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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지령 『노무현과 DJ를 이간질하라』
조중동의 개평뜯기에 연연하지 말고 승자의 아량을 보일 때다

까치설날에 배달된 조선일보의 탑기사는 베트남전에서 월맹군의 구정대공세를 연상시킨다. 『DJ·盧 '4000억 수사' 정면 대립』이라고 대문짝에다 큼지막하게 박아놓았다. 이어서 『[조선데스크] 盧당선자의 말 한마디』, 『[시론] '통치행위'는 면죄부인가』 등으로 융단폭격을 하고 있다.

고향가는 귀성객들에게 『제발 조선일보를 들고가서 차례상 앞에 모인 가족들과 DJ를 씹어달라』고 애원하는 격이다. 설날이 아깝다는 식으로 밤잠 안자고 윤전기를 돌려보지만 배달된 신문은 현관앞에 버려져 있고, 독자들은 이미 고향으로 떠났다. 애석한 일이다. 그런다고 결과가 바뀌냐?

게임은 끝났다. 날은 저물었고 승리한 아이는 구슬을 호주머니에 쓸어담았다. 패배한 아이는 뒤늦게 반칙이었다니, 한판 더하자니 하며 애걸하고 있다. 패자가 치사하게 물고늘어질수록 승자의 즐거움은 배가될 뿐이다.  

조중동의 속셈은 뻔하다.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이 뒤늦게 무슨 소리를 해도,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은 한국이 월드컵 사강에 올랐다는 현실이다. 누가 승리자인가? 누가 이 상황을 즐겨야 하는가? 왜 우리가 겁먹고 안절부절해야 하는가?

이탈리아의 치사한 이의제기에 우리가 공연히 쫄아있을 때, 딴지일보의 김어준은 『우리는 충분히 강하다』는 기사를 써서 승리를 자축하길 권했다. 마찬가지다. 우리는 이겼고 이제 4강전을 준비해야 한다. 그들의 헛수작에 일일이 대응할 필요없이 앞만 보고 가는 거다.

우리는 충분히 강하다. 우리는 승리를 즐길 자격이 있다

적들의 노림수는 노무현과 DJ 사이를 이간질 시켜보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의 저의를 꿰뚫어보고, 반대로 노-DJ의 결속을 다지고, 일사불란하게 조선일보에 맞서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는 승리자다. 마땅히 어른스러운 자세로 가야한다. 뒤늦게 딴지거는 이탈리아는 상대해줄 필요 없다. 우리의 남은 적은 터키와 독일과 브라질이다. 앞만 보고 가는 거다.

서프라이즈 토론방에서도 노무현파와 DJ파로의 분열을 예상하며 적들에게도 기회가 올거라는 식의 발언들이 올라오고 있다. DJ지지자인척 위장하여 DJ비판을 방해하는 방법으로 서프의 분열을 유도하는 글도 보이고 있다. 그래봤자 구슬치기에 진 아이가 『니랑 안놀아』하는거와 다를 바 없다. 이때 승리자가 해야하는 일은 그 상황을 즐기는 것 뿐이다.

문희상은 정치적인 타협을 모색하고 있고, 조순형은 원칙을 주장하고 있다. 긴장할 거 없다. 게임은 끝났다. 우리는 발 빠르게 진도를 나가야 한다. DJ가 어떻게 평가되든 다 지난 일이다. 물론 시시비비는 가려야 한다. 비판할건 비판해야 한다. 그래도 게임 끝난 뒤에 따먹은 구슬세기에 불과하다. 조선일보가 무슨 짓을 해도 역사의 시계를 되돌릴 수는 없다.

정책은 계승하고 통치스타일은 바꾸라

필자가 김대중대통령을 비판하는 이유는, 첫째 DJ의 비밀주의가 잘못이기 때문이고, 둘째 조선일보의 시비걸기가 이탈리아의 뒷다리잡기와 같은 부질없는 짓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 상황을 크게 걱정해서 노무현과 DJ의 일치단결, 결사항전을 외친다면 오바다.

나는 조순형을 원칙을 지지한다. 나는 정치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의연하게 바른 말을 하므로서 일관된 도덕적 우위를 지켜가야 한다. 이것이 진도 나가는 길이다. 이탈리아의 헛소리에 신경쓰지 않고 독일전을 준비하는 승부사의 자세이다.

정답은 나와 있다. 노무현은 DJ의 정책을 계승해야 한다. 그러나 통치스타일은 바꾸어야 한다. DJ의 정책은 옳았고 방법은 틀렸다. 노무현은 DJ와 다른 방법으로 DJ의 정책을 계승해야 한다. DJ의 성공여부는 DJ의 정책이 계승되는가의 여부에 달려있다. DJ는 씨앗을 뿌렸고 노무현은 가꿀 것이고 훗날 통일이라는 열매가 맺어질때 DJ는 정당하게 평가를 받는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 상황이 DJ가 미처 해결하지 못한 것을 정리하고 넘어가는 방식이라는 점이다. 조순형의 원칙론을 따라 특검으로 정리되든, 아니면 문희상의 협상론을 따라 정치적 타협으로 정리되든 어떻게든 정리될 건 정리된다. 겁먹을 필요는 전혀 없다.

조선일보가 DJ를 아무리 때려도 이회창은 당선될 수 없다. DJ는 출마하지 않았으니까. 상황은 정리될 것이며 조선일보가 얻을 것은 개평밖에 없다. 그들이 몇푼 뜯어낸 개평에 희희낙락하는 한 그들의 패배는 계속될 것이다. 우리는 승자의 여유를 가지고 특검수용이라는 개평을 주어보내면 그만이다. 무엇이 두렵단 말인가?

덧글 ..
방금 뉴스를 보니 노무현이 국회소관이라며 공을 국회로 넘겼군요. 기가 막힌 결정입니다. 플러스 5점 꾹. 이 정치게임의 본질은 조중동과 수구세력의
『도덕적 열패감의 보상』입니다. DJ의 도덕적 우위를 부인하기 위해 꼬투리를 잡는 거지요. 그럴수록 DJ 물귀신에 끌려든다는 사실을 모르고 말입니다. 우리의 대응도 역시 『일관된 도덕적 우위』를 지켜가기 외에 없습니다.


지난번 글에서 필자의 의도를 오해한 분이 있으므로 케네디 이야기를 좀 더 하겠습니다. 뭐 간단합니다. DJ를 정면으로 비판하기 뭣해서 닉슨을 통해 우회적으로 비판한 겁니다. 목적이 정당하더라도 방법이 잘못이면 시행착오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 잘못은 분명히 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케네디는 재클린을 이용해 이미지조작을 한 것이 아닙니다. 이는 반어법적인 표현입니다. 로라 부시가 재클린 흉내낸다고 샤넬수트를 백벌 입어도 웃음거리 밖에 안됩니다. 진짜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닫힌사회에서 열린사회로의 전환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소명입니다.

미국인이 더 높은 곳을 보도록 만든  마르틴 루터 킹 목사

헬렌 토머스 기자는 케네디 대통령에 대해서 『미국인이 더 높은 곳을 보도록 만든』 유일한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천만에. 미국인이 더 높은 곳을 보도록 만든 사람은 케네디대통령이 아니라 '마르틴 루터 킹' 목사이다. 《앗 오해하지 마세요. 이런 식의 표현은 케네디의 위대성을 강조하기 위한 방법이니까요. 위대한 마르틴 킹 목사를 포용한 케네디는 더 위대하지 않습니까?》

마르틴 루터 킹 목사를 죽이려고 집요하게 공작했던 사람은 매카시즘의 화신 '에드가 후버' FBI 국장이었고, 그 후버국장과 집요하게 대결한 사람은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이었고, 케네디대통령은 그 로버트 케네디의 형이었을 뿐이다.

케네디가 강조한 프런티어 정신은 정치적인 수사에 불과하다. 《앗 오해하지 마세요. 정치적 수사는 아무나 하는거 아닙니다.》 중요한건 킹 목사의 민권운동이었고, 더 중요한건 베이비붐 세대의 반전운동과 유럽을 중심으로 일어난 학생혁명이다.

알아야 할 사실은 이 모든 사건들이 시대정신의 발로이자 역사의 필연이었다는 점이다. 지난번에 이야기한 재클린 여사의 샤넬수트와 의상혁명, 히피족의 등장, 유럽에서 불붙은 학생혁명, 킹목사의 민권운동, 엘비스 프레슬리의 등장, 반전운동 등 60년대를 관통한 이 모든 사건들이 하나의 거대한 역사적 흐름이면서 한편으로 대통령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골치아픈 일들이다.

케네디의 위대성은 역사가 요구하는 이러한 흐름을 과감하게 긍정하고 수용했다는 사실에 있다. '제임스 딘'으로 상징되는 『이유없는 반항』의 시대, 그 반항을 권위주의로 억누르지 않고 선의로 받아들였다. 그 결과 30년 후 그 히피족 중 한명이었던 반항아 클린턴이 대통령이 된 것이다.

그 반대편에서 반항을 억누르는 권위주의의 상징이 후버국장이다. 당시 에드가 후버 FBI 국장은 모든 정치인을 뒷조사해서 약점을 잡고 있었다. 심지어 심지어 대통령의 사생활까지도 뒷조사 했다. 되도록 건드리지 않는 것이 보약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 후버국장과의 정면대결은 보통의 정치가가 할 수 있는 결단이 아니다.

되도록이면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은 것 중의 하나가 노조다. 마피아와 결탁한 전설적 노조지도자 '지미 호파'와 대결한 것도 물론 케네디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이 모든 일들이 사실은 긁어부스럼이다. DJ가 긁어부스럼 조중동과 정면대결을 하지 않았듯이, 안해도 될 일을 그는 용기있게 해낸 것이다.

나는 노무현이 케네디가 되기를 원한다. 이 나라에서 매카시즘의 화신은 조.중.동이다. 케네디가 대통령의 사생활을 뒷조사해서 약점을 잡았던 후버국장과 대결했듯이 노무현은 약점잡기에 혈안이 되어있는 조중동과 정면으로 대결해야 한다.

본질은 사설권력이다. 후버국장과 지미 호파의 공통점은 우리나라의 재벌, 조중동과 마찬가지로 사설권력으로 철옹성을 쌓고 성역을 만들었다는 데 있다. 그들은 국가 안에 국가를 만들고, 밤의 대통령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것을 정면으로 친 것이다. 왜?

아이젠하워, 드골, 처칠의 시대

60년대는 세계적으로 사회가 바뀌고, 문화가 바뀌고, 가치관이 바뀐 시대이다. 그 중심에 케네디가 있다. 그 이후에 비틀즈가 왔고, 학생혁명이 있었고, 대중문화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그 거대한 사회적 변화를 과소평가해서 안된다.

50년대는 권위주의 시대였다. 세계적으로 매카시즘의 광풍이 몰아쳤고, 미국에서는 늙은 아이젠하워 장군이, 영국에서는 늙은 처칠수상이, 프랑스에서는 늙은 드골장군이 각각 통치하고 있었다. 세계는 가히 영감들의 전성시대였다. 왜?

케네디는 그러한 시대와 맞선 것이다. 왜? 무엇 때문에? 필자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지금 논객들이 문제삼고 있는 좌파나 우파의 이런 정책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문화를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이다. 왜?

이 시대의 정신이 무엇인가이다. 권위주의 청산이다. 이 사회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사건들은 닫힌 사회에서 열린 사회로 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진통이다. 60년대에 미국에서 케네디가 그걸 해냈고 2003년 한국에서 노무현이 도전받고 있다.

스웨덴의 사민주의가 어떻고 하는 좌파들의 논의는 닫힌사회에서 열린사회로 전환하고 난 다음의 차기과제다. 60년대 후버국장과 지미호파로 상징되는 사설권력의 준동은 전형적인 권위주의 말기증세이다. 지금 한국에서 그 증세가 나타나고 있다. 치유되어야 한다. 이것이 역사가 우리에게 맡긴 우선순위 1번의 임무이다.

지금 우리는 닫힌 사회에서 열린 사회로 간다

박노자도 지적했지만 영국과 프랑스에서 60년대에 일어난 일이 한국에서는 아직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학생들이 교수 앞에서 굽실거리는 시대를 살고 있다. 가장 평등해야할 대학에 권위주의가 판치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매카시의 시대, 드골장군의 시대, 처칠의 시대, 아이젠하워의 시대를 살고 있다. 왜?

본질은 권위주의다. 권위주의는 닫힌 사회다. 시대의 요구는 탈권위주의다. 탈권위주의는 열린사회다. 닫힌사회에서 열린 사회로 가는 과도기에 반드시 등장하는 것이 사설권력이다. 조중동이고 재벌이고 하나회다.

미국에서 매카시와, 후버국장과, 지미호파로 상징되는 것이 그 닫힌 사회이다. 그 반대편에 마틴루터 킹과, 케네디와, 비틀즈로 상징되는 것이 열린 사회이다. 즉 미국은 60년대 케네디에 의해 닫힌사회에서 열린사회로 이행한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역사의 흐름으로 보면 김대중대통령은 드골과 아이젠하워와 처칠의 연장선 상에 있다. 여전히 한국은 닫힌 사회다. 한국은 여전히 학생혁명이 일어나기 전이요, 엘비스 프레슬리와 비틀즈가 오지 않은 시대이다.

사설권력은 해체되어야 한다. 한국도 열린 사회로 가야 한다. 권위주의 문화는 타파되어야 한다. 대중문화의 시대가 와야 한다.바로 그것이 킹 목사의 민권운동이고, 60년대 프랑스와 독일의 학생혁명이고, 박노자가 책 한권을 써서 한국사회에서 주문한 것이고, 지금 노무현이 맞닥드리고 있는 역사의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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