 죄값을 이렇게 치른다.

피흘리지 않고 공짜독립을 얻어낸 결과 반독립상태로 길게 가는 것이다. 물론 많은 독립투사들이 피를 흘렸지만 일본사람 박정희가 한국의 대통령인 상태에서는 독립투사들이 투쟁한 공로를 인정받을 재간이 없다.

일본인이 통치한 제 3공화국과 제 3공화국을 계승한 4,5,6공화국을 역사에서 지우지 않는 한 우리의 수치와 치욕은 사라지지 않는다. 한국사는 문둥이가 되었고 그 부끄러움이 천년은 갈 것이다.

평택의 본질은 미군철수 투쟁의 흐름을 이어가는데 있다. 언젠가 미군은 철수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무조건 지금 이름만 올려놓으면 나중에 본전을 뽑는다. 그러니 시민단체든 민노당이든 마다할 이유가 없다.

훗날 마침내 미군철수가 이루어졌을 때 ‘모든게 노무현 때문이야’를 세 번 외치고 그 증거로 ‘국방부 장관 짤렸자나’하고 들이밀면 된다. 우리당과 노무현은 역사의 패자가 되고 민노당과 범대위는 역사의 승자가 된다.

그렇게 가는 시나리오다. 이 나쁜 시나리오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아직 흘려진 피가 부족하고 바닥에 쌓인 분노가 너무 크다. 용기있게 나서서 사태를 해결할 한 명의 의인은 한반도에 존재하지 않는다.

결론은 정부가 상황을 장악하고 통제할 수 있는가이다. 물리력으로 통제하는 것은 포기하는 것이다. 대화와 설득으로 끝까지 가야 승리하는 것이다. 정부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

무능하다는 욕을 먹어도 욕을 먹기로 하고 그 권력의 자리에 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3년이나 5년 아니 한 10년 쯤 끌어도 상관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근본 역사로부터 지워진 짐이다.

정부가 기교를 부려 잠시 회피한다 해도 다른 형태로 터져나올 뿐이다. 슬픔은 계속되고 비극은 계속되고 피는 계속된다. 그것이 역사다. 일본인을 자국의 대통령으로 세운 한국인에게 명예는 과분하다.

친일박멸과 남북통일이 더 본질에 가깝고 그 다음이 미군철수다. 박정희 친일파 때문에 2차대전에 싸운 독립군의 피값이 정당하게 인정을 못받게 되었다. 그 결과로 통일이 안된 것이다.

왜 미군이 존재하는가? 통일이 안되어서 미군이 있는 거다. 왜 통일이 안되었나? 분열했기 때문이다. 왜 분열했나? 독립과 친일 사이에서 확실하게 매듭을 짓지않고 대략 얼버무렸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일본군 박정희를 처형하지 못했나? 바보라서 그렇다. 바보에게 명예는 없다. 바보에게 줄 포상금은 없다. 그러므로 수치는 계속된다. 그러므로 비극은 계속된다. 그러므로 희생으로 누군가가 죽어야 한다.

다들 모른척 외면하며 누군가가 죽어나가기를 기다린다. 그 불행한 죽음이 성립하고 난 후에 ‘모든게 노무현 때문이야’를 악을 쓰며 세 번 크게 외쳐야 한다는 사실만을 줄곧 생각하면서.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대본임을 알고 있다. 역사 앞에서 작은 단역배우에 불과한 자기의 한 줄짜리 대본을 열심히 암송할 뿐이다. 비겁하게도 말이다. 초라하게도 말이다. 그래서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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