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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5256 vote 0 2009.12.15 (13:25:18)

 

‘깨달음’에 대해서 토론이 건설적으로 진행되는 예를 나는 보지 못했다. 지금 이 사이트 한 구석에서 일어나는 일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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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진짜 무서운 것은 하나 뿐. 호랑이? 아니다. 생노병사의 고(苦)? 또한 아니다. 호랑이 귀여울 뿐, 생노병사의 괴로움 양념일 뿐, 인생이라는 노랫가락 안에서 얼마든지 흥겹다.

무서운 건 ‘관계’다. 사이트에 손님이 방문한다. 환영한다. 가면을 쓰고 환영의 대사를 읊어준다. 진짜 환영일까? 내무반이라면 대환영이다. “쫄따구 들어왔네. 만세.” 잡아먹을듯이 달려든다. 물어 뜯는다. 그것이 인생.

아기가 태어나면 모두 환영한다. 잡아먹을듯이 성적닥달한다. 과외학원 보낸다. 세상이란 것이 그렇다. 칼을 들고 환영한다. 몽둥이를 감추고 판에 박힌 환영사를 읊어준다. 사나운 사자가 멋모르는 어린 사슴을 환영하듯이.

그렇다. 인생의 문제는 괴로움이 아니라 비참이다. 괴로움은 유쾌함으로 극복되지만 비참은 구원으로만이 극복된다. 비참은 이 별에서 친구가 없는 것. 초대장이 없는 것. 콘텐츠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은 첫째 친구가 있는 것. 둘째 초대장이 있는 것. 셋째 콘텐츠가 있는 것이다. 이는 피해갈 수 없는 질문 두 가지로 나타난다.

1) 누가 물어봤냐고? - 존재를 구성하는 ‘명목’과 ‘기능’ 중에서 명목에 대한 질문이다. 샤르트르가 ‘실존’이라 말한 그것. 타이틀을 말하라.

2) 그래서 어쩌라고? - 명목 다음에 따라와야 할 기능에 대한 질문이다. 까뮈가 말한 부조리. 콘텐츠를 보이라.

정답은 있다. 1)에 대한 답은 이상주의다. 인류 집단지성에 참여함이다. 인류문명이라는 작품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초대장이다.

이 사이트의 초대장이다. 지구라는 별의 초대장이다. 당신의 탑승을 간절히 바라는 21세기라는 열차의 초대장이다. 초대장 없는 불청객 어색해진다. 샤르트르의 실존적 고민에 빠진다. 비참이 그 가운데 있다.

이상주의라는 초대장 접수한 자 이 사이트에 올 수 있다. 이 별에 올 수 있다. 이 문명에 참여할 수 있다. 21세기와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다. 함께 하는 대승의 배에 승선할 수 있다. 초대장 없으면 백안시.

2)에 대한 답은 미학이다. 미학이라는 콘텐츠로만이 이 무대에서 발언권 얻는다. 남의 거 거간하지 말고, 중간에서 장사하지 말고, 내 안에서, 내 배 아파서 낳아낸, 나의 언어로, 창의적인 무언가 말해야 한다.

그 언어를 얻고서야 문명의 작품에 벽돌 하나 보탤 수 있다. 무대에 올랐으면 춤을 추든지, 노래를 부르든지, 생쇼를 하든지 뭔가 해야 한다. 하지 못한다면? 바로 그것이 까뮈의 부조리고 인생의 비참이다.

사람들은 빙글빙글 돌아가는 시류라는 무대 위에서 익숙한 역할극에 몸을 던지고 고통스런 질문을 피해가려 하지만 어림없다. 문 앞에서 딱 걸리고 만다. 너의 초대장은 무엇인가? 콘텐츠는 무엇인가?

실존의 인식이 필요하다. 초대장 없이 아무런 근거없이, 불러준 이도 없는데 공연히 이 별에 왔다는 비참의 인식. 부조리의 인식이 필요하다. 콘텐츠 없이 무대 올라서 뻘쭘해졌다는 비참의 인식. 철학의 출발점이다.

누구든 ‘나 깨달았소.’ 하며 우쭐대며 타인에게 말을 걸 수는 있다. 그러나 위험하다. 알아야 한다. 얼떨결에 무대에 오르는 실수 저지르고 말았다는 사실을. 이미 무대에 올랐거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한 곡조 뽑아야 한다는 사실을.

비수같은 질문이 옆구리를 찔러온다. ‘누가 물어봤냐고?’다. ‘깨달았다고?’ ‘됐거든.’ ‘됐으니 가서 일 보세요.’ 이게 비참이다. 이상이 왜 그 옥상에서 사이렌 소리를 들었는지 알만하다.

생노병사의 고(苦)라는 것은 초딩 1학년이 하는 소리. 생존경쟁 먹이사슬의 괴로움이라는 것은 중딩 1학년이 하는 소리다. 그것으로 발언권 얻을 수 없다. 진짜 질문에 답해야 한다.

누구라도 같은 질문이 던져진다. 그 질문에 어떻게 답하느냐에 따라 귀한 손님이 될 수도 있고, 지나가는 행인 1이 될 수도 있고, 가르치는 선생이 될 수도 있고, 배우는 제자가 될 수도 있고, 조용한 독자가 될 수도 있다.

어떻든 인생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되고 만다. 화를 내든 웃고 말든.

http://gujoron.com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09.12.15 (16:07:22)


글 가져갑니다.
위 글에 대해서 경험으로 이해하게 될지는 내 미처 몰랐지만...경험을 통과하여 가는 중에 이 글을 보니 정말 그러하오...
괴로운 것인줄 알았더니 비참한 것이었고 괴로움을 해소하려 해 보았으나 사실 그것은 그냥 괴로움을 즐기고 있는 것이었소..누구도 나에게 일단은 말을 붙이지 못하게  방어하는 것..시간을 벌어야 함으로...왜 시간이 필요했을까...?..사실은 뭔가가 비참한 것이오.그 비참함에 대해서 그게 뭔지를 알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갑자기 온 몸이 오그라들것 같은 쪽팔림이 엄습하고 누가 보고있지 않아도 그러했소.그 비참함이 뭔지에 대해서 ..거기서부터 질문이 시작되고 답을 찾는 중... 자신이 자기를 안다고 생각하지만 ..안다는 것은 잘못생각된것..온통 자기를 변명하느라 정신없다는 것을 보게된듯 하오.괴로움과 비참함을 구분하지 못했소.몰랐던 것인지 비참함을 느껴본적이 없었던 것인지..그래서 참담했소..^^;
[레벨:1]Full squat

2009.12.15 (16:23:21)

수학을 해야 한다.
수학을 통한 '나'의 객관화가 곧 깨달음이다.

[레벨:1]부도지

2009.12.15 (18:22:07)

펌합니다 .
두고두고 돼새겨 볼람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2]id: ░담░담

2009.12.16 (12: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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