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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4361 vote 0 2005.06.08 (11:45:08)

6월 6일은 현충일입니다. 전태일 열사, 이한열 열사와 박종철 열사 그리고 광주의 영령들을 추모하는 민주화의 현충일은 언제입니까?

오전 열시 사이렌 소리를 들으면서 누구를 생각했습니까? 목숨바쳐 나라를 구한 일도 물론 중요한 일이지만 인간을 모욕하는 자들에게 맞서 인간의 존엄을 증명한 일은 더 상위의 가치입니다.

아래 글은 지난 6일 서영석님의 칼럼 ‘박근혜와 문성근이 대안인가’를 읽고 데일리에 기고한 글인데 전여옥 폭탄 이후 데일리에 칼럼이 넘쳐서 뒤로 밀렸습니다.

 


서영석님의 위세론을 읽고
사람 얼굴을 쳐다보고 있는 자들은 패배할 수 밖에 없다.

저쪽에는 전여옥과 박근혜가 있다. 이쪽에는 유시민과 노무현 대통령이 있다. 모두들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다. 저쪽에서 혹시 무슨 말을 하지나 않았나 하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우스울 뿐이다. 표면과 이면이 있다. 필자는 서영석님의 위세(prestige)론에 일부만 동의한다. 그것 역시 표면의 한 작은 지점에 불과하다. 결국은 밑바닥에서 역사의 흐름이 결정하고 시대정신이 결정한다.

시야를 더 넓혀야 한다. 이면에서의 흐름을 보아야 한다. 정치만 보아서는 보이지 않는다. 경제, 사회, 문화분야를 두루 보아야 한다. 21세기 신문명이라는 태풍의 눈이 움직여가는 진로를 포착할 수 있어야 한다.

노무현 후보가 불과 3프로의 지지에서 67프로의 지지로 솟아오르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3프로와 67프로 사이에 무엇이 있는가? 노사모? 천만에! 박사모로 맞불을 놓으면 된다구? 천만에!

노사모 역시 불똥이 이리저리 옮겨붙어 가는 과정에서 잠시 머무르는 하나의 정거장에 불과하였다. 박사모는 치어리더에 불과하다. 자체 엔진이 없는 글라이더로는 한계가 있다. 활공할 수는 있어도 이륙할 수가 없다.

이미 잘 되고 있는 것을 더 잘되게 할 수 있을 뿐 근본적으로 안되는 것을 되게 할 수는 없다. 무엇이 우리의 노무현호를 그 시점에 그 지점에서 박차고 이륙하게 하였는가? 노사모? 천만에! 인터넷? 천만에!

유시민과 문성근의 명연설은 물론 훌륭하지만 역시 시대정신이 작용한 결과다. 그분들이 그 시점에 그 장소에 가지 않았다면 명연설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은 누가 역사의 현장을 지키는가에 달려있다.

2002년 대선 때를 돌이켜 본다. 이회창 지지자의 평균학력은 노무현 지자자의 평균학력보다 훨씬 낮았다는 사실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박사모의 위세 따위는 정몽준에게도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진짜가 아니다.

서영석님의 글에서 인용하면.. “지지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생업을 팽개치게 만들면서까지 그 지도자를 대통령으로 세우기 위해 헌신하도록 만드는 무형적이고도 인격적인 위력”으로 설명하였는데, 물론 좋은 표현이긴 하지만 그것이 다만 사람에게 투사될 뿐, 근본 그것은 사람을 향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무엇인가? 양말장사 생업을 팽개치고 노무현 후보를 향해 달려갔던 그 사람이 지금 어디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나는 알고 있다. 그건 값싼 것이다. 그걸로는 활공할 수 있어도 이륙할 수 없다. 진짜가 아니다.

우리가 노무현 후보를 밀었던 이유는 그 숨막히는 독재시절, 최루탄에 눈물콧물이 범벅되었던 그 기나긴 시련의 체험을 적어도 싼 값에는 팔아먹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거 알아야 한다.

전태일 열사의 유훈을, 광주의 한을, 이한열 열사와 박종철 열사의 그 마지막 애절한 표정을 적어도 우리는 싼 값에 팔아먹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 진실을 아는 이라야 한다. 그것은 역사의 무게다.  

서영석님이 말한 ‘감동’? 감동은 플러스 알파에 불과하다. 역시 이륙한 비행기를 조금 더 길게 활공하게 보조하는 것이다. 그것으로 마지막 2프로를 채워줄 수 있을 뿐 그걸로는 자체 엔진에 점화할 수 없다.

박차고 이륙하여 날아오르게 하는 엔진은 우리의 가슴 속에 있다. 그것은 광주의 눈물에 있고, 전태일 열사의 한에 있고, 박종철 열사와 이한열 열사의 마지막 그 한마디에 있다. 지하에서 외치는 그분들의 부름소리를 들을 귀를 가져야 한다. 역사가 소리쳐 부를 때 역사의 현장에 가 있는 그 사람에게 대한민국호의 조종간이 맡겨지는 법이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념이나 정당 보다는 사람에 의해 움직여져 왔다. 특정인이 역사의 키를 잡았던 것이다. 천만의 말씀! 그렇게 본다면 어설픈 것이다.

민주화라는 거대한 물결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사람에 관심이 쏠린 이유는 정치인들이 끊임없이 민중을 배반해 왔기 때문이다. 김영삼이 배반했고, 이기택이 배반했고, 권노갑이 배반했고, 이인제가 배반했고, 추미애가 배반했고, 조순형이 배반했고, 김민새가 배반했고, 정몽준이 배반했다.

정치가 끝없이 민중을 배신하므로 민중은 결국 정당을 대리하여 믿을만한 특정인을 추종할 수 밖에 없게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이 본질을 바로 알아야 한다.

사람을 말하지 말라. 특정인을 말하지 말라. 그것은 진짜가 아니다. 민중은 외길로 간다. 민중이 가는 길은 전태일의 길, 광주의 눈물, 박종철과 이한열의 마지막 눈빛에 다 들어있다. 민중은 단 한번도 변덕을 부리지 않았다. 언제나 정치가 변덕을 부려 민중을 배신해 왔다.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해야 한다. 우리가 유시민 쪽으로 옮겨간 것이 아니다. 모두가 우리를 배신하고, 모두가 우리를 능멸하고, 모두가 우리에게 침뱉고 떠날 때 유시민 하나 남아준 것이다.

전태일을, 광주를, 박종철을, 이한열을 그 위대한 이름들을 싼 값에 팔아먹지 않고 여전히 제 위치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유시민 하나 밖에 없다. 그는 다만 망부석처럼 가만히 있었을 뿐이다. 우리는 가만히 있었는데 닝기리와 종석이가 우리를 배반하고 떠난 것이다.

정치가 의리를 지킬 때 민중도 의리를 지킨다. 위세 따위는 없어도 좋다. 다만 진짜이기만 하면 된다. 우리는 결코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왔다갔다 하지 말고 제 위치를 지키란 말이다. 여전히 전태일을, 광주를, 박종철을, 이한열을 기억한다면 말이다.

실용 어쩌고 하는 우리당의 너저분한 인간들에게 묻는다. 전태일의, 광주의, 박종철의, 이한열의 역사 앞에서의 무게가 고작 그 정도였었나? 니들이 팔아먹은 가격대로 은전 서푼어치였는가 말이다. 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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