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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1390 vote 0 2007.10.31 (12:36:31)

구조론의 착상


초등학교 3학년 때였을 것이다. 담임 선생님이 국어사전을 나눠주며 사전찾기 숙제를 내주셨다. 좆을 찾아보니 자지로 설명되어 있었다. 자지를 찾아보니 좆으로 설명되어 있었다. 젖은 유방이고 유방은 젖이었다.


사과는 사과나무의 열매이고 고양이는 고양이과의 동물이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남편이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아내라면 뭔가 제자리에서 뱅뱅 도는 느낌이다. 이건 이상하다. 확실하게 끊어주는 맛이 있어야 한다.


미로찾기와 같다. 뭔가 허전하다. 산은 정상에서 끝나고 동굴은 막장에서 끝나고 강은 바다에서 끝난다. 분명한 끝이 보여야 한다. 사전의 기술체계는 잘못되어 있다. 사전의 기술체계를 바로세우겠다는 일생일대의 계획을 세웠다.


4학년 때였을 것이다. 자연시간에 실험수업이 있었는데 자석에 쇠를 붙여보는 실험을 했다. 실험이 끝나고 결과를 발표하란다. 그러나 아무도 선생님의 마음에 드는 답변을 하지 못했다.


나의 답변은 ‘자석과 쇠 사이에 일정한 힘의 방향성이 성립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실험하여 알아낸 나의 지식이다. 선생님은 나의 견해를 일축했다. 실험결과를 바로 대지 못한 죄로 급우 전원이 손바닥을 맞았다.


선생님의 결론은 ‘자석이 쇠를 잡아 당긴다’는 것이었다. 황당하다. 동의할 수 없다. 자석으로 쇠를 잡아당기는 실험의 결과가 자석이 쇠를 잡아당기는 것이라면 유방이 젖이고 젖이 유방이라는 국어사전과 뭐가 다른가?


목숨을 걸어도 좋다는 생각을 했다. 갈릴레이가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말할 때의 기분이다. 내가 옳고 선생님이 틀렸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아닌건 아닌 거다. 선생님의 길과 다른 나의 길을 찾았다. 이 길의 끝까지 가보자.


만유인력을 처음 배웠을 때도 충격을 받았다. 사과가 땅에 떨어진다. 이유가 뭐지? 그야 무겁기 때문이지. 자석이 쇠를 잡아당기는 실험의 결과가 자석이 쇠를 잡아당기는 것이라면 사과가 무겁기 때문에 떨어진다는 말과 같다.


이런 식으로는 만유인력을 발견할 수 없다.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젖은 유방이고 유방은 젖이다? 자석이 쇠를 당기는 실험의 결과는 자석이 쇠를 당기는 거다? 사과가 떨어지는 이유는 무겁기 때문이다?


동어반복이 주는 허전함이다. 뭔가 허공에 떠 있다는 느낌이다. 무겁기 때문이다와 만유인력 때문이다의 차이는 뭐지? 무겁다는 형용사다. 만유인력은 명사다. 명사로 표현되어야 한다.


명사로 표현할 때의 충일감이 있다. 명사는 존재를 나타낸다. 자석이 쇠를 당긴다는 결론에서 당긴다는 명사가 아니고 그러므로 존재가 아니다.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허전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내가 말한 자석과 쇠 사이에 일정한 힘의 방향성이 성립하고 있다는 표현에서 힘의 방향성은 있다. 있다는 표현은 존재를 나타낸다. 만유인력처럼 적당한 이름을 붙여서 명사로 표현할 수 있다.


여기서 필을 받았다. 뉴튼의 사과와 선생님의 자석과 국어사전의 젖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추상적인 관계이며 명사로 표현할 수 있다. ‘~이면 ~이다’를 충족하는 하나의 방정식으로 나타낼 수 있다.


이것으로 국어사전의 기술체계를 세울 수 있다. 거기서 유레카를 불렀다. 수업에는 흥미를 잃었고 일생을 걸어볼만한 내 길을 찾은 것이다. 그 부분만 해명하면 세상의 모든 문제가 풀릴 것 같았다.


4학년 때 과학경시대회 후보를 선발하기 위하여 초등학교 1학년 자연과목을 다시 공부하게 한 일이 있었다. 그때 후보로 선발은 되지 못했지만 물질, 물체, 물상, 물리 등의 기초개념을 배우게 되었다. 


물질이란 무엇인가? 물체란 무엇인가? 물리란 무엇인가? 물상이란 무엇인가? 이것이 초등학교 1학년 자연과목에서 다루어진다. 그런데 나는 배운 기억이 없다. 그런데 물질이 뭐지? 또다시 미로에 빠진 느낌이다.


그렇다. 산을 오르면 정상을 밟아야 하고 강을 내려가면 바다를 보아야 하고 동굴을 탐사하면 막장을 찍고와야 한다. 출발점과 종결점을 확보해야 한다. 그래야지만 그것을 안다고 말할 수 있다.


물질과 물체가 과학의 출발점인데 물질이 무엇인지 물체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과학을 하겠다면 터무니 없는 것이다. 젖과 유방 사이에서 뱅뱅돌고 자석과 쇠 사이에서 뱅뱅도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먼저 물질을 알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끝단을 얻는 문제다. 산의 정상, 동굴의 막장, 강의 바다가 된다. 1만년 전 조상들은 지구의 끝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동쪽이나 서쪽으로 끝까지 가보면 마지막에는 뭐가 나오지?


지금은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지만 그때는 몰랐었다. 끝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을 발견하고서야 비로소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런데 지금 인류의 학문은 시작도 끝도 없이 허공에 떠 있다.


지구의 끝은 북극도 아니고 남극도 아니다. 지구의 중심이다. 만유인력이 지구 상의 모든 사물과 물체들을 지구중심을 기점으로 삼아 줄을 세운다. 학문의 만유인력은 무엇이지? 학문의 지구 중심은?


모든 인식, 모든 학문, 모든 과학, 모든 이론의 출발점은? 낙동강은 황지에서 발원하여 남해에서 끝난다는데 인간 인식의 출발점은 어디지? 중학교 때 린네의 생물분류법을 배우고 힌트를 얻었다.


그런데 린네는 왜 7단계로 분류했지? 반드시 7이어야 한다는 근거가 있는가? 알 수 없다. 이 또한 산의 정상이 아니고 강이 바다에 이르지 못하고 동굴의 막장이 아니다. 린네의 분류법은 허공에 떠 있다.


이 문제를 해명하기 위해 분류학을 공부했는데 제대로 된 분류학의 이론은 존재하지 않았다. 분류학은 학문이 탄생하고 수 천년이 지난 아직도 공자의 육예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임의로운 학문분류를 따르고 있었다.


거의 모든 지식이 분류에 의해 얻어지는데 정작 그 분류에 대해서는 아직도 밝혀진 이론이 없다. 절대적인 분류 기준은? 생물은 진화의 경로를 따라가고 물질은 구성의 경로를 따라간다.


린네의 생물 분류는 진화의 계통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진화는 유전인자에 의해 일어나므로 유전인자의 속성을 근거로 분류기준을 제시해야 맞는 분류다. 린네는 유전인자를 근거로 대지 않았으므로 실패다.


린네가 생물의 진화계통을 따라 분류했으므로 나는 물질의 구성원리를 따라 분류하였다. 수십억년 태초의 원핵생물에서 진핵생물로 진화한 경로를 모방하여 물질이 한 점에서 선으로, 각으로, 입체로 성장하는 경로를 찾는 것이다.    


린네가 생물을 분류했으므로 나는 무생물을 분류했는데 물리, 물질, 물성, 물상, 물건, 물체 등의 개념들을 찾을 수 있었다. 린네식으로 분류하되 내 책상 위의 연필까지 도달하는데 몇 십 단계가 되었다.


물리≫물성≫물질≫물체≫물상≫사물≫물건≫물품≫상품≫문구류≫필기구≫필통≫연필의 전개를 관찰하던 중 여기에 일정한 패턴이 반복되고 있음을 알았다. 중간에 끊어주는 것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산의 정상이 되고, 동굴의 막장이 되고, 강의 바다가 되고 지구의 중심이 된다. 만유인력이 끊어주고 자석과 쇠 사이에 성립하는 힘의 방향성이 끊어준다. 항상 중간에서 끊어주는 것이 있다.


린네는 종속과목강문계의 칠단계로 분류했는데 거기에 아종을 추가하면 8단계가 된다. 최근에 동물도 아니고 식물도 아닌 것이 찾아졌다는데 이를 추가하면 9단계가 된다. 이런 식으로 계속 가짓수가 늘어나면 곤란하다.


이제마가 4상의설을 만들었는데 어떤 사람이 이를 모방하여 8상의설을 만들었다가 스스로 16상으로 발전시켰다고 한다. 뒤이어 32상, 64상, 128상의설이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이런 식이라면 곤란하다.


태초의 무극에서 음양이 나왔다. 거기서 사괘와 8괘가 나오고 점차 늘어나 64괘가 되었다. 128괘로 증가하면 곤란하다. 우리는 3차원의 세계에 살고 있는데 아인슈타인의 4차원에 이어 백차원, 천차원. 만차원이 나오면 곤란하다.


아이디어를 준 것은 피천득의 수필 인연이었다. 인연이 뭐지? 경전을 보았더니 연기법이라는 것이 있다. 인연과 연기는 뭐가 다르지? 인연은 인과율과 비슷하다. 인연(因緣)의 인(因)이 원인(原因)이면 연(緣)은 무엇이지?


인(因)은 원인이고 연(緣)은 그 원인이 작동하게 하는 조건이다. 연기(緣起)의 기(起)는 그 조건이 충족되어 결과를 촉발함이고 그 다음에 결과가 나타난다. 즉 인≫연≫기≫과의 4단계로 인과법칙이 성립한다.


헤겔의 변증법에서 아이디어를 빌릴 수 있다. 정반합의 구조는 인,연,기의 구조와 비슷하다. 인과(因果) 혹은 인연(因緣)이 종적인 순서인데 비해 정과 반은 횡적인 방향이다. 비로소 산의 정상이 눈에 들어온다.


산을 오르는 과정은 수직이다. 정상에 서면 수평선이 펼쳐진다. 수직은 수평을 만나 끝단을 이룬다. 강은 종으로 흐른다. 그러나 바다에 이르면 횡으로 폭넓게 펼쳐진다. 수직과 수평의 만남이 끝단을 이룬다.


동굴은 종적으로 진행하고 막장은 횡으로 가로막는다. 모든 종은 횡으로 막히고 모든 수직은 수평에 이르러 끝난다. 수직과 수평의 만남이 구조다. 그것이 만유인력이고 자석과 쇠 사이 힘의 방향성이고 국어사전의 바른 기술체계다.


마침내 보편된 구조를 발견한 것이다. 인(因)≫연(緣)≫기(起)≫과(果)의 4 단계 분류체계를 얻었다. 모든 존재는 내부에 인,연,기,과를 가지고 있다. 인은 묶어주고, 연은 관계맺고, 기는 일어서고, 과는 끝낸다.


씨앗 속에는 배아가 있고 배아에는 미래에 자라날 나무의 모습이 있다. 뿌리와 가지와 잎으로 전개될 생장점들이 숨어 있다. 유전인자가 숨어 있다. 모든 존재는 미래의 상황에 대비하여 미리 갖추어두고 있는 것이다.


국어사전이 어머니를 설명할 때 그 어머니를 묶어주는 가족의 인(因), 그 어머니가 관계맺는 아버지의 연(緣), 그 어머니가 일으키는 결혼의 기(起), 그 어머니가 열매맺는 자손의 과(果) 사이에서 설명해야 한다.


이것이 국어사전의 만유인력이다. 만유인력이 지구 위의 모든 물체를 하나의 기준 아래 정렬시키듯이 사전의 모든 개념들을 일율에 통제할 수 있다. 이렇게 끝단을 드러낼 수 있다. 산의 정상이고 동굴의 막장이고 강의 바다이다.


관찰한 결과 인≫연≫기≫과의 넷이 모두 어떤 둘 사이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인,연,기,과는 딱딱한 입자 알갱이가 아니라 둘 사이를 연결하는 관계망이었다. 즉 둘 사이에서 중매를 서고 본인은 빠져주는 것이다.


인(因)은 원인을 제공하고 떠난다. 연(緣)은 연분을 맺어주고 떠난다. 기(起)는 사건을 일으켜 주고 떠난다. 과(果)는 열매를 남기고 떠난다. 모두 떠난다. 그러므로 구조는 어떤 둘의 사이에 있다.


인,연,기,과는 어떤 둘 사이에 있으므로 그 좌우에 하나씩 더 있어야 한다. 좌우에 하나씩 추가되어 6으로 늘어났다가 최종적으로 5로 결론을 내렸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다섯이 되었다.


구조의 5는 점, 선, 각, 입체, 밀도의 5인데 점은 그냥 점이 아니라 두 당구공 사이의 접점이다. 선은 두 당구공 중 하나가 움직였을 때의 운동선이다. 각은 두 당구공이 동시에 움직였을 때의 교차각이다.


우리가 종이에 표시하는 점은 크기가 있다. 아무리 작게 점을 찍어도 어떤 크기의 점이다. 이래서는 순수 추상이 아니다. 추상은 관계를 추적한다. 관계는 둘 사이에서 연분을 맺어주고 본인은 빠지므로 자리가 있을 뿐 크기가 없다.


구조는 5로 완결된다. 왜 5인가? 5에서 끝나기 때문이다. 끝단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산의 정상에서 끝나고 동굴의 막장에서 끝나고 강의 바다에서 끝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구조의 비반복성, 불연속성, 비분할성 때문이다. 


구조는 관계를 해명한다. 관계는 둘 사이의 관계이므로 우선 둘이다. 사이를 추적하므로 사이를 포함 셋이다. 관계는 ON과 OFF를 결정하는 스위치를 가진다. 스위치의 켜짐과 꺼짐을 포함하여 다섯이다.


주체와 대상 그리고 관계, 그 관계의 켜짐과 꺼짐을 포함하여 다섯으로 하나의 구조는 완성된다. 이 세상은 어떤 둘의 만남과 그 둘이 만나서 이루는 관계, 그리고 그 관계의 켜짐과 꺼짐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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