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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1426 vote 1 2007.09.28 (21:20:05)

 [개인적인 글입니다]

자연계에서 존재가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다섯 가지 모습을 가지는 것은 계에 밀도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논리로 연결시켜 보여야 한다. '밀도'라는 하나의 논리틀 안에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 질, 입자, 힘, 운동, 량은 별개의 다섯 단어가 아니라 순서대로 연결된 하나의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다섯을 하나의 질서 안에 통일하여 순서에 맞게 배치한 것이다. 말하자면 다섯이 한 단어인 셈이다.

양은 밀도가 없는 바닥상태다. 운동은 밀도가 있지만 움직임에 의해 밀도가 관측되지 않는 상태 혹은 밀도가 없는 것과 같은 효과가 나는 상태다.(날아가는 화살은 관성계 안에서는 정지해 있는 것과 같다.)

힘은 밀도가 걸려 있지만 순간적으로 그 상태가 성립될 뿐 그 상태가 유지되지 않는 상태이다. 입자는 하나가 다른 것 내부로 침투해서 밀도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상태이다.(입자는 외부에서 충격을 가할 경우 ‘굳기’의 형태로 영역의 겹침에 의한 밀도의 존재가 드러난다),

질은 계에 밀도가 걸린 상태다.(그러므로 질은 곧 사건을 유발시킨다.) 질은 내부에 입자를 감추고 있고 입자는 힘을, 힘은 운동을, 운동은 양을 감추고 있다. 질은 입자, 힘, 운동, 량을 모두 갖췄으므로 밀도가 있다.

질은 밀도가 걸려 있으므로 언제든지 사건을 유발시킬 수 있는 준비된 상태다. 스위치가 켜지고 안전핀이 뽑이고 방아쇠가 당겨지는 즉시 사건이 진행된다. 입자나 힘, 운동은 사건의 진행 중에 나타날 뿐 스스로 사건을 진행시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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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하나에 미꾸라지가 한 마리만 있을 수 있다면 양은 방 하나에 미꾸라지가 한 마리만 있어서 아무 이상이 없는 상태이다.(그러므로 양은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에 따라 에너지가 존재하나 그 에너지를 이용할 수 없다.)

운동은 미꾸라지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으므로 방 하나에 두 마리가 있지만 겉으로는 한마리가 있는 것과 같은 효과가 나는 상태이다. 이때 미꾸라지가 특정한 방향으로 진행하도록 길을 만들어주는 방법으로 에너지를 이용할 수 있다.

태풍은 저기압이지만 공기가 빠르게 움직이므로 고기압과 같은 효과가 난다. 비행기를 뜨게 하는 양력의 원리도 이와 같다. 비행기 날개 윗부분의 공기가 빠르게 움직이므로 저기압의 효과를 낸다.

운동은 입자의 절대 숫자가 줄어들지 않았어도 표면적으로 양이 감소한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 이는 부지런히 뛰어다니는 병사 한 사람이 가만히 서 있는 병사 두 사람을 상대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전쟁에서 병사가 많은 쪽이 이기게 되어 있지만 뛰어난 기동성은 병력 수의 부족을 상쇄시킨다. 마찬가지로 힘은 기동력(운동) 부족을 상쇄하고 입자(진, 편제, 팀)는 힘의 부족을 상쇄하고 질은 입자의 부족을 상쇄한다.

힘은 방 하나에 미꾸라지 두 마리가 들어왔으므로 둘 중 하나는 곧 나가야 하는 상태이다.(이 상태는 그대로 유지될 수 없지만 순간적으로 성립된다), 입자는 한 마리가 다른 한 마리 내부로 침투해서 2인 1조로 행동하는 상태이다.

만유인력은 잘못된 해석이고 모든 존재는 밀도에 의해 척력을 가진다. 서로 미는 둘을 일정한 거리 이상으로 접근시키면 그 미는 힘에 의해 오히려 갇혀버린다. 당기는 것과 같은 효과가 난다. 그것이 입자다.

만원버스에 사람이 너무 많으면 내부압력 때문에 문을 열고 나갈 수 없는 이치와 같다. 공중을 나는 여객기는 내부 공기압이 바깥보다 높으므로 비행기 안에서 문을 열고 나갈 수 없다.  

서로 밀고 적대하기 때문에 적대적 의존으로 도리어 붙어버린 현상이 입자다. 양성자와 중성자가 중간자를 교환하여 강력을 성립시키는 이치와 같다. 중성자와 양성자가 중간자를 교환함은 권투선수가 펀치를 교환함과 같다.

권투선수는 주먹을 내밀어 서로 밀기 때문에 저절로 붙어서 클린치 상태가 된다.서로를 밀어내는 권투가 일정한 거리 안으로 들어오면 오히려 서로 달라붙는 씨름이 되는 것이다.  

서로 밀어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미는 동작을 취할 수 있는 일정한 정도의 거리와 공간이 있어야 한다. 자유도가 있어야 한다. 입자는 서로 밀다가 각자 상대방의 자유도를 제한한 결과 자유도를 잃어서 갇혀버린 것이다.

두 사람이 팔을 내밀어 서로를 밀면 각자 상대방에게 팔을 잡혀서 둘 다 팔을 사용할 수 없게 되므로 결과적으로 둘은 붙어버린다. 인력은 척력의 굴절에 의해 미는 방향이 바뀌어서 나타나는 것이다.

호랑이는 자기의 영역 안에 다른 호랑이의 침투를 허용하지 않는다. 어떤 이유로 호랑이 한 마리가 다른 호랑이의 영역 내부로 깊숙히 들어와 버렸다면 밖으로 빠져나갈 수 없다.

나가려고 등을 보이는 순간 공격당하여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호랑이는 서로를 공격하려고 노려보며 감시하기 때문에 두 호랑이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진다. 너무 가까운 거리에서 밀면 둘은 붙어버린다.

질은 두 마리가 미꾸라지가 한 방에 공존하여 밀도가 유발된 상태다. 두 마리는 공존할 수 없으므로 질이 있다면 곧 입자, 힘, 운동, 량으로의 변화가 진행되며 이 변화가 곧 사건이다.

규칙은 한 방에 두 마리가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이지만 내부에 입자와 힘과 운동을 품는 방법으로 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사건은 질에서 입자, 힘, 운동, 량의 순서로 진행되며 량에 도달할 때 밀도가 사라져서 사건은 끝난다.

대통령 선거에 비유할 수 있다. 한 마리만 들어갈 수 있는 방에 두 마리 미꾸라지가 서로 들어가려고 다투듯이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청와대에 두 사람이 들어가려고 해서 생겨난 사건이 대통령 선거다.

자연계에서 모든 변화는 오직 이 하나의 원리에 의해 일어난다. 소설도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성춘향의 방에 이몽룡과 변학도 두 사람이 서로 들어가려 해서 생겨난 사건이다.

자전거 페달을 밟아 추력을 얻는 원리도 이와 같다. 하나가 들어갈 수 있는 위치에 페달과 발이 서로 들어가려 해서 힘이 생겨난다. 정확히 말하면 페달이 이미 선점하여 정원이 채워진 방에 발이 들어가려고 누르는 상태이다.

발전기가 모터를 돌려 전력을 얻는 원리도 음전하 하나가 들어갈 수 있는 위치에 두 개를 밀어넣으려 해서 이때 반대쪽으로 밀려나오는 하나를 전선으로 빼서 특정한 경로로 유도하는 원리에 의한다.

여기서 예외는 없다. 자연계 안의 모든 존재는 이 하나의 보편적인 원리를 따른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과학, 기술, 생물 등 모든 분야가 결국은 이 하나의 원리를 사용하고 있다.  

구조니, 제어니, 소통이니, 미학이니, 가치니, 판단이니 하는 것은 이러한 전개 중에서 특히 세번째 힘의 성질을 용이하게 설명하기 위한 것이며 이는 사람들이 특히 그 부분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힘의 단계에서는 아주 짧은 순간 하나의 방에 두 사람이 공존한다. 그 짧은 순간 양에서 운동, 힘, 입자, 질의 순서로 정보의 증폭 현상이 일어난다. 그러나 이는 모순이므로 곧 해소된다. 에너지는 이 과정을 인간이 이용하는 것이다.

힘은 일어날 수 없게 되어 있는 일이 일어나려고 하는 상태에서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각 단계 중 어느 층위의 방법으로 이 모순을 해소할지를 검토하는 과정이다. 작은 모순은 양에 의해 해소되고 큰 모순은 질에 의해 해소된다.

야구공이 배트와 충돌했다면 그 충돌순간이 힘이다. 여기서 판단이 일어나며 둘의 밀도차를 비교하여 밀도가 큰 쪽이 밀도가 작은 쪽을 극복하는 형태로 모순이 해소되고 상황이 정리된다.

공의 밀도가 배트보다 높다면 파울볼이 나고 배트의 밀도가 공보다 높다면 홈런볼이 된다. 그 순간에 결정되는 것이다. 공이 유리창과 충돌했다면 유리창을 깨고 안으로 들어갈 것인지 유리창에 튕겨 되돌아나올 것인지가 결정된다.

야구공이면 유리창을 깨고 들어갈 것이고 고무공이면 튀어나올 것이다. 그것이 힘에서 결정된다. 여기서 정보의 전달과 증폭, 울림과 떨림, 미학과 깨달음, 의미와 가치 그리고 소통 등 모든 쓸모있는 현상이 일어난다.

인간이 격물치지 하여 얻는 이로움은 모두 이 하나의 원리를 다양하게 이용하는 것이다. 밀도가 높은 쪽과 낮은 쪽을 적절히 배치하여 이로움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이 질서이며 역학이고 과학이다.

밀도가 높은 쪽을 위에 두고 낮은 쪽을 아래에 두면 수력발전이다. 그것이 질서다. 이때 변화가 일어나 인간에게 이로움을 제공하고 다시 평형상태로 돌아가 버린다. 이때 이로움을 얻지만 이미 얻었으므로 더 얻을 수 없다.

이것이 가치의 훼손이다. 질서는 가치를 훼손한다. 인간이 이미 이로움을 얻었기 때문에 에너지가 소진되어 더 이로움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일시적인 발전을 얻지만 지속가능한 발전은 아닌 것이다.

이 문제를 해소하여 지속가능한 성장을 유도하기 위해서 효율을 제한하고 이로움의 소진을 줄이는 방향으로 적절히 재배치 하여야 한다. 그것이 가치다. 가치에 의해 이로움이 급격히 소진되지 않도록 적절히 통제할 수 있다.

● 혼돈의 단계 - □■□■□■□■□■□■□■□■□■□■  
이로움이 없는 무질서한 상태 - 균일한 상태 - 엔트로피가 극대화된 상태.

● 질서의 단계 - □□□□□□□□□□■■■■■■■■■■
이로움이 있는 질서있는 상태 - 불균일한 상태- 엔트로피가 제로인 상태

● 가치의 단계 - □□■■□□■■□□■■□□■■□□■■
이로움이 통제되는 가치의 상태 - 반균일한 상태 - 엔트로피가 중간 상태.

두 번째 질서의 단계는 급격한 에너지 이동이 일어나 이로움이 소모되는 상태다. 전기는 순간적으로 방전되고 원자로는 급격한 핵분열로 녹아내린다. 핵융합은 지금도 가능하지만 인간이 통제할 수 없으므로 쓰지 못 하는 것과 같다.

세 번째 가치의 단계는 에너지의 이동을 인간이 자유자재로 제어할 수 있는 상태이다. 부하를 걸어 전류의 흐름을 조절할 수 있고 감속제를 사용하여 핵분열 속도를 통제할 수 있다.

인류역사의 발전은 항상 위 세 단계를 따르게 되어 있다. 진보주의의 발전도 이와 같다. 무질서한 첫번째 상태에서 독재자가 나타나 두번째 상태로 만든다. 그리고 뒤이어 자유주의자가 나타나 독재를 타도하고 민주주의를 완성시킨다.

자연상태에서 인구는 점차 증가한다. 인구가 증가하여 더 이상 집을 지을 공간이 없어진다. 시장도 없고 광장도 없고 도로도 없어서 사람이 살 수 없게 된 상태가 첫 번째 혼돈의 상태이다.

이때 진 시황제와 같은 독재자가 나타나 가구를 한쪽으로 모으고 반대쪽을 비워서 시장과 광장과 도로를 개설한 것이 두 번째 질서의 상태이다. 이 경우 획기적인 진보가 일어나지만 그 진보는 일시적인 진보에 불과하다.

마르크스주의는 진 시황제가 2천년 전에 이미 시도한 바 있는 두 번째의 아이디어에 불과하다. 송나라 때 왕안석의 신법도 역시 두 번째다. 역사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이 없다면 일시적인 성공을 얻는데 그칠 뿐이다.

항상 세 번째 단계의 가치를 주장하는 자유주의자가 나타나 진시황의 업적, 왕안석의 업적, 좌파의 업적을 뒤집어 엎어 버린다. 그러나 이것이 첫 번째의 무질서한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첫번째는 인구가 늘자 집이 도시를 메워서 도로와 공원과 시장과 광장과 공공기관이 없는 혼돈의 상태이고, 두번째는 공원과 시장과 광장과 도로와 공공기관을 얻었지만 그것이 한쪽에 몰려있어서 실제로는 이용할 수 없는 상태다.

집을 전부 한쪽으로 몰았기 때문에 개인의 자유가 극도로 제한되어 공원과 시장과 도로가 있어도 개인이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 지나친 효율의 추구는 본질을 훼손하게 되어 있다.

세 번째 가치의 단계는 정밀하게 제어하여 공원과 광장과 도로와 공공기관과 시장을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절묘하게 배치한 상태이다. 그 경우 약간의 효율의 손실은 감수해야 한다. 그것이 미학의 세계다.

● 첫번째 혼돈상태 - 공공기관, 공원, 시장, 광장, 도로가 없다.

● 두번째 질서상태 - 공공기관, 공원, 시장, 광장, 도로가 있지만 지나치게 효율성을 추구한 결과 개인의 접근이 제한되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없다.

● 세번째 가치상태 - 공공기관, 공원, 시장, 광장, 도로가 적절하게 배치되어 개인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역사는 항상 혼돈≫질서≫가치로 나아간다. 항상 최초의 무질서 상태에서 독재자와 권위주의자가 나타나서 룰을 정하고 뒤이어 자유주의자가 나타나서 룰을 보다 인간적인 룰로 뜯어고친다.

이러한 과정은 정치 뿐 아니라 문화 예술분야에도 항상 나타난다.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사실주의와 인상주의의 순으로 항상 질서와 효율을 주장하는 자가 먼저 나타나고 가치와 휴머니즘을 주장하는 자가 나중 나타난다.

교종과 선종, 점수와 돈수, 소승과 대승, 공자와 노자, 두보와 이백, 계몽과 소통, 교조주의와 자유주의 순으로 나타나 앞에온 사람이 질서를 닦고 뒤에 온 사람이 가치를 세운다.

모든 문학과 예술은 결국 무질서보다는 질서가 낫고 질서보다는 가치가 낫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항상 변학도 같은 자가 힘으로 질서를 강요하면 이몽룡 같은 자가 미(美)로 힘을 제압해 보인다.

미는 함께 가는 길이고 힘은 혼자 가는 길이기 때문에 결국 미가 힘을 이기게 되어 있다. 미는 소통이고 소통은 함께 가는 것이다. 혼자서는 아름다울 수 없다. 아름다운 꽃도 결국 나비나 벌을 초대하기 위하여 아름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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