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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9645 vote 0 2006.12.19 (00:03:39)

(시리즈로 쓰는 글입니다.)


가치의 관점에서 보라

질서는 구조다. 구조는 포지션이다. 어떤 분야든 정해진 포지션이 있고, 갖추어야 할 세트가 있고, 짜여진 모듈이 있고, 꾸려진 팀이 있고, 정해진 조직체계가 있다. 가치는 그 중에서 잃어버린 포지션 찾기다.

포지션이란 무엇인가? 전투가 벌어진다면 중무장한 보병을 중앙에 두어 종심을 보호하고 기병을 양 날개로 붙여 적의 포위에 대비해야 한다. 노궁수와 등패수와 장창병도 제 위치를 지켜야 한다.

그런데 어느 한쪽이 없다면? 활을 든 사수가 없거나 칼을 든 살수가 없거나 조총을 든 포수가 없다면? 그 부분이 취약점이다. 비어있는 쪽을 공격하면 적진은 일시에 붕괴된다. 모든 포지션에 충분히 대비가 있어야 한다.

문제는 빠진 포지션을 찾을 수 없다는 데 있다. 궁수가 부족한지 보병이 부족한지 기병이 부족한지 알아낼 도리가 없다. 그것은 베테랑 전사의 수없이 많은 전투경험에 의해 체득되는 것이다.

이때 빠진 부분을 찾아주는 것이 시장원리다. 시장에서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면 그 부분이 빠진 포지션이다. 집값이 폭등하고 있다면 부동산이 빠진 포지션이고 기름값이 오르고 있다면 석유가 빠진 포지션이다.

구조는 계 내부에서 대칭과 평형을 이룬다. 포지션은 계의 평형을 위한 포지션이다. 포지션들 중 하나가 빠지면 밸런스가 붕괴한다. 밸런스가 무너질 때 가격이 요동을 친다. 그것이 시장원리다.

그럴 때 정치가는 선거에서 낙선하고 병사는 전쟁에서 패전하며 선수는 시합에서 진다. 시장에서 물가는 오르고 내린다. 그 잃어버린 포지션을 찾아내서 밸런스를 회복하여 주는 것이 가치다.

밸런스는 중심부와 주변부 사이에 있다. 공격과 수비 사이에 있다. 중앙과 지방 사이, 주류와 비주류 사이, 본부와 현장 사이에 밸런스가 있다. 그 중 한 부분이 취약할 때 시스템의 구조는 붕괴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이 있다. 하나는 질서의 관점이고 하나는 가치의 관점이다. 질서는 안정을 보고 가치는 변화를 본다. 변화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가치의 관점에서 사유할 수 있어야 한다.

잃어버린 포지션이 있다. 평소에는 잠복하였다가 움직일 때만 그 존재를 드러내는 포지션이 있다. 보병도 아니고 기병도 아니며 장창병도 아니고 궁노수도 아닌 또다른 정예가 있다. 가치로 보아야 그것이 보인다.


잃어버린 포지션 찾기

중심부가 움직이면 주변부는 이탈한다. 이때 중심부와 주변부를 이어주는 고리가 있다. 바로 그 부분이 빠진 포지션이다. 문제는 중심부가 움직이지 않을 때는 그 취약점이 드러나지 않는다는데 있다.

무엇이 중심부와 주변부를 잇는가? 소통이다. 피드백이다. 쌍방향 의사소통이다. 사회에서는 신용이다. 전투 중에는 정보와 속도다. 편제에서는 장교와 부사관이다. 이들이 중심부와 주변부를 잇는 고리다.

그것은 사이다. 구조는 사이다. 그러나 그 사이의 역할은 평소에 드러나지 않는다. 변화할 때만 드러난다.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정보는 필요하지 않다. 소통은 필요하지 않다. 신용은 필요하지 않다.  

적군과 대치하고 있다. 밀고 당기는 중에 취약점이 드러난다. 어느 한 쪽이 뚫린다. 예비병력을 그 쪽으로 돌려야 한다. 문제는 그 예비병력이 있는가이다.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는가이다.

좋은 조직은 언제라도 구조적인 약점을 커버할 예비대를 운용하고 있다. 태스크포스팀이 편제되어 있다. 특공대가 있다. 수색대가 있다. 기획조정실이 있다. 연구실이 있다. 별동대가 있다. 유격대가 있다.

그라나 보통은 그렇지 않다. 예비병력을 두지 않는다. 예비대는 평소에 특별히 하는 일이 없다. 그러므로 자원의 낭비라고 생각된다. 100퍼센트 취업하여 실업자가 전혀 없는 것이 최적화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그 사회에 실업자가 전혀 없다면 벤처붐과 같은 정보화의 격변기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없다. 100퍼센트 완전고용은 전혀 이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아주 위험하다.  

도로개설의 필요성은 건물이 일정한 정도 이상 들어차야 깨닫게 된다. 신호등의 필요성은 자동차가 일정한 정도 이상 증가해야 깨닫게 된다. 그 전에는 모른다. 그 전에는 필요하지 않다. 항상 뒤늦게 깨닫게 된다.

왜 권위주의는 실패하는가? 예비자원을 확보해두지 않기 때문이다. 중심부가 움직이기 전에는 주변부의 이탈이 감지되지 않는다. 하의상달이 없는 권위주의로는 예비병력의 필요성을 깨닫지 못한다.

권위주의가 반짝 성공할 때도 있다. 후진국에서 개발독재가 먹히는 이유는 선진국에서의 경험을 통해 잃어버린 포지션의 존재가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선발주자의 시행착오가 교훈이 되어 후발주자는 안전하게 자원을 운용할 수 있다.

권위주의로 하위권을 중위권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 뿐 중위권을 상위권으로 도약시킬 수는 없다. 그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1등은 남의 것을 베낄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기 힘으로는 잃어버린 포지션을 찾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좌파들은 사회를 균질화 시키려는 그릇된 욕망을 가지고 있다. 고르게 균질화된 상태는 포지션을 잃어버린 상태다. 포지션이 고정된 상태다. 만약의 경우를 위한 예비포지션이 없는 상태다. 반드시 실패한다.

시장에서의 경쟁이 없는 한 잃어버린 포지션은 절대로 찾아질 수 없다. 지금은 도로가 없어도 되지만 미래의 어떤 시점에는 도로가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식의 막연하고 불확실한 전망으로는 아무도 설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시장원리에 의해 그 숨은 포지션이 찾아진다. 민주주의는 정당 간의 경쟁에 의해 숨은 포지션을 찾는다. 숨은 포지션을 찾지 못하는 정당은 약점을 공격당하게 되므로 선거전에서 패배하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의 혁신

전투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선택과 집중이다. 적의 취약점을 찾아 그 곳을 선택적으로 공격하기다. 적의 포지션 중 하나가 비어 있다면 그 비어있는 하나에 집중하는 방법으로 승리할 수 있다.

나폴레옹이 이러한 전술에 능했다. 승리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적 보다 숫자가 많으면 된다. 이쪽의 숫자를 늘릴 수는 없으므로 대신 적을 둘로 쪼갠다. 이를 위해서는 포병의 역할이 중요하다.

나폴레옹은 하층민 출신이었다. 코르시카 출신의 촌놈이었던 나폴레옹은 신분상의 제약으로 인하여 폼 나는 기병장교로 출세할 수 없었다. 동료들이 기병장교로 출세할 때 그는 포병으로 바닥을 기었다.

나폴레옹은 포병의 운용에 능했다. 전투에서 포병의 중요성은 진작에 부각되었으나 포병은 궂은 일이기 때문에 엘리트 출신 귀족들이 포병을 지망하지 않아 포병전술을 아는 이가 없었다.

나폴레옹의 전술은 일점포격으로 종심을 타격하여 적을 둘로 쪼갠 후 각개격파 하는 것이다. 적이 쪼개지면 아군을 다수와 소수로 나눈 다음 소수로 쪼개진 적의 절반을 교착시키고 다수로 나머지 절반을 포위 섬멸한다.

적의 절반을 제거한 다음 병력을 돌려 나머지 절반을 제압한다. 언제나 수적 우세를 유지하는 것이 전술의 핵심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동력이 필수다. 나폴레옹은 병사들의 군장을 줄이고 행군속도를 높여서 해결했다.

그 나폴레옹도 워털루에서는 졌다. 다국적군으로 이루어진 적이 집결하기 전에 먼저 전장을 선점하고 차례로 도착하는 적을 각개격파 하려 했는데 적이 예상보다 이르게 전장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수족같이 움직여주던 동료와 부하들이 귀족으로 출세한 후에는 수족처럼 움직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심부와 주변부를 잇는 고리가 잘려나갔기 때문이다.

장수와 병사 사이를 잇는 것은 장교들이다. 그 장교들이 그 사이에 모두 출세해서 거만한 귀족이 되었다. 새로 선발한 장교들은 나폴레옹의 전술에 익숙지 않았고 출세한 옛 장교들은 궂은 일을 회피하였다.

나폴레옹 군대는 장교가 강했다. 중심부의 장군과 주변부의 사병 사이를 잇는 중간허리가 강했다. 왜인가? 나폴레옹 자신이 가장 유능한 장교였기 때문이다. 그는 장교의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다.

나폴레옹이 장교의 마인드를 버리고 황제의 마인드로 바꾸자 그의 동료와 부하들도 귀족의 마인드로 바꾸었다. 나폴레옹 군대의 특기였던 정보와 속도 그리고 유능한 장교단은 나폴레옹 군대에서 떠나갔다.

충성스런 소년병들이 용감히 싸웠지만 그들을 독려할 장교는 그 전장에 없었다. 중심부가 움직이면 주변부는 이탈한다. 장교가 황제되면 부사관은 귀족된다. 중심부와 주변부를 잇는 고리는 잘려나간다. 구조적 취약점이다.    


구조는 관절 부분이다

인체의 취약점은 관절이다. 대부분의 급소는 관절에 있다. 뼈마디만 관절이 아니다. 신경망은 정보의 관절이고 혈관은 칼로리의 관절이다. 관절은 힘을 전달하고 신경은 정보를 전달하고 혈관은 칼로리를 전달한다.

모든 전달하고 소통하는 부분이 관절이다. 건물로 치면 주두와 포(包)다. 포는 주두 위에 올려져서 처마를 받친다. 수직의 기둥과 수평의 서까래가 만나는 부분이다. 기역자로 꺾이는 부분이다.

바로 이 부분이 숨은 포지션이다. 수직의 기둥이나 수평의 들보를 알아도 그 둘 사이의 접점에 대해서는 모른다. 도리아식이니 이오니아식이니 코린트식이니 하는 양식이 다 그 접점에 대한 고민을 반영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문화사는 양식사다. 양식사는 그 접점에 대한 고민의 역사다. 연결부위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한복은 동정으로 깃을 처리하고 양복은 칼라로 깃을 처리한다. 한복은 옷고름으로 연결하고 양복은 단추로 연결한다.

지퍼는 1893년에 선드바크와 저드슨에 의해 발명되었으나 청바지가 보급되기 전 까지는 가죽장화에나 사용되었을 뿐이다. 단단한 쇠로 된 지퍼와 부드러운 비단 옷감을 결합시키기는 정말 어렵기 때문이다.

문제는 쉬워 보이는 그 부분이 결코 쉽지 않다는데 있다. 실크 셔츠에 금속제 지퍼의 결합은 정말이지 쉽지 않다. 아니 어쩌면 거의 불가능하다. 궁합이 맞지 않다. 지퍼는 획기적 발명이지만 발명가는 큰 돈을 벌지 못했다.

다섯 단이나 포를 올려놓은 다포식 한옥건물의 처마는 화려하다. 그 화려함이 그저 멋부리기가 아니다. 목수들이 처마의 길이를 한 자라도 길게 하기 위해 그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했는가를 반영하고 있다.  

기둥 사이에 평방과 창방을 놓고 기둥 위에 주두를 놓고 두공을 놓고 소로를 놓고 첨차를 놓고 쇠서를 놓고 장혀를 놓고 메뚜기머리를 놓고 살미첨차를 놓고 도리를 놓고 축목을 올리고 겹처마를 이어야 궁전의 처마가 된다.

연결부위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남자와 여자는 어떻게 연결하는가? 중매로 연결할까 아니면 연애로 연결할까? 미팅으로 연결할까 채팅으로 연결할까? 그것이 미학이고 그것이 그 사회의 양식이다.

영화가 필요하고 소설이 필요하고 여행사가 필요하고 드라마가 필요하고 음악이 필요하고 춤이 필요하고 축제가 필요하고 제사가 필요하고 행사가 필요하고 광장이 필요하고 인터넷이 필요하다. 너와 나의 연결을 위하여.

아무도 모른다. 구조의 중요성을. 구조적 취약점의 존재를. 언제 어디서 어떻게 구조적 결함이 발생하는지 모른다. 외부에서의 힘의 작용이 없으면 구조의 결함은 드러나지 않는다. 숨은 포지션의 존재를 깨닫지 못한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가?

구조는 세트다. 구조는 모듈이다. 구조는 팀이다. 하나의 세트, 하나의 모듈, 하나의 팀이 조직하여 블록을 이룬다. 블록을 쌓아 건축은 완성된다. 문제는 이 중 중요한 하나가 결핍되어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포지션 중 하나가 빈다는 것은 건물의 기둥 하나가 자빠진 것과 같다. 그것이 잃어버린 포지션이다. 우리는 무엇을 잃어버렸나? 시장이 알려준다. 가격이 비싼 것은 무엇인가? 금이다. 금은 변하지 않는다.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신용이다. 사회는 지금 신용을 잃어버리고 있다. 신용이야말로 우리의 잃어버린 포지션이다. 그러나 우리는 신용을 대표하는 금값이 올라도 그러한 사실을 잘 알아채지 못한다.

김근태들은 아직도 모르고 있다. 개혁이다 실용이다 왔다갔다 하면서 신용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금은 변하지 않아서 금값인데 김근태는 숙주나물처럼 변해서 숙주나물 값이 되었더라.

어떤 사람이 좋은 계획을 가졌다면 그 자체로는 나무랄 데가 없다. 그러나 그 계획을 추구하는 순간 사회의 약속은 깨지고 신용은 붕괴한다.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들의 가치가 그제 드러난다.

부자가 자선을 위해 1조원의 화폐를 시장에 풀면 어떨까? 물가는 폭등하고 빈민은 굶어죽는다. 빈자를 돕겠다는 부자의 선의가 오히려 빈자를 굶어죽게 만드는 것이다. 역설이다. 부작용이다.

물가는 그 자체로 사회의 약속이다. 부자가 금전의 힘으로 그 사회의 약속을 깨뜨렸다. 문제는 이러한 부분이 미묘해서 잘 관찰되지 않는다는데 있다. 부자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른다.

부자가 쌀을 구입해서 빈자들에게 나눠주면 내년에 심을 종자가 바닥나서 농민들은 파종을 못한다. 건드려서 안 되는 포지션을 건드린 것이다. 건물의 기둥을 자빠뜨려서 땔감으로 쓴 셈이다.

종자가 부족하면 외부에서 사들이면 된다. 그런데 시중에 종자가 바닥났다는 사실을 이듬해 봄이 되도록 아무도 모르고 있다면? 알려줘야 한다. 알려주기 위해서는? 소통해야 한다. 그 소통은 쌍방향 의사소통이어야 한다.

그러나 보통은 어떤가? 상의하달은 되어도 하의상달은 되지 않는다. 시장에 종자가 바닥나서 내년에 재앙이 예비되어 있어도 아무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시장이 존재하기에 그나마 겨우 정보가 전달된다.

해마다 소값파동 돼지값파동 양파값파동 김치가금치파동이 일어난다. 정보가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배추를 너무 많이 심었는지 혹은 너무 적게 심었는지는 가을에 추수를 해봐야 겨우 알게 된다.  

가치란 무엇인가? 그 빠진 포지션을 찾아서 채워넣는 것이다. 사막을 가로지르는 여행자는 물을 챙겨야 한다. 사막에서는 물이 가치가 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포지션은 무엇인가? 사랑이다. 사랑을 챙겨야 한다.


역발상의 접근법

열역학 제2법칙은 질서와 무질서의 의미를 일반의 통념과 다르게 풀고 있다.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무질서한 상태는 뒤죽박죽으로 혼란한 상태가 아니라 고른 상태이다. 균질한 상태이다.

독일병정 같이 유니폼을 입고 줄을 맞추어 도열한 상태가 오히려 무질서한 상태라는 말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열역학 제2법칙이 맞고 우리의 통념이 틀렸다. 질서라는 개념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 한다.

우리가 질서라 믿는 것은 참된 질서가 아니다. 권위와 지배와 복종과 조직과 명령과 통제에 따른 질서는 질서가 아니라 오히려 무질서다. 시장원리가 그러하듯이 이심전심에 의해 절로 돌아가는 참 질서는 따로 있다.

질서는 힘을 갖춘 상태다. 댐이 만수위로 물을 저장하듯이 속에 에너지를 감추고 있는 상태다. 댐의 수위가 높아야 한다. 발전기를 가동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높이의 낙차가 확보되어 있어야 한다.

균질한 상태는 그 낙차가 없다. 권위주의 사회는 그 낙차가 없다. 있는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없다. 권위주의는 겉으로 강해 보이지만 실로 약하다. 반대다. 민주주의는 약해 보이지만 실로 강하다.  

왜인가? 하나의 조직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다방면의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 권위주의는 이 중 하나를 위해 다른 것을 희생시킨다. 전쟁을 위해 경제를, 경제를 위해 문화를 희생시킨다.

독일군대는 바둑판처럼 질서정연하게 도열한다.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에 의하면 그것이 질서가 아니고 무질서란다. 그렇다. 진정으로 말하면 그것이 무질서다. 왜? 몰아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병사들은 제 눈과 귀와 코와 입을 떼어 상관에게 맡겨 버린다. 역할나누기를 한 것이다. 그럴 때 구조적으로 취약해진다. 그러나 그 약함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아무도 모른다. 속으로는 곪아 있어도.

결과는 어떤가? 독일군대는 이두박근의 힘을 얻은 대신 눈과 귀와 코와 입을 잃어버렸다. 판단력을 잃어버렸다. 결과는 재앙으로 나타났다. 무엇인가? 독일군대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질서가 없었다.

눈이 없으니 보지 못하고, 귀가 없으니 듣지 못하고, 입이 없으니 말하지 않는다. 환경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다. 잃어버린 포지션의 존재가 그제서야 불거진다. 권위주의에 의해 독일은 총체적으로 약해진 것이다.

그렇다.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 말하는 역학적 질서는 조직을 구성하는 낱낱의 개체가 제각기 눈과 귀와 코와 입과 손발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 중 하나를 잃을 때 그 만큼 포지션을 잃어버린 것이다.


미래의 대안은 따로 있다

질서란 무엇인가? 세트가 맞는 것이다. 공격수와 수비수와 골키퍼가 역할을 나누고 있는 것이다. 장창병과 등패수와 노궁수가 역할을 분담하고 각자 제 위치를 지키는 것이다. 그러나 틀렸다. 진정한 질서는 따로 있다.

진정한 질서는 그 역할을 고착시키지 않고 언제라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멀티 플레이어가 되는 것이다. 장창병이 등패수를 겸하고 등패수가 노궁수를 겸할 수 있는 것이다. 유연하게 포지션을 변경시킬 수 있어야 한다.

오늘날 서구 중심의 사회주의 담론은 인간을 균질화 시키려는 그릇된 욕망에 빠져 있다. 그들은 포지션의 변경을 인정하지 않는다. 모든 병사를 투창병이나 궁수로 고정시키려 한다. 이미 권위주의에 오염되어 있다.

권위주의가 실패하는 이유, 그리고 오늘날 좌파의 사회주의 담론이 오류를 벗어날 수 없는 이유는 미학적 양식의 문제에 부닥치기 때문이다. 그것은 중간 연결부위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무엇인가? 포지션은 역할 나누기다. 그러나 환경이 변화하면 특정 포지션에 대한 수요가 급증한다. 역할나누기로 한계가 있다. 오히려 역할을 통합해야 한다. 개인이 모든 역할을 소화할 수 있도록 완성되어야 한다.

특공대가 열심히 훈련하는 것은 침투와 폭파가 아니라 의무병 역할이다. 적지에 침투하여 작전을 수행하려면 일단은 살아남아야 한다. 생존술을 연마해야 한다. 이상적인 사회는 모든 병사가 유격대가 되는 것이다.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이 그러하다. 모든 국민이 대통령 수준에서 고민해야 한다. 모든 개인이 신(神)의 고민을 나의 고민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럴 때 인간은 완성된다. 완성될 때 소통한다. 소통할 때 빛난다.

● 최악의 질서(유교주의 시스템) - 변화가 없다는 전제 하에 만들어진 고착된 질서. 중심부와 주변부 사이를 잇는 중간 허리가 없다. 계급간 정보의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변화에 대응할 수 없다.  

● 차선의 질서(근대주의 시스템) - 각자가 포지션을 나누고 자기 위치를 지키는 사회. 포지션들 사이에서 정보를 전달하는 매개가 있다. 중심부와 주변부를 잇는 중간 허리가 강하다. 중간 간부의 역할이 강조된다. 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

● 진정한 질서(이상주의적 대안) - 모든 인원이 모든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사회. 조직구성이 유연하여 특정 포지션에 대한 수요의 급증에 대비할 수 있다. 정보의 소통이 중간그룹을 거치지 않는다. 중간 간부가 필요없다.

20세기는 신분을 고착시켜 계급간 소통을 차단한 봉건주의를 타파하고 최악의 질서에서 차선의 질서로 조금 옮겨왔을 뿐이다. 그러나 여전히 중간그룹이 사회의 허리 역할을 하고 있다.

교회에는 승려와 목사가 있고 대학에는 교수와 강사가 있고 사회에는 경찰과 공무원이 있고 회사에는 과장과 부장이 있다. 군대에는 장교와 부사관이 허리가 되어야 하고 사회에는 중산층이 허리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20세기라는 불안정한 구조의 모습이다. 오늘날 유행하는 사회주의 담론도 중간그룹의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에 의하면 이는 질서가 아니다. 무질서다.


누가 혼돈을 죽였는가?

어떤 경우에도 자원을 100프로 가동해서 안된다. 틀에 꽉 맞추어서 안 된다. 유드리를 두어야 한다. 투창병도 아니고 방패수도 궁수도 아니면서 필요에 따라 그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만능의 예비병력이 있어야 한다.

이들 예비병력은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에 언뜻 무질서로 보이지만 환경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내부에 질서를 감춘 병사다. 진정 그 병력은 어디에 있는가? 편제에는 없고 마음에 있다.

생텍쥐뻬리의 어린왕자에서 조난당한 비행사가 소년에게 그려준 양 한마리와도 같다. 양은 아직 그 상자 속에 들어있다. 그것은 인체의 모든 기관과 조직으로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 줄기세포와 같다.

북해의 홀과 남해의 숙이 일곱 개의 구멍을 뚫어 죽여버린 중앙의 혼돈(混沌)이 무의미한 혼란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장자가 용이하게 설명은 못하고 있지만 혼돈은 모든 긍정과 부정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판도라의 상자다.

그렇다. 장자는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을 이해하고 있다. 혼돈이야말로 진정한 질서의 가능성이다. 혼돈은 홍명보다. 포지션이 고착되어 있지 않은 리베로다. 모든 변수에 대응할 수 있는 만능플레이어다.  

미래의 이상적인 사회는 전문가집단이라는 중간그룹이 필요없는 사회다. 우리가 꿈 꾸는 미래는 전혀 다른 사회이어야 한다. 우리가 꿈 꾸는 사회는 미학적 양식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할 수 있는 사회다.

연결부위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의 문제에 답하는 사회가 이상적인 사회다. 어떤 형태이든 연결부위에 중간그룹이 포진하고 있을 때 소통의 장벽은 높아진다. 그 소통의 길목에 또아리를 틀고 농간하는 브로커가 반드시 생겨난다.

계몽이 있고 교양이 있고 도그마가 있고 강령이 있고 조직이 있고 집단이 있고 전위가 있고 후방이 있고 시스템이 있어서는 양식의 문제를 결코 극복할 수 없다. 이때 인간은 약해지고 만다. 좌파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중간그룹이 중간에서 정보를 차단하고 조작한다. 모든 교수는 정보의 브로커다. 모든 정치인은 뚜쟁이다. 모든 전문직이 본질에서 브로커다. 모든 변호사는 떴다방이고 모든 언론이 협잡이다. 모든 평론은 주례사다.  

미학적 양식이 일반화 되면 중간그룹은 절로 사라진다. 자유연애가 양식화되면 중매인과 뚜쟁이와 매파는 설 자리가 없다. 공판장이 문을 열면 중간상인의 농간은 불가능해진다. 정보가 소통하는 곳에 중간그룹은 소거된다.
  
나폴레옹은 유능했지만 단지 봉건적 질서를 근대적 질서로 바꾸었을 뿐이다. 그는 참된 질서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는 군대의 중간허리인 장교그룹을 양성했다가 장교그룹을 통제하는데 실패해서 망했다.  

미래의 전쟁은 모든 병사가 장군이어야 한다. 유격대의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적의 후방에 침투하는 침투조는 2인 1조가 명령에 복종하는 병사이면서 동시에 고도의 전략적 판단을 하는 장군이어야 한다.

미래의 회사는 과장과 부장이라는 중간 전달자가 필요없다. CEO가 이메일로 사원에게 바로 전달한다. 대통령이 편지로 당원에게 직접 말한다. 의원 여론조사 따위 중간그룹의 뻘짓은 필요없다.

우리가 꿈 꾸는 사회는 전혀 다른 사회이다. 21세기의 개혁은 소통의 방해자인 중간그룹을 배제하여 가는 것이다. 중심부와 주변부가 언론권력의 검열을 거치지 않고 바로 소통하는 사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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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1 "인간이 그립다" 김동렬 2007-05-31 10057
1760 마주 서기(수정) 김동렬 2007-05-28 12269
1759 노동은 과연 신성한 것인가?(수정) 김동렬 2007-05-28 12186
1758 유시민이 어때서? 김동렬 2007-05-21 11625
1757 현대성이란 무엇인가(계속) 김동렬 2007-05-17 11835
1756 현대성이란 무엇인가?(업데) 김동렬 2007-05-17 11098
1755 이명박 정동영 명계남 김동렬 2007-05-17 12855
1754 이명박이 밀렸다. 김동렬 2007-05-16 12849
1753 정동영 기차태워 주랴? 김동렬 2007-05-12 12956
1752 단상 - 떵태 약올리기 위해 쓰는 글 김동렬 2007-05-09 14725
1751 노-DJ세력의 빅딜은 가능한가? 김동렬 2007-05-07 11219
1750 노무현 논객의 등장 김동렬 2007-05-03 10433
1749 "이명박-약하다 약해" 김동렬 2007-05-02 11913
1748 여우의 충고 김동렬 2007-04-27 104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