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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실험 - 호들갑 떨 일인가?

위기 때 어떻게 처신하는지를 보아서 그 사람의 수준을 알 수 있습니다. 상황은 아직 유동적입니다. 몇 가지 변수가 있는데.. 좀 아는 고수라면 이런 때 장고하는 척 하는게 맞습니다.

위기지만 급박한 위기는 아닙니다. 사실 저도 짜증이 납니다. 유쾌한 일은 분명 아니지만.. 이 정도 일에 스트레스 받아서 깝치고 나서면 하수지요.

그래서 입 다물고 있으려 하는데.. 자꾸 물어오는 사람이 있어서.. 저더러 한 마디 하라고 하는데.. 별로 할 말은 없고.. 호떡집에 불 나면 구경거리가 되지만.. 백화점에 불 나면 내가 나서봤자 소방차가 와서 불끄는데 방해나 될 뿐..

불이 나면 초동진압을 잘해야 하는데.. 이미 초동진압에 실패했다면 침착하게 대처하는 것이 맞습니다. 의연하게 사태를 관망하자는 거죠. 요 정도 일에 스트레스 받아서.. 김정일 죽일놈 하며 핏대 세우는 분이 서프 논객 중에도 있다는데.. 김정일이 나쁜 넘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성을 찾으시길.  

서프 수준이 있지.. 이게 놀랄 일입니까? 핵실험은 남북 차원의 문제가 아니에요. 일이 이렇게 되면 우리 손을 떠난 겁니다. 오히려 홀가분할 수도 있잖습니까? 오늘 주가도 회복되고 있다는데.. 주식 투매하고 그러지 마세요.

위기는 위기입니다. 위기가 아니라고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위기일수록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이 진짜지요. 세상 일이 다 그렇듯이 판이 커지면 대신 진행속도가 느려지는 법이니까.

 

누가 움직이는 판인가?

좁게 보면 북한과 미국 양자간의 문제입니다. 남한과 북한은 적대행위를 중단했고 북한과 미국은 아직도 적대행위를 하고 있으니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지들 둘이서 찌지고 볶을 문제지요.

그런데 그 불똥이 우리에게도 튀니까.. 개입하지 않을 수 없는데.. 좀  넓게 보면 남북한을 중심으로 미일중러 6자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이해관계자인 6자가 회담을 하는 거지요.

그런데 더 크게 보면 UN차원의 문제입니다. 이라크도 그렇고 이란도 그렇고 왜 이런 일이 자꾸 터져나오는가? 본질은 냉전이죠. 전 세계가 냉전 이후 새로운 질서에 합의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압박을 받고 있는 겁니다.

무엇인가? 기존 질서는 2차대전이 만든 거고.. 그 이후 냉전 때문에 생긴 질서인데 냉전이 끝났으니 이제는 국제사회가 새로운 질서를 창출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도 나서지를 않으니 이것이 미국에 기회를 준 거죠.

미국이 냉전의 승자로서 패권을 얻었지만.. 그 만큼 외교적인 부담도 늘어났습니다. 지금 상황이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고 있는 미국 입장에서 아주 피곤하게 된 상황입니다. 느긋하게 패권을 즐길 여유가 없어진 거죠.

이 상황에서 북한은 판을 좁혀서 북미 양자간의 문제로 만들고 싶어합니다. 반대로 한국은 이를 넓혀서 6자의 문제로 만들려고 합니다. 본질은 이 판을 좁히느냐 넓히느냐입니다. 핵실험으로 판이 커져서 이제는 100자회담이라도 해야될 판이라는 거죠.

그런데 여기서 미국의 대응은 2중전략입니다. 미국은 일관성 없이 이랬다 저랬다 하고 있어요. 클린턴 때 다르고 부시 때 다르지요. 부시가 아마 또 태도를 바꿀 겁니다. 그게 변수.

 

부시 - 패를 어떻게 받을까?

미국은 전통적으로 개입주의와 고립주의 사이를 왔다갔다 했는데.. 여기에는 일정한 원칙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 하는 방향으로 움직인 것이죠.

부시가 나쁜 넘인건 확실하지만.. 그렇다 해서 민주당에 환상을 가질 필요도 없죠. 94년에 영변을 폭격하려 하고.. 슈퍼 301조를 들고나와서 겁주고.. 전방위로 세계문제에 개입하려 한 것은 민주당입니다.

제국의 위신을 노리는 클린턴의 개입주의와 석유를 노리는 부시의 개입주의가 둘 다 고약하긴 마찬가지지만 접근방법이 다르지요.  

● 민주당 - (오지랖 넓게도) 전 세계를 민주화 시키겠다.
● 공화당 - (이해타산을 따져서) 석유나 뺏어오겠다.

북미 양자간의 담판을 요구하던 김정일의 핵실험은 역설적이게도 이를 UN 차원의 문제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부시가 일단 신중하게 나오고 있는데.. UN을 자기편으로 만들어 외교에서 점수를 따는 맛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두고 봐야 알겠지만.. 부정적인 조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UN차원의 문제로 만드는 것이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는 부시 입장에서는 짐을 덜어내는 것이지요. 이렇게 되면 사태가 장기화 되고 미국으로서는 시간을 버는 것이죠. 하여간 북한에 석유가 없는게 다행입니다.  

좋은 소식은 분명 아닙니다. 사태가 장기화 되어 통일은 더 멀어질 수 있습니다. 저도 화가 납니다. 그러나 항상 동전의 양면을 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핵은 교착이지요. 미소의 핵이 3차대전의 재앙을 막았습니다.

부시라는 인간을 잘 봐야 합니다. 부시가 조중동이 생각하는 그런 인간이 아니에요. 조중동은 유교적 서열주의에 쩔어 있어서 미국은 형님 한국은 동생.. 이렇게 가족주의로 생각하는데.. 천만에요.

의외로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가 배짱이 맞는 면도 있니다. 왜? 체면이라는 복잡한 변수를 빼고 이해관계만 따지니깐. 이건 조중동이 간파하지 못한 거지요.

시간에 쫓기는 북한으로서는 6자회담으로도 답이 안나온 문제를 100자회담으로 만들어 버렸으니 당장은 이익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건 장단점이 있는 문제이고.

부시가 체면을 따지지 않는 실용주의로 나오면 노무현 대통령 입장에서 부시가 클린턴 보다 더 다루기 쉬울 수도 있습니다. 이해관계만 말해주면 되니까.

 

흥분할 일은 아니다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 되고 어른 싸움이 동네싸움이 됩니다. 판이 더 커지면 우리 손을 떠나버리게 되는데.. 우리의 문제가 남의 손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 기분나쁘긴 하지만.

94년 때와는 다릅니다. 그때는 영변 원자로라는 분명한 타격대상이 있었지만 북한이 이미 핵물질을 확보해버린 지금 타격해봤자 실익이 불분명하고 그동안 중국이 많이 컸기 때문에 미국도 신중하게 가는 것이 맞습니다.

변수가 남아있으므로 아직 알 수는 없지만.. 가장 큰 변수는 부시가 또라이라는 점.. 그리고 경제 제재의 수위를 알 수 없다는 점.. 그러나 길게 보면 핵이 상황을 교착시켜 사태를 장기화 시킬 수도 있습니다.

통일은 더 어려워졌을 수도 있으므로 반가운 소식은 아니지만.. 어떻든 이 문제는 냉전해체 이후 국제사회가 UN주도의 신질서에 합의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쪽으로 결론이 날 것입니다.

미국이 불을 끄겠다고 나섰다가 실패했다면.. 이제 UN이라는 소방차가 달려올 테니까 우리는 일단 뒤로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소방차에게 길을 비켜준다는 마음으로.. 흥분을 가라앉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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