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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자부심과 빵을 줄수 있다. 굳이 둘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당은 이념을 선전해서 국민에게 자부심을 심어주는 것이 맞고, 청와대는 실용을 해서 빵을 해결해야 한다. 이렇게 역할분담이 된다.
 
실용주의? 글자 자구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전체적인 맥락을 살피고, 흐름을 살피고, 이면을 들추어 보아야 한다. 어차피 정치는 자부심 아니면 빵이다. 우리당은 자부심을 버리고 빵을 선택한 것이다.  
 
정치의 역할이 '100'이라면 그 중 절반인 50을 버렸다. 빵에 집착하는 한나라당을 쫓으므로서 우리당의 경쟁력인 자부심을 버렸다. 자기 장점을 버리고 상대의 장점을 쫓아가니 이 어찌 미친 짓이 아니겠는가?
 
당의 상부구조로는 청와대와 내각과 원내가 있고, 하부구조로는 당원과 지지자가 있다. 상부구조의 역할은 빵을 해결하는 것이고, 하부구조의 역할은 자부심을 심어주는 것이다. 이념을 버린다는 것은 당의 하부구조를 버린다는 말이다.
 
하부구조가 없는 당을 보고 ‘사상누각’이라고 한다. 한나라당은 원래 사상누각이다. 걔네들은 그래도 무방하다. 왜? 그들은 관료, 장성, 교수, 변호사, 재벌 등 빠방한 용병부대를 고용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부구조 없이도 당을 꾸려간다. 물론 원천적으로 하부구조가 없으면 당이 되지를 않는다. 그 약점을 지역주의로 커버한다. 즉 한나라당은 하부구조가 없는 사이비당이기 때문에 지역주의가 필요한 것이다.
 
지역주의가 당원과 지지자의 역할을 대신해준다는 말이다. 그래서 한나라당은 이름이 당일 뿐 실제로는 당이 아닌 사이비집단인 것이다.
 
무엇인가? 문제가 되고 있는 빌어먹을 TK의 지역주의! 이 TK지역주의의 본질이 무엇인가? TK의 자부심이다. TK의 인종주의적 우월감이다. 알고보면 한나라당도 사이비이긴 하지만 자부심을 판매해서 먹고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차피 당은 자부심과 빵을 해결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념이 하부구조가 되어 자부심을 해결하고 실용이 상부구조가 되어 빵을 해결한다. 하부구조에 이념이 없으면 지역주의가 그 이념의 빈공간을 메운다.
 
그러므로 실용주의노선은 곧 지역주의 파시즘 노선이 되는 것이다.
 
개혁이란 무엇인가? 사이비인 지역주의가 하던 역할을 다른 것으로, 진정한 것으로 대체하자는 것이다. 무엇으로? '이념이 주는 자부심으로!' 이념을 버리면 지역주의가 파도처럼 밀고 들어온다. 막을 방법이 없다.
 
왜? 인간은 어차피 자부심으로 먹고사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 자부심을 주는 것은 파쇼적 지역주의와 인종주의 아니면 도덕적 자각으로서의 이념 뿐이기 때문이다.
 
자부심을 주어야 당이 살 수 있다. 지역주의 파시즘으로 자부심을 줄 것인가 아니면 도덕적 각성으로 자부심을 줄 것인가? 이 밖에 제 3의 길은 없다. 우리는 도덕적 자각을 선택할 수 밖에 없으며 이것이 이념이고 개혁이다.
 
탈 이념? 도로지역당 하겠다는 소리다. 지역주의! 이거 무서운거다. 세균처럼 증식하고 전염병처럼 파고든다. 이념의 방패로 철벽같이 막아야 한다. 보라! 효순이와 미선이를 기리는 촛불행렬에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르는 지역주의가 있었더란 말인가?
 
우리는 오로지 이념으로만이 지역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 백범 김구선생이 제안한 ‘문화국가의 비전’으로만이 지역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 장준하선생이 몸으로 실천한 ‘민주주의의 이념’으로 만이 가능하다.
 
도올 김용옥 식으로 말하면 삼봉 정도전이 실패한 것을, 혜강 최한기가 이어받고 그 도도한 흐름이 동학으로 이어지고, 다시 3.1만세로 이어지고, 4.19로 이어져서 오늘 우리가 있다. 그 도도한 역사의 밑바닥에 흐르는 정신을 보라는 말이다.
 
이념은 다양하다. 각자에겐 각자의 이념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토론을 통하여 가치를 공유할 수 있다. 노동자계급의 입장을 내세우는 상대적으로 더 급진적인 이념을 가진 자도 있고, 조선유림의 선비정신으로 무장한 도덕적 숭고함을 이념으로 가진 자도 있다.
 
우리는 내부토론을 통하여 이념경쟁을 벌일 수 있다. 이번 워크샵은 상대적으로 계급의 이념을 강조하는 파와, 윤리의 이념을 강조하는 파가 서로 경쟁하는 자리여야 했다. 이 둘은 모든 이념의 뿌리인 휴머니즘으로 통일 될 수 있다.
 
지도부는 ‘백화제방 백가쟁명’식으로 이루어지는 이념의 대결을 가만히 지켜보는 사회자의 역할을 했어야 했다. 초선의원들에게 발언권을 주고 지도부는 맨 나중에 단상에 올라 양자를 절충하고 조정했어야 했다.
 
우리당은 평등한 공동체의 가치에 기우는 노동자의 이념도, 도덕과 윤리의 가치에 기우는 중산층의 이념도 능히 소화할 수 있다는 포용력을 과시했어야 했다. 그런데 엉뚱하게 실용주의라는 것을 들고나와 토론 자체를 무산시켜 버렸다.
 
실용주의? 토론하지 말자는 거다. 이념을 버리자는 거다. 서민계급의 공동체적 가치도, 중산층계급의 윤리적가치도 버리자는 거다. 이런 식이라면 당이 왜 존재하는가? ‘우리구락부’로 이름을 바꿔야 한다.
 
자부심을 주기 위해 당이 존재한다. 자부심을 주는 방법은 공동체의 이념과 도덕의 이념 뿐이다. 그 자부심을 팽개칠 요량이면 왜 당이 필요하다는 말인가? 우리 평범한 국민들은 그냥 먹고 살면 된다.
 
아침에는 회사에 나가 일하고, 저녁에는 가족들과 함께 오순도순 식사하고 밤이 되면 이불펴고 잔다. 근데 왜 정당에 가입해서 당비를 내고, 조직을 꾸리고 당원교육을 받고 해야만 하는가? 그래서 얻는게 뭔데?
 
자부심을 얻자는 것이다. 자부심이 당원의 일용할 양식이 되는 것이다. 자부심을 줄 터이니 당원이 되고, 내돈으로 당비를 내고, 정기적으로 당원교육을 받고, MT에 참여하고, 당에서 친구를 사귀고 하라는 것이다.  
 
근데 쓰바! 그 자부심을 안주겠다면, 서민의 이념인 평등한 공동체의 가치도, 중산층의 이념인 고상한 윤리의 가치도 부인하겠다면, 얼어죽을! 그날로 당은 그 존재가 없다. 실용주의? 이건 당의 자기부인이다.
 
"이념을 버려? 차라리 목사더러 성경을 버리라고 하슈!"
 
실용주의? 우리당은 국회구락부이지 당도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당은 당원의 것도 아니고, 지지자의 것도 아니고 지네들 직업정치인들끼리 속닥하게 해먹는 이너서클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하긴 뭐 실용주의가 나쁘기만 한건 아니다. 그러나 말이다. 관광버스가 있으면 손님이 있고 운전기사도 있다. 손님이 서울을 가자고 하면 서울을 가고, 부산을 가자고 하면 부산을 가는 것이다.
 
서울이든 부산이든 주인인 고객이 행선지를 선택하는 것이 곧 이념이다.
 
실용주의가 뭔가? 운전기사가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되지요’ 하는 것이 실용주의다. 근데 손님이 서울을 가자니까 운전기사가 가라는 서울은 안가고 탱자탱자 딴짓하면서 손님이 ‘아니 지금 서울 안가고 뭐하고 있소?’하고 따지면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되지요.’ 요렇게 어깃장을 놓는 것이다.
 
이런 개념없는 운전기사는 당일로 해고함이 마땅하다.
 
하기사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운전기사는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다. 길이 막히면 우회할 수도 있다. 우리는 그 정도의 재량권을 청와대와 내각에 부여한다. 당에는? 국물도 없다. 당에는 눈꼽만큼의 재량권도 부여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실용주의를 청와대에 주지 당에는 절대로 주지 않는다. 왜? 당은 선생님이기 때문이다. 당은 이념을 가지고 당원을 교육해야 하고, 당원은 그 이념을 지지자들에게 전파해야 한다.
 
청와대는 실용가가 맡고, 당은 원칙가가 맡는다. 당은 꼬장꼬장한 시골 서당 훈장님 같아야 한다. 유연한 협상가는 당을 떠나서 내각으로 가든지, 연구소 따위로 물러나야 한다. 실용가가 당을 좌지우지하면 그날로 당이 망한다.
 
당은 인큐베이터다. 당은 제 2의 김대중, 제 2의 노무현을 양성하는 인큐베이터인 것이다. 그런데 실용주의를 해서 융통성을 발휘한다며 요랬다 조랬다 하는 미래의 제 2의 김대중, 제 2의 노무현을 누가 신뢰하겠는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이유를 설명하고 전체적인 구도를 깨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부분적인 설계변경을 하는 것은 가하나 대통령이 되기도 전에 실용주의 한다며 요랬다 조랬다 아침저녁으로 변하는 인간을 누가 믿어주겠는가? 그 당 3일도 몬가서 폭싹 망한다.
 
곧 죽어도 당은 이념이고 원칙이다. 실용을 말해서 안된다. 그건 학교 선생님이 수업 중에 컨닝기술 가르치고, 찍기요령 가르치는 거다. 과외선생님이 그런 짓 해도 혼날 일인데 담임선생님이 그런 짓을?
 
안됨미다. 이거 패지기야 함미다.
 
정리하자. 작은 부대를 지휘하던 소대장이 152개 사단에 과반수라는 거함을 지휘할 수 있느냐의 문제에 부닥쳤다. 이것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태의 본질이다. 그 인간의 숫자가 많을수록 원칙가가 맡아야 한다.
 
서너명 가르치는 과외선생은 요령을 가르쳐도 된다. 그러나 3000명 가르치는 교장선생님이 요령 가르치면 그 학교 망한다. 우리당은 과반수 제 1당 하고도 여당이다. 국민이 눈뜨고 지켜보고 있다. 당의장은 교장선생님 같은 위치다. 깐깐한 원칙가가 당을 책임져야 한다.
 
이념경쟁을 해도 부족한데 이념폐기를 선언하다니 .. 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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