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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을 미리 달자. 과거, TV정치토론의 백미는 박상천과 박희태의 대결이었다. 당시 한 주간지는 입에 열 개 이상의 소총, 기관총, 바우주카포 등을 물고 있는 박희태의 캐리커쳐를 표지사진으로 실어 그의 논쟁 솜씨를 표현한 적이 있지만, 맞수 박상천에 대해서는 ‘야수 처럼 날렵한 논객’이라고 평가하면서 박희태도 논리적 토론에 있어서는 박상천에 한 수 아래라고 할 정도로 박상천의 논쟁 솜씨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평민당과 국민회의에서 대변인과 원내총무를 맡았던 박상천, 나는 그의 언변에서 당시 평민당과 국민회의를 창당하고 이끌었던 DJ의 그림자를 느꼈다. 가끔은 그가 통째로 DJ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역시. 그는 DJ가 아니었다.

오늘 자 <오마이뉴스>에 오른 그의 인터뷰 기사를 읽으면서 그가 ‘의도적 오해’를 하고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대체 이것은 무슨 경우일까. 답은 단 하나다. 그가 ‘완고한 보수주의자’로 변모해 있다는 것이다. 그것 말고는 그의 ‘의도적 오해’를 설명할 길이 없다.

살펴보자.

그는 인터뷰 서두에서 ‘신당의 전제 조건’ 세가지를 꼽았다. 그러나 그것은 신당 창당의 전제조건이 아니라 그가 ‘완고한 보수주의자’가 되어 있다는 것의 반증일 뿐인 것을.

첫째, 민주당을 해체한다거나 법통을 끊어서는 안된다.
둘째, 신주류가 추진하는 '진보정당'식의 이념정당이 아닌, 진보는 물론 중도·보수가 어우러진 '개혁적 국민정당'이 돼야 한다.
셋째, 당원과 국민들에 의한 심판과 선택이 아닌 인위적 인적청산은 안된다

첫째 전제에 대한 논리적 반박은 서프라이즈의 필진인 장신기의 글을 비판한 ‘정치혁명’의 반박에서 간결하게 마무리 되었다. 서프를 찾는 네티즌 논객들 정말 탁월하다. 소위 ‘강경파’들의 신당 창당이 ‘민주당을 해체하고 법통을 끊는’ 행위라면, 박상천은 민주당 해체와 법통을 끊는데 가장 앞장서 왔던 ‘원흉’일 것이다. 보자.

평민당 => 새정치국민회의 => 새천년민주당

국민회의의 창당이 평민당의 법통을 끊었던가? 새천년민주당의 창당이 국민회의의 법통을 끊었던가 말이다. 이어졌던 신당 창당이 끊었던 법통이 있다면, 그것은 이름을 바꾸면서 과거 인물들 일정 부분을 물갈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중심에 항상 박상천 자신이 서 있지 않았던가? 지금의 신당 창당 논의도 형식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그런 과정의 연장선상에 있을 뿐이다. 물론 패러다임은 다르겠지만.

두 번째 전제는 다소 가증스럽다. 자신 스스로가 ‘의회주의자’이면서도 의회를 구성하는 정치지형에 대한 현실적 당위를 의도적으로 뒤집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전제에 대한 그의 ‘의도적 오류’가 지역정서에 기반한 정치 지형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그는 인터뷰에서 ‘정당의 형태’를 “이념정당”과 “계층정당”, 두 가지로 나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명확한 개념화에 대해서는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다. 왜일까. ‘이념 정당’과 ‘계층정당’이 서로 다를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국민정당”이라는 모호한 정당 개념 하나를 끄집어 낸다. 보자.

“정당은 두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다. 이념정당이냐, 계층정당이냐. 지지 기반을 계급이나 계층에 두는 것이 계급정당이라고 한다면 국민정당은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되 현재 민주당과 같이 중산층과 서민에 중점을 두는 국민정당 체제로 나눌 수 있다.”

인터뷰, 재미있다. ‘이념정당’과 ‘계층정당’은 하나로 통합되고(왜? 그럴 수밖에 없으니까) ‘국민정당’이 출현한다. 그 ‘국민정당’은 “중산층에 서민에 중점을 두”고 있단다. 민주당이 그 표본이란다. 틀린 말은 아니겠다. 그러나 한 발 더 나갔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신당은 개혁적 국민정당 체제를 지켜야 한다. 신당에는 진보파도 있어야 하고 중도파, 보수파도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국민들이 그렇기 때문이다. 국민 중에는 진보 성향도 있고 중도·보수 성향도 있다."

국민 중에는 진보 성향도 있고, 중도보수 성향도 있기 때문에 이를 다 아우르는 정당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고 그래서 “국민정당”이 옳은 방향이라는 것이다. 눈가리고 아웅 하는 것도 이 정도면 파렴치급이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은 ‘국민정당’ 아닐련가?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국민들 중에도 진보와 중도, 보수파도 골고루 섞여 있을 것이다. 이 점에서는 민주당 지지자나 한나라당 지지자나 기실 차이가 없다. 박상천도 이 점에 대해서는 반박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진보와 중도, 보수적인 국민적 지지기반을 서로 양분해서 골고루 섞어 가지고 있는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차이점은 뭘까?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차이의 정치학. 이게 박상천과 그 부류가 추구하는 민주당의 참 모습일 것이다. 다른 게 아니다. 지역적 지지 기반만 다를 뿐이다. 다시 말해 지역정서 우려먹기. 영남과 호남은 각각 나눠 갖고, 서울 수도권은 출신 지역별 인구 비례와 약간의 정책적 차이로 결판을 짓는 대결 구도. 이게 소위 말하는 ‘황금분할 구도’의 정치지형이자 이들이 추구하는 목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호남인들은 반드시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호남인들의 '지역 정서'는 '방어적'이라는 것을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영남을 근거로 하는 정치인들이 영남에서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지역 정서'의 기제는 '반DJ'라는 것이다. 이것을 용납해야 하는가? 이재오 같은 잉간이 '진정한 개혁은 반DJ다'는 개소리를 나불거리게 놔둬야 하느냐 말이다.

호남이 호남의 지역 정서를 이용해서 정치권력을 누리려는 정치인들에 대해 너그러움을 보이면서 '반DJ 정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영남 정치인을 욕하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왜냐면, 이들은 서로 '적대적 생존'관계를 튼실히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호남 정치인들, 겉으로는 '반DJ'를 신물나게 외치는 영남 출신 정치인들과 대립관계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같이 룸쌀롱 다니면서 술퍼마시고, 외유나갈때 부부동반으로 비행기 타고 다니면서 절친하게 지내는 사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겉으로는 '정적'인 것 같지만, 서로 공생관계에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영남 출신 정치인들이 '반DJ'를 신명나게 외칠때 호남인들은 역겨움에 치를 떨지만, 그들은 뒤에서 쾌재를 부르고 있다는 말이다. 대체 왜 그러는지 아직도 모르겠는가? )

‘적대적 의존’이라는 말이 이젠 낯설지 않을 것이다. 박정희의 권력이 김일성의 존재를 기반으로 했던 것처럼, 호남과 영남의 지역적 정서는 기실 상대의 지역적 정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게 바로 ‘적대적 의존’이다. 이렇게 이야기 하면 ‘지역 감정이 호남에 대한 지역적 차별’ 때문이었다는 반박이 날아들 것이다. 맞다. 내가 호남 사람인데 왜 그것을 모르겠는가?

그러나 그것이 진실일지언정 지역적 정서를 기반으로 정치 행위를 연장하려는 정치인은 단호히 배격되어야 한다. 문제는 ‘호남의 한’이 아니라 ‘호남의 한’을 자신의 정치적 근거로 삼으려는 호남 출신 정치인들이 여전히 많다는 것이다. 저쪽에서 ‘반DJ’를 신물나게 우려먹고 있다는 것을 비판하려면 이쪽에서 ‘호남의 한’을 신물나게 우려먹는 것도 동일하게 비판해야 하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이재오 떨거지가 “반DJ가 개혁이다”라는 개소리를 지껄일 때, “야 이 개새끼야, 그게 말이니 막걸리니?”라고 쏘아붙일 때, 그 공격에 힘이 있으려면 이쪽에서 ‘호남의 한’을 우려먹는 정치인들에 대한 단호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박상천의 두 번째 전제는, 조금만 뒤집어 보면, 작금의 정치 지형이 변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는 것을 알아채기가 어렵지 않다. 자당 후보를 낙마 시키려고 개지랄을 떨었던 후단협 떨거지들이 동교동 구파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이 과연 우연일까. 그건 필연이었을 것이다.

세 번째 전제는 오히려 신당 추진 주체들이 내 걸고 있는 기치이다. 대체 누가 인위적 청산을 주창하고 있는가? 신당 추진 주체들이 제시하는 단 하나의 전제는 ‘일체의 기득권 포기’이다. 전혀 새로운 정당으로 당을 탈바꿈 시키기 위해서는 기존의 모든 기득권을 반납하고 모든 힘을 당비를 납부하는 진성당원과 국민들에게 되돌려 주자는 것이다.

박상천도 신당 추진 주체의 주장과 같은 주장임에도 왜 신당 추진 주체의 주장을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있는 것일까? 답은 이미 나와 있다. “기득권 포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돈으로 관리해 왔던 지역구 소속 대의원들이야 죽으나 사나 자신을 밀겠지만 민주당에 당비를 내는 진성 당원과 국민들에게 선출권을 주는 것은 여차하면 자살행위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유쾌한 정치 반란’을 이미 지난 해 목격했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박상천을 비롯해 신당 추진을 반대하는 동교동 구파가 ‘의도적 오류’로 가장하면서 신당 추진을 반대하고 비난해야만 하는 ‘현실인식’이다. 지역 정서를 기반으로 하는 정치 지형이 한 순간에 뒤바뀔 때, 가장 먼저 파멸을 맞이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본인들 스스로 잘 인식하고 있는 이유에서다.

하나만 더 짚고 넘어가자.

과연 ‘탈 호남’은 ‘반 호남’인가? 호남 출신의 일부 정치인들은 신당 추진 주체들의 ‘탈 호남’ 기치가 ‘반 호남’인 것마냥 왜곡해서 비난의 화살을 퍼부으면서 호남 민심을 부추기고 있는데 단언컨데 이는 호남의 지역 정서를 역이용 하려는 비열한 정치공세일 뿐이다.

정권 요직에 몇 사람 더 들어 앉히고 호남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정치인 몇 명이 민주당의 핵심을 차지한다고 해서 호남의 실질적인 발전에 무슨 도움이 될 것이기라도 할 것 같은가? 한마디로 이것은 우끼는 착각일 뿐이다. 김대중 정권 들어서 과거에 비해 호남이 얼마나 잘 나갔던가? 아주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번 까놓고 DJ 정부가 ‘호남 정권’이었기 때문에 실제로 잘 나간 것이 뭔지 한번 검토해 보자. 대체 뭐가 있는가? ‘감정’이나 ‘정서’ 말고는 크게 달라진 것도 나아진 것도 없을 것이다. 과거처럼 특정 지역 출신이 정권을 잡았다고 해서 타지역에 차별적으로 발전을 해야 한다는 전제 자체가 우스꽝스러운 것이 아닐까. 이건 지금까지 숱하게 비판해 왔던 영남 정권의 ‘비도덕적 행태’를 ‘호남의 것’으로 답습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호남 사람들은 호남 출신 인사가 요직에서 밀려나는 것 자체에 대해 반감을 갖기 이전에 DJ정권에서 요직에 앉았던 호남 출신 인사들이 국가의 발전과 더불어 호남의 지역적 발전에 얼만큼 중요한 역할을 했는가를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그들이 과연 실제적으로 정서적으로 DJ정권과 호남을 위해 진정한 기여를 했는지 엄밀하게 평가해봐야 할 것이란 말이다.

민주당이라고, 호남 출신이라고, DJ직계라고 해서 무한정 감싸 안으려는 민주당 지지자들이 있다면 이제 반성해야 한다. 그들 중 일부가 DJ정권 정치적 실패 목록에 일정한 기여를 했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 중 상당수가 DJ정권의 자산과 부채를 이어받겠다는 노무현 정권의 탄생을 방해했다는 것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만일 노무현 정권의 탄생이 실패했다면 지금의 호남의 민심은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DJ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정녕 등에 식은땀이 나지 않는가가 말이다. 물로 호남을 근거지로 하는 정치인들이야 내년 총선 걱정 없었을 것이다. ‘왜?’냐는 질문에 굳이 답해야 하는가?

‘탈 호남’을 ‘반 호남’으로 매도하고 있는 동교동 구파 정치인들 중 상당수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은 등에 식은 땀 나는 상황을 만들어 내려고 했다. 그럼에도 그들이 용서가 되는가 말이다. 그들의 말에 휘둘려 신당 창당 주체들을 욕하고 비난하는 민주당 지지자들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까놓고 말해서 그 정치인들이야 말로 호남을 ‘반 호남’으로 만들어서 정치적 이익을 챙기려던 인간들이 아니었던가 말이다.

‘탈 호남’의 본질은 ‘탈 지역정서’이다. 지역 정서를 근간으로 했던 기존의 정치 행태를 뜯어고치자는 것이다. 영남과 호남으로 갈려 있는 정치 진영을 ‘개혁’과 ‘보수’로 개편하자는 것이다. ‘정서’나 ‘감정’ 따위에 발목이 잡혀서 ‘정치’라는 행위의 실질적인 혜택을 받지 못하고 살아왔던 과거를 청산하고 ‘정치’가 우리의 삶에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오도록 시스템을 바꾸는 데 있어서 첫 걸음을 떼자는 것이다.

이게 바로 ‘탈 호남’의 본질이다. 그리고 그 분수령이 바로 ‘신당’이 될 것이며, 시기적으로는 내년 총선이 될 것이다. ‘정치인’들 손에서 놀아났던 정치, 이제 국민이 회수해야 한다. 동교동 떨거지들이건, 한나라당 개새끼들이건 상관없다. ‘신당’의 주인은 국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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