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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0426 vote 0 2007.02.28 (20:42:58)

누가 배신자인가?
노무현 대통령의 데쓰노트가 궁금하다

“당을 만들려면 이념이라는 깃대를 꽂고 돈과 사람이라는 자재가 들어가야 완전한 집이 된다.” [유시민]

그런데 그 깃발과 자재와 사람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깃발은 종이에 그리면 되고? 돈은 모금하면 되고? 사람은 동원하면 되고?

그러나 그것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탈당파들 지금 뻘쭘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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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를 하려면 결정적으로.. ‘세력’이 있어야 한다. 그 세력 안에 깃발과 자재와 사람이 다 들어 있다. 세력을 얻으면 전부를 얻은 것이요 세력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그 세력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광장에 우두커니 모여있는 군중은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세력이 아니다. 방향성을 가진 집단이어야 한다. 욕망을 가진 집단, 동기부여가 된 집단이어야 한다. 살아서 움직이는 즉 역동성 있는 집단이어야 한다.

중종이 조광조를 죽였지만 그들의 세력은 선조 때 되살아났다. 왜인가? 그들이 고려의 귀족문화와 다른 조선의 선비문화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세력은 문화라는 토대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그 문화에는 시대정신이 반영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지만 세력이다. 그렇다면 문화란 무엇인가? 문화는 양식이며 그 양식은 의사소통의 양식이다. 결론은 의사결정이다. 집단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의사결정이 가능한 구조여야 한다.

사회에서 그것은 공론이다. 공론을 형성할 수 있는 의사소통-의사결정 구조가 있어야 한다. 이념이니 깃발이니 자재니 사람이니 하는 것들도 그 문화의 양식을 구성하는 인자들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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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얄궂은 스캔들은 한나라당에서만 일어나는가? 한나라당의 문화와 우리당의 문화에 차이가 있다. 가는 술집이 다르고 그 술집에서 술 먹는 법도가 다르다.

문화의 차이가 의사소통 구조의 차이다. 그 문화는 변화한다. 그 문화의 변화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이 곧 세력이며 그 세력을 얻을 때 정치가 호흡을 시작한다.

정치는 인물이 아니라 세력이 하는 것이다. 그 세력은 4.19세력이고 부마항쟁, 광주항쟁, 6월항쟁을 주도한 세력이고 노무현을 당선시킨 네티즌 세력이다.

● 419 - 교육의 보급으로 지식인 계층 등장.
● 5월 - 산업화와 근대교육으로 비판능력을 얻은 학생과 시민.
● 6월 - 도시로 이주하면서 정체성문제로 권력의지 얻은 넥타이 부대.
● 2002년 - 네티즌 세력의 등장.

키질을 하면 티끌은 위로 날아가고 알곡은 아래로 모인다. 해방후 근대적인 교육의 보급,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 농촌의 해체와 대규모 이농 등으로 몇 차례의 키질효과가 일어났다.

그때마다 정서적 동질성을 느낀 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러운 세력화의 조짐이 나타나곤 했다. 그들이 교육받은 사람으로 혹은 중산층으로 성장하며 자부심을 찾기 시작할 때 세력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토비 도슨이 잃어버린 부모를 찾기 위하여 스키 선수가 되었듯이 산업화 과정에서 농촌을 떠나 도시로 이주한 넥타이부대가 자기 정체성을 고민한 결과가 6월항쟁으로 분출된 것이다.

우리의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세력화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투표날 한표 던지는 것으로 부족하고 선거운동에 뛰어줄 조직화된 사람이 있어야 한다. 월 당비 1만원 이상 낼 의사가 있는 사람 말이다.

공론의 형성에 기여할 사람, 이념적 동질성을 찾는 사람, 자기 돈으로 세금 내는 사람, 정부의 정책 하나하나에 자신의 삶이 영향을 받는 사람, 정책에 민감한 사람, 이해관계로 얽혀 있는 사람들이 세력을 만든다.

열등의식 극복하고 자부심 얻으려는 사람, 뿌리를 찾고 정체성을 찾고 발 디딘 곳에서 기반을 잡으려는 사람, 권력의지가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주눅들지 않고 기죽지 않고 눈치보지 않고 고개 빳빳이 드는 사람 말이다.

존중받고 살겠다는 사람,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 상승하기를 원하는 사람, 꿈을 가진 사람, 더 높은 가치를 바라보는 사람, 곧 죽어도 할말은 하고 살겠다는 그런 사람이 모여야 세력화가 된다.

문제는 어떻게 세력을 만들 것이냐다. 싸워야 한다. 옳고 그르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싸우느냐 아니면 싸움을 회피하느냐가 중요하다. 사람을 불러모은다고 세력이 되는 것이 아니고 부단한 싸움걸기 과정에서 공통의 이해관계를 묶어내는 것이다.

탈당파들의 면면을 보면 정치의  ‘ㅈ’자도 모르는 관료파가 다수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원래부터 보급부대에 불과하다. 싸움이 벌어지면 전투부대를 보유한 쪽이 무조건 이긴다. 세력화된 사람들이 전투부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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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는 인물이 아니라 세력이 한다.
● 세력은 사회의 새로운 의사소통 구조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다.
● 세력은 부단한 싸움걸기에 의해서만 만들어진다.

누구를 상대로 어떻게 싸울 것인가? 수구는 적이다. 좌파는 경쟁자다. 중도는 우리의 설득대상이다. 수구는 물리쳐야 맛이고 좌파는 경쟁해야 맛이고 중도는 설득해야 맛이다. 한 걸음이라도 전진하려면 이 세 가지를 실천해야 한다.

● 수구는 타도하라 - 물리쳐서 추력을 얻어야 한다.
● 좌파는 경쟁하라 - 경쟁해서 머리와 몸통을 정해야 한다.
● 중도는 설득하라 - 설득해서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

나아가려면 추력을 얻어야 한다. 추력은 ‘작용반작용의 법칙’에 의해 얻어진다. 로켓을 위로 쏘아올리려면 연료를 아래로 분사해야 한다. 스크류가 물을 밀어내는 만큼 배는 앞으로 나아간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항상 무언가를 뒤로 밀어내야 한다. 그러므로 누군가는 반드시 희생되어야 한다. 미안하지만 이건 물리학이다. 그러므로 예외는 없다.

누구를 밀어낼 것인가? 조중동과 딴나라 세력을 역사의 뒷페이지로 밀어내고 강남기득권을 무대 아래로 쫓아내야 한다. 사대주의에 외세의존에 식민지 노예근성 다 밀어내야 한다.

작통권 환수에 반대 서명한 240만명.. 노예근성에 찌든 자들이다. 오염되었다. 존엄을 잃은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이들이 무대 앞에 나서지 못하게 단속해야 한다.

인간성의 상실.. 부모가 힘이 없다며 부모 버리고 외부인을 섬기려는 자. 노예들은 원래 이렇게 한다. 인간이 개와 구분되는 이유는 존엄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노예 취급하는 사대주의 개들을 인간 취급해줄 이유는 없다. 물리쳐야 한다.  

어떻게 물리칠 것인가? 힘을 모아야 한다. 어떻게 힘을 모을 수 있는가? 그냥 모여라 하고 외친다 해서 힘이 모여지지 않는다. 특정한 시점 특정한 지점에 힘을 모아서 단숨에 적의 급소를 타격해야 한다.

줄을 당기더라도 영차영차 하고 리듬을 주고 박자를 맞춰야 하고 밸런스를 얻어야 한다. 행동통일이 필요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이 필요하다. 이를 달성해내는 핵심역량이 있어야 한다.

중도를 설득하는 방법으로 힘모으기는 가능하다. 어떻게 중도를 설득할 것인가? 참여로 가능하다. 무엇을 매개로 참여시키는가? 구체적인 대안제시로 가능하다.

어떤 대안이 가능한가? 역사의 흐름에 맞는, 변화의 트렌드와 일치하는 새로운 의사결정 시스템을 완성함으로써 가능하다.

농촌에서는 사랑방 시스템이, 도시에서는 광장 시스템이, 초원에서는 쿠릴타이 시스템이, 산업화에서는 민주주의 시스템이, 정보화에서는 인터넷 쌍방향 의사소통 시스템이 대안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사회는 부단히 변화한다. 그 변화된 환경에 맞는 새로운 의사결정 구조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좌파들과 경쟁하는 방법으로 가능하다.

왜 좌와 경쟁하는가? 머리와 몸통을 구분해야 하기 때문이다. 핵심은 의사결정 구조다. 최적화된 의사결정 구조를 만드는데 성공한 세력이 집권한다. 민주주의는 집단의 의사결정이 백프로다.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누가 눈이고, 누가 코며, 누가 입이고, 누가 귀며, 누가 생각하고, 누가 판단하고, 누가 결정하는지.. 도무지 우리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원래 지식인 집단은 공동체의 머리에 해당한다. 그런데 머리가 몸통인 자영업자나 회사원들과 의사소통이 안 된다. 이것이 오늘날의 문제다. 머리가 머리 구실을 못하니 머리를 업그레이드 해야 한다.

몸통인 네티즌, 회사원, 자영업자, 노동자와 쌍방향 의사소통이 되고 신속한 의사결정이 되는 구조로 바꿔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단히 경쟁해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은 경쟁을 통해서만 얻어지기 때문이다.

진보누리와 서프라이즈는 비슷한 시점에 출범했다. 진보누리는 권위주의 시스템을 고수했고 서프라이즈는 새로운 시스템을 창안했다. 그들은 일방향 의사소통을 선택했고 우리는 쌍방향 의사소통을 선택했다.

그들은 도그마에 따라 움직였고 우리는 공론에 따라 움직였다. 무엇이 다른가? 그들도 눈과 귀와 코와 입이 있지만 사용하지 않는다. 눈은 보지 않고 귀는 듣지 않고 코는 숨쉬지 않고 입은 말하지 않는다. 오직 도그마에 복종한다.

그들은 다중을 참여시키지 않는다. 역할을 나눠주지 않는다. 다중을 소외시킨 결과 스스로 고립되었다. 그들은 경쟁에서 졌다. 결과가 말한다.

수구들도 사이트를 만들었다. 그곳에는 논객이 없다. 논객이 없으니 경쟁이 없다. 경쟁하지 않으니 진화하지 않는다. 그곳에는 머리와 몸통의 구분이 없다. 눈도 없고 코도 없고 귀도 없다. 역할분담도 없고 쌍방향 의사소통도 없다.

역사의 경험칙에 의하면 그들은 필시 자멸한다.  

● 세력을 얻는 자가 승리한다.
● 세력은 집단의 의사결정구조 건설에 참여하는 사람들이다.
● 세력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끝없이 싸워야 한다.

어떤 싸움을 할 것인가?

● 수구를 물리쳐서 추력을 얻어야 한다.
● 중도를 모아야 수구를 물리칠 수 있다.
● 좌파와 경쟁해야 중도를 모을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시대의 흐름에 맞는 최적화된 형태의 의사결정 구조를 만들어가는 것이며 이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이 세력이다. 그 세력이 있어야 정당이 만들어진다.

● 이념적 동기가 분명할 것.
● 내부에 쌍방향 의사소통 + 신속한 의사결정의 구조를 갖출 것.
● 지체없이 행동에 나설 자세가 되어 있을 것.

이것이 세력이다. 우리가 싸우는 이유는 세력을 만들기 위한 것이며 우리가 밀리고 있는 이유는 충분한 세력화에 실패했기 때문이며 그 이유는 지금이 시대가 변하고 있는 과도기이기 때문이다.  

신당을 하려면 온과 오프에서 당 기관지부터 만들어야 한다. 의사소통 - 의사결정 구조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 제 돈으로 인터넷-종이 당보 구독하는 10만인을 확보해야 한다. 이것이 되고 난 다음에 금뺏지를 논하든지 말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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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차기대선 영향력 1위라는 평가가 나왔다. 탈당파는 지역주의 집단에 불과할 뿐이라는 여론의 평가도 나왔다.

탈당파의 면면을 보면 알겠지만 그들은 대략 관료 출신이다. 정치의 본질을 모르기 때문에 대책없이 낙동강으로 간 것이다. 오리알 찾으러.

금뺏지 인생이 대선으로 끝나지 않을 터. 대선과정에서 어떤 활약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차기 총선의 공천과 당선이 결정된다. 이 간단한 이치를 왜 모를까? 그렇게도 노무현의 데스노트에 이름을 올리고 싶을까?

 


 

누가 배신자인가?

정치는 인물이 하는 것이 아니라 세력이 하는 것. 인물이 정치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그 세력이 신속한 의사결정을 위해 인물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김대중-노무현이 특별히 잘나서 집권한 것이 아니라 우리 세력이 김대중, 노무현을 필요로 한 것이다. 왜? 신속한 의사결정과 행동통일을 위해.

진정한 의미에서 말하면 ‘노빠’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노무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존재할 뿐이다. 정치의 본질은 집단의 의사결정이다. 인물은 의사결정을 하는데 보탬이 될 뿐이다.

왜 우리는 김대중과 노무현을 필요로 했는가? 꿈이 있기 때문이다. 욕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상주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동기부여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밑바닥에 고인 에너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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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자가 있다. 배신할 사람은 딱 표시가 난다. 누가 배신자인가? 세력-의사소통-의사결정 시스템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하고 인물에 집착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세력이 아닌 특정인을 공격한다. 5년 전에는 365일 DJ를 비방하다가 지금은 24시간체제로 노무현을 비방하는 장기표들 말이다. 임종인들 있고 송영길들 있다.  

이들이 반드시 배신하는 이유는 ‘자기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쁜 한나라당이 집권해도 착한(?) 자신이 대권을 잡고 한나라당을 잘 단속하면 괜찮다는 이재오, 김문수, 고진화, 원희룡 쓰레기들.

딴나라는 썩었지만 무균질인 자신이 집권하면 괜찮다는 박찬종.. 민국당 썩었지만 선량한 자신이 민국당을 잘 다스리면 된다고 변명하던 장기표와 셈셈. 이들이 변절자이다.

이들은 자아도취에 빠져 있다. 자신은 선량하다고 믿는다. 실제로 이들은 곧잘 선량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정치는 시스템이고 그 이전에 의사소통구조의 문제이고 그 이전에 세력화된 대중의 문화적 양식이다.

그리고 그 이전에 역사의 흐름의 문제이다. 이러한 본질을 모르기 때문에.. 이명박이면 괜찮지 않는가?.. 하고 헛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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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이 하면 뭔가 잘 될것 같은 막연한 느낌을 가진 자들이 있다. 이명박진영의 의사결정 시스템이 단순하기 때문이다.

민중은 참여를 원한다. 참여하려면 정보가 통해야 한다. 정보를 통하게 하려면 신속한 의사결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당은 의사결정을 못한다. 의사결정구조가 복잡해서 유권자들이 이해를 못한다.

참여정부 5년.. 유권자가 보기에는 온갖 갈등과 신경전과 머리싸움과 세대결과 스트레스와 어거지와 강짜와 악다구니 속에서 어렵게 어렵게 하루를 버텨내는 것처럼 보여진다.

시원시원하지가 않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이 오히려 민주주의의 본질이라는 사실을 유권자들은 모른다. 언제 민주주의를 해봤어야 알지.

국가가 발전할수록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독재 때는 무슨 일을 벌여도 반작용이 없었다. 환경이 오염돼도 한강물이 썩어가도 도무지 신경쓰는 사람이 없었다. 지금은 다르다.

약간만 건드려도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나온다. 민주주의라는 복잡한 의사결정구조에 의해 예상되는 위험이 전부 노출된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뒷탈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시스템에 익숙지 못하다.

반동은 항상 있어왔다. 어리석은 인간들이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 봐야 알겠다며.. 복잡하지만 안전한 민주주의 시스템을 버리고 신속하지만 위험한 독재 시스템을 선택했다가 된통 깨지고 난 뒤에 다시 민주주의로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인간은 원래 어리석다. 서양에서는 그 어리석은 짓을 300년간 반복했다. 불과 50년 전에도 영국에는 마녀죄가 있었고 스위스에서는 1971년에야 여성들의 참정권이 허용되었다. 한국보다 오히려 늦었다.

왜 인간은 오판하는가? 시스템을 보지 못하고 그 이면에서 작동하는 의사결정구조를 보지 못하고 그 이전에 도도하게 흐르는 역사의 물굽이를 보지 못하고 오로지 인물 탓을 하기 때문이다.

오류가 독재시스템의 본질적 한계라는 사실을 모르고 독재자 개인의 오판 때문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하필 나쁜 독재자가 걸려서 고생한거고 이번에는 착한 독재자 뽑으면 된다고 믿는다.

천만에. 모든 독재자는 결국 나빠지고 만다. 오마이뉴스가 띄우고 있는 차베스도 결국은 악마의 얼굴을 얻게 된다. 차베스의 숙명이다.

인물에 집착하는 자는 반드시 변절한다. 인물에 흥미를 갖는 유권자 역시 결정적인 순간에 태도를 바꾼다. 큰 선거가 닥치면 유권자는 시스템으로 돌아온다. 인물은 흥미거리에 불과하고 시스템이 위기에 강하다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이다.

인물에 집착하는 정치인들이 인물에 흥미를 갖는 유권자를 따라갔다가 큰 선거를 앞두고 그 유권자가 태도를 바꿀 때 낙동강 오리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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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은.. 정치는 세력이고 세력은 시스템이고 시스템은 공동체의 의사결정 구조라는 거. 지금 역사는 새로운 시스템을 요구한다. 그것은 리더가 유권자와 직접 의사소통 하는 시스템이다.

지금 노무현 대통령이 시범을 보여주고 있다.

참여정부의 실패는 참여정부가 국민을 참여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참여시키지 못한 이유는 의사소통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의사소통에 실패한 이유는 조중동이 대통령의 입을 틀어막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뭐라고 말하면 반드시 왜곡하기 때문에 대통령이 말을 줄였고 그 결과 참여정부가 흔들렸다.

대통령이 다시 말을 시작했다. 대통령의 말은 퇴임 이후에도 줄지 않는다. 그는 정치가 이전에 사상가이기 때문이다. 정치가는 사람을 상대로 말을 하지만 사상가는 역사를 상대로 말을 한다.

서프라이즈의 구성원 모두가 노무현 시스템에 전염이 되어 점차 노무현을 닮아가서 10만명의 작은 노무현들이 탄생할 때 대통령의 꿈은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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