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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0883 vote 0 2007.02.20 (14:25:26)

<개인적인 글입니다.>

누군가가 자살시도까지 갔다면 갈때까지 간 것이다. 그러므로 자살에 대해 논한다 해도 자살 그 자체가 논의대상은 아니다. 인간의 세치 혓바닥에서 나오는 언어 따위에 존재의 무게를 감당할 파워가 있을 리 없다.

자살을 논함은 결국 소통의 단절을 논함이며, 소통의 단절을 논함은 결국 소통을 논함이며, 소통을 논함은 결국 미학적 완성을 논함이며, 그것은 결국 신의 완전성을 재현하는데 대한 논의인 것이다.

자살이라는 한계상황에서 그 점이 더욱 뚜렷히 부각되어 보인다. 욕망이니 성공이니 선(善)이니 정의니 하는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아니하고 본질문제로 바로 쳐들어가기 위하여 자살이라는 극단적 상황이 예시될 뿐이다.

본질은 다시 인간의 삶이며 그 삶의 완성이며 완성을 위한 소통이다. 그 소통의 끝에 네가 있고 내가 있고 그 둘을 만나게 하는 신의 완전성이 있다. 완전하다. 그래서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 드러내기에 성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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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라는 말은 위험하다. 극단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함부로 진리를 논했다면 둘 중 하나는 부러진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인간들은 대략 진리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려고 한다. 그 압도적인 위압감에 좌절하기 십상이기 때문.

공자는 이르기를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했다. 만약 당신이 오늘 진리를 듣는다면 지금 바로 행동에 착수해야 한다. 그러므로 진리는 두렵다. 하던 일 팽개치고 지금 당장 일어나라고 압박하니까.

그러므로 진리는 모호해야 한다. 진리는 알 수 없는 것이어야 한다. 진리는 상대적인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지만 도피할 구멍이 생기니까. 숨 쉴 틈새가 얻어지니까. 그러나 진리는 그렇지 않다.

태양이 벌건 대낮에 스스로의 존재감을 과시하듯 진리는 압도적으로 자기 존재를 현시한다. 진리는 숨지 않는다.

상대적인 진리 따위는 없다. 인간이 진리라는 단어를 고안한 목적이 무엇이겠는가? 상대니 뭐니 하며 복잡하게 꽈배기 들어가는 절차가 싫어서다. 그딴거 생략하고 정답을 바로 찍어봐라 이거 아닌가.

불변의 진리는 있다. 단지 그것을 언어라는 작은 그릇에 담아내기 곤란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언어의 문제이지 진리의 문제가 아니다. 진리는 스스로 완전하다. 완전한 진리를 불완전한 언어에 담으려니 문제다.

그래서 노자는 말했다.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결국 절대진리는 있다는 이야기다. 단지 절대진리가 이곳에 혹은 저곳에 있다는 식으로 ‘이곳’ 혹은 ‘저곳’이라는 특정장소에 가둘 수 없다는 거다.

진리는 ‘항상 그러함’이다. 절대적인 진리란 ‘항상 항상 그러함’이며 상대적인 진리란 ‘때때로 항상 그러함’이다. 여기서 ‘때때로’와 ‘항상’은 충돌한다. 때때로 그러한 것은 항상 그러한 것이 아니다.

‘때때로 항상 그러함’ <- 이건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논리적으로 불성립이다.

그러므로 상대적인 가치가 있을 뿐 상대적인 진리는 없다. 단지 상대적인 진리라고 모순되게 표현해도 넉넉한 아량으로 받아들여주는 낭만파 시인들의 여유로움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시인은 어디가도 대접받는다.

진리는 가두어질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의 언어는 잡아가두기의 방법으로 의미와 맥락을 전달한다. 언어는 가두는 것이고 진리는 가두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는 언어와 친하지 않다.

그러나 인간이 그러한 사실을 이해한다면, 진리가 가두어지지 않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언어라는 작은 그릇에 가두기에는 진리가 너무나 크다는 사실을 안다면 불변의 진리를 이해할 수도 있다.

절리(節理)라는 말이 있다. 바위가 갈라지는 결이다. 리(理)는 옥(玉)을 가는 결을 의미한다. 나무에 결이 있듯이 옥의 원석에도 결이 있다. 나무는 결 따라 대패질을 하고 옥은 결따라 가공해야 한다.

일정한 방향과 순서가 있다. 만약 옥을 결대로 갈지 않으면 그 옥으로 만든 가락지는 부숴지고 말 것이다. 구조론으로 말하면 벼리에서 갈피로 방향이 정해져 있다. 벼리가 먼저고 갈피가 나중이다. 항상 그러하다.

진리는 정해져 있는 순서다. 단지 인간이 이 순서를 사물에 적용할 때 제각각 달라져버릴 뿐이다. 인간의 눈은 상하를 반대로 인식한다. 눈동자의 조리개에 위아래의 위치가 바뀌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카메라의 필름은 반대로 감광한다. 그렇게 반대로 기록된 음화를 다시 뒤집어 찍어낸 것이 사진이다. 마찬가지로 망원경의 위아래는 반대로 비쳐진다. 오목렌즈를 이용하여 뒤집어야 한다.

이렇듯 한 단계를 거칠 때 마다 진상은 왜곡된다. 앞뒤는 바뀐다.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 인간의 뇌는 눈동자가 거꾸로 전달한 상을 다시 뒤집어서 뇌 속에서 바로 구현하고 있다. 상대성은 다시 절대성으로 원위치된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불완전하며 한 단계를 거칠 때 마다 쌍방향 의사소통의 가역과정이 있어서 피드백에 의해 오류를 시정해야 한다. 오류는 언제나 일어나지만 그 오류에 언제나 대비할 수 있다.

인간의 불변의 진리를 구함은 이러한 복잡한 시행착오와 오류시정의 절차를 괴로워 한 나머지 어떤 강한 것에 의존하는 심리다. 또 상대적인 진리를 타령함은 이러한 복잡한 절차를 괴로워한 나머지 포기한 것이다.

포기해서 안 된다. 시행착오와 오류시정의 복잡한 절차를 괴로워하지 말아야 한다. 위축되어서 안 된다. 불변의 진리에 의존하려 들어서도 안 된다. 시행착오에 따른 오류시정이라는 당신의 역할을 당당히 받아들여야 한다.

진리는 위대하다. 진리는 불변한다. 진리는 절대적이다. 단지 그 진리의 칼을 어린아이의 손에 쥐어줄 수 없을 뿐이다. 그들은 시행착오에 따른 오류시정의 절차를 괴로워하기 때문이다. 감당 못하는 것이다.

진리란 ‘네가 이렇게 하면 나는 이렇게 한다’는 것이다. 의사소통의 한 단계를 거칠 때 마다 상은 좌우로 반전하거나 상하로 반전한다. 거울은 좌우가 반대로 비치고 망원경은 위아래가 반대로 비치고 카메라는 흑백이 반대로 비친다.

그것이 상대(相對)다. 뒤집어놓는 것이다. 그것을 다시 바로잡아야 한다. 네가 이렇게 뒤집어놓을 때 마다 나는 이를 다시 바로잡아 놓겠다는 결의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무엇인가? 비례식이다. 진리는 비례식이다.

인간은 절대진리를 구한다. 거저먹겠다는 수작이다. 진정한 것은 마음에 있다. 그 마음은 ‘네가 이렇게 하면 나는 이렇게 한다’는 마음이다. 대비하고 대응하고 맞서고 아우르는 마음이다.

내가 아무리 바르게 말하더라도 당신은 그것을 뒤집어 제멋대로 해석해버릴 것이다. 내가 아무리 ‘이 라디오 속에는 요정이 살고있는 것이 아니라 방송국의 전파가 중계되는 것이오’ 하고 원주민에게 말해도 원주민은 ‘아 라디오 속에는 방송국이라는 요정이 살고있구나’ 하고 제멋대로 해석해버린다.

그러므로 나는 그러한 거짓해석의 가능성을 미리 염두에 두고 말해야만 한다. 지금 내가 하는 말 역시 당신의 수준에 맞게 왜곡하여 들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 왜곡에 충분히 대응한다.

결국 절대진리는 완전한 신의 영역에 있고 상대진리는 불완전한 인간의 언어에서 그 의사소통의 실패로 있는 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실패한다. 그러므로 신은 대비해 두었다. 문명의 진보라는 오류시정 과정을.

진리는 태양처럼 그저 존재한다. 태양에 의존한다 해서 태양이 당신의 처지를 동정할 리 없고 태양을 무시한다 해서 태양이 사라져주는 것도 아니다. 다만 태양을 본받아 당신도 누군가의 태양이 될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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