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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720 vote 0 2021.06.05 (21:29:00)

    역사에 허다한 철학자가 있었지만 다들 남들 눈치를 보며 내 생각은 이런데 하고 이미 만들어진 거대한 흐름에 조심스럽게 물 한 바가지를 보태고 있었던 것이다. 도도하게 흐르는 역사의 거대한 물줄기를 바꿀 생각은 못했다. 


    공자는 달랐다. 공자는 처음 온 사람이므로 흐름을 바꿀 필요조차 없었다. 어린이처럼 순수했다. 주변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빈 땅에 처음 집을 짓는 사람은 마음대로 지을 수 있다. 미국은 빈 땅에 집을 짓는 것과 같아서 마음대로 민주주의를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공자는 마음대로 떠들었다. 어린이의 마음이었기 때문에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면 켜켜이 쌓인 전통의 무게에 짓눌려 질식하게 된다. 먼저 와서 기반을 닦아 놓은 터줏대감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 고참 눈치, 병장 눈치, 하사관 눈치, 소대장 눈치, 대대장 눈치 보다가 층층시하에 숨이 막힌다. 


    시청에서 온갖 잔소리를 하므로 내 집에 못 하나 마음대로 못 박는다는 나라도 있다. 근본이 뒤틀려 있으면 뜯어고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천동설을 지동설로 바꾸는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공자는 한마디로 주체의 발견이다. 상대가 어떻게 했느냐가 중요한게 아니고 내가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남탓하기 없기다. 자신을 능동적인 존재, 권력적인 존재로 규정해야 한다. 자신이 먼저 변해야 한다. 내가 전부 책임져야 한다. 내가 다 감당해야 한다. 


    왜? 인간의 남탓본능 때문이다. 어리광 본능이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히스테리를 부려서 다른 사람을 자신의 일에 개입시키려고 한다. 그것은 호르몬의 작용이므로 깨닫지 못한다. 무의식중에 짜증을 부려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려고 한다. 그러한 동물적 본능을 극복하고 사람다워지는 것이 공자의 극기복례다.


    예수의 구원과 석가의 해탈도 주체의 긍정이다. 공통적으로 주체를 수동이 아닌 능동으로 놓는다. 다른 점은 석가의 해탈은 주체가 개인이라는 점이다. 개인이 깨달아서 높은 단위로 올라간다. 대승은 집단이 주체라는 점에서 공자와 가깝지만 내세로 해결을 미루는 인도철학의 허무주의는 공허하다. 사건이 다음 단계로 연결되지 않으므로 의미가 없다.


    공자를 이해한 사람이 없듯이 예수를 이해한 사람도 없다. 예수가 믿는 신과 기독교인이 믿는 신은 다른 신이다. 예수의 진정한 의미는 신의 주체화다. 임제의 제자 혜연이 임제록에서 말한 살불살조와 같다. 


    신을 만나면 신을 죽여라. 니체가 술 먹고 미친 척하고 호기롭게 한 번 내뱉어 본 말이다. 맨정신으로 그런 말 하면 죽는다. 니체는 정면으로 신을 찌르지 못했다. 신을 이기지 못했다. 궁시렁대며 불평을 늘어놓았을 뿐이다.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다음 단계로 사건을 연결시키지 못했다. 


    니체의 권력의지는 현실도피를 반대하고 정치권력을 긍정하는 공자와 닮았다. 니체의 초인은 공자의 군자와 같다. 다만 군자는 집단이고 초인은 개인이라는 점이 다르다. 개인의 정신승리는 한계가 있다. 사회 안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골방에서 혼자 잘난 척하는 정신승리가 아니라 현실승리라야 한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신을 만나면 신을 죽여라. 내 바깥에 신이 있다면 그 신은 죽은 신이다. 주체가 아닌 타자로서의 신은 말하자면 외계인이다. 그런 신은 필요없다. 외계인은 보는 즉시 죽여야 한다. 상호확증 파괴와 같다. 먼저 발견한 쪽이 선수를 치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상대방을 통제할 어떤 수단도 없다. 가까운 곳에는 외계인이 없다. 상호확증파괴의 문제 때문에 별들의 간격을 충분히 떼어놓았다. 만약 있다면 내가 진작에 죽었을 것인데 내가 분명히 살아있다는게 닿을 수 있는 거리 안에는 외계인이 없다는 증거다.


    신의 마음이 나의 마음이라야 한다. 신의 생각을 나의 생각으로 삼는 것이 주체의 관점이다. 내 생각이 이렇다고 말하는 자기소개라면 곤란하다. 누가 네 생각 물어봤냐고? 신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살불살조이며 그것이 신의 주체화다. 


    반대로 신의 타자화는 신에게 뭐 해달라고 기도하고 징징대는 것이다. 신이 뭘 해주면 남이다. 남이면 외계생물체다. 바로 죽여야 한다. 기도는 무언가를 요구하는게 아니라 신과 나를 일치시키는 조율이어야 한다.


    신을 나 바깥의 어떤 타자로 보는 관점은 신을 모욕하는 것이다. 남이면 적이다. 신에게 대적하는 자는 죽는다. 신을 주체의 확대로 해석한 사람은 잔 다르크다. 개인의 견해를 말하면 마녀로 몰린다. 나는 신을 이렇게 본다고 말하면 죽는다.


    잔 다르크는 재판관의 집요한 유도심문을 절묘하게 피해 갔다. 글자를 배운 적이 없는 소녀가 무엇을 알겠는가? 관점을 바꾸면 간단하다. 입장 바꿔 생각하기다. 신 속에 내가 있는 것이다. 내 의견을 앞세우지 말고 신의 생각을 나의 생각으로 삼는 방법으로 잔 다르크는 재판관을 이겼다. 그래도 결국 화형당했지만 말이다.


    깨달음은 주체와 타자의 문제다. 신이든 부처든 달마든 내 바깥에 뭐가 있으면 안 된다. 나의 마음을 신의 마음과 일치시켰을 때 문제는 해결된 것이다. 그것으로 모두 완성되어 있다. 조심해야 한다. 섣불리 신을 주체화하려다가 신에게 직통계시를 받았다며 사이비교주 행세를 하는 자가 널려 있다.


[레벨:3]파워구조

2021.06.06 (00:37:49)

매번 탄복하지만
특히 오늘 메세지가 압권입니다.

'신의 생각을 나의 생각으로 삼는 방법으로'

이 역이면 곧바로 사이비가 되는 경고까지.

감사합니다.
[레벨:8]펄잼

2021.06.07 (18:55:56)

섣불리 신을 주체화하려다가 신에게 직통계시를 받았다며 사이비교주 행세를 하는 자가 널려 있다. ---앜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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