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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아이들은 집안에서 귀찮은 존재이므로 곧 한데 모아 놓고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삼국의 고사를 이야기할 때에 유현덕이 패배하였다는 말을 들으면 이맛살을 찡그리고 눈물을 흘리는 아이도 있으며, 조조가 패배했다는 말을 들으면 곧 기뻐하곤 하였다.”[소식의 칼럼집 동파지림에서 친구 왕팽상의 입을 빌어]
 
조조는 둔전법을 시행하여 민생을 안정시키는 등 많은 공적을 쌓았다. 그러나 모두가 조조를 싫어했다. 이유는?
 
문제는 조조를 싫어하는 사람이 역사를 썼다는 점이다. 삼국지는 나관중에 의해 소설로 엮어지기 전에 먼저 민간에 구전되었다.
 
소설가(小說家)는 제자백가 중의 하나인데 거리에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재담을 하는 이야기꾼이었다. 그들은 신분이 낮고 자유분방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특히 조조를 싫어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진수의 정사 삼국지에 비해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 와서 조조는 더욱 폄훼된 것이다.
 
(사마담은 제자백가를 음양가, 유가, 묵가, 명가, 법가, 도덕가, 종횡가, 잡가, 농가, 소설가(小說家)의 열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소설가는 본래 거리의 풍속을 수집하여 보고하는 패관(稗官) 출신이었다고도 한다.)
 
박정희의 업적이 클까 잘못이 클까? 문제는 누가 역사를 기록하는가이다. 박정희를 싫어하는 사람이 역사를 기록한다. 거리의 아이들을 장악하고 있는 소동파와 그의 친구 왕팽상이 기록하는 것이다.
 
역사기록자들은 기록하는 방법으로 후세에 뭔가 가르침을 던져주고자 한다. 박정희의 공적이 크다 해도 그것은 조조의 업적과 같은 것이어서 후세에 교훈이 되지 못한다.
 
문제는 미학이다. 거리에서 떠드는 소설가들은 예술가의 기질을 가지고 있다. 소설가들은 민중을 현혹한다는 이유로 탄압 받았다. 모든 소설가들은 당시 기준으로 보안법 위반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사대기서들은 금서가 되기도 했다. 문제는 그러한 보안법의 희생자들이, 박정희의 피해자들이, 조조의 법가정치로 부터 피해의식을 가진 선비들이 문화를 주도하고 역사를 기록한다는 점이다.
 
역사가 심판한다
역사로 보면 둘 뿐이다. 인문주의와 반지성주의다. 인문주의는 유가의 흐름을 낳았고 반지성주의는 법가의 흐름을 낳았다. 조조의 치세는 법가에 의존한 것이다. 일본의 마지막 사무라이 박정희의 독재 역시 마찬가지다.
 
대결한다. 지난 3000년 동안 줄곧 대결해 왔다. 법가의 흐름은 이 나라의 군사문화를 낳았고 인문주의의 흐름은 오늘날의 한류를 만들었다.
 
대결하면 늘 법가가 이긴다. 칼이 붓을 이긴다. 조선왕조 오백년동안 선비들은 무수히 살해당했다. 패배하고 또 패배하고 또 패배하였다. 그럼에도 굽히지 않는다. 유가는 정사(正邪)를 분별하여 기록하는 방법으로 또 다시 싸움걸기에 나선다. 곧 공자의 가르친 바 춘추필법이다.
 
칠레는 어떤 나라인가?
한국인들에게 칠레에 대한 선호를 질문하면 다들 아무 생각없이 좋아한다고 말할 것이다. 내게 묻는다면? 부시 만큼이나 재수없다고 대답해줄 것이다. 빌어먹을 피노체트 때문이다.
 
내 기억에 피노체트는 히틀러와 같은 인물로 각인되어 있다. 인간의 존엄성을 유린한 자 곧 나의 적이다.
 
박정희라면 어떨까? 한국의 이미지는 그대로 박정희의 이미지다.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박정희를 싫어하지 않는다.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국의 안다하는 식자들은 내가 피노체트 때문에 칠레를 혐오하듯이 박정희 때문에 한국을 싫어한다.
 
누가 문화를 만드는가? 거리의 소설가들이 문화를 만든다. 누가 소설가인가? 그들은 만화가이기도 하고 영화감독이기도 하고 드라마의 PD이기도 하다.(여기서 소설가는 송나라 때의 민중예술 그 자체를 의미.) 그들이 한류를 만든다.
 
한류는 그 나라의 문화종사자들이 만든 것이다. 그 나라의 소설가들이 만든 것이다. 일본의 혹은 중국의 무수히 많은 무명의 거리의 소설가들이 만든 것이다.(소설 작가 말고)
 
누가 칠레를 규정하는가? 이 나라의 인문주의자들이 규정한다. 누가 한국을 규정하는가? 그 나라의 문화계에 종사하는 인문주의자들이 한국을 규정한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미국을 좋아하지만 한국의 소설가들은 미국을 싫어한다. 미국의 이미지는 한국의 소설가들이 결정해버리는 것이다.
 
누가 한국의 소설가인가? 바로 우리 네티즌들이다. 한국의 문화를 이끌어 가는 네티즌들이 미국의 이미지를 규정한다.(여기서 소설은 이문열이나 김훈 따위의 썩은 문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송나라의 거리에서 아이들을 모아놓고 떠드는 이야기꾼들을 말함. 조조를 폄훼하고 유비를 예찬한 그 사람들.)
 
정리하자.
 
조조의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 조조의 법가에 반대하자는 의도에서 송나라 거리의 소설가들이 조조의 단점만 부풀렸다.
 
박정희의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 역사가들이 후세에 교훈을 남기자는 의도에서 박정희의 단점만 기록한다.
 
한국의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 - 그 나라의 문화를 주도하는 소수의 인문주의자들이 한국의 이미지를 결정한다. 그들은 박정희를 혐오하는 사람들이다. 지구촌의 인문주의자들은 모두 한통속이기 때문이다.
 
경우의 수는 둘 뿐이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유가냐 법가냐다. 인문주의냐 반지성주의냐다. 민주정치냐 군사독재냐다. 춘추필법에 예외는 없다.
 
칠레가 좋은 나라라 해도 나는 칠레를 복권시켜주지 않는다. 한국이 잘해도 외국의 식자들은 한국을 복권시켜 주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한국을 인권후진국에 독재국가이고 아직도 야만의 보안법이 존재하는 나라로 알고 있다.
 
그들 국가의 평범한 시민들이 한국을 좋아한다 해도 그들 중의 극소수의 인문주의자들이 한국에 박정희 야만의 낙인을 찍어버리면 그걸로 끝이다.
 
한류, 왜 이리도 늦었는가?
일류(日流)가 한국을 휩쓴지는 오래되었다. 한류가 이제사 폭발하는 이유는 박정희의 나쁜 이미지 때문에 막혔던 것이 DJ의 해금에 의해 한꺼번에 풀렸기 때문이다. 이것이 본질이다.
 
우리에게 DJ가 있었다는 것은 천금의 자산을 가진 것과 같다. 사우디의 유정 100개와도 바꿀 수 없다. 우리는 DJ의 진정한 가치를 모르지만 외국의 문화종사자들.. -그들은 영화감독, 방송PD, 화가, 만화가, 작가, 오피니언 리더들이다.- 은 DJ를 높이 평가한다.
 
세계의 인문주의자는 모두 한통속이다. 김대중 전대통령은 그 세계 인문주의의 대표선수 중 한 사람이다. 박정희의 악(惡)의 이미지가 사라진 자리에 DJ의 선(善)이미지가 온 것이다. 그래서 그토록 오랫동안 막혔던 한류가 뒤늦게 뚫린 것이다.
 
나는 본질에서 한류의 원인을 5천년 만의 정권교체 덕분으로 본다. 일본은? 아직 의미있는 정권교체를 한 일이 없다. 아세아 민주주의의 진정한 가능성은 한국에서 최초로 유의미한 성공모델을 발표하고 있다.
 
문제는 성공모델이다. 모델의 성공이 아니면 아무런 가치가 없다. 본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모델이냐 일본모델이냐다. 일본모델은 아세아적 가치(여기서의 아세아적 가치는 이광요의 개소리가 아니다)를 대표하는 대표성이 없다.
 
일본모델은 법가의 승리다. 이건 원래 안쳐주는 거다. 진정한 아세아적 가치는 유교문명의 저변의 넓음에 있다. 유교문명은 아세아가 공유하는 문명 차원의 코드이다. 서구 기독교문명에 맞서는 아세아 유교문명의 대표성을 과연 누가 가지고 있는가이다.
 
한류는 유교문명권의 대표선수다
일본의 사무라이 문화는 본질에서 법가다. 일본은 유교주의의 정수를 배우지 못했다. 중국은 본질에서 도교다. 청나라 이후 중국에서 유교는 쇠퇴했다. 유교가 왕조의 정권유지수단을 넘어 민간에 까지 침투한 나라는 우리나라 외에 없다.
 
진정한 유교는 종교화된 유림들의 유교가 아니라, 삼강오륜하고 남존여비하고 사농공상하는 썩은 유교가 아니라 -그건 종교적으로 일탈한 바 가짜다- 춘추전국시대 공자의 유교이며 공자 유교의 의미는 ‘분쟁의 해소’에 있다.
 
예컨대 일본의 연인들은 거리에서 사랑싸움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지하철 역의 한 귀퉁이에서 말 없이 노려보고 있다. 그냥 째려보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연인들은 언성을 높여 싸운다. 이 과정은 한류 드라마에 잘 묘사된다. 일본의 연인들은 언성을 높이지 않기 때문에 울지도 않는다. 웃지도 않는다. 포옹하지도 않는다. 용서하지도 않는다. 아까부터 계속 노려보고 있다.
 
한국인들은 유교의 전통을 활용하여 분쟁의 해소를 도모한다. 중재가 있고 화해가 있고 포용이 있고 눈물이 있고 카타르시스가 있다. 그 과정에 갈등이 깊어지는가 하면 왈칵 해소되기도 한다.
 
일본인들은 아까부터 계속 노려보고 있다가 느닷없이 칼을 뽑는다. 피가 낭자한다. 일본 드라마는 잔혹하다. 여기에 유교문명의 인문주의적 보편성이 설 자리가 없다.
 
왜 한류가 성공하는가? 아세아적 가치의 전형(이광요나 마하티르 따위의 개소리가 아닌.. 이광요의 그것은 법가다. 이광요의 아세아적 가치는 세계 인문주의의 보편성에서 벗어난.. 생뚱맞은 것이다.)을 한국이 가장 충실하게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아세아에서 서구 기독교 문명권에 맞서는 대항이론으로서의 유교문명의 재발견이다. 진정한 아세아적 가치는 무엇인가? 그것은 강한 개인이다. 한국인들은 개인이 강하다. 아이들 기를 살리는 교육을 하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약하다. 마마보이다. ‘폐를 끼치면 안돼’ 하고 기를 죽이는 교육을 하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되는지 이야기를 다 하려면 책 한권으로도 모자라는데.. 너무 길어졌으므로 여기서 자르고.. 충분한 설명은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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