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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587 vote 0 2023.04.20 (13:37:09)


    잔 다르크는 한 번 이겼을 뿐인데 길고 길었던 백년전쟁이 끝났다. 로마가 한 번 이겼을 뿐인데 한니발은 끝났다. 북군이 한 번 이겼을 뿐인데 남군은 끝났다. 워싱턴의 독립군이 한 번 이겼을 뿐인데 영국군은 철수했다. 유방이 한 번 이겼을 뿐인데 항우는 끝났다.


    전쟁은 전투 한 번으로 끝난다. 왜? 한 번도 지면 안 되는 쪽이 먼저 공격하기 때문이다. 영국은, 한니발은, 남군은, 영국군은, 항우는 구조적으로 불리해서 한 번도 지면 안 되는데 그렇기 때문에 먼저 기습한다. 한 번도 지면 안 되는 일본군이 먼저 진주만 습격한다.


    프랑스는 이미 이겨 있었다. 인구와 생산력에서 영국을 월등히 앞섰다. 무조건 프랑스가 이기는 싸움이다. 잔 다르크는 이미 결정되어 있는 프랑스의 승리를 확인했을 뿐이다. 무엇인가? 중세의 끝물이다. 근대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사람의 생각이 바뀌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프랑스야말로 중세의 본산이었다. 가장 근대에 다가서 있으면서도 완강하게 중세를 고집하고 있었다. 영국군의 주력은 농민이다. 웨일즈 장궁병은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고 활 하나만 쥐고 있었다. 프랑스 기병이 돌입하면 농민은 흩어져 도망친다.


    대책이 있다. 말뚝을 박아 기병이 닥돌하지 못하게 한다. 프랑스 중기병은 압도적이다. 이태리산 플레이트 아머로 무장하고 있었다. 압도적인 힘으로 밀어버리면 된다. 그러므로 우회기동이나 기습과 같은 약은 기술을 구사할 수 없다. 프랑스는 정면대결뿐이다.


    그래서 망했다. 근대는 농민의 시대다. 농민이 앞장서야 한다. 영국군의 승리는, 미국 독립군의 승리는, 유방의 군대는 직업군인이 아닌 농민군의 승리다. 중세는 당연히 직업군인이 이긴다. 최소 3년은 훈련해야 쓸만한 기사가 된다. 농민군은 기사단을 이길 수 없다.


    그러나 근대는 다르다. 화승총은 농민이 사흘만 훈련하면 된다. 잔 다르크의 시대는 전쟁에 대포가 쓰이던 시대다. 기사의 의미가 없다. 그러나 압도적인 생산력의 프랑스는 기사에 목을 매고 있었다. 그리고 잔 다르크가 등장했다. 신의 힘으로 영국을 물리친다고?


    그게 농민을 동원한다는 이야기다. 농민은 반칙을 서슴없이 구사한다. 미국 독립군은 라이플로 영국군 장교만 골라서 저격했다. 기사도로 보면 있을 수 없는 야만적인 행위다. 신사가 아니다. 그러나 미국 농민들은 기사도를 배운 적이 없기 때문에 신경쓰지 않았다.


    잔 다르크는 양치기 출신이다. 양치기는 늑대의 모든 사악한 기술을 배운다. 늑대는 교묘한 방법으로 새끼 양을 어미로부터 떼어놓는다. 양치기가 늑대를 상대하려면 늑대보다 영리해야 한다. 민중의 창의성이다. 로마군은 압도적인 직업군인의 힘으로 승리했다.


    한니발은 허술한 게르만 용병을 데려왔다. 싸울 줄 모르는 게르만 용병을 가운데 집어넣고 미끼로 써서 로마군을 유인한 다음 양익을 포위했다. 한신이 배수진에 써먹은 방법이다. 약한 군대로 강한 군대를 이긴다. 민중의 창의력으로 가능한 것이다. 이전에 없었다.


    로마군은 워낙 강하기 때문에 전술이 필요 없다. 평소 훈련한 대로 하면 된다. 로마교범의 힘이다. 미군도 전술이 필요 없다. 압도적인 신무기를 마구마구 찍어내면 된다. 베트콩이 쓰는 창의적인 전술을 미군은 쓸 수 없다. 한국에서 미군이 고문관 소리 듣는 이유다. 


    프랑스 기사단은 워낙 강하기 때문에 전술이 필요 없다. 정공법을 고집하다가 농민을 데려와서 복잡한 전술을 구사하는 영국군에 궤멸되었다. 잔 다르크는 직업이 양치기였다. 영국이라는 늑대를 상대하는 방법을 안다. 기습과 우회기동과 심리전을 모두 구사했다. 


    늑대가 양을 잡아먹는 기술이다. 프랑스인은 이제 알아버렸다. 전쟁에 기사도는 필요 없어. 모든 전술을 다 구사하면 무조건 프랑스가 이기지. 왜? 인구가 많고 돈이 많잖아. 각성한 프랑스군 앞에서 이제 영국군은 전투가 불가능하다. 모든 사람의 생각이 바뀐 것이다.


    잔 다르크가 한 번 이겼을 뿐인데 모든 영국인과 프랑스인은 알았다. 전쟁이 끝났다는 사실을. 수단 방법을 안 가리고 다걸기로 간다고? 민중이 전쟁의 전면에 나선다고? 그럼 무조건 프랑스가 이기지. 왜? 쪽수가 많잖아. 돈이 많잖아. 땅이 넓잖아. 물리학이잖아. 


    전쟁은 보통 이렇게 된다. 독일이 선빵 날린 이유는 선빵이 아니면 진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진다는 사실을 알고 전쟁했다. 결국 졌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질 싸움은 진다. 늑대의 약은 기술로 국힘당이 민주당을 이겼다. 영국의 전술로 잔 다르크가 되갚았다. 


    우리가 늑대의 기술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국힘당의 늑대전략을 우리가 배워버렸다. 그렇다면 쪽수가 많은데 우리가 질 리가 없잖아? 우리는 좌파들 눈치 보느라 점잔 빼다가 졌잖아. 기사도 지키다가 백 년 동안 털린 프랑스군과 같았다. 


    진보당 키워서 정의당 협잡 막아놓고 다걸기로 가버렷. 국힘당이 한 짓과 똑같은 방법으로 갚아줘. 윤석열이 조국과 문재인에게 했던 짓을 고스란히 되갚아 주는 일에 국민들은 흥미를 느껴버렸다. 국민들이 흥미를 느끼면 반드시 그렇게 된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이명박의 대운하든, 박근혜가 우주의 기운을 모으든, 문재인의 적폐청산이든, 민주당의 조국 시즌 2로 빚갚기든 국민이 흥미를 느끼면 그걸로 게임은 끝이다. 윤석열도 뭔가 흥미를 끌게 한 요소가 있어서 표를 받은 것이다. 그 윤석열의 말로가 국민의 관심거리다.


    ###


    오를레앙에서 프랑스군은 영국군 요새를 공격했다가 철수하고 있었다. 그때 잔 다르크가 전장에 도착했다. 병사들은 사기가 올라 함성을 질렀다. 철수하던 군대가 말머리를 돌려 요새를 기습했다. 프랑스군의 철수에 방심하고 있었던 영국군이 털렸음은 물론이다.


    대개 이런 식이다. 순간적으로 허를 찌르는 감각은 에너지의 리듬을 탈 줄 아는 사람의 것이다. 그것은 민중 내부에 구심점이 만들어져야 가능하다. 잘 훈련된 군대는 교범대로 움직이지만 창의적인 군대는 교범을 뛰어넘어 흩어지고 모이기를 자유자재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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