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read 14442 vote 0 2005.09.21 (21:52:48)

언제나 그렇듯이 정치는 자살골 넣기 시합이다. 이기는 것이 지는 것이고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정치판 만큼 역설의 원리가 분명하게 작동하는 곳은 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훌륭한 정치인들은 이겨야 할 때 이겨주고 져주어야 할 때 져주는 방법을 선택해왔다. 지금 져주는 방법으로 힘을 비축해 두는 것이, 나중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결정적인 승부처에서, 단번에 힘을 끌어모을 수 있는 바탕이 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노무현식 진정성의 정치다.

‘더 중요한 정치인 되고 싶지 않다’는 건 유시민의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생각이다. 정치는 공론의 장이고 공론은 공공성이 결정한다. 더 중요한 정치인이 되고 싶든 혹은 그렇지 않든 자기 심리에 불과한 그것을 자기 논리의 근거로 삼을 수는 없다. 그건 배반이다.

진실로 이겨야지 말로 이기는 것은 소용없다는 말이다. 즉 유시민은 정혜신의 발언을 반박하는 척 하면서, 실제로는 정혜신의 발언은 안중에도 없었고 다만 정혜신 등의 발언을 고리로 삼아 평소에 하고자 했던 자신의 발언을 한 것이다.

그는 정혜신과 논쟁한 것이 아니다. 그는 누군가가 자신에게 한 마디 하기만 하면 그걸 고리로 삼아 자기 속에 비축되어 있는 열 마디를 던지는 사람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실로 박근혜와 회담한 것은 아니듯이 말이다. 진실로 말하면 대통령은 국민과 회담한 것이다.

정혜신의 발언은 깔아준 자리에 불과하다. 그 사실을 유시민이 알았어야 했다.

유시민은 더 중요한 정치인이 되어야 한다. 단 리더의 방법으로 더 중요한 정치인이 될것인가 아니면 선구자(스승)의 방법으로 더 중요한 정치인이 될 것인가이다. 유시민은 군중의 리더가 되기를 포기하고 더 많은 작은 유시민들의 선구자가 되려는 것이다.

어떻게 되든 유시민은 더 중요한 정치인이 될 것이다. 물론 킹이 더 중요한 정치인인지 아니면 킹메이커가 더 중요한 정치인인지는 바라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다를 것이다.

더 중요한 정치인이 되기를 포기했다(?)는 유시민은 더 많은 작은 유시민들을 만들 것이다. 우리당 안에 혹은 바깥에 유시민류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것이 큰 흐름이 되고 그 흐름이 역사를 바꿀 것이다.

우선순위 판단에 불과하다. 군중의 리더가 되어 군중을 움직여서 군중의 힘으로 세상을 바꿀 것인가 아니면 이념과 스타일을 내세워서 자기류를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세력의 힘으로 세상을 바꿀 것인가이다.

전자라면 차기 혹은 차차기를 준비한다는 말이고 후자라면 그 이후에 대비한다는 말이다. 어느 쪽이든 달라지는 것은 일의 우선순위에 불과하다. 말로 이기는 것은 지는 것이요 진정성으로 이기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정혜신은 유시민에게 마이크를 넘겼는데 유시민은 누구에게도 마이크를 넘기지 않았다는 말이다.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sort
2217 구조론 사람의 자격 김동렬 2021-06-10 3678
2216 채동욱과 이준석의 운명 2 김동렬 2022-09-03 3677
2215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 김동렬 2021-01-07 3677
2214 문학의 구조 1 김동렬 2019-08-06 3677
2213 의리는 편제에서 나온다 2 김동렬 2018-10-28 3677
2212 유시민 대안론 김동렬 2021-03-07 3676
2211 비행기가 뜨는 진짜 이유 image 김동렬 2023-05-16 3675
2210 윤석열의 진실 김동렬 2021-12-20 3675
2209 거대한 전복의 시작 5 김동렬 2019-07-01 3675
2208 수준이하의 과학자들 김동렬 2023-10-01 3673
2207 비겁한 이낙연 2 김동렬 2021-10-13 3673
2206 노재헌과 전우원의 깨우침 김동렬 2023-03-31 3668
2205 제자와 의리 김동렬 2021-09-15 3668
2204 경상도 홍준표, 우병우의 전라도 사냥 1 김동렬 2020-06-07 3666
2203 영혼이 있다 2 김동렬 2018-11-03 3666
2202 조국을 비난하는 자들 1 김동렬 2022-03-09 3665
2201 장이 정답이다 5 김동렬 2019-05-07 3665
2200 입진보 카터의 귀향 2 김동렬 2021-07-12 3664
2199 이기는 진보가 진짜다 김동렬 2021-06-12 3664
2198 인간은 어떻게 신과 나란히 테이블에 앉을 수 있는가? 1 김동렬 2020-01-14 36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